개관기념 6인초대展

2010_0416 ▶ 2010_0430

초대일시_2010_0416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응기_김정호_오순환_정일랑_주정이_한성희

관람시간 / 10:00am~06:00pm

보고갤러리_BOGO GALLERY 부산 사하구 당리동 321-1번지 리치W빌딩 1층 Tel. +82.51.206.8811

봄나들이 ● 아름다운 사월의 봄향기와 함께 꽃망우리 마냥 보고갤러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엽니다. 이번 개관전에는 화단에서 심도 있고 개성넘치는 작품세계를 주도하는 작가 선생님들과 함께 그림속 봄소풍을 준비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함께 귀한 시간 내시어 소중한 만남이 되길 바라며, 지역문화에 조그만 보탬이 되고자 봄소풍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 합니다. 흔쾌히 초대해 응해주신 작가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이번 기획초대전이 한 줄 추억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 김자원

김응기_메모_인쇄물, 먹잉크_62.5×108cm_2002

인간의 언어는 사고를 표현하는 기호들의 체계로 그것은 세계에 대해, 혹은 자신의 의식에 대해 어떠한 형태를 부여하고 해석한다. 사실 언어 이전의 세계, 즉 인간 인식의 상태는 매우 애매모호하고 형태를 규정할 수 없다. 인간은 언어라는 기호의 분절로써 세계를 이해하고 서로 소통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는 세계에 대한 의미조건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응기의 80년경부터 7,8년간의 작품은 이러한 언어, 정확하게 하자면 문자라는 상징적인 기호를 재료로 한 작업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언어라는 기호를 또 다른 시각적인 기호로 고쳐 쓰는 작업이다. 그것은 일종의 팔랭세스트(이미 쓰여 있는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글자를 쓴 양피지나, 혹은 여러 번의 가필, 정정, 삭제를 거쳐서 아주 달라진 작품) 같은 방식이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인쇄매체(주로 신문이나 잡지 등)의 문자를 칼로 긁거나 색채로 가필하여 완전히 감추거나, 혹은 글자를 보이게 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 것들이다. 그것은 언어의 그것만큼이나 지루하게 반복된 행위와 형태를 보여준다.(김응기의 Palimpseste 중에서) ■ 전창래

김정호_한 잎 베어물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80cm_2009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러한 느낌들은 어쩌면 나의 성분과 토양에서 나온 것일 게다. 현실적으로는 솔직히 강한 충격요법을 가미해 감상자에게 확 다가가는 화법과는 달리 느리고 조용한 어법 때문에 손해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다가가 만나기는 시간이 걸리지만 뒤이어오는 파장은 훨씬 크다고 믿는다.'(김정호) ●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초기 작업에서 상대적으로 거칠게 드러나던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최근 그의 작업에서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거친 시대에는 거친 목소리가 필요하듯이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깊은 사고와 예술적 직관이 필요한 시기에는 오히려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더욱 울림이 크다고 작가는 믿고 있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일수록 시는 쓰여야 한다했던가. 그의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작품 속에는 목표를 잃고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문명에 대한 서늘한 경고가 담겨있다. 자연을 원통, 구, 원뿔과 같이 단순화된 형태의 조형과 색상으로 환원시켰던 세잔이나 레제, 브라크 등 초기 입체파 작가들의 표현양식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의 작품이 외형적인 형상에서 완전히 새롭거나 파격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정호의 작품에는 무위자연을 노래하며 도교적 이상향을 꿈꾸는 동양의 오랜 회화전통이 담겨있다. 아날로그 또는 핸드메이드의 맛과 깊이를 아는 이들이 인정하듯이,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과 골동품들처럼, 하루하루의 소박하고 사소한 일상이었던 것이 역사를 통해 다듬어지고 깊이를 가지게 된 것들의 가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나무에서 사람으로 중에서) ■ 이진철

오순환_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116.7cm_2010

오순환의 그림은 더없이 따스하고 정겹다. 입가에 침이 고이듯 시정과 서정이 가슴 한 가운에도 가득 몰린다. 그림 그 자체가 홀연 황홀하고 안락하다. 은은한 미소와 작은 파동이 몸으로 스민다. 이미지를 통해 보는 이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그림이 여전히 가능하다면 이 그림은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밀레나 박수근의 그림마냥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자신의 삶을 견뎌내며 소박하고 착하게 사는 생의 여러 장면들이 식물처럼 자라나는 그림이다. 무욕과 탈속의 경지가 유리처럼 투명하고 백자항아리마냥 순연한 색조로 가득 물들어 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번잡과 소음을 지운 체 환하게 눈부신 빛 아래 증류한 일상의 편린을 연서처럼 쓰고/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을 보면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입안이, 마음이 밝고 '화-안'해진다. 그림이 정서와 정신건강에 치유적 기능이 있다면 이 그림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는 그림을 일기처럼 쓰고 편지처럼 보내며 경구나 금언처럼 세웠다. 특히 한문으로 댓 구를 이룬 문장이 화면 모서리 쪽으로 깃들이 있어서 보면서 문자를 읽고 뜻을 이해하고 다시 그림을 보면서 그 의미를 곰곰 생각하게 한다. 문장들이 재미있게 그림과 결부되어 있다. 해서 문자와 이미지가 분리되지 않고 그 둘이 하나로 불거져 그림의 뜻과 생애를 풍성하게 했던 전통회화를 문득 추억하게 된다. 비교적 쉬운 한자로 쓰여져 있어서 읽고 소통하는데 장애가 없으니 좋고 그림에 대한 비교적 친절하고 융숭 깊은 뜻을 전달해주니 읽고 보는 맛을 더하게 되어 좋다.(오순환-세상에 보내는 연서(戀書) 중에서) ■ 박영택

정일랑_아름다운 시간들_캔버스에 흙, 연필_45.5×53cm_2008

작가는 일정한 간격으로 그은 선들을 반복해가면서 거대한 화면을 덮어나갔다. 마치 농부가 파종하듯, 소가 논을 갈 듯, 할머니가 굽은 등이 되어 김을 매듯 말이다. 그는 그림이란 것 역시 이렇게 대지에서 농사를 짓는 일처럼 순연한 노동이 되어야 하며 거짓 없고 소박하고 참된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는 듯 하다. 뿌린 대로 거두듯 그림 역시 자신이 몸으로 느끼고 이룬 것을 결코 넘어서지 못하는 법이다. 그는 자신의 화면 안에서 농사를 지으며(추억과 몽상의 작물, 향수와 아름다움의 재배) 흙과 함께 산다. 그 흙 안에서 여러 존재들을 길러낸다.(정일랑-추억과 꿈의 공간 그리고 우주적 연민 중에서) ■ 박영택

주정이_동밖이모_목판에 한지_30×30cm_2008

숫돌에 칼을 갑니다. 어제도 칼을 갈았고 오늘도 칼을 갑니다. 밥 먹을 때도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지만 마음은 칼을 갈고 잠 잘 때는 꿈속에서라도 칼을 갑니다. 외출 할 때도 눈은 차창 밖 세상구경을 하지만 가슴은 칼을 갈고, 칼 가는 것이 일이고 칼 가는 것이 사는 것 인양 날마다 눈만 뜨면 숫돌에 연신 물을 축이며 싸악 -싸악 칼을 갑니다. 일 년 열두 달 한 달 하루 한시도 거르지 않고 숫돌에 칼을 갑니다. 아직은 공력이 약해 무디지만 일 년이 일만 달이고 하루가 일만 날이듯 갈고 갈아, 칼날이 다 닳고 손안의 칼자루가 다 닳고 비로소, 칼날이 보이지 않고 칼자루 없는 빈손이 되어 오월 수릿날 하늘 길목 소도(蘇塗)마을 공터에서나, 상무주 도단지붕 때리는 소나기소리 장단해서나 허공을 가르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춤사위로 칼춤을 추고 싶습니다. 추다가 혼절이라도 할 만큼 실켠 칼춤을 추고 싶습니다. ■ 주정이

한성희_Deep Etching, Lithograph, Embossing_98×68cm

Eatching, Aquatint, Drypoint, Engraving 등의 다양한 수법의 혼용을 바탕으로「image of form」이라는 제명의 연작 작품을 보인 한성희 작품전은 85년도 개인전에 보이던 작품 세계와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85년도의 작품들은 구상적 세계가 갖는 이미지들의 충돌, 또는 초현실주의적 기법의 차용을 바탕으로 한 생경한 이미지 형성 등이 표현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것이 "기존 사물들과 새롭게 만나기"라는 이미지 생성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는데 비해 이번 전시에서는 이런 이미지의 충돌이 갖는 돌연한 가지나 생경함이 아니라 대상자체가 포용할 수 있는 깊이감을 표출케 함으로써 신선한 명상성을 작품 속에 나타내 보이고 있다. 이런 명상성의 형상화를 위해서인지 이번 작품들의 소재로 등장하는 소도구들이 대단히 단순하고 반복해서 사용되면서, 기법들의 혼용에서 오는 선과 공간의 생성이 주는 진동을 미세한 장인적 인내와 숙련된 기법들을 중심으로 받아내고 있다. 구체적 형태를 갖는 것은 돌과 못이라는 소재에 거의 한정되어 있으며, 이 형상을 중심으로 그 배후의 배경으로 다양한 기법의 선들을 만나게 해서 예기치 않았던 깊이 있는 공간감을 창출해 보인다. 한 기법의 선들을 만나게 해서 예기치 않았던 깊이 있는 공간감을 창출해 보인다. 여기에 색가를 갖는 단순한 선면의 처리를 추가함으로서 화면의 단조로움을 화사하게 일신시켜 버린다. 이 화사한 효과가 화면전체에 긴장감을 가져다 주는 것도 그의 이번 작품이 주는 독특한 득의의 표현성이기도 하다. 단순한 색가가 주는 긴장님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단순성에 대한 미묘한 작가의 반응을 감지하게 해준다.(1988. 형상과 사유 중에서) ■ 강선학

Vol.20100420d | 개관기념 6인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