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부스展

강석호_권신홍_원병훈_임소영展   2010_0422 ▶ 2010_0428

강석호_Ashes of Cognition (artist-02 )_코튼에 연필, 파스텔_130.3×162.2cm_2010

초대일시_2010_0426_월요일_05:3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중앙문화예술관 CHUNG-ANG ART CENTER 서울 동작구 흑석동 221번지 Tel. +82.10.2820.7174

인간이 자신의 영역확보와 흔적(또는 존재함의 표시)을 외부환경에 각인시키려는 충동은 문명 형성의 가장 근원적인 동기중 하나일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이 주어져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인식할 수 있는 한, 어떤 형태 또는 방식으로든 자신을 외부에 투영시키려는 욕구를 갖는다. 생명체가 자신을 외부에 드러내는 행위는 구축적, 생산적인 성장활동이다. 하지만 구축적인 방법을 유심히 관찰하면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해체과정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해체가 있기에 구축이 가능한 것이며, 관점에 따라서는 해체와 구축의 구분이 모호해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 작품에 보이는 소각된 대상물이나 이미지 정보가 쌓여서 흐릿한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물질적 측면에서는 해체과정이지만, 화면의 다른 소재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새로운 의미관계를 구축하는 대상물이 될 수 있다. 대상이 갖고 있는 모호함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명확한 부분들에 대한 집중의 단절이 필요하다. 소각과 이미지의 모호성은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철학과 예술의 관계 속에서 언어와 이미지가 맺고 있는 의미관계의 모호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한 예술가의 예술정신을 함축적으로 암시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해체적 방법은 보다 농축된 의미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 강석호

강석호_Ashes of Cognition_코튼에 목탄, 파스텔_181.8×227.3cm_2010

멋지고, 예쁘게 다듬어진 외모의 인물들 - 텔레비전 화면 속의 연예인 혹은 대중화된 메인 잡지의 모델들 - 보다는 실제 한 번쯤은 마주칠 것 같은 그런 생김새를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그의 삶 혹은 일상을 그려낸다. 작품의 제목인'성과','이름'의 결합은 실제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단어로 '단어'는 작품의 제목임과 동시에 작품 속 주인공의 이름이며, 주인공의 상황을 이야기 한다. 대중문화 속에서의 개인적, 공통적 - 주관적, 보편적 - 으로 대변되는 여러 요소들을 작품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주어진 공간에 개입시키고, 작가 개인의 특수한 정신적, 감정적, 정서적 등의 지극히 주관적인 요소에 대중들과의 소통을 위하여 약간의 객관적 시각을 가미한다. ● 동시대를 살아가며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작품 앞의 대중들과의 소통은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에게 중요한 부분이므로, 어려울 것 같지만 결코 어렵지 않게, 가벼운 듯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 창작 활동과 더불어 소통의 목적 또한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하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 권신홍

권신홍_'노년' 할아버지_캔버스에 유채_72.8×60.6cm_2009
권신홍_'사형제' 씨네_ 캔버스에 유채_97.0×145.5cm_2010
권신홍_'황혼' 할머니_캔버스에 유채_72.8×60.6cm_2010

동양고전에 이르길 '모든 존재형상은 기氣의 취산聚散으로 이루어진다.'라고 한다. 기가 우리의 주변에 흐르다 모여 형상을 가시화하고 다시 흩어져 비가시화 되며 흐르는 것이다. 이렇듯 기는 우리의 주변에 항상 흐르고 있으며, 모이고 흩어짐이라는 순환의 섭리 속에서 삼라만상을 만들어 낸다. ● 이것이 회화에 대입된다면 작품의 이미지는 기본구성요소의 취산으로 이루어진다고도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회화의 기본구성요소란 바로 선線을 말한다. 선은 행위에 대한 흔적이다. 평면회화에서 사실표현이든 추상표현이든 간에 캔버스에 매체를 통해 흔적을 남기며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 흔적은 칠하고, 긁고, 긋는 등 다양하게 분류 되어질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 내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획劃'의 긋는 개념이다. 요컨대 나의 작업은 행위의 흔적인 획의 집적集積을 통해 형상과 조형과정의 드러냄이다. 존재가 인식되는 시점에서부터 모든 것은 변해간다. 동양철학에서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해 간다. 시작에서 끝으로 가는 것이 아니며, 끝에서 시작으로 가는 것 또한 아니다. 사물과 사물에서부터 시작되는 변화는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꼬리를 물며 변화해 간다. 과정과 완성에서도 이러한 공식을 대입 시킬 수 있다. 내가 드러내고자 하는 부분은 형상이 온전하지도 완전히 해체되지도 않은 순환 과정의 그 어디쯤인 것이다. 때문에 작업은 처음 획을 긋는 순간에서부터 형상의 구축되기 이전인 어느 순간에 종료된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미완이 아닌 완결인 것이다. ■ 원병훈

원병훈_'획'과 '획으로..'의 사이에서_종이에 아크릴채색, 먹_156×217cm_2010
원병훈_'획'과 '획으로..'의 사이에서_종이에 아크릴채색, 먹_156×217cm_2010

우리는 세상이라는 거대하고도 매력적인 것에 기생하지만 그 대가로 무언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속에서 비롯된 현대의 상업논리와 소비심리는 소유의 양질로 인간을 평가하고 있다. 이는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주었으나, 인간가치와 의식이 부재한 판단으로 결국 대중의 병페와 고독을 낳게 되었다. 돼지색, 분홍색 ● 네자매중 셋째딸로 성장했던 나는, 원치 않아도 항상 분홍색이 스며있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분홍색은 돼지의 피부색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겨졌다. 이를테면 사람의 피부에 가까운 색감으로 달콤하면서도 깊이감은 없고 성적인 것에 가까워 요염하고 야하다는 느낌으로 강하게 와 닿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색감에서 엄마의 따뜻한 피부숨결을 느꼈고,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갖기 싫지만 범접하고 싶은 나의 이중적인 욕구를 돼지 색, 분홍색에서 경험하게 되었다. 시대의 자화상 돼지 ● 우리는 '돼지색'에는 열광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돼지 형상'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차라리 배부른 돼지이기를 원하는 속물근성에 사로잡힌 현 사회의 일원인 우리의 모습에서 착안해 가상적 문화시대의 아바타, 즉 돼지화 시키는 작업을 했다. 결국 돼지로써 휴머니티를 재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동화같은 분홍의 달콤함 속에서 소녀의 눈은 표정을 감춘채 실속없이 웃고 있다. ■ 임소영

임소영_샤방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09
임소영_숲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0

Vol.20100422g | 4인 부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