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다 깊은 물

2010_0507 ▶︎ 2010_0527 / 일,공휴일 휴관

김호득_급류_혼합재료_146×254cm_2007 송필용_소쇄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4cm_2010

초대일시_2010_0507_금요일_05:30pm

참여작가 김호득_문봉선_강경구_송창_송필용_이상민 최준근_김승영_원인종_김동철_김성호_문호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Tel. +82.2.3479.0114 www.interalia.co.kr

물보다 더 깊은 물 ● "오 물이여!(수재水哉) 물이여!(수재水哉)" 공자(孔子)는 모든 곳으로 퍼져 나가고 모든 것에 생명을 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물을 바라보며 늘 이렇게 찬미하였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가로질러 보면 '물'은 인간의 정신을 비춰 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대상인지라, 공자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와 예술가들의 은유적 모델이 되었고 상상의 기회를 제공했다. 물에 대한 관심이 비단 공자뿐이겠는가? 유가(儒家), 도가(道家) 에서도 물은 자연과 인간세계를 관통하는 신성한 매개체로서 인생의 원리를 이끌어 내는 좋은 모델이었다. 동서양의 사상가들은 자연을 탐구하면서 인간을 이해하였는데, 물은 이런 순리를 비춰주는 가장 오래된 거울이며 뿌리였던 것이다. 특히 동양에서는 물은 생명의 원천과 최고의 선(善)으로서, 전통 산수화에서는 도(道)와 지(知)를 담아내는 불멸의 소재였다. 현대의 화가들에게도 '물'은 여전히 매혹적인 주제이며 소재이다. 이번 「물보다 깊은 물 」展은 이 불멸의 소재를 꾸준히 화폭에 담아내고 있었던 12명의 작가들이 주축이 된다. 12인의 작가,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 "물은 형태가 깊고 고요한 듯 해야하고, 부드럽고 매끄러운 듯 해야하고, 넓고 넓은 듯, 빙빙 돌아 흐르는 듯, 살지고 기름진 듯, 용솟음치는 듯, 밀치며 부딪치는 듯, 많은 샘에서 흐르는 듯, 끝없이 멀리 흘러가는 듯해야 하며, 또 폭포는 하늘에서 아래로 꽂히듯이 흘러 내려야 하고, 급히 흘러 떨어져 땅 속으로 들어가는 듯, 고기 잡는 광경이 평화로운 듯, 주변의 초목이 무성해서 이들이들한 듯, 안개나 구름이 끼어 빼어나게 고운 듯, 계곡에 햇빛이 비치어 찬란한 듯하면, 이것이 곧 물의 활동하는 모습이다." 휘몰아치듯이 빠르게 읽혀지는 이 문장은 곽희(郭熙)가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밝힌 다양한 물의 모습이다. 곽희의 생각은 오늘날 작가들의 물에 대한 탐구와도 수렴되는데, 이번 전시작가들도 다양한 물의 형상을 통해 그들이 열망하는 모든 원리를 구체화하고 있다 하겠다. 김호득, 송필용 : 폭포는 하늘에서 꽂히듯이 ● 김호득은 광목에 스미고 번지고 튀는 먹을 마치 도술을 부리 듯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그러나 광목이란 천에 스며드는 먹을 조율한다는 것이 붓에 대한 감각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에서도 우위를 선점해야 하는데, 이 시간 또한 찰나여서, 기민한 직관과 통찰의 힘이 필요하다. 김호득의 이번 작품에서는 그 힘을 진하게 맛볼 수 있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그의 붓은 운명의 숙적을 앞에 둔 사무라이의 검은 칼과 사뭇 같다. 먹물과 작가사이의 밀고 당기는 집요한 신경전을 거친 뒤 날렵하고 순식간에 벼락 치듯 내리꽂아야 시간을 정지시키고 그 순간 먹 속의 물을 잡아 둘 수 있다. 수직으로 솟고, 수평으로 퍼진 팔딱팔딱한 선들로 이루어진 그의 폭포와 계곡은 그야말로 일필휘지, 기운생동, 몰아(沒我)의 진수를 보여준다. ● 송필용의 폭포를 본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송필용의 물은 물보다 더 좋다". 그의 작업 대부분은 담양의 물과 소쇄원의 대나무로부터 비롯되었다. 세상을 뒤집어엎을 것 같은 폭포와 담양풍경 작업들은 2009년 들어서 분청사기의 박지기법(剝地技法:어두운 밑칠 위에 밝은 색을 두껍게 입히고 고무주걱이나 나이프로 긁어내는 방식)을 현대적으로 응용한 새로운 화풍으로 발전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신작을 처음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새로운 폭포는 죽필로 선의 속도감을 더해 낙수(落水)의 날을 날카롭게 세웠고, 주변 바위들은 고무 주걱으로 과감하게 긁어 화면의 긴장도를 높였다. 특히 눈여겨 볼 것은 대숲과 그 사이로 길을 내고 있는 물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채우기 보다는 긁어 비워내는 박지기법과 세월이 갈수록 덜어내고 비워지는 대나무는 묘하게 어울린다. 그의 죽림(竹林)은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소요(逍遙)의 공간이며, 숲 사이로 흐르는 샘은 영겁의 시간 속에서도 결코 마르지 않을 것 같다.

문봉선_霧_한지에 수묵_27×44cm_2010

문봉선 : 안개나 구름이 끼어 빼어나게 고운 듯 ● 안개가 청명하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을지 모르나 문봉선의 「무(霧)」 작업은 공기 속에 머물고 있는 청량한 수분이 느껴진다. 담묵으로 간명하게 표현했지만, 안개가 걷히면 만 가지 풍경이 숨어 있을 것 같은 이 시리즈는 보는 이로 하여금 또 다른 마음의 풍경을 이끌어 내는데, 그 만큼 그는 평면의 여백을 공간의 깊이로 이동시키는 감각이 탁월하다. 작가의 「무(霧)」 와 「유수(流水)」 시리즈는 자연을 모사하지만, 본질을 꿰뚫어 표현함으로써 사실성과 추상성이 하나로 합일되는 한국화와 시대적 가치가 공존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흑백의 강한 대비, 삼원색, 검은 먹빛, 수평 구도로 대변되는 특징을 포작하는 작가는 수십 년 전부터 자연을 그리기 전 몸으로 직접 풍경을 만나고 충분히 체득한 뒤 붓을 든다. 이와 같이 그에게 실사는 실존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은 없다는 전통적인 실경산수 맥락을 유지시키면서 시대미감이 결합된 작업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강경구_먼그림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2010

강경구 : 끝없이 멀리 흘러가는 듯 ● 「천개의 바람」을 비롯한 기존의 강경구 작가의 산과 물 작업은 수십 년을 곰삭은 젓갈처럼 깊고 검은 먹과 거침없는 선, 두터운 덧칠이 내뿜는 강렬한 에너지가 특징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물과 사람 작업은 한층 가벼워진 색감과 터치, 원시적인 인물이 주는 신화적 풍경으로 인해 뜻밖에 낭만적이란 생각을 들게 한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드러나지 않는 이 시리즈는 내가 본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서정적이며 신비스럽다. 특히 신비감이 들게 하는 핵심은 태양아래 시뻘건 알몸으로 물을 가르는 거인 때문인데, 바다에서 태어난 신의 아이 같은 이 인물은 정신적으로 이상화 된 존재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 작업의 계기는 그가 인도여행 중 우연히 갠지스 강에 떠내려 오는 시체를 본 충격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고, 귀국 후 이 기억은 물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로 이어졌다고 한다. 물이란 존재는 알 수 없는 시작이자 끝이며, 세상 모든 것을 살릴 수도 있지만, 죽음을 영접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강경구는 이렇듯 삶과 죽음에 대한 묵시론적 통찰을 극과 극이 통하는 물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송창_물안개_캔버스에 유채_80×280cm_2005

송창 : 살지고 기름진 듯 "물은 땅의 피요 기(氣)다. 마치 혈맥과 근육이 통하는 길 같은 것이다. 그래서 물은 모든 것에 쓰임이 될 수 있다." (관자(管子), 39편 수성과 심성의 형성 中) 그는 흐르는 강과 인고의 삶이 대면하는 순간을 서사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송창작가는 민중미술 작가로 대표되기 때문에 강 작업은 다소 생소하다 느낄지 모르나, 그는 익히 오래전부터 민중이 딛고 서 있는 우리의 산하를 직접 두 발로 경험한 뒤 흙처럼 거칠지만 진실된 질감으로 물을 그려왔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흙과 물과 삶이 뒤엉킨 날 것의 냄새가 진동한다. 이번 전시는 남한강 시리즈를 필두로 꾸준히 보이고 있는 강에 대한 작품들이 소개되는데, 완급이 조절된 붓터치와 강한 마티에르는 굴곡의 삶을 끈질기게 끌어안고 바다로 가는 장엄함 물살을 살아있게 한다.

김성호_새벽_한강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10

김성호 : 넓고 넓은 듯 ●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그 경계를 초월한 대범하고 넓은 화면 처리가 일품인 김성호의 제주바다 작업은, 물이라는 대상과 바다라는 공간, 그리고 블루가 절묘하게 교감된 추상적이면서도 구상적인 작품들이다. 포구의 물 위에서 여리게 출렁이는 오징어배의 불빛이나, 공중에 뜬 신기루 같이 빛나는 가로등은 흔들리고 미스터리한 삶을 은유하는 것 같으면서도 서늘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김성호는 개성적인 구도와 각도, 대범한 화면처리가 트레이드마크인 빛의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빛의 감각적인 성질과 신비주의적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 작업 방식은 어두운 바탕화면에서 서서히 빛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화폭을 온통 환하게 채워 넣고 어둠으로 덮어가면서 최소한의 빛만을 남겨둔다. 그의 빛은 어둠이 푸른색으로 변할 때 더욱 찬란하다.

김동철_자연-환희 nature-glory_캔버스에 유채_90×270cm_2010

김동철: 햇빛이 비치어 찬란한 듯 "물을 관조하는 데에도 방법이 있다. 항상 물결을 보라. 해와 달이 빛날 때 그 광채가 항상 물결을 비출 것이다." (맹자(孟子), 맹심상(孟心上)) 김동철의 물결에는 휴식이 빛난다. 그의 물에 기대고 안겨 잠시 고단함을 풀고 나면 다시 야물어져서 일상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열과 찬 공기가 만나 피워내는 물안개, 물비늘, 물위에 반사하는 미묘한 햇살, 사실 그의 작품에는 뭔가 확고한 이미지는 없다. 그러나 오히려 선명하지 않아서 편안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텅 비게 해주는 그림들은 작가의 내면의 깊이가 깊지 않았다면 감동도 덜 했을 것이다. 김동철의 감수성과 미의식은 너무도 투명하다. 그래서 그에게서 나오는 고요한 자연의 이미지도 감동의 여운이 깊다.

김승영_두개의 물방울_대리석_40×20×15cm_2008 원인종_물-연기_철선용접_100×100×260cm_2010

김승영, 원인종 ; 빙빙 돌아 흐르는 듯 ● 이 두 작가의 출품작은 주제면에서 공통분모가 있다. 굳이 글로 풀지 않아도 작품을 보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음이란 어쩔 때는 입김만 불어도 소란스러워 질 때가 있고 결정을 내릴 때까지 계속 그 자리를 빙빙 돌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고난다. 이런 미세한 사념들이 물결처럼 마음 속에 하나하나 파문을 일으킨다. 원인종의 「물-연기」와 김승영의 「MIND」는 마음 안에 일어나는 이러한 동요를 표현하고 있다. ● 김승영의 또 다른 작품 「두개의 물방울」은 관계 속에서 생기는 갈등의 원인을 흑과 백의 대리석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재료와 방식으로 견고한 침묵 속에 숨겨진 흔들리는 내적 갈등을 물의 파문을 통해 이야기한다.

이상민_the landscape of synchronism02_혼합재료_50×50cm_2010

이상민 : 부드럽고 매끄러운 듯 ● 유리 공예가로 많이 알려진 이상민은 사실은 프랑스의 명문 아카데미인 스트라스부르그 조형예술대학교에서 유리예술을 전공하고 들어온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유리조각가이다. 물의 흐름을 통해 시간의 교차와 자연적 존재의 깊이를 이해했다는 작가는, 그 깨달음을 작업으로 연장하여 작품의 외연을 철학적인 물의 이미지보다는 생명력을 갖고 있는 일상적인 물을 정지된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그가 구체적으로 표현한 형상들은 '물방울', '물의 파동', '색의 자연적 흐름' 등 이다. 유리라는 재료는 매우 예민하고 연약하다. 작업 내내 온몸에 힘을 주고 긴장하지 않으면 유리는 물의 부드러운 탄력과 표면장력이 느껴지는 순연(純然)한 투명함으로 태어나기가 어렵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 줄 신작 「Afterimage」를 통해 특히 그의 치밀성과 집중력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작품이 결코 우연의 효과란 없고 인고의 노력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최준근_바다27_캔버스에 먹_150×150cm_2010

최준근 : 깊고 고요한 듯 ● 최준근의 바다연작은 바다 고유의 사실적 풍경이 아닌 압축된 형태와 관념적 이미지의 조합으로 보아야 한다. 작업과정을 보면 캔버스에 흰 바탕을 끊임없이 바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어떤 때에는 이 모습이 구도자의 명상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화폭 앞에서 긴 독백을 하듯 장고(長考)를 거쳐 백색을 올리는 작업이 끝나면, 하나 둘 점을 찍는데, 어느새 그 점들은 공간을 집어 삼키는 섬으로 변한다. 마치 시인이 몇 개의 단어만으로 심금을 울리듯이 작가도 몇 번의 몸짓으로 순식간에 바다를 만들고 무소불위의 힘이 느껴지는 단단한 바위들을 만드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품들을 마주했을 때 여백이었던 백색 공간이 물의 힘이 느껴지는 고요한 바다가 되고 먹빛의 섬 사이에서 리듬감을 읽었다면 비움이 채움으로 재현되는 순간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문호_Lake Michigan_캔버스에 유채_60.7×91.4cm_2010

문호 : 고기 잡는 광경이 평화로운 듯 ● 문호는 참여 작가 중 가장 젊지만, 이미 첫 번째 개인전에서 동양의 산수화를 디지털 시대의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이미지로 변화시킨 작업으로 그 독특함을 인정받았고, 이후 청전 이상범의 산수화에 고흐와 쿠르베의 작품을 조우시키는 신선함과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색면 분할과 색분해를 다양하게 픽셀화 시킨 독자적 방식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작가로서 역량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새롭게 시작하는 뉴욕생활에서 접한 수변(水邊)풍경을 그만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물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물의 의미, 상징, 철학적인 깊이를 논하자면 아마 결론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물보다 깊은 물 」은 세상의 물을 모두 고찰해보자라는 거창한 목적으로 기획한 것은 아니다. 단지 작가들의 삶에 '물'이 어떤 정신적인 힘을 발휘하는지 작품을 통해 이해하고자 기획했다. 이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음미하다보면 오히려 '물'이라는 존재가 스스로의 언어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들은 물에게 길을 묻고, 물은 그 언어로 답을 하고. 이 소재가 주는 외형적인 감성은 보편적이지만 내면으로 집중 할수록 관념적이거나, 아니면 너무 이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한국 미술계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중견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누구라도 공감할 만큼 능숙하게 물과 삶이 흘러간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 주었다. 나는 오늘 그들의 자연스러운 깊이, 그 에너지에 여러분들이 흠뻑 빠져보길 기대한다. ■ 김가현

Vol.20100507e | 물보다 깊은 물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