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만든 풍경

진성근展 / JINSEONGKEUN / 秦盛根 / painting   2010_0519 ▶︎ 2010_0602

진성근_울진72_목판각에 채색_180×60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806b | 진성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10_051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덕원갤러리_DU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82.2.723.7771~2 www.dukwongallery.co.kr

판각의 요철 미학, 노동으로 저항하는 이미지 ● 관수도, 행렬도, 월하도, 선유도, 탁족도, 맹호도, 사군자 등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우리 미술의 바탕에는 즐거움이 들어있다. 여기, 관조, 즐거움, 넉넉함, 적당함 등 여유에서 우러나오는 넉넉한 즐거움이 우리 미술의 미학이다. 반드시 여백이 있고, 세세한 현상의 재현이라기보다 편안한 상태에 있는 마음의 재현이 미학의 원칙이 된다. 미술을 실체(reality), 현상(appearance), 이상(Idea) 등 존재론적 구분으로 재단하지 않고 그저 생활세계의 연장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젓하고 여유로운 멋의 즐거움과 솔직한 마음 상태의 직설이 한국 미술의 특성인 듯 하다.

진성근_북한산65_목판각에 채색_60×90cm×2_2009
진성근_북악30_목판각에 채색_60×90cm_2010

이에 반해 천국도, 지옥도, 신화의 에피소드, 왕후장상의 귀족도, 전쟁도, 칠거지악도, 최후의 만찬도, 최후의 심판도 등 서양미술은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공포를 더 많이 다루었다는 혐의가 있다. 즐거움보다 공포로부터 보호 받으려는 액막이의 수단이 서양미술의 발단임에 틀림없다. 양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나온 현대미술이라는 놈도 인간에 대한 회의와 신에 대한 혐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공포로부터 발로된 위악이 아니었던가?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이렇게나 달랐다.

진성근_분당31_목판각에 채색_60×75cm_2009

그러나 사실 서양이나 동양이나 공통적인 사유의 맥락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중용(中庸)이 바로 그것이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다 채우지 않고 남음이 있더라도 끝까지 행하지는 않는다(有所不足 不敢不勉 有餘不敢盡)"는 문구는 중용이 견지하는 우주론의 근간이다. 이는 현실이 난분분 난분분 어지럽지만, 곧 가라앉아 오히려 차분해질 것임을 미리 예견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견지해내는 삶이다. 서양에도 스토아학파가 가르쳤던 "삶의 기술(ars vivendi)"이 있다. 삶의 기술이란 지혜를 얻기 위해 실천하는 삶이며 곧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삶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득세한 후 기독의 교권주의에 주눅들고 반발하며 대항하다 다시 몰매 맞기를 거듭하며 펼쳐졌던 문화의 흐름이다 보니 응당 자연스러움을 거절한 양태가 아니었나 싶다. 현대미술을 받아들인 우리 역시 서구 개념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시작부터 달랐던 출발에서 갑자기 남의 것을 들여와 우리는 개나리 뿌리에서 장미가 발아한 것 같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구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어째서 자연스러운 중용의 마음을 죄다 잃고 우리 스스로 공포와 반역의 아방가르드를 선진 일류적 기치(旗幟)로 받아들이고 마는 걸까?

진성근_변산33_목판각에 채색_60×60cm_2010

진성근의 현재 예술의 모습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위에서 말한 의심에서 시작하여 현시점에 머문 결과다. 예술은 즐거운 생활세계의 일부분이지 존재론적 구분이라는 허구적 관념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머리로 개념을 상정하고 이 개념이라는 불분명한 그 무엇의 괴물 때문에 나의 즐거운 삶을 소진시켜서는 안 된다. 애당초 즐거운 노고의 열락이 예술의 길이 아니었던가? 개념의 무덤에 나를 묻는 것이 결코 나의 목표는 아니었을 것이다.

진성근_다랭이26L1_목판각에 채색_74×45cm_2010

진성근이 첫째로 견지하는 예(藝)에 대한 태도는 이렇듯 관념화된 억압을 떨어내고 쟁취한 즐거운 자유다. 이 땅의 선대들이 예(藝)로부터 추구하던 가치, 말하자면 즐거움, 자기도야, 고된 현실세계를 열락으로 도약시키는 방법의 현대적 회복이다. 진성근의 미적 초점은, 둘째, 나와 세계의 구분을 타파하는 것이다. 세계를 인식하고 개념화한 후 이를 시각으로 나타내는 과정이 일반적 서양미술일 것이다. 진성근은 나와 세계가 하나되는 것이다. 내가 바라본 세계를 재료에 육화시키는 길이다. 이 육화의 길을 판각에서 찾았다. 칼로 판각을 하는 일차적 이유는 노동의 희열이다. 노동의 부딪힘으로 자기의 육신이 재료에 투사된다. 자기의 생활세계와 여기의 세계가 동시에 예술이 된다. 굳이 예(藝)를 특수적 범주에 구속시키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서도 생활세계의 속스러움과는 남다른 데가 있다. 마치 비승비속(非僧非俗)의 경지 같은 것. 셋째, 이미지에 대한 깊은 성찰 또한 진성근을 노동의 세계로 천착시키는 주된 요인이다. 이미지 생산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미지는 어김없이 시대에 갇혀버리고 만다. 1880년대의 이미지는 1880년대에 새로움이지만 1890년대라는 새 물결이 오면 이에 휩쓸려 퇴락하고 만다. 1890년대에 1880년대의 이미지는 낡고 진부한 유물에 불과하다. 사진기나 필름 영사기처럼 기계로 만들어진 이미지일수록 더 그렇다. 그러나 노동의 부딪힘은 시대의 물결에 저항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노동을 통한 육신의 육화야말로 단순한 이미지를 초극하는 힘의 기재이기 때문이다. 몇 년도 어느 시절 어느 날 어느 시의 예술적 노동은 어떤 사람의 운명의 총체적 기록이 된다. 운명이 진실되게 체현(embed)되어있기에 시대에 밀리는 이미지가 아니다. 오히려 시대를 초극하는 실체로서의 자기 주장이다. 노동과 예술적 노동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넷째, 어째서 진성근의 주제는 소나무와 논다랭이인가 하는 문제도 짚어야 한다. 소나무와 벼농사는 우리 역사에 대한 작가의 변호(辯護)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우리나라는 삼국을 신라가 통일시키고 고구려의 영토를 상실했다. 어릴 적부터 역사 지도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경상도 사람들이 싫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나이가 좀 들고부터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중국은 오만 잡민족들이 섞여 만들어진 용광로의 나라다. 모든 민족이 흡수되고 동화되었다.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는 문화국은 우리나라와 베트남밖에 없다. 이 두 나라는 벼농사를 한다. 벼농사는 인구부양력을 높이는 일등주체이다. 아시아인의 인구가 벼농사 비율이 높지 않은 서구나 아프리카보다 높은 이유다. 벼농사를 주로써 인구를 부양시키고 중국과 다른 문화전통을 쌓아온 역사다. 그리고 중국에 흡수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낸 역사다. 그리고 청천강, 압록강 이북으로는 이 벼농사가 되지 않는, 즉 인구부양력이 높지 않은 불모의 기장, 수수, 유목의 이질적 풍토가 펼쳐진다. 효율이 높지 않은 이 지역을 포기하면서 오히려 효율 높고 사랑스러운, 소나무가 자라는 땅을 곱절로 애지중지하며 지켜낸 역사다. 압록강 이북으로 소나무 벨트는 사라지고 전나무와 자작나무 벨트가 시작된다. 우리나라를 중국(엄밀히 중국 화북문명, 17세기 이래로 중국의 정치 중심)과 차별시키는 상징은 벼농사 권역과 소나무 벨트다. 즉 진성근이 택하는 소나무나 논은 한국의 총체적 상징이다.

진성근_담양32_목판각에 채색_60×60cm_2009

우리나라를 향하는 마음을 손이 베이고 관절이 나가면서 판각에 되새김질을 하는 지루한 운명의 일상을 즐거운 열락으로 받아들이는 자세, 여기에 진성근이 바라보는 우주의 중심이 있다. 그리고 머지 않은 미래에 관수도, 행렬도, 월하도, 선유도, 탁족도, 맹호도, 사군자 등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우리 미술에 판각적송도(板刻赤松圖), 판각청답도(板刻靑畓圖) 등이 추가될 것만 같다. ■ 이진명

Vol.20100519d | 진성근展 / JINSEONGKEUN / 秦盛根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