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조화혜_윤경숙_유윤정_성흥창_남혜경展   2010_0602 ▶︎ 2010_0608

조화혜_도시의 시(時)와 공(空) 1_백동에 혼합재료_56×23×1cm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_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작가는 말한다. "그림 그리는 일은 나 자신을 충실히 보살피는 것 같아 즐겁다." 이게 가장 좋은 답일 듯하다. 수줍기에도 늦었고, 회한을 갖는 것이 멋질 리도 없으니 말이다. 그냥 거기까지가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또 말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보기 좋게 멋지게 그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 이것이 내가 가진 가장 큰 허영이 아닐까." 지나친 신중함, 아니면 또 다른 수줍음이 아닐 수 없다. ● 작가 조화혜의 작품은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세상을 뒤흔들만큼 각지고 날카로운 비수를 번득이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세상이 어디 영악하지 못한 모두를 품어주었던 적이 있던가. 저렇게 색이 추운 듯이 어둡고, 그 색을 다루는 붓이 날카롭고, 찢어질 듯 예리한 빛이 드러내는 것은, 희망가만 불러달라는 다수자들의 세상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위험한 생각'은 이 그림들 속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조화혜는 이미 위험한 예술가였다. 그러므로 그 자신이 스스로 뭔가 멋진 것을 그리려는 허영을 드러냈다고 자책하는 것은 지나친 결벽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조화혜_도시의 시(時)와 공(空) 3_백동에 혼합재료_56×23×1cm_2010

그는 백동에, 스테인리스에 그림을 그린다. 그런 금속판에 유성과 수성의 금속용 물감이나 동양화에서 쓰는 분채를 쓴다. 몇 번이고 겹쳐 쌓아가는 방식으로 그린다. 동양화용 분채는 픽서티브로 접착시켰다. 유성이든 수성이든 분채든 앞서 사용한 물감이 다 마른 후 겹쳐 바른다. 칠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 칼로 긁어 금속판이 드러나게도 했다. ● 그렇게 만들어진 조화혜의 그림들. 그가 연 세계도 우리가 모두 춤추거나 웃고 울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만의 세계를 넘어 그의 작품이 우리를 자극하고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감응과 촉발의 계기가 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 세상 모두를 다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사상보다도, 감응은 예술의 더욱 위대한 힘이기 때문이다. ■ 최형순

윤경숙_현정_캔버스에 유채_160×122cm_2010

작업한다는 건 내게 숨쉬는 것과 같다. 이젠 그냥 하나가 되어 버린 내가 있다. 그리고 지금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인물들의 감정을 간결한 선과 색채로 단순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윤경숙

유윤정_소년_35mm사진필름, 아크릴, LED설치_80×72×9cm_2010
유윤정_자화상_35mm사진필름, 아크릴, LED설치_120×80×9cm_2010

나(유윤정)는 35mm필름카메라로 찍은 수많은 흑백필름 조각조각들로 드로잉한 얼굴 이미지를 붙여나간다. 그리고 뒤편에 LED조명을 설치하는 작업을 한다. 디지털화 되어지는 오늘날 우리는 현실공간이나 가상공간 어디서나 수많은 이미지들에 의해 둘러싸여져 있다. 현실과 환상, 원본과 사본이 혼재되어 불분명하고 모호해지고 있다. 이럴수록 나는 원본을 찾아가는 과정을 하고 싶다. (원본은 곧 자기정체성, 원형이라 말하겠다) 즉, 원본과 사본을 구분하는 작업을 하며 가짜정보로 인식되어진 오류를 삶에서 최소화함으로써 원본(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말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원본을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앞으로 계속 반복하여 찾아가는 작업을 할 것이다. 수 천 수 만장의 필름들로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 내는 것은 기억의 수많은 편린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하는 것. 필름 한 장마다 있는 기억들은 우리 삶의 과거이고 현재이며 미래이다. 즉 기억은 곧 삶이다 나는 이 기억이라는 재료로 하나의 자기정체성 찾아가는 것이다. ■ 유윤정

성흥창_사과 3_캔버스에 유채_91×120cm_2010

나의 사과그림은 못났다.. 예쁘거나 잘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일류, 명품 등 잘난 것만 제일로 알고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구미에 안 맞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가 그린 사과들이 하나같이 삐뚤고, 상처나고, 못생긴 사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그런 사과들이 좋다. 재래시장 한 모퉁이에 아무렇게나 막 놓여있는 사과를 하나 집어내, 소매로 쓰윽 흠쳐 와삭 깨문후 한입 가득 머금고 싶어지는 그런 투박이 못난이 사과이기에 맘 편하고 좋다. ■ 성흥창

남혜경_소년_캔버스에 유채_117×90cm_2010

거울을 보다가 흠칫 놀랐다 10년 전의 그가, 20년 전의 그녀가 거기... 있었다 / 뻔하다, 를 좋아하지 않았다. 새로움을 숭배했다 / 이제는 뻔하다, 에 안도한다 새롭지 않다는, 새로울 필요가 없다는 것 덕분에 마음이 놓인다 / 거울 속의 그녀도 거울 속의 그도 이제는 뻔하게 되었다 / 그녀가 그가 내가 되었다 / 얼굴 얼굴 또 얼굴 그들의 얼굴은 내 얼굴이다 ■ 남혜경

Vol.20100603f | Hello!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