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querade

김성진展 / KIMSUNGJIN / 金成鎭 / painting   2010_0603 ▶︎ 2010_0620 / 월요일 휴관

김성진_Relax_캔버스에 유채_116.8×72.7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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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603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현대 강남 GALLERY HYUNDAI GANGNAM SPACE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0-6번지 Tel. +82.2.519.0800 www.galleryhyundai.com

회화의 피부·회화의 깊이 ● 김성진은 입술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화폭은 그리 크지 않지만 인상적인 입술을 크게 클로즈업한 화면이 일단 우리의 시선을 끌고, 그것이 매우 사실적인 기법으로 재현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두 번 놀란다. 그림 앞을 앞으로 뒤로 오가면서, 사진같은 그의 그림이 사진인지 회화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연신 그의 화면을 살핀다. 관능적인 그의 입술에 끌리고 매우 사실적인 그의 그림이 사진같아 보이지만 정작은 회화라는 사실에 놀라면서 우리는 그림 앞을 떠나지만, 그의 그림은 사람의 솜씨 같지 않은 재현의 정밀성과 금방이라도 말을 건낼 듯 살짝 벌어진 입술의 생생한 감촉으로 우리의 뇌리를 잡아 끈다.

김성진_Relax_캔버스에 유채_72.7×116.8cm_2010

복화술로 말을 건네는 김성진의 입술 ● 이처럼 인상적인 김성진의 화폭은 '입술'과 '회화적 깊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얼굴의 윗부분, 즉 감정과 표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눈 부위를 제거한 그의 입술과 뺨은 표정보다 강한 인상이 되어 우리의 눈앞을 귓가를 맴돈다. 말없는 그의 입술은 복화술사의 말처럼 메아리가 되어 우리의 시선에 청각에 강한 공명을 남기는 것이다. ● 김성진처럼 여성의 입술에 매료된 화가로는, 커다란 변형 캔버스(shaped canvas) 위에 립스틱 짙게 바른 선정적인 입술을 그린 미국의 팝아티스트 톰 웨셀만(Tom Wesselmann, 1931-2004)을 꼽을 수 있다. 웨셀만의 그림은 입술만을 클로즈업한 거대한 캔버스로, 빨갛게 손질한 손톱 사이로 담배연기를 내뿜거나, 붉은 유두만을 부각시킨 익명의 여성누드로 1960년대 미국 팝아트를 대변하는 관능성과 상업성을 노골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 김성진 역시 붉게 화장한 여성의 입술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외견상 이러한 팝아트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붉은 입술은 화장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현대사회의 인간관관계를 살필 수 있는 주제가 된다. 맨 얼굴의 여인이 붉은 입술 화장 만으로 대중 앞에 나설 수 있는 자신감을 얻거나, 사회적인 비즈니스에 임하는 여성에게 화장은 기본적인 에티켓으로 통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상황을 대변한다. (요즘은 여성을 넘어서 화장하는 남성에 대한 시선이 그리 낯설지 않거니와, 화장하지 않은 듯 화장하는 자연스러운 화장술을 추구하는 현상까지 번성하여 '화장'에 대한 단상을 중층적으로 만든다.) ● '화장'은 타인을 대하는 나의 모습을 강화하는 장치이자 정작 나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방어술이기도 하다. 붉은 립스틱은 그런 화장의 의미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도구인데, 신체의 일부를 붉은 색으로 강조하는 행위는 고대로부터 연원하는 주술적 의미부터 번들거리는 광택을 덧입힌 붉은 입술과 손톱이 자극하는 상업적 물신(物神, fetish)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읽을 수 있다. ● 김성진의 입술은 화장한 붉은 입술이 강조되는 것이 사실이나, 주름진 피부의 질감,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드러나는 혀, 흘러내리는 타액과 점액질, 눈물을 연상시키는 정황, 물 위에 떠 있는 장면 등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지점에서 발휘되는 정서적 호소력은 팝아트의 표피적 관능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물컹이고 질척이고 더듬고 스미는 촉각적 질감을 강조하는 그의 입술은 붉게 화장한 입술의 도상적 의미를 넘어서, 피부로 체험하는 세상, 육신으로 느끼는 삶의 감촉과 온도를 전달한다. 그의 입술은 맨몸으로 세상을 체험하는 우리의 촉각에 대한 제유(提喩, synecdoche)가 된다. 그의 입술 그림은 촉각으로 체험하는 삶의 결이다. 그의 화면은 분명 시각적 재현이지만 말하지 못한 말을 전하고 몸으로 전하지 못한 감촉을 전하고 있다. 우리가 그의 화면을 떠나서도 진공 속에 떠도는 음성을 듣는 것 같고 입술로 체험한 살의 감촉과 물의 온도, 액체의 점성을 느끼는 것 같은 잔상에 이끌리는 것은 이러한 이유다.

김성진_Flutter_캔버스에 유채_97×162.2cm_2010
김성진_A Short Break_캔버스에 유채_89.4×145.5cm_2010

극사실 기법으로 매만지는 회화의 피부 ● 김성진은 입술이미지의 도발적인 에로티시즘을 굳이 거부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러한 관능성 만으로 그의 그림이 갖는 매력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는데, 상업적 에로티시즘을 추구한 미국의 팝아트가 사진적 이미지의 재현과 표면의 광택으로 회화적 깊이를 거부한 것과 정반대의 경로에 그의 회화적 터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1960년대 미국에서는 팝아트가 대두하면서 대중적인 상업적 이미지가 순수예술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등장한 하이퍼리얼리즘은 사진적 정밀함과 기계적인 이미지의 재현법을 대표적인 특징으로 내세웠다. 캔버스와 유채물감을 사용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화가의 인간적 시선도 회화적 붓터치도 용납하지 않는 기계적 제작과정의 냉정한 표면을 자랑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상업문화와 기계문명의 전성기 속에서 회화는 인간적 감성과 회화적 오류를 용납하지 않는 기계적 냉정함으로 동시대의 조류를 극명하게 대변했다. ● 김성진의 극사실적인 회화는 그것이 매우 사실적으로 보인다는 것 외에는 이러한 하이퍼리얼리즘과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 외견상 유사하게 보이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과정과 효과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의 차별성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물론 김성진은 대상의 외적 형상을 재현하기 위해서 사진 이미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림으로 그릴 대상을 찾고 그 이미지를 기억하기 위해 사진기를 사용하고, 다소간의 연출을 통해 원하는 이미지를 사진에 담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그 이미지를 화폭에 옮기는 방식은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이 의도적으로 거부했던 정통 회화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사진으로 포착한 이미지를 참조하되 프로젝션이나 그리드 섹션으로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전사하는 하이퍼리얼리즘 혹은 포토리얼리즘의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 캔버스에 유백색 유화물감으로 밑칠을 하고 옅은 파스텔조의 배경색을 칠한 뒤 물감이 마른 정도를 살펴서 얇게 옅게 붓질을 가하여 클로즈업된 입술과 얼굴을 그린다. 입술의 잔주름과 두께와 깊이를 가진 피부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는 여러번 물감을 바르고 섬세한 붓터치를 가한다. 여러번 공들여 붓질을 가하는 그의 기법은 작가의 오랜 수공 노동과 정교한 기법적 수련을 요구하는 정통 유화 기법에 의한 것이다. 그에게 사진 이미지는 회화적 재현을 거부하기 위한 것이기보다 회화적 재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그에게 사진적 이미지의 포착은 오히려 배경을 잘라내고 부분을 클로즈업하는 화면의 구성법에서 찾는 것이 옳을 것이다. ● 2007년 이후 신작을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에서 김성진은 십여년 이상 매달려온 입술 이미지의 또 다른 변주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물과 촛불, 책, 머리칼, 삐에로 분장 등 입술의 의미를 다각도로 변주할 수 있는 상황의 연출이 두드러졌으며, 단독 얼굴의 경우에도 화면의 전면을 차지하던 입술이 고개를 돌린 뺨에 주무대를 내주고 화면 한켠으로 물러났다. 입술의 중요성이 약화되었지만, 오히려 입술의 육감적인 관능성에 가려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던 그의 회화적 기법이 빛을 발하게 되었다. ● 고개를 돌린 여인의 얼굴은 화면의 한쪽 프레임 가까이로 물러난 입술과 함께 깊은 감성의 공명을 불러온다. 얇고 옅은 유화물감의 붓질로 김성진은 여인의 얼굴을 화장하듯 회화 표면을 어루만지면서 그림을 완성한다.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회화의 피부와 일치하는 인물의 살갗을 발견한다. 과거의 입술이 도발적인 관능성으로 우리를 자극했다면, 옆으로 밀려난 입술은 피부의 깊이 혹은 회화의 깊이로 우리를 이끈다. 이런 그의 입술과 피부가 관능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여인의 피부를 쓰다듬듯이 회화의 표면을 매만지고, 재현과 회화 표면의 실제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그리기의 쾌감을 발견한다. 그는 공들여 화장하듯 회화 표면을 어루만지고 애무한다. 여러번 반복적으로 붓질을 가하고 깊고 투명한 피부의 깊이감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작가의 손길로 깊은 감성 상의 위로로 그의 그림은 완성된다.

김성진_Time and Tide Waits for No Men_캔버스에 유채_116.8×80cm_2010
김성진_The Lip_캔버스에 유채_72.7×116.8cm_2010
김성진_Pure Reason_캔버스에 유채_162.2×112.1cm_2009

입술의 에로티시즘에서 회화의 에로티시즘으로 ● 김성진의 입술 그림은 이미지의 에로티시즘에서 기법의 에로티시즘으로 발전한 셈인데, 그래서 그의 작품은 반드시 육안으로 직접 보아야 한다. 사진으로 재생된 그의 회화는 정교한 터치와 섬세한 회화적 재현, 그 과정에 개입된 작가적 감수성, 감성 상의 위로와 전이라는 특성이 소거되기 쉬운 지점에 노출된다. ● 김성진의 그림은 사진적 정밀성과 이미지 구성법에 의존하지만 그것이 대처하지 못하는 인간적 체온과 정서를 전달한다. 사진에 의지하되 오히려 사진과의 변별성이 두드러진 것인데, 수작업 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입, 삶에 대한 연민, 시간에 대한 반추를 되뇌이고 있다. 그의 그림은 사진적 재현이라 할만한 극사실의 세밀묘사를 특징으로 하지만, 본 것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았다고 믿는 것, 끊임없이 떠올라 우리의 감성을 떠나지 않는 이미지를 그린다. 고개를 돌린 연인의 삽상한 표정, 마주한 인물의 평범한 제스처,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어도 어떤 말을 건네는 인물의 입술 풍경이 그의 화면 위에 극사실의 기법으로 각인되어 있다. 김성진은 화면 속 인물의 입 언저리를 매만지고 쓰다듬는 과정을 통해서 회화의 표면을 애무하고 인물의 애환, 삶의 단상을 위로한다. 그의 붓질은 그림의 피부와 인물의 피부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가장 섬세하게 가장 공들여서 전하는 위로와 애무의 손길이다. ● 사진의 등장과 함께 20세기에는 회화의 종말이 선언되었고, 이후 우리는 화려한 회화의 복귀를 목격했다. 사진에 의해서 회화의 갈길이 여러번 위기에 처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속에서 하이퍼리얼리즘 혹은 포토리얼리즘은 사진적 이미지의 폭주 속에 사진적 냉정함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동시대 이미지 재현법에 응수했다. 그러나 김성진은 이제 제3의 해법, 아니 가장 원론적이라 할 회화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슴 뭉클한 감성적 공감과 온기를 전달하는 렘브란트의 그림이 붉은 밑칠과 회화적 터치에 기인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김성진은 여전히 수고로운 방식과 대상에 대한 애정 만큼이나 길고 오랜 공들임이 회화 표면에 어떤 차별점을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 김성진의 얇고 섬세한 유화처리는 투명 자연화장을 추구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화장법처럼 인물에게 세상을 마주할 마스크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 화장의 이면에서 세상에 부딪히고 부대끼며 살아갈 사람(이 인물은 남녀의 성별과 연령 구분을 초월한 인물, 즉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는 우의적인 인물이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그의 붓터치는 내면적 감정과 정서를 깊이 우려내고 스며들게 하는 회화적 장치가 된다. 그의 작업은 사진적 프레임과 재현적 정밀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회화의 궁극적인 승리라고 할 것이다. ■ 권영진

Vol.20100604i | 김성진展 / KIMSUNGJIN / 金成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