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e in the City

이종석展 / LEEJONGSUK / 李鍾碩 / media art   2010_0615 ▶︎ 2010_0622

이종석_Urbanwave-resonance_디지털 프린트_56×10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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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616_수요일_05:00pm

서울시립미술관 SeMA신진작가지원프로그램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_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 www.grimson.co.kr

뉴미디어를 바라보는 하나의 자세 ● 그의 작업실의 문이 열렸을 때, 나는 이제껏 「매트릭스」 같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수많은 대형 모니터들과 수십 대의 하드디스크가 내는 윙윙거리는 소음에 먼저 압도되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작업의 메모라던가 작품 구상과 같은 자료들이 가지런히 빽빽하게 핀업되어 있었고, 컴퓨터와 디스플레이 외에도 방 안에는 여러 세트의 다양한 스피커들과 작곡을 위한 미디 키보드 등등 수많은 기계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작업한 여러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움직이는 나무의 수묵 담채화로부터 시작된 그의 애니메이션은, 인간의 율동과 겹치기도 하고 도시의 실사 풍경을 훑기도 하며 발전되어왔다고 했다. 때로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사물들을 거대하게 확대시켜 보이기도 하는가 하면, 열을 지어 늘어선 가로등을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와 같이 표현한 작품들도 있었다. 최근의 작업을 위한 시험 영상들도 보여주었는데, 도시 건물의 반사를 구현하기 위한 리플렉션 매핑 애니메이션이라던가, 난지 갤러리의 원형 벽면을 타고 회전할 영상의 이동을 시뮬레이션 해보기 위한 움직이는 그리드의 영상과 같은 것도 있었다. ● 이렇게 다양한 이종석의 실험적 비주얼과 스타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단연코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고해상도 영상 장비들이었다. 최근의 한 작품인 'Urban Tree - Reed Vessel'을 살펴보자. 작품은 두 대의 HD 프로젝터로 구현되는 3D 그래픽으로 랜더링된 영상이다. 한 대도 아닌 두 대의 풀 HD 해상도로 뿌려지는 디지털 영상은 광학 매커니즘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극한의 세밀함과 영상 전체에 균일하게 적용된 수학적 필터 효과로 인해 발현되는 컴퓨터 그래픽의 질감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관람자의 시신경의 한계를 시험한다. ● 그러한 CG 영상에는 차라리 '순수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그것은 영화 「주라기공원」이나 「터미네이터: 심판의 날」에서와 같이 실사 속에 컴퓨터 그래픽이 감쪽같은 눈속임으로 녹아들어가 있어서가 아니라,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이나 최근의 영화 「아바타」에서처럼, 이종석의 작품들은 디지털 영상이 가진 맛깔을 그 자체 그대로로서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종석_Urbantree-reeds_2채널 HD 비디오_00:02:30_2010
이종석_Trace-men_3채널 HD 비디오_00:05:00_2009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디지털 영상 보다는 광학적으로 재현된 사진이나 영화를 '순수하다'고 표현하기에 익숙하고 컴퓨터 그래픽은 영상에 합성 조미료처럼 뿌려진 '후가공'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어도비의 영상 효과 소프트웨어 이름인 'After Effects'는, 말 그대로 본질이 아니라 '후속되는 효과'를 뜻한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그렇기에 필자에게는 이종석 작가가 가진 매체에 대한 생각, 즉 컴퓨터 예술에 대한 태도가 매우 궁금했다. 특히 앙상히 여윈 나무나 모던한 인간의 몸동작과 같이 매우 정서적인 소재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다루는 이유가 자못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대답은 더욱 필자의 궁금함을 가중시켰을 뿐이다. '매체는 부차적인 것이다. 동양화 전공이었던 작가 본인에게 순전히 필요에 의한 표현 방법으로서만 컴퓨터 기술은 의미를 가진다'는 작가의 대답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입힌 합성된 디지털 음향 트랙이 귓가에 맴도는 필자에게는 쉽게 손에 잡히질 않는 답이었다. ● 어쩌면 필자는 영화 「아바타」에서 묘사된 주인공들처럼 실제의 자신과 자신의 아바타를 구분하지 못하는 신인류와 같은 인물상을 이종석에게서 기대했을 지도 모르겠다. 혹은, 생물학적인 육신과 기계화된 육신을 오가는 「로보캅」이나 「공각기동대」의 사이보그와 같은 모습을 한 작가가 도너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문」에 나올 것 같은 대사를 읊어대 주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넌지시 이런 이야기들을 던져보았을 때, 작가에게서는 '강의를 해 보면, 요즘 학생들조차도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감성이나 테크닉을 추구하더라'는 대답이 되돌아왔을 뿐이다. ● 마셜 맥클루헌의 명언,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떠올려본다. 신기술은 우리의 의사소통 방식을 돌이킬 수 없이 변화시켰던 것만은 분명하다. 가상현실과 같은 시각 기술이든 소셜 네트워킹과 같은 소통의 기술이든, 그들은 분명 지금 우리의 삶속 곳곳에서 깊은 변화를 몰고 온 변화의 엔진이었다. 그러한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신매체를 다루는 작가에게 매체의 가능성과 그 프로세스는 바로 작품 그 자체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순진한 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아마도, 작가에게서 강한 미래에 대한 신념과 같은 것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이종석_Reflection-the overlooked_7채널 비디오_00:02:10_2010
이종석_Urbantree-reed vessel_2채널 HD 비디오_00:03:35_2010

그러나 역으로, 이제 우리는 한가지 역사적 가정에 불과했던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 되었음을 주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바로 한때 새로운 매체였던 것이 이제 '새로움'이란 레이블을 떼고 그냥 현재의 매체가 되는 현실이다. 그렇게 새로움을 떼어버렸을 때 한때 신선했던 매체가 어느날 갑자기 진부한 스펙터클로 돌변해버리는 일도 역사적으로는 새로운 일은 아니다. 사진과 영화가 그랬고, TV가 그랬다. ●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세월 속에서 많이 숙성된 CG나 다른 여러 뉴미디어로부터 그 '뉴'라는 수식어를 떼고 매체가 하는 이야기, 그 메시지를 들어야 할 것이다. 미래를 열망하던 더운 가슴을 차가운 머리로 내리눌러야 하는 순간 섭섭함이 우리에게 찾아옴은 어쩔 수 없다. 마치 청춘을 떠나보내는 것과도 같아서, 단지 어께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 돌아서기엔 왠지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그저 그만큼 우리는 자랐을 것이라 믿어 볼 뿐이다. ● 이종석과 같이 꾸준히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되 오래된, 그리고 인간적인 주제를 놓지 않고 탐구해 온 작가에게 있어 그의 기술과 매체는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미래와 새로움이라는 환영에 사로잡혀 그 레이블을 통해서만 그의 작품을 해석하려 한 것은 아닐까, 일종의 색안경을 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질문해 본다. 그러한 색안경과 레이블을 내려놓았을 때 그의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을까? ● 거기서부터, 그러니까 기술에 대한 도착과 미래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서야 우리는 다시, 그의 매체가 표방하는 메시지를 다시 재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미래를 발견하는 일의 재시작이다. ■ 이홍관

이종석_Tree-self projection_단채널 HD 비디오_00:03:10_2009
이종석_Lighthouse-tangled_2채널 HD 비디오_turning 설치_난지갤러리_2010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2010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전시장 임대료, 인쇄료, 홍보료, 작품재료비 및 전시장 구성비, 전시컨설팅 및 도록 서문, 외부평론가 초청 워크숍 개최 등 신진작가의 전시전반을 지원하는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Vol.20100611a | 이종석展 / LEEJONGSUK / 李鍾碩 / media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