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에 남다 Remain In Light

권인숙展 / KWONINSUK / 權仁淑 / painting.mixed media   2010_0613 ▶︎ 2010_0622

권인숙_빛에 남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3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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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613_일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쌍리_GALLERY SSANG LEE 대전시 중구 대흥동 249-2번지 Tel. +82.42.253.8118

익숙한 사물과 공간 ● 소지품, 장신구, 의복 같은 일상 사물들은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특별할 것 없이 사소한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소유자와의 관계에서 본다면, 그들 하나하나는 제각기 상이한 기억과 이야기가 담긴 특별한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쓸모가 사라지고 나면 그들 대부분은 미련 없이 버려지게 마련이지만, 일부는 소중한 기념품으로 서랍 깊은 곳에 고이 모셔지기도 한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몹시 소중한 의미를 가진 물건이라도, 주인의 손을 떠나고 나면 하찮은 중고품이나 쓰레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사물의 의미나 가치는 소유주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 사물 뿐 아니라,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카페나 술집, 혹은 특정한 공간은 그곳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에게만 의미를 갖는다. 그곳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공간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저 평범하거나 특이한, 혹은 취향에 맞거나 그렇지 않은 무수히 널려 있는 공간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권인숙_빛에 남다-비밀의 방_미니어처, 혼합재료_38×61×29cm_2010
권인숙_빛에 남다-As time goes b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4×227cm_2010

권인숙은 이러한 사물과 공간을 가지고 작업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임의로 선택된 불특정한 공간이 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집이나 작업실, 즐겨 찾는 카페나 기억에 남는 여행지이며, 사물 또한 그곳에 놓여있는 일상적인 물건들이다. ● 따라서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공간과 사물은 매우 사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기본적으로 작업 속 사물과 공간이 자신의 사적인 기억과 이야기가 담긴 것임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그가 만든 미니어쳐나 그림을 보면서 그곳이 그의 집이거나 그와 관련이 있는 공간이며, 그곳에 놓이고 그려진 사물들 또한 그곳의 것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 한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러한 공간이나 사물은 작가와의 관계에 의해서 작업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지, 그것을 보는 관람객과는 아무런 관련을 지니지 않는다. 그의 집이나 작업실로 여겨지는 공간, 혹은 카페와 술집을 보면서, 그리고 거기에 놓인 물건을 통해 그의 취향이랄지 하는 것들을 추측해보거나 하는 정도일 것이다. 기껏해야, 그와 유사한 동선을 가진 경우라면, "아, 저 술집은 어디구나..."를 알 수 있는 이도 있을 정도이다. ● 물론 이 경우는 동일한 공간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 작가와의 공명을 일으킬 수 있기에, 작품으로부터 얻는 정서는 그렇지 않은 이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며 극히 제한적인 수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관람객 대부분은 작품 속 사물에 대해 맺어진 작가의 관계와 경험, 혹은 이야기는 물론이고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권인숙_작은방, 우울한 일기 그리고 행복한 나의무대 II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cm_2010
권인숙_작은방, 우울한 일기 그리고 행복한 나의무대 IV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cm_2010

그렇게만 본다면, 그는 자신과 관계를 맺은 사물과 공간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보여주는, 어쩌면 단순하고 직접적인 소통방식의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데 그는 물론 그러한 방식을 원하고 있지는 않다. 먼저 그의 방과 작업실 그림을 보자면, 그는 지속적으로 방과 작업실을 그림으로 해서, 나중에 그려진 그림 속에는 이전에 그려놓은 그림이 보이고, 아울러 그 시차 동안 생겨난 변화가 담긴다. 결국 그의 그림들은 누구나 자세히 관찰한다면 그려진 순서를 퍼즐놀이 하듯 맞추어 볼 수 있는 것이다. ● 한데 그러한 '시간의 흐름'은 방이나 작업실이라는 단선적인 구조에 그치지 않고 있다. 그의 그림 가운데는 그가 찾았던 여행지나 인상에 남은 특정 공간들이 그려진 것들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 공간 속에는 그 그림을 그리던 당시의 작업실이나 방, 그리고 당시에 놓여 있던 사물들이 등장한다. 더불어 자신이 만들어 놓은 공간의 미니어쳐 또한 보는 이에게는 낯선 여행지 속에 한 곳을 차지하고 있어서 작업의 순서를 구분하는 일은 그다지 쉬워 보이지 않는다.

권인숙_투명한 자유 VII_캔버스에 혼합재료_112×162cm_2010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렇게 낯선 여행지 속에 작가의 익숙한 공간과 사물이 놓이고, 다시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 다음에 그려진 그림의 어디엔가 슬쩍 자리하는 순환이 반복됨으로써, 작가에게 익숙한 공간과 사물은 권인숙이라는 개인의 삶을 알려주는 단순한 정보로서의 역할을 벗어난다. 권인숙이라는 개인에게 속한 개별적인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 자체, 혹은 그 사물 전체를 의미하는 상징물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 이렇게 그가 화면 속에 사물을 나열하거나 서로 무관한 공간들을 얽어 넣는 방식은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기법인 데페이즈망(dépaysement, 轉置)이다. 낯익은 사물이 일상의 질서를 벗어나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임으로써 새로운 충격과 경험을 일으키는 것이다.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의 세계를 드러내고자 했던 초현실주의의 이러한 방법은, 권인숙의 작업에서 매우 색다른 방식으로 다시 한 번 일상적인 사물과 공간에 대해 개인마다 상이하게 맺어진 경험과 기억의 잠재된 그 무엇을 끄집어내게 하는 것이다.

권인숙_LUCKY STRIKE BAR_미니어처, 혼합재료_33×95×26cm_2009

작가 자신에게만 사적일 수밖에 없는 일상 사물과 공간이라는 것은, 그림을 보는 이 누구에게도 해당되는 일상의 사물과 공간이다. 그렇기에 그것들은 누구에게나 제각기 사적인 기억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으로서, 작가의 그림을 보는 동안 그 사물이나 공간에 대해 잊고 있었던 의식 깊은 곳의 감정과 정서를 끄집어 올리는 것이다. 과거 초현실주의의 그것이 부조화의 충격에 의한 잠재의 환기라면, 권인숙의 그것은 개별성의 제거에 의한 잠재의 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 작가의 사물과 공간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더불어 사물을 이해하는 독특한 방식에서 비롯한 경험을 간직하고 있었음으로 해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을 통해 그는 교육받은 관습적 체계에 의해 대상과 외계를 이해하기 이전의, 이미 오래 전에 잠재되고 만 또 다른 이해의 체계를 끄집어내어, 우리의 상투적이고 경직된 세계에 대한 이해와 가치의 체계를 뒤집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소통과 이해를 더더욱 멀리하려는 오늘 이 세상에... ■ 박정구

Vol.20100613b | 권인숙展 / KWONINSUK / 權仁淑 / painting.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