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展 / LEEKYOUNGJAE / 李景在 / sculpture   2010_0605 ▶ 2010_0630

이경재_어릴적 추억III Souvenirs of my Childhood III_화강석_2010

초대일시_2010_060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요일_12:00pm~06:00pm

갤러리 아트링크_GALLERY ARTLINK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6번지 Tel. +82.2.738.0738 www.artlink.co.kr

돌이라는 카르마, 그리고 웃는 돌-조각가 이경재와의 생생 인터뷰 프롤로그 ● 조각은 회화로부터 소외된 타자이고, 돌조각은 또 조각의 타자가 되었다. 돌조각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이 모델링(modeling, 첨가방식)이 아닌 카빙(carving,제거방식)에 의해 탄생되기 때문이다. 제거방식을 통해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낸다는 것은 마치 불교의 비움과 무소유의 의미와 통하는 것이고, 물질 속에 정신과 영혼이 존재한다는 신플라톤주의 미학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오늘날의 돌조각도 이 믿음에 근거해서 보고 싶다. 개념 아니면 안되는 시대, 개념이 물질을 간과하고 있는 시대에 여전히 19세기 방법으로 조각을 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은 귀 막은 오딧세우스에게 노래를 부르는 세이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예술보다도 여전히 과중하게 몸을 사용해야한다는 점,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 등이 나를 돌 조각가에게로 이끌었다.

이경재展_갤러리 아트링크_2010

돌 조각과의 인연Q. 선생님을 만나기 전, 돌을 다루는 조각가를 만난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오늘 같은 하이테크놀로지의 시대에 돌을 다룬다는 것은 굉장히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는 반면, 귀중한 일로도 생각되었거든요. 요즘에는 조각가라는 이름도 조금 생소하거니와 게다가 돌조각을 한다는 것이 매우 낯설게 보인다는 말인데요. 먼저 돌조각을 왜 하는지 우문부터 던져야겠네요. A. 나는 외골수입니다. 돌조각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돌조각을 하는 이유요? 그냥 돌이 운명처럼 내게로 왔다고 해야 하나?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돌조각은 삶의 과정과 똑같습니다. 알다시피 대리석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하고, 실수가 용인되지 않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유감스럽게도 삶에 있어서 어떤 다른 취미를 가지고 살지 못한 것 같아요. Q. 돌조각은 까다로운 애인 혹은 맘대로 안되는 자식 같은 존재네요. 살살 다루어야 하고, 엄청 공을 들여야 하고, 게다가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말처럼, 자꾸만 돌이라는 것에 천착해보게 되는데요. 예컨대 조형예술에서 작가와 재료의 관계를 보면, 어떤 재료를 다루는 사람은 그 재료와 닮았다는 말을 상식적으로 믿는 편인데요. 선생님과 돌과의 관계에 대해서 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A. 사실, 저는 좀 소심한 편입니다. 입체를 다루어야 하는 조각가들이 그렇듯이 공간 소심증도 있고요. 한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전시장을 수도 없이 드나들면서 다시 작업을 돌아보고 수정하곤 합니다. 돌을 다루면서 '촉각에 의한 상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합니다. 저에겐 대리석, 사암, 화강암 등 돌의 텍스츄어가 중요합니다. 때로 그것들이 말랑말랑한 물질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마치 가변적인 속성을 가진 유연한 물질을 다룬다는 느낌이 저를 매혹하곤 하지요. 새로운 계기를 만나다!Q. 이탈리아 카라라국립아카데미에서 7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셨지요? 카라라에서 어떤 경험을 했나요? A. 토스카나의 작은 도시 카라라는 구상성이 강한 조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곳의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의 스승들에게서 조각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인체 표현을 철저하게 공부했지요. 사실, 이탈리아는 생각보다 배타적인 나라인데 저는 그렇게 유학생활이 고달프지만은 않았어요. 물론 당시 로마와 바티칸에서 본 조각들을 보고, "나 조각가 맞아?" "내가 그들만큼 해낼 수 있을까?"하는 자괴감을 가졌고 한동안 빠져나오기 힘들었죠.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한국을 떠날 때 인맥과 학맥 위주의 주류미술계에서 소외된 작가로서 이미 어떤 오기와 각오가 있었거든요. 카라라에서의 조각공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아카데미의 스승들은 학생들 특유의 감성들을 인정하고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Q. 당신의 조각은 유학 후 초기 작업보다 훨씬 더 쉽고 아기자기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 이런 방향으로 선회하셨는지요? A. 저는 관객의 호응도를 중요시 여깁니다. 아무리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보았자, 나 혼자 좋고 마는 그런 작품들을 만드는 것은 가치가 없는 일이니까요. 여하튼 저의 작업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한번쯤 '사랑스럽다''편안하다'는 기분 좋은 느낌들을 갖도록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다른 거대한 뜻은 없어요. Q. 당신 조각은 구상적이긴 하지만 사실적이지는 않습니다. 사실적인 면을 두리 뭉실하게 축약하고 추상화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인체 표현을 통해 정제된 느낌을 줄 수도 있는데, 투박하고 둔탁한 형태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저는 사실적인 묘사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사실적으로 대상을 만들다 보면 금새 싫증이 나는 거예요. 디테일을 사장시키면서 전체적 윤곽의 풍부함을 얻는 편이 훨씬 더 좋습니다. 세부를 생략하면 덩어리의 느낌이 훨씬 잘 살기 때문이지요. Q. 그러니까 선생님 조각이 어떤 볼륨을 살리는 측면에서 조각 특유의 본질을 살리는 쪽으로 간다는 뜻이군요. 결국 조각의 본질이 볼륨이라는 것이고, 그것이 선생님이 만들어낸 여체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여체들은 전혀 에로틱하지는 않은데요. 물론 뷜렌도르프 비너스가 우리가 상상하는 에로티시즘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대지모로서의 원형을 지녔다는 사실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선생님 작품도 확고부동한 모성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볼륨뿐만 아니라 마치 이집트 조각처럼 거의 정면성의 법칙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그렇고요. A. 그렇지요. 여체는 인체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모성 원형에 대한 근사치에 가까운 것이지요. 풍만한 볼륨이지만 절제된 표현을 하는 편이구요. 그러니까 조각적 프로세스를 최소화하고 가급적 동세 표현을 절제한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치 시간을 정치시킨 듯 정적이고 관조적인 형상이 제가 추구하는 것이지요.

이경재展_갤러리 아트링크_2010

달라진 시선Q. 특히 2006년의 작품은 단순해졌지만, 내용적으로는 좀 유머러스해졌어요. 독립된 이미지라고 할지라도 내러티브를 통해 기다림과 추억 등 일종의 한국적 정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전시는 유독 '관계'에 천착한 작품들이 등장하는데요. 예를 들면, 오케라스트라의 하모니를 느끼게 해주는 연작들이라든지, 부부상, 모자상, 가족상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작품으로 변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조각하는 아내를 맞이했고, 아이 없이 살다가 뒤늦게 아이가 생겼지요. 그 후 제 작업은 매우 달라졌습니다. 사람과 사물에 대해 더 온정어린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이제는 '함께 더불어 존재하는 관계'속의 사람들을 그립니다. 그것은 저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더군다나 엄마와 어린아이, 어쩌면 그것은 인류가 소망하는 영원한 테마 아닙니까? 인간의 근원적인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 말입니다. Q. 선생님 작업에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좀 부정적으로 얘기하자면, 신선하지 않은 그저 아주 익숙하다는 느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각적인 쾌감을 느끼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좀 시간을 두고 보면, 친근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면모가 새록새록 돋보이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니, 그것은 선생님이 대상을 다루는 데에는 어떤 굳건한 '믿음'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말하자면 선생님이 대상을 바라보는 넉넉하고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아마 그것은 돌이라는 자연물과 접하면서 물아일여의 경지에서만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A. 그렇게 봐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죠. 제가 좀 미련하다시피 사물에 천착해요. 돌을 다루다 보니 아마 돌과 같은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돌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숨을 쉬고, 말을 걸어오고, 나긋나긋하게 유혹하는 듯이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강압적이고 무지막지하게 저를 꼼짝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돌이라는 영속적인 재료에, 정반대의 의미인 가벼움과 경쾌함이라든지, 편안함과 안온함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내 혹은 희생Q. 미술사에 등재된 작가들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 살아남은 사람들로 보이는데요. 예를 들면, 피카소의 지속적인 실험은 그의 경제적인 부로 말미암은 것이고, 이론가로서의 세잔느의 작품은 그가 가족과 인연을 끊다시피 하여 이루어진 것이잖아요. 선생님도 이런 조각을 하시면서 나름대로 어떤 희생을 치루었을 것 같은데요. A. 말씀 드린 대로 돌조각은 과하다 싶을 정도의 인내심을 요구하고, 투자한 시간만큼 정교함을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저 작업실과 집을 오가며 살아야 했어요. 세속적인 삶의 환락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고 할까요. 대한민국 사람이 거의 다 보았다는 '아바타'도 아직 보질 못했으니까요. 이제라도 좀 바꾸어 보고 싶지만, 그게 잘 될지 모르겠어요. Q. 선생님에게는 조각행위가 마치 종교적 절제 혹은 금욕행위와 같은 것이군요. 앞으로도 이런 생활이 계속 유지될까요? A. 그런 것 같아요. 돌조각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 저와 같은, 조금은 고립되고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대리석이든 화강암이든 돌 작업은 기나긴 시간과 집요한 집중을 원하는 일이라서 다른 것을 허락하지 않아요. 저도 사람인데, 왜 쉽게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어요. 일이 너무 고되니까 이제 좀 쉽게 가자, 편하게 하자, 그러는데 잘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밖에 배운 게 없고, 이게 내 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마음이야 늘 다른 문화적인 것을 즐기고 싶지요. 그런데 천성에 장인기질이 있나 봐요. 작업실을 떠나면 불안하니까요. 작업을 안하더라도 작업실에 있어야 해요. Q. 요즘은 대학에서 돌조각이 그저 커리큘럼 상의 요식행위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의심스러운데요. 요즘은 학생들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A. 잘 보셨어요. 돌조각을 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지요. 그나마 몇 명이 있으면, 반가운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공존합니다. 아직도 이런 무모한 일에 도전하는 정신이 반갑고, 한편으로 이것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지 생계 문제가 걱정되고 그렇지요. 저의 경우 2년 정도 제자들을 데리고 있다가, 더 이상 제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없겠다 싶으면, 독립도 시키고, 유학도 보내고 합니다. Q. 오늘날 조각은 퍼블릭 아트 개념의 조형물로 대치되었고,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는 조각가들이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공공조형물을 맡았을 때만 반짝 작업하고, 그 댓가로 받은 여윳돈으로 생활하곤 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전형적인 조각의 개념도 사라지고, 그런 의미에서 조각가라는 개념도 전환을 겪고 있는 시대상황입니다. 한편으로 전통적인 의미의 조각가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게 안타깝고, 한편으론 선생님 같은 분들이 남아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A.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들리는데요(웃음). 저도 고민이 많습니다. 앞으로 시대적인 흐름과 역행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원하는 작업을 하느냐를 말이지요. 영원한 숙제지요.

이경재_오케스트라 Orchestra_대리석_2010

나의 멘토, 나의 영감Q. 지금까지의 작업에 영향을 미친 작가는 누구였나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요. A. 저는 이르고 미토라이, 콘스탄틴 브랑쿠지와 페르난도 보테로, 이사무 노구치를 존경합니다. 브랑쿠지는 인간의 모습을 단순하지만 감각적인 형태로 재현했습니다. 「공간 속의 새」같은 작품을 보면, 실제의 새를 닮은 점이라고 하나도 없지만, 날렵한 곡선, 반짝이는 모양새는 한 마리의 새가 공중으로 솟구치며 그려낼 수 있는 어떤 날개짓보다도 아름답습니다. 인물의 두상을 표현한 「잠자는 뮤즈」라는 제목의 반짝거리는 황동상은 얼굴과 별로 닮은 데가 없어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이런 작품을 보면서 저도 그런 작품을 형상화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너무 당연하게도요. Q. 브랑쿠지의 작품은 정말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있는 작품인 거 같아요. 한 때 선생님의 작품에서 브랑쿠지의 「키스」에 영향을 받은 듯한 작품이 있던데요. 그리고 선생님 작업이 브랑쿠지적인 측면과 더불어 좀더 한국적인 모티브들과 결합되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 작업은 보테로의 조각을 환기하기도 합니다. 보테로 역시 멘토라고 말씀하셨는데요. A. 보테로야 이미 대중적으로도 예술적으로 국제적인 작가 아닙니까? 보테로의 뚱뚱한 인체 묘사는 언제나 사람을 즐겁게 하는 요소가 있어요. 조각의 본질이 볼륨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눈을 즐겁게 하고, 촉각적으로도 무한한 즐거움을 주지요. 여하튼 현실적인 면에서 제가 가장 닮고 싶은 작가 중 하나가 보테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의 기본 방침은 '즐거운 조각'이거든요. 더불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조각이거든요. Q.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 자신을 대중의 취향에 수렴하려는 매우 수동적인 태도라고 생각되는데요. 보테로처럼 대중적 즐거움과 예술적 만족도를 동시에 보여주는 작업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A. 그거야 모든 예술가들의 바램이죠. 저 역시 숭고(혹은 우아)와 유머(재미)를 동시에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테로만 해도 그것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쥐게 된 것이고요. 돌아와 거울 앞에 서다!Q. 선생님 작품 속 인물의 표정이 너무 획일화되어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진정 그것이 우리 한국인만의 독특한 표정인지 아니면 그저 인류에게 보편적인 동심을 느끼게 해주는 표정인지 궁금합니다. 조각마다 각기 조금씩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면, 그러니까 인간의 희노애락을 드러내는 훨씬 더 역동적인 표정을 드러낸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요. A. 저 역시 그런 딜레마를 느끼고 있어요. 귀국 후 초기 작업에서 서양조각의 아르카익한 요소와 한국적인 거칠고 투박한 요소가 공존하고 있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것 역시 제가 풀어야 할 숙제이지요. Q. 그래요. 귀국전에서 보여주었던 작품들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그 작품들에서 우리 고유의 표정을 살짝 보았거든요. 서양조각의 아르카익한 미감과 한국 불교조각의 고졸한 미감이 기묘하게 섞여 있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한국 불교조각 중에서도 백제인의 얼굴이라든지, 미륵의 표정이 기묘하게 아름답게 다가오는 데요. 그것을 벤치마킹(웃음)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A. 저 역시 오늘날 한국인의 잃어버린 정체성으로서의 그 온화하고 고졸한 인간미를 풍기는 얼굴 표정들을 다시 살피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야겠지요. 예술이라는 게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잖아요. 그저 할뿐이지요.

이경재_오케스트라 Orchestra_대리석_2010

에필로그 ● "여기에 하나의 과제가, 세계만큼 위대한 과제가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제 앞에 서서 그것을 본 사람은 먹을 것을 찾아 손을 더듬으면서 어둠 속에 있던 한 무명의 사내였다. 그는 완전히 홀로였으니, 만일 그가 정말로 몽상가였다면 그는 아름답고 깊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꿈, 일생이 하루와 같이 흘러가버릴 수 있는 길고 긴 꿈들 중 하나를 꿈꾸었을 것이다. 세브르 공장에서 밥벌이를 하던 이 젊은이는 꿈이 손 안으로 솟아오른 몽상가였으며, 곧바로 이 꿈의 실현에 착수하였다. 그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알고 있었으니, 그의 내부에 있던 고요가 그에게 현명한 길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미 로댕과 자연의 심오한 일치가 드러난다." (릴케의 로댕 중) ■ Q. 유경희 / A. 이경재

Vol.20100613d | 이경재展 / LEEKYOUNGJAE / 李景在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