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머리의 샐러리맨 A Salaried man with red hair

홍경희展 / HONGKYUNGHEE / 洪京嬉 / painting   2010_0616 ▶︎ 2010_0622

홍경희_붉은 머리의 샐러리맨Ⅰ_캔버스에 유채_73×91cm_2007

초대일시_2010_061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_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2층 제2전시장 Tel. +82.2.734.1333 gana.insaartcenter.com

선(線)의 감성으로 그려낸 현대인의 자화상 ● 바람에 날리듯 가는 선의 물결이 붉은색 덩어리를 만들어 낸다. 선의 세밀함은 쌓이고 겹쳐진 틈을 비집고 나와 살며시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단출한 색과 세밀한 감추어져 쉽게 찾아낼 수도 없는 도안적 장식과 간결한 선의 움직임만으로 보는 이의 감정 선을 이렇게 건드릴 수도 있구나. ● 큰 화면은 인물의 커다란 뒷모습으로 채워져 있다. 가는 침으로 긁어낸 듯 선으로 뭉쳐진 머리카락이 붉게 염색되어 가늘게 흔들리듯이 시선을 잡아당긴다. ● 그리고 화면에 시선이 고정된 순간 시간의 움직임이 일순 정지 된 듯 느낌을 받는다. 화면의 인물은 뒷모습만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겪었을 과거를 관객에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주인공의 과거는 단정하게 빗겨진 머리칼과 윗옷의 칼라 장식으로 박제되어 있다. 시각적으로 엄격하게 통제된 주인공의 과거는 관객에게 시간의 연속성을 망각하게 한다. 시간에 대한 인식은 타인과의 관계, 관계를 형성하는 에피소드와 그 배경이 되는 장소로 이루어진다. 시간이 망각된다면 이런 모든 것들을 함께 상실한다는 의미가 된다. 스틸 컷 사진을 들여다 볼 때,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장소와 타인과의 관계 속을 유영할 수 있다. 이렇듯이 시간을 인식하고 지금이라는 시점과 과거를 연결할 수 있는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스틸 사진 속에 담겨져 있는 여러 시각정보를 통해서 이다. 그 중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인물 주변의 장소가 보조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을 인식하고 이를 현실과 연결하는 의식은 현재의 자신을 인식하는 고리가 되는 것이다. ● 작가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인식하는 고리가 되는 위와 같은 시각적 정보를 배제한 화면을 구성한다. ● 이는 세 가지 측면에서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소위 현대라는 시대적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 산업화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도시화된 주거환경 속에 사는 현대인의 생활방식 중에 가장 큰 특성은 효율과 경쟁일 것이다. 효율의 강조는 몰 개성한 인간군상을 양산하고,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시스템은 속도전쟁과 인간성 상실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작가의 푸념은 현대사회에 대한 작가의 인식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 "빠르게 변하는 현대를 살면서 그 속도에 맞추어 가는 것도, 그 방향을 가늠하는 것도 쉽지 않다. 치열한 생존경쟁은 현대인을 숨 막히게 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태에 편승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기 정체성의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 빠르게 변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난 시간의 회상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경쟁의 구도에서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현대인은 지난 시간을 잊고 살아간다. 과거는 현재의 스펙트럼 속에서 탈색 되고 현대인의 삶은 견고한 현재의 틀 안에서 고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홍경희_김대리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9
홍경희_회색바람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9

두 번째는 물질적 풍요와 지구촌이라 불릴 정도의 다문화적 소통구조 속에서도 오히려 '절대고독', '무리 속의 고독'을 겪는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에 대한 인식이다. ● 지난 세기 동안 교통수단의 발달은 물리적 거리를 지속적으로 단축시켜 왔다면, 매스 미디어를 거쳐 온라인이라는 정보시스템 속에서 지구 곳곳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심리적 거리 또한 획기적으로 줄여 왔다. 이제 지리적 조건에서 문화적 독특함을 일구어 내기란 불가능한 시대라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세계화 국제화의 패러다임이 지구촌을 지배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지구촌의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다른 이들과 삶에 공감하는 공간은 점차 줄어들고, 오히려 외부와 차단된 골방으로 쫓겨 들어가고 있다. 무한대로 확장된 소통의 구도 속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을 잃고 타인과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작가는 얼굴의 제거된 인간의 초상에서 타인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읽고 있다. 초상에서 얼굴을 제거한다는 것은 감상자에게 인물에 대한 정보를 빼앗아 버린 것과 같다. 부족한 정보는 그 정보를 해석하고 감상해야 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무척 혼돈스럽다. 어떤 이는 인식과정에 부딪히는 거북스러움으로 정보해석을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작가는 감상자의 입장에서 겪는 인식의 혼돈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부족한 정보에서 오는 지각의 틈을 궁금증과 의아함으로 유도함으로써 감상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화면에 투사하는 연상작용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것은 현대인이 겪는 고독과 실존적 자아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이지만 결국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자의식의 발현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작가의 생각처럼... ● "나는 늘 부족함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늘 시간에 쫓기고, 꿈속에서도 늘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 헤매다가 무한한 대상들과 맞부딪히며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 "

홍경희_외할머니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0
홍경희_서른아홉 살의 엄마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0

세 번째로 개체로써 현대를 사는 작가 자신이 겪는 자기 인식의 문제이다. ● 작가는 소소한 일상에서 현실이라는 벽 앞에 부딪히는 이상을 떠올리며 아파한다. 현실은 작가에게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존재의 방식을 틀로 한정지어 놓고 강요한다. 강요는 이 시대 이 장소에 사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작가의 연령대가 공통으로 겪는 아픔일 것이지만, 작가에겐 미술가로서 자신의 화면을 열어가는 촉매가 되고 있다. ● "3,40대의 엄마들은 아이가 세 네 살만 되면 온갖 교육에 매달리고 각종 교육서를 뒤지고 정보를 찾는데 온 시간을 써야하는 현실이 가슴 답답하다, 그러면서도 늘 불안하다." ● 작가의 말처럼 빠른 경쟁구도 속에 내몰리는 아이들을 키우고 주부로서 가정을 꾸려가는 일반 여성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작가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화상과도 같은 주부의 뒷모습이나 청소두건을 쓰고 시선을 내리 깔은 무표정의 초상을 통해서 담아내고 있다. 이른 새벽 출근해서 늦은 밤에 돌아오는 남편의 쳐진 어깨의 뒷모습을 보면서 작가는 처음 뒷모습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쩌면 늘 쫓기며 숨고자 하는... 누군가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는데 익숙하지 못한 작가자신이 세상에서 느끼는 두려움처럼 화면 속에서 인물은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홍경희_정년퇴임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0
홍경희_전업주부_캔버스에 유채_91×73cm_2007

인간은 자기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면서 대답할 수 있는 실존적 상황에 대한 인식이 가능한 존재이다. 인간만이 자신의 본질을 찾는 과정에서 고독과의 싸움을 통하여 생명의 호흡이 주는 신비함을 느끼고 이를 본질로 승화시킬 수 있다. 현대인의 고독감은 그 자체로 인간성에 접근하는 통로를 제공해 주는지도 모르겠다. ● 작가는 현대인의 정체성의 문제를 스스로의 삶을 통해서 빚어낸 감성에 현대인의 고독에 대한 인식을 덧씌움으로써 찾으려 하고 있다. 선의 결을 통해서 얻은 표정 없는 초상은 이 시대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모습과도 같은, 말 그대로의 어설픈 증명사진이며 작가의 자화상이라고 하겠다. ■ 조동균

Vol.20100616a | 홍경희展 / HONGKYUNGHEE / 洪京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