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선의 날아나다

하인선展 / HAINSUN / 河仁善 / painting   2010_0616 ▶︎ 2010_0622

하인선_날아나다 flying_한지에 연필_38×24cm_2008

초대일시_2010_061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갤러리 토포하우스_TOPOHAU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2층 Tel. +82.2.734.9883 www.topohaus.com

하인선의 날아나다 ● 단아한 백자(청화초화문호, 19세기) 하나 있다. 속된 윤기를 드러내지 않는 질박한 도자 표면에 날아갈 듯 낭창한 난초가 그려져 있다. 오래된 시간을 느끼게 하는 검은 심연 위로 넋처럼 가벼운 나비 한 마리 난다. 어디로부터 날아 온 것일까. 잘생긴 청자(매죽학문매병, 12세기 중엽) 바닥으로 댓잎 후두둑 떨어지더니만 이번에는 학 한 마리 날아오른다. 천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제 놈이 납작하게 누웠던 도자기를 뒤로 하고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나비의 날갯짓이 돌풍을 일으키기도 한다지만 하인선의 도자기 그림 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하인선_날아나다 flying_한지에 연필_38×24cm_2008
하인선_날아나다 flying_한지에 연필_38×24cm_2008

마른 먹, 연필 산수 ● 이 심상찮은 도자기들은 한지 위에 연필로 그려진다. 먹처럼 번지거나 스며들 리 없는 것을 한사코 칠해서 먹이고, 인내로 문지른다. 한지는 반투명성을 잃지 않으면서 다양하고 은은한 검은 빛의 스펙트럼을 발한다. 성실하고 섬세한 손끝이 만든 화면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전통을 그리워하며 민화나 수묵 그리기를 지속해왔다. 그러던 그가 언젠가 부터 붓이 아닌 연필로 산수를 그리기 시작한다. 짐작하건데 언제고 어디서나 쥘 수 있는 연필은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그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전략형 도구였을 터였다. 그는 '연필수묵'이라는 새 장르라도 이뤄내려는 것처럼 우직하게 집중하는 것 같았다. 재밌던 것은 전통산수 속에, 뒷짐 지고 산하를 내려다보는 신선이나 선비 대신, 또래의 여자들이 둘러 모여 소풍 노는 모습이나 수줍은 사랑을 나누는 남녀, 급물살을 헤치며 노 젓는 여자들을 그려 넣던 것이다. '풍경의 완상'은 '더불어 놀이'가 되고, 박제된 전통은 살아있는 일상으로 유머러스하게 전취된다. 이제 그가 연필로 그린 도자기들은 어떤 기발한 꿈을 꾸고 있는가.

하인선_날아나다 flying_한지에 연필_38×24cm_2008
하인선_날아나다 flying_한지에 연필_100×73cm_2008

흔들리다 ● 바람 많은 밤, 문풍지에 드리운 달그림자처럼, 무언가에 홀릴 때 초점 잃은 착시처럼, 어른대며 흔들리는 호리병(흑자표형병, 13세기)에 매혹된다. 한지에 여러 벌 그려져 조금씩 어긋나게 겹쳐진 도자기들은 감추고 드러나는 연속화면을 만든다. 화면에 빛이라도 스며들면 층층이 겹쳐진 도자기 라인들은 더욱 엉클어져 여기와 저기, 과거와 현재를 속절없이 오간다. 모호함으로 흔들리는 겹겹 레이어들을 오래 바라보자니 사뭇, 갈피를 잡지 못한 존재의 어지럼증과 오버랩되기도 하고, 뿌연 유령의 웅얼거림이나 접신 중인 무녀의 널뛰기를 상상하기도 한다. 흔.들.림.의 근원을 생각한다. 어떤 사정이 내면의 어둠을 뒤흔들고 에너지를 끓게 하여 스스로 떨도록 하는 것일까. 차오른 내압의 켜켜이 결들을 들여다볼 수 없을까. 흔들림에 나를 투사하여 상상한다. 소통에 대한 갈망과 주저, 기억 속의 트라우마, 고립에 익숙하고 외로움에 안주하기, 억압에 순응하여 다만 사고치지 않기, 욕망은 되도록 숨죽이기. 자유는 되도록 꿈꾸지 않기. 하지만 바라건데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한 순간 만이라도 해방되기! 아름답고 위태한 하인선의 도자기들은 도리 없이 알을 깨고 나오는 비상을 연상시킨다. 흰두 신화에는 '가루다'라고 불리는 새金翅鳥가 있다. 이 신비로운 새는 이미 완전한 날개를 지녔지만, 오백년이 지나고 다시 오백년이 지나도록 알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가루다 신화는 우리 안의 본성이 이미 완전하지만, 껍질을 깨는 일시적 죽음을 직면해야만 비로소 창공 높은 곳까지 치솟아 날 수 있음을 상징한다.

하인선_날아나다 flying_한지에 연필_41×24cm_2008

난장의 초혼굿 ● 술렁이는 동요 끝에 마침내 말갛던 도자기에 균열이 시작되고, 쩍하고 갈라져 아픈 속을 드러내고 만다. 깨져나간 파편들은 내면의 주저와 두려움, 갈등과 분열이 치러낸 오롯한 전투의 흔적이다. 그 파편들이 허공에서 합체되어 비행체로 난다. 나비다. 쓰러진 도자기로부터 박쥐 떼처럼 맹렬하게 날아오르는 나비들은 지난 나를 떠나보내는 한바탕 초혼 굿이다. 허연 혼백으로 깨진 그릇을 빠져나가는 영靈들의 난무亂舞! 난장의 굿거리 와중에도 소통의 욕망은 종종 기이하고 유머러스한 풍경을 만든다. '이상한 나라'에서 만날 것 같은 거대하고 기이한 토끼의 신체 없는 두 귀가 항아리 밖을 두리번거리거나, 무덤에 망자의 살아 행적을 기록하여 함께 묻었다는 '묘지합(백자지석함. 18세기 후반)' 사이로 새잎들이 혀를 널름대며 삐져나오거나, 파래 같은 바다수초가 유리질에 뿌릴 내리고 자라나기 시작한다. 주저는 호기심어린 생명력으로 진화 중인 것이다.

하인선_날아나다 flying_한지에 연필_100×73cm_2008

존엄한 자기파괴 ● 쉽기야 했겠는가. 깨진 도자기 사이로 자라나오던 목단가지를 보며 나는 카라바지오가 그린 「의심하는 도마」의 저 서늘한 리얼리즘을 떠올렸다. 예수의 상처를 열어 제 검지를 밀어 넣고서야 기어이 그의 부활을 인정하던 도마처럼, 생살을 뚫고 자라나온 꽃가지는 후벼 파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수 없는 '다시나기'를 제 몸에 새기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깨짐의 상처는 확장되고 깊어지는 삶의 주름일지도 모른다. 알을 깨고 나오는 여리며, 하잘 것 없다 여겨졌던 작은 영혼들에게 애도와 용기를 보내고 싶다." 하여, 깨진 항아리를 투명하게 다시 품은 달 항아리(백자 달항아리, 18세기 초)의 모습은 상처와 파괴를 직면한 자의 위엄으로 정적 속에서 숙연하다. 날아 나기를 수행한 자의 존엄한 초상인 것이다. ■ 제미란

Vol.20100616c | 하인선展 / HAINSUN / 河仁善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