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우_윤석원展   2010_0616 ▶︎ 2010_0629 / 일요일 휴관

윤석우_춤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112×90cm_2006

초대일시_2010_061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요일 휴관

빛갤러리_VIT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76번지 인곡빌딩 B1 Tel. +82.2.720.2250 Vitgallery.com

윤석우_The Shape of Soul /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 1. 사진의 영역이 예술 일 수 있는가? 예술이 가지는 창조성을 사진을 통해서도 나타낼 수 있는가?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없으면서도 나의 작업은 질문과 함께 계속되고 있다. .춤. 나의 사진에 참여하여 주었던 많은 무용가들의 폭발적이기도 하고, 잔잔한 호수같이도 표현하여 주었던 혼신의 춤은 영혼으로 불러주는 노래다. 내 질문의 답은 그들에게 있었다. 보이지 않은 것들을 보이도록 표현하는 창조적 그림을 그들은 온 몸으로 그리고 있었다. 그들이 동작하는 공간은 화판이었고 그들의 몸짓들은 영혼의 무늬가 되어 시간 속에 녹아든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2. 사진을 시작하고 난 후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두 가지 오브제가 있다. 그 중 첫 번째 오브제가 사람이다. 사람은 내면의 형상을 겉으로 표출하면서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세계 - 삶의 본질 - 가 보이는 현상의 세계를 다스리며 산다. 사람 안에 그 창조적 능력과 아름다움이 있음을 본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춤을 추고 있었다. . 두 번째 오브제는 시간이다. 카메라... 그 안에 시간들은 무늬가 되어 들어와 있다. 많은 춤들의 음악과 혼신이 묻어있다. 짧게든 길게든 필름 속에 스며있는 시간은 보이지 않으나 분명 기억되어 있는 모든 존재의 실존이다. 존재의 무늬이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살아있고 나의 춤은 생명을 얻는다. ● 3 내 분신의 춤 -나의 사진들- 을 보는 사람들이 나의 사진들을 보면서 춤을 추었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며 절정의 춤을 추었으면 좋겠다. 이번 작업은 처음으로 그려낸 나의 춤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도록 그려낸 내 감격의 춤이다. ■ 윤석우

윤석우_춤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120×90cm_2008

살아 있는,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아쉬운 흔적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깃이 풍성한 치마를 입은 무용수가 몸을 튼다. 이쪽으로 돌아 나를 향해 다가올 듯하지만 또 어 찌 보면 금방이라도 고개를 돌리고 등을 보이며 저 멀리 사라질 듯도 하다. 지그시 고개를 숙인 얼굴은 반 이상이 어둠에 묻혔고 등 뒤로 뻗은 두 팔을 지탱하는 어깨와 쫙 벌린 손가락 하나 하나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어려 있다. 춤을 추는 여인, 사람들... 그런데 이들은 단순한 무용수가 아니며 이 사진 또한 단순히 무용하는 사람을 기록한 사진 혹은 인물 사진이 아니다. 작품이 거의 모든 예술가에게 자신을 비추는 일종의 거울인 것 처럼 그 또한 작품 속 무용수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니 회화에 비유하자면 일종의 자화상과 같은 사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무용수는 무엇일까? 그의 작품세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의 두 축을 이루는 '춤'과 '벽'에 먼저 다가가야 한다.

윤석우_춤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124×90cm_2007
윤석우_춤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131×90cm_2007

무용수를 찍은 사진이라면 그 사진이 무용수 몸의 역동성, 생생한 운동감을 얼마나 잘 전달하고 있을까 짐짓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사진 속 무용수들은 한결같이 고요하다. 찰나를 기록하는 사진의 특성상 표현적인 붓질로 거칠게 심경을 표현한 야수파나 표현주의 혹은 페인트를 이리저리 흩뿌리며 시간의 경과와 우연성의 효과를 기대하는 액션 페인팅처럼 직접적인 운동감을 표현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정지성은 의외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어떤 정물화의 정물보다도 정지해 있고 어떤 밤의 어둠보다도 고요하다. 긴장감이 서려 있다 하더라도 생생하게 팔딱거리는 혹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라기보다 천천히 잦아들어 조용히 사라질 긴장감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지고 다른 장면으로 오버랩 되어가는 춤, 무용수들의 내부에 잠들어 있던 어떤 기운이 동작에 담겨 피어나고 흘러나오는 순간을 부여잡고 기록하고 싶었던 그는 그만의 기념비적인 형상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바로 벽에 다가가는 단서가 있다. 그에게 벽은 시간의 흐름을 부여잡고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각인시켜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대상이다. 고정되어 있는 벽은 시간의 흐름과 자신에게 가해지는 어떤 것도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물이다. 그는 빗물과 노상방뇨의 흔적과 낙서와 구두 발자국 등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벽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워지고 잊혀질 춤을 만나게 했다. 하지만 그의 사진에서 벽은 배경으로, 무용수는 벽 앞의 피사체로 분리되지 않는다. 석상의 윤곽 또는 화석과 같이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들어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 바로 윤석우 사진의 역설이 있으며 그가 앞으로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물음이 있다. 그에게 춤은 음악에 맞춰 무대 위에서 벌이는 몸동작만이 아니다. 몸을 부리는 모든 것, 그리고 내부에 있는 어떤 기운과 열정이 몸 밖으로 발산되면서 나오는 모든 몸동작들이 그에게는 춤이다. 한 가지에 몰입하는 또 다른 예술가들의 호흡, 눈동자, 손놀림 하나하나에서 윤석우는 그들의 기운과 에너지를 느끼고 그것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는 그 에너지가 마구 뛰놀도록 고삐를 풀어준 것이 아니라 고삐를 쥐고 가끔씩 제어하며 그들에게 '강제 휴식'을 줬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강제 휴식을 취하는 춤은 아름답지만 안타깝다. 영원의 시간 속에 잠들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공주처럼 말이다. 최고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벽에, 프레임에 대상을 가두었지만 그의 작품은 창백함을 띤 아름다운인 듯 해 가슴이 저며 온다.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한발자국씩 나아간다. 시간이 흘러가고 현재가 과거가 되면서 잊어야 할 것을 잊기도 하고 지우지 말아야 할 것을 지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지나간 것은 추억이 될 수 있으며 잊혀지기에 또 다른 새로움이 자리 잡을 수 있고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벽화, 제로 고정된, 창백하고 싸늘한 인간을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은 인간이란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고 죽음을 향해가는 불완전한 존 재임을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윤석우의 작품은 그런 점에서 춤이나 벽에 관한 작업이 아니라 시간에 관한 작업이며 결국은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 죽음과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물어가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윤석우_춤_디지털 잉크젯 프린트_135×90cm_2007

사실 그의 사진을 처음 접한 순간 나는 기교적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기교'라는 단어는 습관적으로 긍정적인 뉘앙스보다는 부정적인 어감을 풍기는 단어지만 나는 가치 판단을 배제한, 단어가 지칭하는 의미 그대로 그의 사진이 뛰어난 기교를 보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을 찾고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이다. 시간과 인간 그 쉽지 않은 물음을 양 어깨에 지고 가는 그의 여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그의 작품에서 엿본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 긴 여정의 끝, 결국 우리가 모두 맞이해야 하는 생의 끝 죽음 앞에서 잔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한 가닥 성찰의 여유로움을 우리에게 안겨줄 듯싶다. ■ 노은정

윤석원_Consolation # 1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5cm_2009
윤석원_Consolation # 2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5cm_2009
윤석원_Consolation # 4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5cm_2009
윤석원_Consolation # 7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5cm_2009
윤석원_Consolation # 10_젤라틴 실버 프린트_27.9×35.5cm_2009

윤석원_FISH Ⅲ Series 'Consolation' ● 물 아래에도 생명이 있다 / 보이지 않는 곳에도 호흡하는 숨소리가 있다 // 때로 고단한 삶의 자리에 찾아와 / 마음 깊은 속, 한 칸의 자리에 잠잠히 머물며 / 어질러 놓은 가슴속 조각들을 하나씩 만져주는 언어가 있다 // 축축하게 구겨진 내 옷들을 쓰다듬어 다리시는 / 어머니의 손이 되기도 하고, / 깍지 낀 손을 겨드랑이에 넣어 일으키는 / 아버지의 손이 되기도 한다 // 그 언어, 그 손길의 마음에 생명이 있다 / 내 작업의 친구들이 되어준 물 아래의 그 생명들에게 / 내 마음을 흠뻑 담았다 // 나의 사진 작업물들이 / 메말라진 마음을 다시 적셔줄 생기의 물이 되고 / 단 한 사람 누구를 위해서라도 / 다시 일으켜 세울 악수가 되기를 소망한다 //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나는 이들의 마음을 덮는 / 치유의 손이 되어 얹어지면 좋겠다 ■ 윤석원

Vol.20100617f | 윤석우_윤석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