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 슈퍼스타, 키스 해링

키스 해링展 / Keith Haring / painting   2010_0617 ▶︎ 2010_0905

키스 해링展_소마미술관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_국민체육진흥공단_매일경제 주관_소마미술관_앰허스트 후원_서울시(2010 서울디자인 수도 선정 기념전)_문화체육관광부_주한미국대사관_유니세프 협찬_롯데백화점_GM대우_Qook&Show_롯데호텔_코렉스자전거_하나투어_파버카스텔_KCP_로히트

관람료 성인, 대학생_12,000원(단체 10,000원) 청소년(13-18세)_10,000원(단체 8,000원) / 어린이(4-12세)_8,000원(단체 6,000원) * 단체 : 20인 이상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수,토요일_10:00am~09:00pm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소마미술관_SOMAMUSEUM 서울 송파구 방이동 88-2번지 제1~6전시실 Tel. +82.2.3210.4555 www.somamuseum.org

국민체육진흥공단 소마미술관(명예관장 이성순)은 오는 6월 17일부터 9월 5일까지 아시아 최대 규모의 키스 해링 단독 기획전시『팝아트 슈퍼스타, 키스 해링』展을 개최합니다. 본 전시는 서울시의'2010 세계디자인 수도' 선정과 에이즈로 31살의 이른 나이에 요절한 천재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사망 2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으로 키스 해링의 분야별 대표작 판화 130여점과 작가 영상자료, 조각 등 총150여점이 소개됩니다. 특히, 이번『팝아트 슈퍼스타, 키스해링』展은 작품 전시뿐만 아니라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 정원극장 등 시민들이 참여하며 즐길 수 있는 종합문화예술축제 형식으로 진행됩니다.『팝아트 슈퍼스타, 키스 해링』展관람료는 성인 12,000원 / 청소년 10,000원 / 어린이 8,000원입니다.

1958년 5월 4일, 펜실베니아주 레딩에서 태어나 쿠츠타운 근처에서 성장한 키스 해링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배운 기본적인 카툰 기술과 닥터 수스, 월트 디즈니와 같이 주변에서 쉬이 접하는 대중문화로부터 드로잉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197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피츠버그 아이비 상업예술학교에 입학하지만, 상업적인 그래픽 아티스트가 되는데 흥미가 없음을 깨닫고 2학기 만에 중퇴한다. 홀로 독학하며 작업 활동을 하던 중 1978년 스무 살의 나이에 피츠버그 예술공예센터에서 자신의 첫 개인전을 갖는다. ● 그 해 뉴욕시로 이주해 시각예술학교(School of Visual Arts)에 입학한 해링은 뉴욕 거리와 지하철, 클럽 등 미술관과 갤러리라는 기존 제도 밖에서 번성하고 있는 대안예술 커뮤니티를 발견하고, 이런 에너지와 정신에 동조하며'클럽57'을 비롯한 여러 장소에서 전시회와 퍼포먼스를 조직하고 동참한다. 1980년에는 지하철역에 검은 종이로 가려놓은 빈 광고판을 보고, 그 위에 흰 분필로 그림을 그린다. 늘 고민하던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때로 하루 40여개의'지하철 드로잉'을 제작하며, 80~85년 사이 빠르고 리드미컬한 선으로 된 수백 개의 드로잉을 완성하였다. 뉴욕시를 채워간 이런 이미지의 흐름은 사람들에게 친숙해졌고, 사람들은 작업 중인 해링과 마주칠 때면 멈춰 서서 그와 대화하며 소통하였다. 지하철은 단순한 선으로 된 그의 아이디어와 시도들을 작업하기 위한 "실험실"이 된 것이다. ● 1980년과 1989년 사이 해링은 개인전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전에 참여하였고, 카셀의'도쿠멘타7(Documenta 7)'과 상파울로 비엔날레, 휘트니 비엔날레 같은 전시회에 참가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또한 타임 스퀘어 전광판에 선보인 애니메이션부터 극장이나 클럽의 세트, 배경 디자인, 스와치 시계 디자인,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 및 전 세계 수십 개 도시의 자선단체와 병원, 어린이센터, 고아원 등에서 50개 이상의 벽화 제작 및 공공 작품을 제작하였다. 뉴욕, 암스테르담, 런던, 도쿄, 보르도의 박물관 및 여러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 워크숍을 열고, 많은 문맹퇴치 프로그램과 기타 공공 서비스 캠페인을 위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86년에는 예술 활동의 확장으로 팝샵을 열어 그의 이미지가 담긴 티셔츠와 장난감, 포스터, 뺏지 등을 판매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가까이 접하게 했다. 88년 에이즈 진단을 받은 해링은 89년 키스해링재단을 설립하여 에이즈 기관과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시작하였다. ● 키스 해링은 80년대에 걸쳐 10여 년의 짧은 활동 기간이었지만 100회 이상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자신의 작품과 작업을 그 누구보다 왕성하게 선보인 작가이다. 탄생과 죽음, 사랑과 성, 전쟁 등의 보편적인 개념들을 단순 명쾌한 메시지로 선을 이용해 표현함으로써 다양하고 폭넓은 사람들을 끌어 당겼고, 그의 형상이 지닌 접근성과 지속성으로 그의 이미지는 20세기의 보편적 시각 언어가 되었다.'대중과의 소통'을 열망하며 작업했던 그의 작품을 통해 키스 해링은 지금까지도 전세계 사람들과 호흡하며 소통하고 있다.

키스 해링_남아프리카에 자유를 FREE SOUTH AFRICA_석판화_81.3×101.6cm_1985 키스 해링_앤디 마우스 ANDY MOUSE_실크스크린_96.5×96.5cm_1986

이 작품은 198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며 제작되었다. 해링은 미국의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가정 출신이지만, 과거 백인들의 잘못을 비난하며 백인보다 오히려 다른 인종에게 더 큰 애정을 가졌다. 1882년 이미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반핵 시위에 자비로 제작한 반핵 포스터를 사람들에게 배포한 그는, 그 후 3년 후인 85년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며 이만장의 포스터를 제작하여 다시금 센트럴파크에서 무료 배포하였다. 어릴 시절부터 유난히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해링은 사회적 문제를 다룬 포스터 제작뿐 아니라 경찰에 의해 살해된 아프리카계 낙서화가 마이클 스튜어트의 죽음, 존 레논의 살해 사건, 사회 보수층들에 대한 비난 등 사회성 짙은 작품을 다수 제작한다. 실제 사건들을 직접 다룬 이 작품들의 간결하고 단순한 표현 뒤에는 동시대의 역사가 냉철하게 반영되어 있다. ● 키스 해링은 예술적 멘토이자 친구였던 앤디 워홀을 위해'앤디 마우스 Andy Mouse'를 창조했다,'앤디 마우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이미지는 미키 마우스의 큰 귀에 앤디 워홀을 상기시키는 선글라스와 가발을 착용한 모습이다. 키스 해링은 미국 문화의 상징적 도상인 미키 마우스와 앤디 워홀을 조합함으로써 워홀을 미국 문화의 또 다른 상징으로 표현해 냈다. 이 형상은 그의 작품에 여러 번 등장하였고, 1985년부터 대형 크기의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사람들의 손에 높이 들려 환호를 받는 앤디 마우스는 앤디 워홀이 미키 마우스처럼 미국 문화의 한 부분이자 대중문화의 표상이며 더 나아가 하나의 문화적 상징임을 드러내고 있다. 해링과 워홀의 첫 만남은 1983년 뉴욕 펀 갤러리에서 열린 해링과 LAⅡ의 전시회 개막식에서 이루어졌다. 그 후 해링과 워홀은 서로에 대한 인정과 존경, 예술적 교감으로 서로에 대한 진실한 우정을 키워갔다. 젊은 예술가였던 해링에게 앤디 워홀과의 교류는 유익한 경험이었고, 반면 워홀은 해링을 통해 젊은 예술가들의 대안예술에 접근하며 이를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하였다.

키스 해링_무제 UNTITLED_실크스크린_15×15cm_1987 키스 해링_자유의 여신상 STATUE OF LIBERTY_실크스크린_95.3×71.8cm_1986

「무제 Untitled」 1987년 작품은 대중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키스 해링의 작품 중 하나이다. 화면 중앙에 크게 자리한 붉은 하트는 두 사람 간의 우정과 믿음, 신뢰와 사랑을 나타낸다. 하트에서 뻗어져 나오는 분명한 선들은 사랑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어깨를 감싸는 모습에서는 따스하고 평온한 느낌이 전달된다. 해링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양성 형상의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 손과 손을 맞잡은 모습, 하트 이미지 등을 통해 남녀노소, 인종과 인종, 나라와 나라 간의 어떤 차이나 차별도 없이 모두가 하나로 연합되고 사랑하기를 꿈꾸게 한다. ● 이 작품은 1986년 7월 4일 자유의 여신상 100주년을 기념하여 키스 해링과 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공동으로 작업한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작업으로 제작한 것이다. 키스 해링은 유난히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을 즐겼다. 어린이들의 상상력, 솔직하면 서도 자유롭게 표현하는 그들의 매력을 사랑했던 그는 어린이들과의 공동 작업에 기꺼이 참여하였고, 이런 소문이 전해지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어린이들과의 다양한 작업을 요청받았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자유의 여신상 배너는 자유의 여신상 100주년을 기념하여 자비츠 컨벤션 센터(The Javits Convention Center)에서 총 4일 간 진행되었다. 먼저 첫째 날 해링이 10층 높이의 대형 현수막에 자유의 여신상 모양의 검은 윤곽선을 그리고, 그 다음 3일동안 50여 명의 어린이들이 6차례에 걸쳐 각자 자기 나름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렇게 완성된 배너는 멀리서 보면 선을 따라 색이 입혀진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아이들의 개성 있는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키스 해링_블루프린트 드로잉 THE BLUEPAINT DRAWINGS_실크스크린_108×152.4cm_1990

세 칸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는 몽둥이를 든 사람이 두 팔이 묶인 사람의 배를 찌르고 있다. 배에 찔린 사람의 배에는 구멍이 나고, 구멍 사이로 배를 찌른 사람의 머리가 통과하고 있다. 이어 배에 난 구멍으로 개들이 통과하고 있다. 해링은 자신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배에 구멍이 난 사람' 형상이 존 레논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가 머드 클럽에 있던 어느 날 한 사람이 클럽에 와서 존 레논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뉴욕시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해링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소식을 접하고 잠을 이룬 해링이 다음날 잠에서 깨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배에 구멍이 난 사람'의 형상이었다. 이후로 해링은 배에 구멍 난 사람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하였다.

키스 해링_침묵 = 죽음 SILENCE = DEATH_실크스크린_99.1×99.1cm_1989 키스 해링_종말 APOCALYPSE_실크스크린_96.5×96.5cm_1988

1980년대 초까지 에이즈라는 주제는 대중들의 의식 속에 깊이 숨겨진 영역이었다. 그러나 85년 에이즈가 미국 사회에 알려지면서 뉴욕은 온통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다. 해링 또한 자신이 언제든 에이즈의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며 생명과 죽음에 대한 고뇌로 갈등했다. 하지만 이를 딛고 일어선 해링의 예술적 에너지는 에이즈와 죽음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으로 분출된다. 화면에는 동성애자 모임의 상징인 분홍색 삼각형이 검은색 바탕에 뚜렷하게 대비되어 나타난다. 그 위에 손으로 눈과 귀를 막은 회색 윤곽선의 인물들이 얼기설기 그물처럼 퍼져있다. 눈과 귀를 막은 사람들에게서 에이즈에 대한 무관심과 잘못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해링은 사람들의 이런 무관심으로부터 에이즈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해링은 죽기 1년 전인 1989년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키스해링재단을 설립하였고, 지금까지 에이즈 및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오고 있다. ●「종말」연작은 해링의 예술적 형태가 변화되고 발전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윌리엄 버로스와의 첫 공동작업이다. 1987년 앤디워홀과 바스키아, 두보스 등 가까운 지인들의 연이은 사망으로 어둡고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던 해링에게 수년 동안 존경해 오던 작가 윌리엄 버로스와의 작업은 뜻 깊은 것이었다. 10개의 실크스크린 연작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들은 1988년 윌로엄 버로스의 글과 함께 출간되었다. 이 시리즈에서 해링은 모나리자나 예수의 사진을 이용해 강렬한 색과 검은 선으로 표현하여 기존 작품과는 차별화된 작업 형태를 선보였다.

키스 해링_빨강과 파랑 이야기 THE STORY OF RED AND BLUE_석판화_41.9×55.9cm_1989

「빨강과 파랑 이야기」는 독일의 아트 딜러, 한스 마이어의 자녀들을 위해 제작된 그림 시리즈이다. 사랑스런「빨강과 파랑 이야기」작품은 고상하고 단순하게 표현된 이미지와 그 안에 담긴 명료한 이야기가 특징이다. 버로스와의 공동 작업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총 21점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는 색을 중심으로 한 부드러운 소통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빨강과 파랑의 한 색만이 화면에서 교차되어 나타나다가 이어 빨강과 파랑이 한 화면에 함께 모여지고, 마지막에는 두 가지 색깔이 혼합된 보라가 형성된 후 작품이 마무리된다. 색의 교차와 더불어 색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각각의 이미지들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보는 이로 하여금 색이 들려주는 자유로운 상상을 제한없이 펼치게 하는데, 이것이 이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키스 해링_아이콘 ICONS_실크스크린_53.3×63.5cm_1990

아이콘 시리즈는 키스 해링이 창조해 낸 이미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순수예술 분야와 상업 분야에 서 모두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지하철 낙서 시절 가장 자주 사용되었던 기어가는 아기 형태의 서명은 시인 르네 리카르드(Rene Ricard)가'빛나는 아기'라 명하면서 그 이름으로 흔히 불러지게 된다. 빛나는 아기 도상은 간결한 윤곽선으로 아기의 형상을 단순화하고 동작선을 통해 빛을 발산하는 모습을 전달하고 있다. 이 아기 형상은 힘없는 인간이나 어린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함과 젊음, 에너지와 능력, 힘과 인간의 악함으로부터의 자유 등을 표현하고 있다. "아기가 나의 로고나 서명이 된 이유는 인간 존재의 경험이 바로 아기라고 믿기 때문이다."(키스 해링) ■ 소마미술관

Vol.20100617j | 키스 해링展 / Keith Haring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