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훈展 / KONGSUNGHUN / 孔成勳 / painting   2010_0615 ▶︎ 2010_0627

공성훈_겨울바다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609a | 공성훈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10_0615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8:00pm

신세계갤러리 본점 SHINSEGAE Gallery 서울 중구 충무로1가 52-1번지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12층 Tel. +82.2.310.1921~3 department.shinsegae.com

신세계갤러리는 최근 풍경화 작업을 통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공성훈 전시를 개최합니다. 공성훈(1965~, 인천 출생)은 주로 개념적인 설치작업에 주력하면서 전통적인 회화매체의 테두리 밖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왔습니다. 그런 그가 전통적인 회와의 영역으로 이동하여 풍경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공성훈의 최근 풍경화 작품 15점을 선보입니다. 그의 풍경화는 일견 사진으로 느껴질 만큼 선명한 색조와 정교한 터치의 화면이지만 좀더 주의 깊게 바라보면 주변에서 보아보던 익숙한 풍경을 넘어서서 새롭게 인식하게 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초여름의 풍경 속에서 공성훈의 익숙한 듯 낯선 풍경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 신세계갤러리

공성훈_소나무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10

화가 공성훈의 「겨울 여행」 ● 기억을 더듬어보니 공성훈의 그림을 처음 본 게 2002년, 내가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다. 어두운 밤의 이미지, 그리고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선 개의 번뜩이는 눈, 그 옆에 놓인 개밥그릇. 낯선 이의 등장에 경계하는 기색을 드러내거나 무심히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한밤중 개의 모습과 그 위에 겹치는 화가의 그림자. 눈이 내리고 있거나 여름밤이거나 가로등 조명이 있거나 카메라 플래쉬 불빛으로 순간 번쩍이거나 그 밤의 이미지는 매우 강렬해서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베를린에 있는 화랑의 한 갤러리스트가 그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급격한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전시를 도와주게 되면서 그를 처음 만났다. 전혀 화가처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전형적인 모범생으로 보이는 그의 첫인상이 의외였다. 긴장하거나 과장되지 않은, 조금은 수줍고 조심스런 화가에 대한 인상은 그때 이후 지금까지 대략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별로 변한 게 없다. 아니, 지금은 조금 변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올해 처음 만난 그의 말수는 예전보다 줄어들었고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으며 차분한 것과는 좀 다른, 물밑으로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개인전 준비 때문일 것이다. "속도가 안 나가요. 자꾸만 쳐져요" 라고 했다. 작업이 잘 되서 죽겠다는 소리를 하는 작가를 만나본 적은 없으니 어느 정도 엄살이 섞였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처럼 들렸다. 그는 정말로 지쳐 보였다. ● 작업실에 들어서니 눈앞이 환하다. 화면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달빛만 괴괴한 눈얼음판이거나 당장 폭풍이라도 몰려올 거 같은 심상찮은 기운의 하늘이거나 인공적인 도시의 불빛으로 빛난다 해도 어두움이 주조였던 전의 그림에 비하면 확실히 밝아졌다. 이젠 비록 해질녘 풍경이지만 파란 하늘도 보인다. 여전히 따뜻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 겨울 풍경이지만 지난번 전시에서 봤던 쨍한 한겨울 추위는 한풀 꺾였다. 캔버스는 이전 보다 커지고 더욱 압도적이 되었으며 바다, 계곡과 같은 자연풍경이 주를 이룬다. 화가는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인공자연을 벗어나 진짜(?) 자연을 그리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우리 눈은 그가 짜깁기 해놓은 자연 안에서 깜박 속는다. 그의 그림은 근린자연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합성이기 때문이다.

공성훈_겨울강_캔버스에 유채_193.9×130.3cm_2010

그가 그리는 건 풍경이다. 풍경화라니… 쟝르만 가지고 보자면 내 관심사가 아니다. 미술관을 방문할 때도 대체로 설렁설렁 보고 넘어가는 방이 풍경화가 걸린 곳이다. 일반적으로 부유한 대저택의 거실에 걸리던 풍경화는 제아무리 다른 멋진 상징들이 숨겨져 있거나 의미가 있다해도 특별히 내 눈길을 잡아채는 경우는 드물다. 단순히 그림의 주제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 머물다가 풍경 자체가 하나의 초상적인 성격을 획득하게 되면서 감상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그때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풍경화는 장식용이라는 인식이 강한 쟝르다. 복잡한 세상사,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위안을 얻거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조하거나 현실을 벗어난 이상향에 대한 꿈을 투사하거나 하는 대상 말이다. 하지만 공성훈의 풍경화는 좀 이상하다. 언뜻 정교한 사실주의 화풍에 감탄하여 다가가려는 관람자는 그 앞에서 멈칫거리게 된다. 그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관람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 때문이다. ● 그것은 언젠가 공성훈 스스로가 말했듯이 의도적으로 과도하게 집어넣은 캔버스 표면의 번들거리는 「글레이징」 효과 때문일 수도 있고 여행사 홍보 스틸컷이거나 이발소 그림처럼 느껴지는 키치스런 색채와 구도 때문일 수도 있으며 공들인 화면인 듯 보이지만 다가서면 속았다 싶은 속도감 있는 붓질 때문일 수도 있다. 공성훈의 그림에선 낭만주의 풍경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등을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낭만주의 그림에서처럼 그 인물에게 동화되어 그 앞에 펼쳐진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감정이입을 할 수는 없다. 지난 번 그림에서 보였던 강가의 살얼음은 녹았고 물의 표면은 잔잔해져 그림 속 남자는 종종 강가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자기 발밑의 수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건 앞에 펼쳐진 수려한 풍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물은 이제 자기응시의 매체가 된다.

공성훈_모닥불_캔버스에 유채_227.3×181.8cm_2010

공성훈 그림에서 일관되게 유지되는 건 모종의 이중성이다. 뛰어난 테크닉을 뻔한 상투성과 교묘하게 뒤섞어 멀리서 바라보면 확 시선을 잡아끌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멈칫하게 만드는 이중성이고, 서로 다른 장소에서 찍은 장면을 교묘히 섞어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기괴함을 더욱 실감하게 만드는 이중성이며, 사진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지만 그림은 그림일 뿐임을 표면에 내세우면서도 사진이 담아내는 것 같은 냉정함을 회화에 담아내는 이중성이기도 하고, 전통적인 풍경화를 차용하지만 풍경화가 주는 위안과 장식의 효과를 뒤집는 이중성이기도 하다. 다양하게 변주되는 그 이중성은 그가 「먼지그림」을 그릴 때부터 줄곧 유지하는 일종의 전략처럼 보인다. 멀리서 보면 정말 잘 그린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곰팡이와 먼지로 이루어져 질겁하게 만드는 그림 말이다. 구매자로 하여금 그림 구입을 망설이게 만드는 그 전략으로 인해 우리는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대 예술가의 딜레마와 그 안에서 소극적(!)인 저항을 하는 예술가를 자연스레 떠올릴 수가 있다.

공성훈_비행기구름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10

회화로 시작하여 설치/매체 작업을 한동안 하다가 다시 회화 작업을 시작한 것이 2000년 이라니 올해로 딱 10년째다. 그 동안 그는 매일 보는 자기 집 주변에서 시작하여 교외로 나갔고 전국 어디서나 여가를 즐길 만 한 곳이면 등장하는 키치스런 모텔들과 공원의 불빛과 인공 호수와 달밤의 체조에 열중하는 괴괴한 운동장과 여가를 즐기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자연인 공원들을 그리더니 재작년부터인가는 보기만 해도 싸늘해 옷깃을 여며야 하는 겨울풍경을 그렸다. 그는 당분간 겨울에 머물 예정인 모양이다. 이번 전시회 제목에서 암시하듯 여즉 「겨울 여행」 중인 이 화가는 외투를 벗을 수 없는 차가운 공기 속 이곳 저곳을 느.리.게. 거닐며 바라본다. ● 그런 풍경을 그릴 때 그의 시선은 함부로 개입하지 않고 쉬이 흥분하지 않으며 눈앞에 보이는 대상이나 상황에 섣불리 공감을 표시하지도 않는다. 그의 그림에선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이질적인 요소들이 모른 채 하며 이웃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파헤쳐진 논두렁과 겹쳐진 산 풍경 앞의 갈림길 풍경 위로 뜬금없이 헬리콥터가 콘테이너를 싣고 날아가기도 하고(개), 깊은 어둠으로 접어들기 직전의 짙푸른 하늘에는 고속의 비행기가 날아간 흔적이 하얀 직선 구름의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비행기구름). 잔잔히 흐르는 푸른 강물과 휘어지는 협곡의 아름다운 풍경에는 붉은색 철제 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드는 번지점프 하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기도 하고(번지점프), 붉은 노을이 깔린 어두운 산길, 해드라이트를 켜고 덜컹거리며 질주하는 트럭들 사이에 빨갛게 도드라지는 여관 표시등이 보이기도 한다(노을). 이상적인 풍경화에서라면 빼고도 남았을 이 생뚱맞은 이미지들을 부러 집어넣는 화가의 의도에 웃음이 나지만 그 웃음 끝에는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그 전의 그림에서도 심심찮게 발견하곤 하는 그 이질적 결합이 우리들 앞에 놓인 그의 그림을 단순한 풍경화로 볼 수 없도록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공성훈_개_캔버스에 유채_115×218cm_2010

그가 그림을 보여주기 전에 나는 철원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가 이번 전시회를 위해 그린 그림 가운데 철원 풍경이 있음을 뒤늦게 알았지만, 왜 하필 철원이냐는 질문에 언제나처럼 그냥 여행하다가 그렸을 뿐이라고 심상한 목소리로 말할 게 뻔하므로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여행을 떠났다. 한국의 그랜드케년이라고도 불린다는 한탄강 계곡을 따라 고석정의 아름다운 경치를 향해 가는 동안 수도 없는 군부대와 트럭의 행진을 만나야 했고 훈련을 떠나는 탱크 행렬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수시로 멈춰야 했다. 부러 만들려면 어림도 없을 수려한 협곡과 현기증 나는 급커브 도로와 그 양옆으로 계속되는 겨울철 스산한 논밭 풍경은 평소엔 잊고 지내는 남한 최북단 실상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딱히 그때부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공성훈이 자기 집 주변을 벗어나 교외로 시선을 돌리면서부터 그림에 끼워 넣기 시작한 정치적-사회적 메타포를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심상한 풍경 속에 슬그머니 끼어든, 직접 대놓고 말하면 납작해지고 볼품 없어지지만 포기할 수는 없는...

공성훈_불꽃놀이_캔버스에 유채_120×150cm_2010

회화가 죽었다고 사망선고를 내린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헤겔도 그랬고 사진이 나온 뒤에 들라크르와도 회화의 죽음을 한탄했고 다다이스트들도 그랬다. 뒤샹도 레디메이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시대에 회화가 무엇이란 말이냐"고 탄식했다. 첨단 기술이 동원되고 순식간에 똑같은 질의 이미지가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회화는 구태의연해 보이는 게 사실이고 또 실제로 수많은 화가들이 작업을 걷어치웠다. 공성훈이 매체 작업을 그만 두고 다시 붓을 잡았을 때 의아해한 사람들도 어느정도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게 예술이 되고 누구나 예술이 된다고 선언하는 이 시대에 예술가의 존재는 흔들린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라고 말한 요셉 보이스에게서 배운 독일의 화가 안젤름 키퍼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일 수는 있지만 화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라고 말한다. 공성훈도 꼭 그런 말을 했을 것만 같다. 심지어 매체 작업을 할 때조차도 일일이 자기 손으로 장치를 만들었다는 미련스런 그는 몸을 움직여 그리는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 아무데도 없지만 어디서나 보는 풍경을 그리면서, 천박한 일상의 내용을 예술형식의 틀 안에 담아내는 것이다. ● 「사건으로서의 풍경」을 그리려는 화가의 의도는 이제 서서히 막바지에 접어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핵심에 다가갈수록 저항력이 커져 진입의 속도가 느려지듯 화가는 힘겹게 작업을 마쳤다. 이제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갈 수 있는 양갈래길에서 턱을 깔고 누운 「개」와 그를 바라보는 그림자로 남은 남자가 어느쪽으로 방향을 잡을지 사뭇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 조이한

Vol.20100618f | 공성훈展 / KONGSUNGHUN / 孔成勳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