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안성 창작스튜디오 공동워크숍

2010_0619_토요일_02:00pm~06:00pm

워크숍 일시_2010_0619_토요일_02:00pm~06:00pm

초청대상_평론가, 외부작가, 교수, 대학원생, 일반인 등

내용 입주작가의 작품 발표 평론가, 큐레이터 등 외부전문가의 입주작가 작품분석과 작품론 안성시 거주 미술인 및 타 지역 미술인 토론

주최 및 후원_안성 창작스튜디오,안성시청 큐레이터_류병학_박혜진

작가 : 평론 김동현 : 김진섭(성곡미술관 큐레이터) 김성대 : 김영호(중앙대학교 교수) 변현수 : 이선영(미술평론가) 임병진 : 정형탁(컨템포러리 아트 편집장)

안성창작스튜디오 다목적실 경기도 안성 금광면 신양복리 212-2번지 Tel. +82.31.678.2492 www.asartstudio.co.kr

몬스터, 천개의 감정 천개의 에너지 ● 긴 속눈썹을 자랑하는 외눈박이, 길쭉하게 늘어진 팔, 회전을 멈추지 않는 나선형의 형상들, 동그랗게 튀어나온 돌기, 화면가득 불을 내뿜고 있는 커다란 입, 일련의 방향성을 갖고 촘촘히 그려진 털 등 서로 다른 얼굴과 움직임을 보이는 갖가지 몬스터들은 조금의 여백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사각의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원근법과 명암법은 철저히 배제된 채 소위 컬러풀한 몬스터들은 시작도 끝도 없이 서로 엉키고 뒤섞여 마치 연주가 가능할법한 하나의 악보, 즉 '리듬'을 만들어 낸다. ● 쥬라기 공원을 연상시키듯 '몬스터 파크(Monster Park)'라는 소재답게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룡, 개구리, 악어, 로봇, 코끼리, 용과 같은 이미지들을 찾아 낼 수 있다. 제각각 화려하고 다양한 색채로 관람자의 시선을 어지럽히며 현혹시키는 몬스터들은 사실 각각의 외양이 먼저 인식되기보다는 화면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내면의 움직임 즉 요동치는 에너지에 더 주목하게 된다. ● 흔히 몬스터하면 떠올리게 되는 무시무시하고 잔혹한 이미지와는 달리, 김동현 작가의 몬스터들은 유쾌한 에너지를 퍼뜨리는 긍정의 메신저와도 같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의 존재인 몬스터들은 눈, 코, 입, 머리, 몸통, 팔, 다리 어느 것 하나도 제 자리에 위치한 것이 없다. 머리위로 겹쳐진 팔과 다리, 눈의 반대편에 그려진 또 다른 눈, 삼킬 듯 벌려진 입 사이로 보이는 또 다른 머리에서 형상은 마치 부화하기 전의 '알'과도 같이 유기적인 조직화를 거부하고, 그저 잠재적 에너지들의 순수한 흐름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와도 같다. ●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듯 캔버스 위를 가로지르는 것은 구체적인 형상이 아닌 '감각' 그 자체이다. 기관과 신체를 벗어난 감각은 대상 위에 작용하는 힘들과 파장의 만남으로 오로지 강도들의 차이로만 드러나게 된다. ● 서로 다른 컬러의 몬스터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세상 속에서 색채는 단일한 주체를 가진 개체로 인식하기 위함이 아니라 한 개체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하고 진화하는 '과정'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처럼 평면 속에서의 동적인 움직임은 바로 '생성'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강도로서만 구별되는 차이들에 의한 반복은 다양성, 즉 다르게 생산해 낼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한다. ●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들 간의 관계역시 주종의 관계를 벗어나 비 위계화된 체계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탈코드화로서의 개체가 만들어진다. 화면에서는 오로지 유희적인 감정의 파동, 즉 '리듬(rhythm)'만이 존재한다. ● 대상들이 서로를 향해 뿜어내는 에너지들의 끊임없는 교류는 리듬과 율동을 만들어 내며, 모든 부정의 것을 긍정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생성'의 에너지가 된다. ● 2001년 첫 개인전 이후, 막막해진 작가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작업실에서 오로지 조형에 관한 연습을 통해 작업이 가지는 의미를 탐구하고자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시간을 갖는다. 그 후 2006년부터 꼴라주 작업으로 다시금 활동을 시작한 후 현재까지 몬스터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몬스터들의 세계는 마치 소우주를 보여주듯 인간의 '삶'과 닮아있다. 작가는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관계에 주목하고 물리적인 관심에서 기인하여 서로 간에 영향을 주는 비가시적인 에너지에 주목한다. ●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상호간의 '관계'란 절대불변의 고정적이고 단일화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에너지의 교류에 의해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시각각 변하는 상대적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의 원리에서 알 수 있듯 모든 생명체는 서로 간에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진화한다. 최근 선보이는 오브제 작품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조직은 그대로이되 외형을 자유롭게 바꿔나가듯 좀 더 구체적인 형상을 획득한 몬스터들은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 몬스터클레이, 오토포이 박사의 연구실에서 알 수 있듯 작가가 주장하는 H=mw²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공식인 E=mc²를 시각적 형태로 표현하기 위해 응용한 새 공식이라 할 수 있다. 에너지들 역시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상대방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분명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로인해 모종의 변화를 가져온다. 사람들에게 있어 서로간의 관계들을 통해 영향을 받고 변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외형이기 보다는 내면이지만 캔버스 속 몬스터들은 서로가 뿜어내는 에너지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마치 어떤 물체로도 자유자재로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와도 같이 모습을 변화시킨다. ● 파울 클레가 "예술은 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세계를 가시화" 하는 것이라 말했듯 작가란 분명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구체화하여 보여주는 사람들일 것이다. 또한 질 들뢰즈는 직접적으로 이 비 가시적인 것을 물리적인 '힘'이라 정의한 바 있다. 뒤엉킨 관계들, 욕망, 폭력성 등 서로 다른 강도의 힘들은 근본적으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삶의 원동력을 생성하는 원천이 된다. ● 그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역동적인 에너지들의 흐름과 관계는 평형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생성을 거듭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에너지의 파동, 즉 가느다란 줄을 통해 전해지는 소리의 움직임, 소리 없이 이동하는 빛, 대기를 부유하는 공기 등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관점의 차이가 아닌 차이 자체에서 관점이 발생하듯 작가 김동현은 마치 '날것'과도 같은 서로 상이한 접점들을 여과 없이 평면위에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아무리 무거운 주제라도 웃음의 코드를 잃지 않고 유쾌하게 승화해내는 그는 진정 모든 부정의 에너지를 긍정으로 소화하는 특별한 재능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스스로 느끼는 모든 어렵고 힘든 감정들을 마치 장남감을 갖고 노는 아이처럼 '유희'로 풀어낸다. 한 예로 그의 작업에서 작가의 서명보다 더 완전하고 중요한 요소인 '홀마'(홀로 고독하게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메시지를 전하는 악마)의 존재처럼 어떤 방해에도 흔들림 없이 유쾌한 에너지를 전파해 나가는 작가 김동현의 앞으로의 행보가 사뭇 궁금해진다. ■ 김진섭

김성대의 빛조각에 대한 질문 ● 새둥지처럼 감아올려 만든 황동 철선의 조형물 틈새로 퍼져 나오는 다이오드 빛이 환상적이다. 외형은 언덕이나 산이며 때로는 타오르는 불길의 형상을 드러낸다. 어두운 실내 공간에 설치된 빛조각은 불을 머금은 화산처럼 강렬한 에너지로 충만된 자연을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도에서 온 것일 게다. 전시실 바닥에 빛이 반영될 경우 그 이미지는 바다에 떠있는 섬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 김성대의 조각에서 빛은 에너지이며 황동철선으로 짜여진 조형물은 자연을 상징한다. 작가가 드러내려는 세계는 자연에 내재된 에너지 또는 만물에 깃든 생명성이라는 것을 아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보면 황동 재질이 주는 시각적 촉감과, 용접을 통해 결속된 선들은 축적된 시간의 흔적을 전해준다. 나무둥치의 형상이거나 물의 형상을 지닐 때면 그 시각적 촉감과 시간의 흔적은 나뭇결 또는 물결의 조형적 표상이라는 의미로 전치될 수 있을 것이다. ● 이러한 몇몇의 단상들을 종합해 보면 김성대의 조각은 빛의 조각이자 결의 조각이며 힘의 조각이 된다. 사람과 사물과 풍경에 내재되어 있는 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자연에 대한 관심이며 존재의 생성과 사멸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지닌다. ■ 김영호

삶의 욕망을 긍정하는 여성상 ● 변현수의 작품 속 주인공은 언제나 여성이고, 그 여성은 뚱뚱하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그 자신이 뚱뚱한 것은 아니다. 자신과 다른 뚱뚱한 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작품 속 그녀들은 스스로를 반영한다. 부푼 몸은 바깥으로 발산되지 못한 '터질 것 같은' 자기 이야기를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흙과 라텍스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들은 최소한의 표현을 통해, 즉물적 인체형태가 가질 수 있는 선정성을 피한다. 그것들은 실제 여자들처럼 축 늘어진 살이 아니라, 매우 탄력 있게 통통해서 보기 좋고 만져보고 싶은 충동도 일으킨다. ● 그러나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관념이 지배적인 시대에, 변현수의 작품 속 인간들은 무엇보다도 '뚱뚱한 여자' 그자체로 먼저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부추켜진 욕망에 굴복한 패배적인 모습이든, 자발적 욕망에 충실한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건 말이다. 비대한 몸은 먹는 욕망과 연동된 또 다른 추구, 즉 날씬함과 관련된 소비 욕망으로 이어질 보이지 않는 질서를 전제한다. 타자가 강요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요구하는 신체의 자기 조절 메카니즘 속에서 소비 자본주의 시대의 미시 권력은 작동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작품 속 여성들이 심신에 가득 찬 뭔가를 잘 배출하지 못해서 뚱뚱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동시에 그것은 억압적 질서에 의해 정상적으로는 발산될 수 없는 과도한 욕망을 품고 있는 여성을 상징한다. ● 부풀려진 몸은 남성보다 근육 량이 적고 지방질이 많은 여성 체질의 특이성을 표현함과 동시에, 식욕으로 압축되는 여성의 욕망을 가시화한다. 물론 식욕이 여성만의 욕망은 아니다. 그러나 식욕과 여성의 관계는 좀 더 특수하다. 남성적 욕망이 투사된 날씬한 여성이라는 표준은 배고픈 여성에 대한 표현을 금기 사항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박관념이 강하게 나타났던 때는 문화적으로 가장 위선적인 시대로 알려진 빅토리아 시대이다. ● 헬레나 미키는 『여성의 비유와 여성의 신체』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서, 그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관통되는 코드로, 여성들의 굶주림과 노동의 묘사를 제한하는 일련의 재현적 금기를 든다. 굶주림과 노동은 모두 신체, 그리고 성욕과 연결된다. 저자에 의하면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소설, 그것도 가장 비참한 주제를 리얼리스틱하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한 소설조차도 무엇을 먹거나 배를 주리는 여주인공은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점점 더 말라가고 창백해질 뿐이다. 빈약한 식욕은 여성성(더 나아가 처녀성)과 연결되며, 허약함과 창백함은 지나치게 세련된 것 속에서 아름다움의 기호가 되었다. ● 결핍의 미학은 윤리적 요구가 되었다. 이 재현적 관습이 빅토리아 시대에만 해당될까? 이러한 미학적, 윤리적 요구에 견준다면, 변현수의 작품에 등장하는 혈색 좋고 살집 있는 여자는 살아있는 여성을 틀 지우는 규범에 대한 반항처럼 보인다. 그것은 헬레나 미키의 결론처럼, 여성의 신체를 가두었던 코드들과 금기들을 파괴하면서 여성의 신체를 보다 완전하게 재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 변현수의 작품은 여성의 배고픔을 인정하고 표현 할 수 있는 능력, 여성의 욕망을 창조하고 생성시키며 생장시키는 여성의 힘에 주목한다. 그것은 모든 여성에게 소녀 같은 날씬함을 요구하는 재현의 불공평성을 폭로하고, 본래 모습에 대한 존중감을 표현한다. 물론 작가로서의 변현수의 욕망은 억압받는 여성의 원초적인 욕망일 뿐 아니라, 그것을 잘 표현하고 싶은 예술적 욕망과도 관련된다. 인체를 중심에 놓고 작업하는 조각의 특성상, 몸의 형태로 이 표현욕구가 드러나 있을 뿐이다. ● 2003년 한서 갤러리에 열린 첫 개인전 『complex room』에서는 붉은 색 실루엣의 날씬한 여자들이 섹시한 포즈의 그림자로 만들어져 벽에 가득 붙어있고, 사이사이에 뚱뚱한 여자들이 배치된다. 벽에 가득한 붉은색 그림자들은 뚱뚱한 여자들이 바라는 이상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날씬한 여자들 못지않게 육감적으로 표현된 이 여자들이 품고 있는 욕망은 표준적인 미인들과 다를 바 없으며, 좀 더 현실감이 있기조차 하다. ● 2007년 관훈 갤러리에서 열린 『마음의 옷장』 전에서 뚱뚱한 여자는 보다 적극적으로 등장한다. 옷장에 걸어놓은 8개의 라텍스 몸뚱이는 옷을 갈아입듯 선택하는 가변적인 정체성을 보여준다.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아톰 등의 신발이 신겨진 그녀들은 만화 속 캐릭터들처럼 유쾌하고 전능하다. 같은 전시의 작품인, 공기로 충전된 라텍스 동물 주머니는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자들에게 필수적인 물과 이상을 상징한다. 장기를 담고 있는 주머니인 피부처럼, 무한대로 확장되는 재료는 가변적인 몸을 표현하기에 적당하다. ● 2008년의 3회 개인전에서, 사람 몇은 들어갈 법 한 사이즈의 옷에 새겨진 '지독한 욕심쟁이'라는 단어는, 넘치는 여성의 욕망을 넉넉히 품어주고, 동시에 보이는/보이지 않는 철창에서 빠져 나오려는 욕망의 크기를 표현한다. ● 현재 몰두하고 있는 작품은 토르소 형태의 몸이다. 그것은 숙녀복을 재단할 때 사용하는 몸통인데, 재단용의 이상적 모델이 44, 55 사이즈라면, 이것은 88, 99 사이즈로 두 배 가까이 된다. 그것은 남성의 보호를 받기 위해 축소될 대로 축소된 몸과 거리가 있다. 이 토르소들은 아름다운 가상으로 통합시키는 거울을 비롯한 여러 틀들이 규정하는 여성의 몸과 매우 다르다. 틀 짓기와 보이지 않는 감금 아래 놓인 여성의 욕망들이 분출되는 또 하나의 장소는 예술작품이다. ● 변현수의 작품에서 잔뜩 부풀려진 몸뚱이는 전복적 상상력과 의미의 팽창을 말한다. 여성 이미지의 역사는 여성이 가부장적 질서에 복속되기 시작하면서 빈약하고 왜곡된 모습으로 변모됨을 알려준다.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며 보살피고, 지상의 구체적인 삶을 챙기는 여성의 삶은 언제나 남성적 '문화'의 이면인 낙후된 '자연'으로 머물러 있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자연에 더 가까운 존재로 평가된 것은 대체로 여성의 억압으로 귀결되었으나, 페미니즘의 일파는 이러한 차이에서 대안성을 찾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지배질서에 남성과 함께 투쟁하면서도, 차이가 야기하는 풍부함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뤼스 이리가라이는 『차이의 문화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서, 여성의 착취는 성차별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그 해결책은 성차별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 여성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남성화나 양성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에 의하면 남녀의 평등은 사회적 권리와 의무 안에서 다른 존재로서 각각의 성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다시 쓰지 않고서는 얻어질 수 없다. 사회 정의, 특히 성과 관련된 정의는 언어의 법칙과 사회질서를 구성하는 가치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 여성의 특수성으로 간주된 것 중의 하나는, 여성이 자연이고 육체이며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예술가적 정체성과 가깝다. 엘렌 식수는 『메두사의 웃음』에서 자신을 글로 쓰면서(예술작품으로 표현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육체로 귀향할 것이라고 말한다. 엘렌 식수에 의하면 예술적 표현을 통해 여성은 자기 고유의 힘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늘 똑같은 자리만 마련되어 있는 초자아화 된 구조에서 여성을 끄집어 내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성의 자연스러운 육체에 대한 긍정은 남성적 투사에 의한 그림자 같은 존재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 변현수의 작품에 내재된 여성성은 단지 여성의 편협한 자기 이익이나 배타적 욕망을 주장하는 넘어서, 차이가 필요한 예술 언어에 풍부함을 추가한다. 이러한 차이의 언어는 가부장적인 언어 질서로 가득한 상징적 질서에 비한다면 일관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변현수의 작품 속 여성상은 일관성 대신에 풍부함을 선택한다. 그녀들은 한정된 경계를 넘어 모든 방향으로 부풀어 오르는 삶의 욕망을 긍정한다. 그것은 정신적인 승화를 위해 육체를 억압하지 않으며, 창백한 추상화가 아닌 지상의 삶을 중시한다. ■ 이선영

임병진 작가와 작업세계 ● 무릇 대부분의 젊은 작가가 그렇듯 임병진의 작품 형식을 하나의 비평적 언어로 가두기엔 힘들어 보인다. 2003년작 「instrument」와 최근 쇳조각들로 구성한 평면작업까지 재료와 작품의 시각적 형식에서 임병진의 상상력은 다채롭다. 「instrument」가 마천석을 사용한 평면추상조각이라 한다면, 2004년작 「풍어」와 「풍경」은 나무와 철로 만든 구상작품이고, 「자기합리화의 동물」이나 「기념비를 위한 기념비」는 재료의 물성보다는 외형적 자아와 작가의 심리가 투영된 작품이며, 2008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layered butterfly」는 크리스털을 프레임에 쌓아 환영적인 공간을 만든 평면작품이고, 조각의 전통적인 소재랄 수 있는 대리석 같은 「고래의 노래」는 돌의 형식만을 전유할 뿐 FRP라든가, 최근 쇳조각들을 프레임에 담고 그 위에 알 수 없는 오브제를 만드는 작업들까지, 그의 조형 언어는 다채롭다. 재료와 물성(materiality)이 강조되거나 구상과 추상의 영역을 오가거나 사회적 언어와 개인의 심리가 순환론적으로 투사되는 작품을 하나의 미학적 언어로 설명하기는 힘들겠다. 필자는 그의 작업과 작품세계를 다음 3가지 용어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전통적 소재traditional material ● 조각에서 전통적인 소재는 돌, 철, 나무 등이다. 로버트 로리스가 1970년 「아트포럼」에 기고한 「만드는 현상에 관한 노트(Some Notes on the Phenomenology of Making」에서처럼 각각의 재료는 각자의 물성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제작방법, 기술, 언어를 그 물질 안에 담고 있다. 공업용품인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이 나오기 전까지, 그래서 전통적인 재료들은 "당신이 사용한 것이 당신이 보는 것"(What you see is what you get)처럼 재료가 갖는 시각적 언어는 강렬했다. 임병진의 2003년 「instrument」, 2004년작 「풍어」, 「풍경」 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돌, 나무, 철로 만든 이 작품들은 평면성이 강조되어, 그래서 마치 풍경조각처럼 보이는 작품들이다. 전통적 재료를 다루는 초기 실험작들이다. 물론 세 작품이 모두 재료의 물성이 잘 드러난 것은 아니다. 「풍어」, 「instrument」, 「풍경」이란 작품의 제목은 의미의 진폭을 가두고, 그래서 전통적인 재료들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인 물성의 강조보다 의미의 재현이 강조된 듯 보인다. 물론 이 두 지점에서 우열이란 없다. 집적accumulation ● 집적 혹은 쌓는다는 뜻의 accumulation은 아마 현대 조각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식일 것이다. 이는 대량생산시스템이 만들어낸 것이다. 넘쳐나는 공산품들은, 그래서 자연스럽게 존재나 휴머니즘, 사물의 재활, 시각적 재미 등과 연결되는 의미들을 만들어낸다. 아르망(Armand Pierre Fernandez)이나 토니 크렉(Tony Cragg)등이 대표작가일 것이다. 임병진이 집적하는 작품은 사실 최근 2작품이다. 쇳조각들을 모아 만든 배경은 환영효과를 일으키고 그 위에 정체모를-우주선 같기도하고 건설용 장비같기도 한-오브제를 만든 이 작품에서 집적과 쌓음이 갖는 사회역사적 배경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전혀 다른 시각적 풍경이 펼쳐진다. 쇳조각과 나무 추상과 구상이 만드는 이질적 풍경이다. 2008년 성보개인전에서 선보인 「layered butterfly」 역시 사각틀에 투명 우레탄을 겹겹이 쌓아가면서 만들어낸 나비 그림이다. 1차로 우레탄을 쌓고 그 위에 드로잉을 하고 마르면 다시 그리는 작업인 것이다. 「고래의 노래」에서 고래등이나 사각형 몸뚱어리는 볼펜으로 겹겹이 드로잉을 하여 고래 문양을 만든다. 그의 '겹겹이'시리즈는 사회/역사적 언어라기보다는 유희적 충동에 가까운 듯 보인다. 전유appropriation ● 전유는 주로 문화연구나 대중문화론에서 문화자본을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을 말할 때 사용하나 미술쪽에선 시각적으로 패러디의 형식으로 나타나거나 의미론적으로 전복과 희화화의 가치들을 드러낸다. 임병진의 「기념비를 위한 기념비」(2008), 「자기합리화의 동물」(2008), 「고래의 노래」(2009) 등은 작가의 사회적 언어나 조각적 언어가 전유된 것이다. 「기념비를 위한 기념비」는 기존 기념비가 갖는 모뉴멘털리티(기념비성?)를 깨부순다. 스타킹을 뒤집어 쓴 자화상은 기념하는 인물을 짓누르면서 한손을 들고 있다. 영웅의 제스처를 전유하는 것이다. 근대와 현대조각을 구분짓던, 그래서 조각의 고유 언어로 여겨졌던 좌대가 오뚝이로 전유된다든가 기념비들이 갖는 전통적인 소재인 철과 돌을 FRP로 전유한다. 「고래의 노래」 역시 대리석(마천석)처럼 보일 뿐, 그래서 마치 돌조각처럼 보이지만 재료는 FRP다. 임병진은 SF영화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는 스펙트럼을 가진 작가다. 현재 구상 중인 작품도 비현실이거나 초현실적인 오브제다. ■ 정형탁

2010 안성 창작스튜디오 공동워크숍-진행순서 02:00pm~02:05pm_개회식, 사회자 02:10pm~02:20pm_김동현 작가 작품 발표 02:20pm~02:40pm_성곡미술관 큐레이터 김진섭 작품론 발표 02:40pm~03:00pm_토론 03:00pm~03:10pm_김성대 작가 작품 발표 03:10pm~03:20pm_중앙대학교 교수 김영호 김성대 작품론 발표 03:20pm~03:40pm_토론 03:40pm~03:50pm_휴식 03:50pm~04:00pm_변현수 작가 작품 발표 04:00pm~04:20pm_미술평론가 이선영 변현수 작품론 발표 04:20pm~04:40pm_토론 04:40pm~04:50pm_임병진 작가 작품 발표 04:50pm~05:10pm_Contemporary Art Journal 편집장 정형탁 임병진 작가 작품 발표 05:10pm~05:30pm_토론 05:30pm~06:00pm_종합토론, 참석인 질의 및 평론가/큐레이터 답변, 사회자

Vol.20100619j | 2010 안성 창작스튜디오 공동워크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