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CH AT

2010_0614 ▶︎ 2010_0620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_2010_0615_화요일_05:00pm

스페이스 15번지 기획展

참여작가_김현숙_김홍식_이고운_이승아_이주은_임선희_정승희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15번지_SPACE 15th 서울 종로구 통의동 15번지 Tel. 070.7723.0584 space15th.org

Touch at: 경계에서 놀다 ● Touch/터치 - 만지다. 접촉하다. 마음을 움직이다. 감동시키다 등의 가시적 행위부터 비가시적인 감정의 영역에까지, 어떤 일련의 결과를 빚게 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Touch at 은 서로 닿아 있는 인과의 미묘한 사이 또는 그 간격의 정점을 읽어내려는 시도이다.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 지어지고 그렇게 단정지어져 버린 두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7명의 작가들은 예술/삶,현실/가상, 의식/무의식,사물/사물,나/너, 안/밖, 온라인/오프라인 등 서로 인접하고 있는 경계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이 곳 저 곳으로 전해지는 터치의 울림을, 그 넘나듦을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 ■ 스페이스 15번지

김현숙_Dream Play-plamodel_5_A Treasure Ship_혼합재료_73×132×15cm_2010

'어린 시절 장난감이 되어 주었던 도구들과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일상의 물건들은프라모델이 되어 존재한다. 한 개인(나)의 삶의 방식인 프라모델은 '스페이스 15'에서 사인보드가 되어 세상과 만난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서, 갤러리의 안과 밖의 경계에서 개인(나)의 삶은 공표된다. 나의 삶은 우리의 삶으로 전환되고, 사인보드는 일상의 자리로 위치 지워진다.' ● 아버지가 일하시는 기와 가마터에서 이름도 모르는 도구들을 가지고 흙장난을 하고 있는 대 여섯 살쯤의 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마당 가득히 빼곡하게 줄지어 있던, 비둘기 색으로 곱게 구워져 나란히 쌓여져 있는 '흙으로 빚어진' 기왓장들. 이 풍경은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나의 첫 기억이다. 작업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작업이란 세월을 건너 뛰어 어린 시절에 도구들을 가지고 흙장난을 하던 것과 같은 선상에 머물고 있는 개념이었다. 작업은 곧 놀이였다. 제각기 관심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즐겁게 혹은 심각하게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 작업과 놀이의 세계는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프라모델은 놀이라는 이유에서 빌려왔고, 도구는 프라모델로 조립되었다. 도구로 조립된 프라모델은 도구들을 가지고 흙장난을 하던 여자아이의 놀이에 다름 아닌 것이다. 프라모델은 순번도 없다. 미리 정해진 형상도 없다. 완성의 목표도 가지지 않는다. 프라모델의 매뉴얼은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다. 이제 도구는 내 삶의 아이콘으로 자리한다. 도구들을 하나하나 위치 지우며 수직과 수평으로 뻗어나가는 프라모델 틀은 내 삶을 규정하는 매트릭스로 서식한다. 프라모델은 삶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 김현숙

김홍식_일곱 명의 맹인이 코끼리를 만났다_아연판에 부조, 철, 가변설치_각 40×90×60cm_2010

다섯 명의 맹인이 길을 가다가 코끼리를 만났다. 한 맹인이 말했다. '이건 큰 기둥인걸 가죽으로 된 큰 기둥 크고 단단해.' 한 맹인이 말했다.'이건 종이 장처럼 크고 넓은 걸.' 한 맹인이 말했다. '암석처럼 거대해.' _ 촉각 하면 떠오르는 우화의 하나이다. 성경 속에서 도마는 자신의 스승의 부활을 믿지 못했고 거기에 손을 넣어 만져보고야 믿었다고 한다. 보고 만져지는 증거를 원했던 것이다. 증거는 일종의 지표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촉각으로 느껴지는 건 믿을만한 것일까 ? 여전히 맹인의 코끼리 탐구는 아닐까? 여기에서 출발하여 지표로써의 촉각이 작업의 근간이 된다. ■ 김홍식

이고운_Dancing in the Rain_장지에 혼합채색_31×31cm×7_2009

하늘과 바다 사이/ 문명과 숲의 사이/ 의식과 꿈의 사이/ 나와 너 사이/ 그 경계에 올라서 한 조각 먹구름 사이에 얼굴을 묻고 춤을 춘다. 언제 그칠 줄 모르는 장대비 소리는 오케스트라를 향한 박수처럼 열렬하다. 세상에서 발견한 인상이 몽상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무의식 속에 묻혀있는 이미지의 원형을 찾아 나선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이미지 너머의 이미지를 보고,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그림 속에서 울려오는 메아리에 귀를 기울인다. 다시 또 몽상에 잠긴다. 우리가 믿는 보편적 이미지는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동안 차원의 문제로 확장된다. '구름나무'라는 풍경의 극점은 숲이나 연못으로 때로는 비구름이나 굴뚝의 연기로 변화한다. 머리를 숨긴 그림 속 인체나 동물은 무의식의 유영을 최대한 즐기려는 나의 분신이자 너의 분신이기도 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상징은 의식과 무의식의 절묘한 비례를 이루어 합쳐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보통의 사람이 의식이라는 영역에 천착한다면, 작가는 무의식에 침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알듯 모를 듯한 무의식의 영역에 처소를 삼고 삶의 경계에서 그들 간을 탐험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있는 이 현실의 순간에도 낚아 오르려는 이미지의 원형은 꿈과 무의식이라는 이름으로 농축된 그 무엇일 것이다. ■ 이고운

이승아_Recording Radio_라디오박스, 스피커, 앰프, 가변저항, 아르뒤노(하드웨어), 프로세싱 프로그래밍(소프트웨어), 인터랙티브 설치_2010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사라져 버리는 기억에 대한 불안감에서 작업을 출발하였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전자네트워크를 통해 저장되고 만들어지는 기억들은 컴퓨터를 포맷하거나 여러 번에 걸쳐 파일들을 이동함에 따라 그것을 저장하고 기록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 시점에 이르렀다. 「 Recording Radio」는 참여자들과의 인터랙션을 통해 정보가 저장되고 시각화되어 보여지는 라디오이다. 웹사이트 서버 접속을 통해 개인 데이터들을 저장하면 전시장에서는 실시간 (10초에 한번씩 reset됨) 으로 기록되는 텍스트들을 자동 저장 시키는 동시에 시각화하여 모니터에 출력시킨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서 조그셔틀 장치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다운로드 되는 텍스트 기록들을 실시간 읽을 수 있고, 동시에 사운드를 조절하여 채널을 맞춰가면서 비디오와 사운드를 조합해볼 수 있다. 라디오는 과거 핫미디어로서 청각이라는 하나의 감각을 충족시키는 도구였지만 전시장안의 「 Recording Radio」는 시각, 청각, 촉각에 이르는 다감각을 충족시키는 오브젝트로서 새로운 미디어 도구장치를 표상한다. 채널을 돌려가면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운드나 비디오 안의 텍스트들을 기록하고 저장하면서 그 이면에 나타나고 있는 문화현상이 보여주는 '기록'에 대한 불감증과 불안감을 관람객들에게 인식시키고자 한다. ■ 이승아

이주은_빈방의 빛_나무에 디지털 프린트, 레진_165×54×7cm_ 2010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회색조의 공간에는 덩그러니 조명기구 몇 개가 놓여있다. 한참을 빛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던 사물은 이제 그 기능을 잃은 정지 상태이다. 순간적으로 뿜어내던 강렬한 빛을 잃은 채로 사물은 화면 속에 봉인되어있다. 일상 속에는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무수한 시선이 있지만, 익숙함 때문에 또는 분주함 때문에,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심장이 있어도 느끼지 못한다. 기능을 잃은 사물은 일상을 벗어났을 때 그 형태를 더 온전히 드러내며, 그 순간은 잠시나마 낯설다. 언제나 배경으로 존재하던 사물이 전경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잘생겼건 못생겼건 예상치 못한 진솔함을 드러낸다. 사물과 사물의 경계 속에서 시선의 접촉을 통하여 사물속의 경이로움은 발견된다. 빛이 없는 빛을 머금은 사물은 빈방에서 온전히 시선을 받으며, 사물의 이면을 드러낸다. ■ 이주은

임선희_Landscape_in Drama_혼합재료_72×120cm, 72×100cm_2010

나의 작업은 미디어와 실재가 하나로 함몰되어 자신의 존재가치가 점점 보이지 않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발견되기를 바라며 시작된다. 이것은 다른 사회 개체와 연결되기를, 그리고 최소한 그 안에서 자신을 찾기를 바라는 나 자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최근 작업의 관심은 모든 다양성과 혼성을 바탕으로 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동시대의 문화 속에서 중요한 생성원이 되며 중요한 매일 매일의 내러티브의 원천이 된다. 즉, 그 자체가 동시대 문화적 삶의 은유가 된다. 이에 나는 드라마의 장면과 개인의 경험의 내러티브를 작품 속에서 공간적인 은유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까다로운 현상들을 단위로 나누기도 하고 다양한 '위치'의 단위들은 한 공간에 놓기도 한다. 즉 작품을 동시대의 문화를 마주치는 은유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 임선희

정승희_timeless vista_나무로 만든 집 영상설치_70×50×120cm, 70×50×140cm_2010

timeless vista – 시간을 벗어난 풍경: 늘 생각하고 마음에 그리던 풍경은 그저 상상일 뿐이라고 단정지어버렸기 때문에 그 너머에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이야기들이경계를 넘어 펼쳐진다. 이 곳에서 펼쳐지는 저 곳의 이야기들 / 저 곳에서 펼쳐질 이런 이야기들. ● 새로운 시간으로 들어왔다 또 다시 흘러간다. 보이는 세계가 있듯이 보이지 않는 세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보이는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늘 생각하고 꿈꾸며 상상하지만, 상상일 뿐이라고 단정지어 닫아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감춰지고 숨겨진 세계의 이야기들은 보이는 세계에 비해서 더 진실하고 근원적이며, 보이는 세계를 만들어내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작게는, 보이는 것들을 만들어 놓은 지나간 시간의 해프닝들부터 크게는 마음에 품은 기대와 꿈 등 우리가 바라고 이루고자 하는 다가올 시간의 이야기들까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나가는 것이 나의 작업이다. 여러 장의 드로잉을 합쳐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 영상은 과거, 미래 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을 넘어서 '현재진행형'을 가장하며 이야기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풍경들은 움직임을 가지게 되면서 보는 이의 시간에서 실제처럼 읽혀지며, 설치의 일부가 되어 공간 안에서의 경험을 유도한다. 과거로, 때로는 미래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상상의 세계를 터치하며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길 바란다. ■ 정승희

Vol.20100620e | TOUCH A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