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C. : People are strange when you're a stranger

김미라_서정배_장명근_최지예展   2010_0618 ▶︎ 2010_0630 / 일요일 휴관

서정배_Sa Chambre Fossile de l'Arbre melancolique 그녀의 방 우울한 나무의 화석_설치_2010

초대일시_2010_0619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무이_GALLERY MUI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58-14번지 무이빌딩 1층 Tel. +82.2.587.6123 cafe.naver.com/gallarymui.cafe

"People are strange when you're a stranger. Faces look ugly when you're alone. 당신이 이방인이면 사람들도 이상해 보여. 당신이 외로울 땐 사람들 얼굴도 추해 보이지" ("People are strange", The Doors "Strange Days" Album, 1967) 짐 모리슨이 쓴 이 가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었고, 멜로디 또한 그 가사의 이해를 돕는다. 이 가사의 대중적 공감은 아무래도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법한 익숙한 공간에서도 때때로 낯섦을 느끼고, 낯선 공간에서도 익숙함을 느끼기도 하는 그 반복의 솔직한 표현 때문일 것이다. ● 이번 B.L.O.C. (블록[blɔk])이라는 이름아래 모인 네 명의 작가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파리라는 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과, 다시 돌아와 작업을 하면서, 그들이 경험한 낯선 공간에서의 낯설음과 돌아와 다시 느끼는 익숙함은 두 "감정의 블록"을 만들고, 또 작업이라는 형식으로서 "몸짓"처럼 그 표현을 하고 있다는 거다. ● 어린 시절 한 번쯤 가지고 놀았던 그 기억 속의 장난감인 블록 놀이에서 이름을 따온 이 전시는 블록의 즐거움이었던 작은 각각의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형상을 조합해보거나 예기치 않은 덩어리(Masse)를 상상하고 만들어보았던 것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한 4명의 작가들을 통해 그들 안에서의 낯설음과 익숙함의 "감정의 블록"과 또 이 4명의 작가들이 블록의 조각들처럼 모여 각각의 "예기치 못할 시각적" 덩어리를 "B. L. O. C." 이라는 각각의 발음처럼 조합해 보고자 한 것이다. 때문에 이번 전시의 제목은 B. L. O. C. (비. 엘. 오. 시.)이다. ● 그들이 표현하고 있는 각각의 "감성적 블록"의 표현에 있어서, "내게는 하나의 병이 있다. 나는 언어를 "본다"(J'ai une maladie : je vois le langage.)" 라고 언어를 읽는 것이 아닌 보는 것을 그의 병이라고 재미난 고백을 했던 프랑스의 문인 롤랑 바르트의 말이 생각난다. ●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가 있는 말의 형태가 아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으로 행하고 있는 이들 작가들 역시 이곳에서 그들이 만들고 있는 낯설음과 익숙함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때때로 그들의 세계는 "People are strange when you're a stranger"의 노래 가사처럼 익숙한 곳에서의 "낯설음" 이다. ● 특정한 그리고 정해지지 않은 어떠한 형상이 없는 블록(B.L.O.C.)의 수수께끼를 풀어 보는 듯한 즐거움을 경험해 보고자 하는 것이 이 전시가 가진 목적이며, 또한 첫 블록(B.L.O.C.)전의 시작을 알리는 전시이며, 그들이 앞으로 쌓아갈 무한한 형상에 관한 "에필로그"이다. ■ 서정배

김미라_그곳….그 때 그곳….그때 I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35cm_2010

김미라 KIM Mira ● 반복된 중첩. 안에서 밖을 향해 열린 시선. 절대적인 선은 감정의 홍수를 막는 하나의 경계이기도 하다. 비움과 가득 참. 비움은 저기에 있고 가득 채움은 여기서 치열하게 존재한다. 마치 로드코의 사각형들처럼. 그것들은 역시나 중첩된 공간 속에서 감정적 색들로 개인적 신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미 시간과 함께 멀어지고 희미해져 원근법적 공간의 거리처럼 남아있는 기억과...그것들의 중첩에 대해...... 책이 하나하나의 페이지를 겹쳐 한 권으로 존재하고, 한 권 한 권이 겹쳐 하나의 책장으로 존재하고, 하나하나의 책장이 겹쳐 하나의 도서관으로 존재하는 보르헤스의 도서관 처럼, 내 작품들, 평면회화 속의 이미지들은, 흰 바탕 위에 가장 최초로 올려지는 하나의 색 면이나, 그 위에 다시 수십 번의 색면이 겹쳐 올라가 만들어진 구상적 형태들이나 공간들 모두가 동일한 기억이고 기호이자, 나의 낯선, 그러나 낯설어서 아름다운, 기억의 이미지들의 미로 속을 향하는 출구이기도 하다.

서정배_Sa Chambre Fossile de l'Arbre melancolique 그녀의 방 우울한 나무의 화석_설치_2010

서정배 SEO Jeong-Bae ● 보이지 않는 인물을 통해 나타내는 "나(moi)", 즉 자아와, 그 자아를 제 3의 시각에서 재해석하고 있는 "타인(autrui)"으로서의 이중적 체험의 형상화를 개인이 느끼는 "멜랑꼴리(mélancolie)"적인 서정성에 기반을 두고 표현하고 있다. 이번에 보여주고 있는 화석처럼 굳어져가고 있는 잎새 하나 남지 않은 이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멜랑꼴리적 감정의 상흔과도 같이 느껴진다. 흙에서 자라나 살아 숨쉬고 있는 나무가 아닌, 하얗게 굳어버린 화석이 되어버리기를 선택한 듯한 움직임 없는 이 나무는 화석처럼 점차로 굳어가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다.

장명근,Double #2_사진_76×86cm
장명근,Double #5_사진_76×86cm

장명근 CHANG, MYUNG-GEUN ● 르네 지라르는 그의 저서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인류문명의 영도가 되는 『본질적 폭력』이 『희생제의』를 통해 어떻게 집단적 갈등과 충돌을 조절하는 인류학적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지 언급한다. 개인과 개인 그리고 개인과 집단은 상호 경쟁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질투, 원한, 선망과 같은 『욕망모방』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욕망모방은 상호간의 갈등관계로 더욱 대립을 긴장시키며 본질적 폭력으로 각 각의 주체들 사이에서 존재한다. 이렇게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은 복수의 염려가 없는 대상의 희생제의를 통해 집단의 갈등과 반목, 폭력을 해소하는 문화적 장치가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희생적 제의는 종교제의적인 『성스럽다』라는 속성을 포함하는 차별화된 이로운 폭력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 지라르의 해석이다. 결국 지라르가 말하는 폭력의 진실은 차별성을 만들어내고 이것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개인과 개인, 혹은 계층과 계층간의 갈등과 충돌을 해소하고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문화적 메커니즘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대와 문명의 급속한 변화들 속에서 이로운, 정당한, 그리고 성스러움이라는 폭력의 집단적 희생제의를 통해서도 해소되지 않는 내부로 향하는 개인의 내제된 폭력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와의 관계는 틈조차 보이지 않는 그물망으로 덥혀 있다. 그래서 전혀 통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 간격의 사이에서 머물러야 했던 인간이, 급속한 디지털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매트릭스라는 새로운 공간에 대해 인지하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전혀 다른 두 공간의 간격 사이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내제된 폭력성을 사회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새로운 메트릭스 공간 안에, 지라르가 지적했던 욕망모방은 더 이상 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차별성이 존재하지 않는 비어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최지예_하늘회귀_혼합재료_각 30×30×10cm_2008
최지예_하늘회귀_혼합재료_50×40×10cm_2008

최지예 CHOI Jiyea ● 최지예가 보여주는 시각적 세계는 투명한 아크릴 박스 안에 담고 있는 "천상의 세계"이다. 맑고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어항 속의 금붕어는 포유한다. 우리는 이 포유하는 물고기를 통해 하늘을 함께 느낀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 하늘은, "내"가 받은 정신적 외상을 치유한 하나의 "알약"과도 같은 세상이다. 하지만, 이 하늘은 어쩐지 밝게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작가가 설정한 깨끗하고 맑은 이 하늘을 배경으로 떠있는 금붕어의 "몸짓"은 어디로 가고자 하는 것일까? ■

Vol.20100621d | B.L.O.C. : People are strange when you're a stranger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