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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Artist in resi·dence Dae-jeon   2010_0603 ▶︎ 2010_0630

권영성_색채인체해부도-머리카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09 권영성_파리채 반도 지도_콜라쥬,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70cm_2008

초대일시_2010_0603_목요일_03:00pm_평송청소년수련원 초대일시_2010_0624_목요일_03:00pm_한마음아트존갤러리

1부_2010_0603 ▶︎ 2010_0616 입주작가_권영성_김상진_김성관_박은미_박우식_임성희_최윤희

평송청소년수련원

2부_2010_0624 ▶︎ 2010_0630 입주작가_박경범_서진옥_육종석_이상욱_홍성표

한마음아트존갤러리

아티스트 레지던스(Artist in Residency)라고 하는 상주작가 시스템은 예술가들이 창작공간에 일정기간 거주하며,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창작의 총체적 과정을 의미하며, 프로그램의 주최측 입장으로는 지원이라는 일면을 담당하고 있으며 레지던스 작가 입장에는 그 지원을 받아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예술의 가치 창출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전국에 시행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각 지역의 특수성 이라고 하는 '지역성'의 맥락을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가의 당위성 속에'복합 문화예술 매개공간'을 표방하며 공연장, 전시장, 아카이브등의 기본 매개 시설을 구비하고, 창작 공간의 경우 개인 작업실과 공동 작업실로 나누어 재료 크기 등의 작품 성향에따라 활용하고 있다. ● 문화재단은 예술창작지원과 함께 시민들의 문화 향수권 확대를 위해 분주히 뛰어왔습니다. 2009년 처음 시작된 생활예술인들의 축제마당인「대전 생활속 예술한마당」은 대전광역시의"생활예술지원정책"에 의해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시행되었고「2010레지던스 프로그램 」은 그간 대전 예술인들의 창작여건을 고려한 국가적차원에서의 폭넓은 지원을 확대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 「2010레지던스 프로그램 」이 이제 대전의 문화정책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2010레지던스 프로그램 」에는 대전 미술계를 이끌어갈 참신한 작가들로 구성되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작가들이 대전미술계를 활성화 시키고 한단계 진보할 수 있는 작가군으로 발돋움 하게 될것입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문화예술의 저변확대와 시민이 참여하는 예술축전으로 발전하여 문화창조도시 대전을 구축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대전 문화예술의 생산과 소통구조에 대한 변화의 시작으로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느끼는 체감정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 송인

김상진_구겨진 정물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08 김상진_구겨진 정물_캔버스에 유채_112×112cm_2008

권영성단순화된 복잡함 지도는 쓰임새가 분명하다. 목적에 맞는 선과 기호들, 단순화된 색, 간결한 단어들의 집합체다. 일견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지도는 실제로 최대한 단순화된 것들이 응집되어 정연한 질서와 규칙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런 점들이 내가 지도를 보며 매료되는 요소들이다. 내 작품은 지도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철저한 기능성, 합목적성으로 단순화된 지도가 오히려 시각적 어지러움을 발생시키는 측면에 주목한다. 내 작품도 이러한 지도의 특성들을 비슷하게 혹은 약간 다르게 이용하여 내가 선택한 소재를 지도화 한다. 소재는 지도에서처럼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거나 필연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는 것들을 선택하였다. 예를 들면 나뭇잎 무늬의 잎맥은 물과 양분을 공급 하는 핏줄이면서 나뭇잎의 뼈대이기도 하며 파리채의 격자무늬는 공기를 잘 통하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지도에 나오는 우산이미지 (해수욕장의 기호)의 경우 기호 그 자체에 흥미를 느껴'기호의 기호화'라는 측면에서 다루어 보았다. 관객은 아마 내가 지도(보통지도)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을 내 작품에서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도를 보고도 같은 감정을 느끼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왜냐하면 보통 지도를 볼 때 그 상징성과 목적성을 가지고 지도를 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도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이유이며 지도를 그대로 그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상진단순화된 복잡함 유흥가 거리에 널려있는 구겨지고 찢겨진 전단지, 짓밟혀진 연예인들, 차유리에 부착되어 너덜거리는 미녀들을 보며 나는 17세기 바로 크의 정물화에서 깨진 유리잔과 꽃에 앉아있는 파리가 암시하는 것과 같은 것을 느낀다. 이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을 포 함하여 동시대인 대부분이 느끼는 것일 게다. 넓게 생각하면 전단지들 뿐만 아니라 대량생산된 인쇄물 대부분이 읽히거나 보인 후에 (심지어는 전혀 읽히지 않는 것들도 있다.) 버려지는 운명을 갖고 있다. 가히 소비사회의 배설물이라 부를 만하다. 종이는 구겨지면서 필연적으로 형태의 변형과 그림자를 발생시킨다. 이 때부터 나의 관심은 종이위의 이미지보다는 그 음영과 구겨진 자체로 전이되기 때 문에 이미지를 그대로 평면에 모사하는 포토리얼리즘 과는 구별되며 오히려 구겨짐이 갖는 삼차원적 울림에 주목한다. 종이의 구겨 짐은 나의 능력과 무관하게 이루어지지만 그것을 선택하고 배치하는 과정에서 우연성은 어느 정도 조절되며 구겨진 종이들은 나에게 컵, 과일, 은쟁반, 꽃병과 같은 가치를 지닌 정물이 된다. 바로크의 화가들이 암시하고자 했던 그 것을,21세기에는 더 이상 유리잔을 깨 뜨릴 필요도, 파리를 세밀히 묘사할 필요도 없이 나는 그저 제시할 뿐이다. 다만 신에 대한 외경심을 제외한 채로.

김성관_2007-山水遊覽記_종이에 수묵, 모형인형_110×158×10cm_2007

김성관작품1 본인의 작품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풍경-들녘을 내면적 시선에서 바라본 느낌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4계절의 변화 속에 생성소멸을 반복하는 들풀의 모습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고, 들녘의 들풀들이 자유롭게 흩어져 있는 모습은 나에게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다.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들풀의 모습에서 끊임 없이 이어지는 필들의 움직임이 보이는 듯 했고 뭉쳐져 있는 들풀과 흩여져 있는 들풀들에서 자유스러운 먹의 농담과 선율을 찾아볼 수 있었다. 작품2 ● 산수를 그린 그림을 보고서 느낀 감동과 실제 그곳에 가서 자연을 보고 느낀 감동은 큰 차이가 있다. 아무리 웅장하고 큰 자연을 그린 그림을 본다 해도 그 크기는 실 제보다 축소되어 다가올 것이다. 거기에 제한된 크기의 종이에 그린다면 더욱 더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산수 속에 작은 사람들(인형들)을 배치함으로써 그려 진 산수가 얼마나 인형보다 큰지 알 수 있다. 그려진 산수 속에 작은 점들은 관람자에 비하면 작은 한 점에 불과하지만, 그려진 산수와 작은 인형들을 비교한다면 작은 인형은 그려진 산수의 한 점에 불과하다. 관람자가 눈으로 직접 보는 그려진 산수와 그 인형들의 눈을 통해 보는 산수는 규모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먼저 관람자의 입장에서 그려진 산수를 한번 보고, 다시 인형의 입장에서 그려진 산수를 한번 봄으로써 자연의 웅장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보기를 바란다. 작품3 ● 나의 작업은 실제 기행을 통해 체험되어진 자연풍경을 CD Case에 펜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낱개의 CD Case를 연결하여 흡수되지 않는 판 위 에서 선들이 장난치며 튕기듯이 짧은 선을 진지하게 쌓아올리면 점점 산수의 형태들이 나타나고, 자연의 형상이 채워진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의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작은 한 점에 불과하지만 무수히 많은 펜의 선처럼 자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그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다. 정자에서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양한 선의 흐름을 따라 시원한 바람 한 점의 여유도 느껴보며 재미있는 놀이처럼 숨은 그림을 찾듯 산수를 즐기면서 잠시 그림에 머물렀다 가길 바란다.

박우식_캔버스에 유채_72.2×90.9cm_2008 박우식_캔버스에 유채_communication_145.5×112.1cm_2009 박우식_avarice-Roy_캔버스에 유채_122×122cm_2008

박우식 ● 우리는 구축된 가상현실 속에 자신을 가두어 놓고 종종 환영과 착각 속에 살아가기를 즐거워한다. 가상현실은 이미 새로운 형태의 인간 경험을 구 축하고 있다. 가상현실의 잠재적인 영향력은 너무나 광범위하여 하나의 문화로 규정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어디가지나 그것은 가상의 공간일 뿐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상이 현실처럼, 현실보다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미 그들이 우리의 신체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실적 표현은 가상을 현실에 그대로 재현하는데 목적을 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작품속의 인물은 표현된 복제물로써 평범한 모습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으며 각각의 다른 표정과 시선에 따라 다양한 인물의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어떤 인물은 인간내면의 욕망을 표현하고, 또 다른 인물은 가식적이거나 위선적인 모습을 담아내며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지 각하고 반응하게 한다. 그 속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눈치를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동시에 내가 만들 낸 이미 지 속에서 소통할 수 있는 무한한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불안정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통의 방법을 일깨워주고자 한다.

박은미_천일의 기억들연작_사용됐던네거티브필름, 실, 낚시줄, 코팅지, 조명_가변설치_2008 박은미_움직이지마 연작_DIA0, C프린트_2008 박은미_아이리스_ohp필름, 아크릴_29×21cm, 21×5cm_2010

박은미 ● 작업소재의 대부분을 나는 일상생활용품이나 통속문화의 생산품, 예를들어 영화나 TV-Action 시리즈물, 잡지등에 유래한것들을 선택했 다. 따라서 나의 작업은 내적이지도 관조적이지도 유토피아적이지도 않다. 내가 이러한 것들을 중심소재로 이용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현대산업사회, 소비중심사회, 여가생활중심의 사회라 불리우는 현시대의 감 춰진 매카니즘을 응축된 형태로 보여주고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감춰진 매카니즘이라는것은 사실 암호화 되어 숨겨져있는것은 아니다. 우리는 단지 그러한 사물들을 어디서건 마주치게되고, 경험 하게 됨으로써 그것들이 지니는 진정한 의미와 연관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있을 뿐이다. 내 작업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시각적으로 인 지할수있도록하려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시기에서보다도 더 많은 시각적 이미지를 접하고있다. 이러한 시각적 경험의 확산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들을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거나간에 우리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있다.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영화(다이하드)에서는 118분 동안에 264명의 사람이 죽는다. 내가 그 영화에 대해 기억하는것은 264명이 죽는 동안에 나는 한봉지의 커다란 팝콘을 먹었다는 사실이다. 264명의 죽음과 한봉지의 팝콘! 아무런 연관관계를 지니지 못하는 이런것들 이 오늘날 우리의 일상적 경험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부인할수없는 사실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들을 바라보고. 주시하고, 그것들을 보여 주고자한다. ● 주변의 평범하고 낯설지 않는 일상적인 풍경, 기억의 조각들, 주 변 사람들이 공간속에서 다양하게 복합적으로 존재하며 이것은 유년기의 꿈으로 부터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상상의 세계 를 만들어 간다. 우리는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 때론 야릇한 일탈을 꿈꾼다. 그림 속 풍경들은 본인이 바라보는 일상 그리고 일탈이다. 인상적인 사물과 풍경은 위트한 풍자를 나타내는 본인 만의 언어로 의미를 부여한다. 보이지 않는 억압들과 소외들로 인한 내적 욕망과 표현 욕구를 은밀한 상상으로 새로운 재미를 가져다준다. 아이러니한 돼지의 모습은 집단 혹은 개인의 모습이며 상상 속에 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다. 자연과 호흡하며 특별한 감성 표현으로 조각퍼즐을 맞추듯 끼워 나가듯 무표정한 현대인의 얼 굴에 미소를 띠울 수 있는 코믹하고 유머러스한 내면의 풍경을 담아내고자 한다.

임성희_정글세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30.3cm_2010 임성희_노란행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0 임성희_가벼운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0

임성희 ● 상상이 주는 재미는 경험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구분출을 미지의 세계에서 주관적이며 간접적으로 대리만 족 할 수 있는 최대의 장점을 갖고 있다. 나의 작업은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기분 좋은 상상에 관 한 일종의 욕구 따위의 것들을 이야기 함 으로써 사회적 행동 영향으로 생겨난 현대인들의 억압되었던 집 착이나 불안, 탐욕의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출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아를 찾고 그것에 대한 정신적인 쾌감을 얻고자 한다. 인간과 환경을 바라 보는 시각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 속에 내면의 특정적인 감정이나 의미를 나타낸다. 개인적인 기억으로부터 하나의 모티브를 취했을 때면 언제나 그것은 상상력 속에서 반영된다. 우화속에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동물들이 등장하는 것과 같이 본인의 작업에도 개나 돼지가 등장하여 인 간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주로 표현하는 돼지는 뚱뚱한 여자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하는데서 출발 하 였다. 뚱뚱한 여자를 빗대어 돼지 같아! 돼지다! 라고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한편으론 돼지꿈을 꾸면 복권 을 사거나 고사를 지낼 때도 돼지머리에 복을 기원하며 절을 한다. 돼지는 먹을거리로 인류와 역사를 같이 해 왔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탐욕스럽고 게으르고 더러운 동물로 묘사돼 왔다. 반면 길상(吉祥) 으로 재산 의 복을 상징한다. 이런 아이러니한 돼지의 모습을 현대인을 대변한 소재로 나타내고자 한다. 사회에서 소 외받는 뚱녀의 일상을 통해 겉모습을 통해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을 해학과 풍자적으로 그려내면서 대중들 에게 쉽게 접근 하고자 한다.

최윤희_崔씨 표류기_캔버스에 유채_70×200cm_2010 최윤희_비가 내렸다_캔버스에 유채_70×200cm_2010

최윤희 ● 최윤희 작가의 화면속의 이미지는 자신의 이상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페르소나를 만 들고 이를 하나의 메커니즘을 형성, 자신의 초상을 만들어간다. 이는 신디 셔먼의 페 르소나와 같은 개념으로 그녀의 연작 「무제 사진 스틸」에 나타난 셀프 포트레이트의 개념으로 작가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고 현대사회 속에서 상징적의미로 소비와 욕망의 대상인 식민지로서의 여성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작가의 이미지 표현은 작가 자신 속 에 존재하는 기억과 갈등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동경과 희망 등을 고스란히 보여 줌으로써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그것을 조금씩 확인하며 인식해가는 과정으로' 자기화'혹 은 '개성화'의 과정으로 진화하는 작가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작가 최윤희는 강렬한 원색의 색채를 사용하여 작가자신의 페르소나를 슬픈 삐에로의 랩소디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통한 나르시즘의 심리학으로 인간소외 등의 현대사회에 나타난 현대인 내면상태를 자신을 통한 아니 마/아니무스로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과장된 초현실적 일러스트 화풍으로 나타난 작 가의 이미지는 페르소나가 지니고 있는 이분법적 유희 이미지로 현대인 각자가 가지 고 있는 고유성을 존중한 에니어그램의 정신적 색채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최윤희의 작품은 인간 인격의 그림자인 페르소나로부터 시작된다. '사람(person)' 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페르소나(persona)에서 유래한 페르소나란 사회에 순응하기 위한 사람들이 가져야할 여러 가지 신화이며 이를 희생양정신분석가인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은 페르소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면(假面)이라고 지칭했다. 최윤희 작가는 이런 페르소나를 작업의 모티브로 사용하여 자아(自我)의 경험에서 보여지는 자 신만의 신화를 쓰고 있다. 이는 현대인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여성의 트렌드로 획 일성 통한 사회의 축도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억압된 부분 즉, 융이 말하는 인격의 '그 림자(shadow)'를 뜻한다. 작가 최윤희의 페르소나는 세상과 마주하는 사회학적 자아(自我)가 페르소나 되는 반면, 자아(自我)가 거부한 부분들은 그림자원형(Shadow archetype)이 되어 무의식으로 들어간 다.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페르소나가 완벽하게 깨 끗하다면 그림자는 상당히 더러울 것이고 그림자는 거부당할수록 더 큰 파괴력을 품게 된다는 융의' 흰 그림자'論이다. 이런 페르소나의 의미는 부정적인 사람의 그림자가 깨 끗할 것이라는 고스문학의 페르소나로 현대문화가 받아들이는 페르소나, 활달하고 외향 적인 페르소나로 그 내향성은 거부당하고 분리된 그림자로 보여지는 고스족의 그림자이다.(유성하, 아트센터알트)

박경범_받아주세요_캔버스에 유채_91×60.6cm_2010

박경범 ● 작품의 주제는 인형이다. 모든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모습은 개개인마다 다르며, 각기 다른 그 인간의 독특한 희로애락(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 거움)의 표현방식이기도 하다. 작품들은 곱게 화장하고 잘차려 입은 인형 의 모습이다. 그 인형은 그 탄생 목적과도 같이 인간과 닮으려 노력하며 극대화된 인간의 표현 형태이다. 표정과 분장, 의상은 사람과 사람의 의사표현으로 소통되며 이는 삶의 의 미이기도 하다. 곱게 단장한 화장과 의상은 아름다운 세상의 인간이지만, 항상 한결같은 무표정의 형태는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의 표정을 모두 닮고 있다고 본다. 이는 인형의 모습으로 이해이기만이 아니라 대하는 이, 즉 상 대의 인간모습과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심리적 형태이기도 하다. 보여지는 인형의 시각적 형태와 전달되는 심리적 이해는 서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인형의 상대자인 인간 각자의 처한 상황과 모습일 것이라고 본다. 인형은 수동적 개념의 대상이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탄생 의 의미 또한 그로 인해 존재한다. 인간은 인형에게 심리적 이해를 요구하 며, 공간적 활동을 강요한다. 인형은 인간을 닮아가며 무표정 혹은 다표정 을 인간에게 선사한다. 본인은 무표정에서 다표정을 찾으려고 한다.

서진옥_양산동에서 놀다_프린트_2009 홍성표_소나무가 만들어가는 세상_캔버스에 천, 돌가루, 아크릴, 먹_160×520cm_2009

서진옥 ● 광주 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가 있는 양산동 일대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기존의 작품은 공간에서의 다양성을 보여졌다면 「빨강양산동에서 놀다」는 공간적 범위를 확대하며 개방된 공간을 자신의 의미 있는 장소로 바꾸 어 나간다. 즉 '나의장소' '우리의 장소'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도대 체 도시의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전통과 혁신, 세련미와 어눌함, 젊음과 노년, 빠름과 느림, 과거와 미래가 살아 숨쉬며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어 엮어지는 도시는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것이 아무리 모순된 욕망을 증식시키는 생존의 장이며 화폐자본이 변신된 공간이라 하더라도 도시야말로 동시대적인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장이다. 또한 도시에는 다 양한 개체들 간의 결합과 혼재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풍광들이 있으며, 그 안에서 숨쉬는 도시인은 고향을 떠나 궁극적으로 도시에 삶의 터전을 다진 이들이다. 인공의 '도시'는 무엇보다 일터로서, 또한 안락과 평온 을 주는 쉼터· 고향인 것이다. 그래서 도시는 욕망과 시선, 어둠이 교차 하는 공간이기도 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일상이 젖어있는 터전이다. 따라 서 본 전시는 현대를 살아가는 나와 그리고 이러한 도시의 일상과 속도를 어떤 식으로 포착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제 현대의 도시가 강요 하는 고통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Urban Paradise'가 펼 쳐진다. 홍성표작품에 소나무를 표현하는 방법 기존의 한국화재료에 주변에서 채취한 돌가루 등을 활용하여 소나무의 본성에 접 근하려는 재료연구를 병행하여 표현의 다양성을 주려한다. 소나무에 대한 상징성 은 자연생명과 인간의 교감을 의미하고 생명에 대한 예찬, 어울림, 현대인의 정신 적 쉼터로서 의 내용을 담아내고자 한다. 작품에 소나무를 심어 소나무와 나 자신 에 대한 교감과 세월이 흘러도 항상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는 모습을 담고자 작품에 소나무를 심어 주었다. 평면인 화면에 평면적기법이 아닌 입체적 표현방법 과 기법으로 장지나 천위에 소나무 잎 표현을 돌가루로 고착시켜 거칠고 딱딱하면 서 자연스러움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때론 그림위에 사포로 표면을 갈아내면서 더 욱더 표면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하였고. 또한 소나무 뿌리가 사물을 감싸고 있는 모 습으로 소나무가 사물과의 교류, 서로의 느낌을 교감하며 어지러운 세상을 하나로 만들고자 하였다. "소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 소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수목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며 상징적 요 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 소재로 즐겨 다루어져 왔으며, 역대 수많은 그 림에서 독특한 형상을 통해 깊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상징하고 대상이 되 어 왔다. 이러한 소나무를 주제로 작업을 하면서 소나무 정신의 탐구에 중 점을 두고 소나무를 찾아 마주하며 현장에서 사생을 하기도 하였다. 본인 은 소나무의 정신성을 옛 그림을 통해 정신적 가치를 보기도 하고, 소나무 를 사생하면서 소나무에 담긴 선인들의 정신을 간접체험하고, 사생을 통해 서는 소나무의 외관, 즉 형상을 파악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매개한 주변 공 간, 그리고 그 공간과 나 자신과의 관계를 파악하였다. 더욱이 소나무를 매 개로 해서 인간과 자연, 나 자신과 주변, 사실과 상상 같은 이질적이거나 혹은 대립적으로 인식된 것들을 매개해서 현실에는 없지만 그러나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바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는 소나무를 주제로 상징의 정신적 측면과 의미, 그리고 표현 방법의 다양한 재료연구와 소나무를 통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추구하고 자 한다. 소나무를 바라보는 느낌 ● 소나무를 주제로 작업을 하면서 소나무 정신의 탐구와 소나무를 현장에서 사생을 하면서, 때론 옛 그림을 통해 그 느낌을 간접 체험 등을 하면서 소 나무의 형태와 주변에 어울림, 그리고 자연 생명에 대한 애정을 담아 표현 하고자 했다. 추운겨울에도 푸르름을 간직하며 산 정상의 메마른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는 강인한 생명력, 그리고 견디어 나가는 꿋꿋함이 사생을 통 해 관찰되어진 소나무의 인상으로 그 동한 마주한 소나무 하나하나가 화 면위에 마음속의 소나무를 형상화하여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소나무라는 자연의 한 대상을 통해 일상의 모습들을 대비시켜 현대인의 자연에 대한 단편적 생각 속에 스쳐 지나는 한 그루에 대한 삶에 의미와 이야기를 담아 본다. 소나무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뒤돌아 보기도하 고 한국의 그림을 통해 인간생활의 "바름" "선함"에 대한 의미적 내용 들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작품에 소나무를 심어가는 이유 소나무 정신을 작품에 담아 소나무세상을 만들고 작품에서 소나무가 들 려주는 이야기와 소나무를 통해 전해주는 세상이야기를 작품에 담아 모 든 사람이 소나무를 보면서 각자의 생각 속에서 소나무 스러움을 느끼게 하므로 서로의 공감을 나누고자 한다.

육종석_저항삼단화-충돌(헛소동)_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크레용, 스프레이 프린트, 콜라쥬_143.5×250cm_2009 이상욱

육종석Dog + Matism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풍자와 표현주의, 연극적인 무대장치 등이 활용되어진 나의 작업에서 나는 드로잉 이란 방법으로 풀어냈다. 도그마티즘Dogmatism은 그 사전적 의미 외에 안좋은 의미로의 도그Dog와 오토마티즘Automatism의 마티즘Matism을 합성해 놓은 언어유희로 이것은 곧 저질적이고 지저분하며 쓰레기 같은 드로잉의 한 방법으로 즉 Dog+Matism으로 만들어진 도그마티즘Dogmatism은 부조리한 인간군상의 모습들을 코믹한 요소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드로잉 기법 의 창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인간의 속성에 관심이 있다. 나는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항상 자유와 저항의식을 염두 해두고 있다. 이 말은 나의 작업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 자유는 작업에 틀을 두지 않고 넓은 시야로서 다양하게 미술을 대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미술을 이것저것 다양하게 모두 경험해봐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각과 정신적인 경험으로서 무엇이든 가능한 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넓은 시각을 의미한다. 그리고 저항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혐오와 반성의 저항으로서 항상 사색하며 스스로 안주하려는 마음을 거부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저항의식을 말한다. "아픔이 없고 파괴적인 것은 실수이자 오류이다. 예를 들면 추하고 뒤틀렸지만 고통이 없는 얼굴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 이것은 리얼리즘 정신이다. 이상욱 ● 이상욱의 산수화는 산수풍경에 대한 회화적 드로잉이기 보다는, 산수實体에 대한 탐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가 탐구하는 산수의 세계는 "勢"라는 방식의 窓 을 통하여 다양한 프리즘을 형성한다. 郭熙는 林泉高致에서 "山水는 멀리서는 勢를 취하고 가까이는 質을 취한다"고 말한바 있다. 산수본성 (質)을 구성하는 勢는 산수를 둘러싼 다양한 조건들-바람, 공기, 기후, 시간등에 의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전통산수화의 목표점은 자연 산수의 본질(質)을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산수의 본질은 산수를 바라보는 그 시각의 勢의 모습에 따라 다양한 形象으로 분열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산수란 質과 勢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곽희는 피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욱이 추구하는 勢는 전통적인 산수화의 세계에서 파악했던 그 시각의 실체적 勢가 아니라 이상욱식의 바라보기에서 형성된 勢의 세계라는 점에서 주목되며 그러므로 그만의 독특한 화면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 특별한 점이다. 우선 이상욱은 勢라는 관점으로만 山水를 탐구하되 세가지 다른 양식으로 산수를 관찰하고 있다. 첫째는 지도양식으로 산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지도 로 보다」라는 제목의 일련의 작품들로서 ,지도가 실제 풍경 그대로의 산과 강과 길들을 안내하고 있는 것처럼, 실제 존재하는 그대로의 산수를 탐색 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대부분 부감(俯瞰)으로 바라본 그림들은 위에서 조망 하듯 그려냈는데 , 이것은 감상자가 높이서서 산수를 바라보면서 , 실제적 풍경을 색다르게 체험하게 의도한 것이다. 또한 화면의 대부분을 검은 墨 色으로 칠하여 실체의 풍경을 덥어버리고 小路의 길들만 가늘게 보이게 하 는 방식은, 산수에 대한 지도적 관찰이지만. 회화적 시각성을 강화하기 위 해 치밀하게 계획된 화면임을 알수있다. 이 방식은 인간이 살고있는 지도 적 위치 개념에서 산수의 勢를 탐색한 것으로, 사실적 지도는 아니지만, 네 비게이션에서 面과 線으로만 위치를 알려주는 것처럼, 동양화의 虛實의 개 념을 응용하여 黑白으로 단순하게 산과 길의 위치만을 예시하는 동양화적 지도를 보여준다. 둘째는 風水양식으로 勢를 파악하는 것이다. 풍수란 지형의 좋고 나쁨에 따 라 인간의 삶의 형태가 영향을 받는다는 도교적 개념이다. 산과 물, 땅 과 바 람등이 다양한 조건에 따라 好惡이 있다는 개념이지만 이상욱의 산수화에서 풍수는 그 자체의 勢 를 관찰하는 것이다. 「풍수로 보다」라는 작품들로 서, 위세등등한 산수를 만들어내는 자연의 勢에 대한 관심으로 , 웅장한 氣勢의 산수화들이 그려지고 있다. 대부분 高遠의 방식으로 바라본 이상욱의 풍 수산수는 인간이 자연에 대해 품는 경이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푸른 달빛아래 의연히 정좌한 산수를 그린 작품은, 차가우면서도 신비한 정경을 연출하면 서, 인간이 정복할수 없는 고고한 위엄을 뿜어낸다. 이 방식은 風水를 인간의 이로운 삶에 적용하고자 했던 기존개념을, 산수자체의 風水로 되돌려 독립 적인 그 山水만의 勢로 표현하고자 한 이상욱식의 풍수해석이다. 즉 산수의 氣나 血을 인간중심으로 보지않고 , 氣血로 달라지는 산수들의 다양한 形象 을 관찰하고 있다. 세 번째는 숨은 양식으로 낯선풍경들에 대한 勢의 추적이다. 우리는 간혹 언제나 보아왔던 풍경들에 대하여, 전혀 다른 낯설음을 느낀다. 그것은 그 시 각의 감정적 변화일수 있거나, 혹은 인식의 착오일수 있다. 그러면서 생기는 의문은 그 대상에 대한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 왔던것이 진정한 그것의 실체였던가에 대한 혼란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것이란 질문도 제기된다.「낯설음을 보다」라는 일련의 작품들로서, 이상욱은 우리가 시각적으로 만 보는 산수풍경이, 과연 그 실체인가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낯선 풍경들을 그려낸다. 산수풍경들을 파랑색이나 흐린 분홍빛, 또는 파스텔조의 은은한 색 조속에 숨기고, 몇그루의 나무들만을 사실적으로 그려 독특한 화면을 연출한다. 그러나 바탕색으로 칠한 파스텔톤의 색조뒤에는 무언가의 풍경들이 숨어있음을 암시한다. 화면의 분위기는(情境) 절제된 몽롱함과 감성적 색채로 기세당 당한 풍수산수와 비교되어 흥미롭다. 이렇듯 이상욱이 세가지 방식으로 산수의 勢를 탐색하는것은, 산수가 가지고 있는 本性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 양한 形象으로 변화할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그러므로 이상욱의 그림은 산수화이면서, 한편 감상자들에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 다는 점에서 색다른 체험을 선사한다. 이것이 이상욱이 추구하는 新山水景일 것이다. ■

Vol.20100621g | New-starting 1st_2010 Artist in resi·dence Dae-jeon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