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nderground 언더그라운드

김영경展 / KIMYEONGKYEONG / 金暎卿 / photography   2010_0623 ▶︎ 2010_0706

김영경_기계실#01, #02_피그먼트 프린트_183×146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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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62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제이에이치갤러리_JH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인사갤러리빌딩 3층 Tel. +82.2.730.4854 www.jhgallery.net blog.naver.com/kjhgallery

지하 작업실 ● 사진가들의 작업실은 대부분 왜 지하에 있을까? 그 이유야 각기 얽힌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건물의 지하에 '동굴'과 같은 작업실을 마련해 놓고는,『지구 위의 작업실』이라는 상징적인 제목의 책을 출간한 한 문화 평론가의 사연을 들어보자. 그는 무슨 작업을 하는 공간이든 작업실다운 작업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캄캄한 지하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햇살이나 비, 바람, 눈과 같은 일기의 변화는 작가들이 작업이나 자신에게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변 사물들을 수선스럽고 소란스럽게 다가오게 하여 감각기관을 둔하게 만드는 햇살에 반해, 캄캄한 어둠은 오히려 전신의 감각을 왕성하게 활동시키게 하므로, 그래서 작업실은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수긍이 갈만한 이유처럼 들린다.

김영경_29호 모으는 가게(재생공예)#01_피그먼트 프린트_75×60cm_2009
김영경_나야스튜디오(도자공예)_피그먼트 프린트_60×75cm_2010

비밀의 혹은 실험적인? ● 사진가 김영경의 이번 개인전의 제목이 흥미롭게도 바로『underground』이다. 이 단어에서는 먼저 지하의 어둡고 눅눅하고 습한 공기감이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underground를 형용사로 사용할 때는 '지하의' 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비밀의', '실험적인'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므로 단어의 뉘앙스에서 느껴지는 무언가 비밀스러움에 관해 상상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보통 지하에 숨어 활동하는 비밀 조직이나 그 운동을 일컬을 때 앞에서 수식했던 단어가 바로 이 underground 였으며, 예술계에서 전위적이거나, 실험적인 또는 반체제적인 내용을 가진 작품을 칭할 때, 그러한 의견이나 단체를 지시할 때 사용한 것도 바로 underground였다. ● 유고 내전을 배경으로 했던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 감독의 영화『underground』는, 전쟁을 호기로 삼아 지하에 숨어서 무기를 제조해서 판매하던 사람들이, 지상에서의 전쟁이 끝난 지도 모른 채 지상과 거의 유사한 지하 생활 체계를 구축해나가는 모습을 잘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실수로 발사된 대포에 의해 지상 세계와의 연결 통로가 생기고 비로소 그들은 지상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감독은 이 혼돈과 망각 속에서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던 지하와, 지금 여기 현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지상, 두 공간과 두 세계를 오가며 서로 다른 모습을 효과적인 영상처리로 보여주었다. 현상의 양면적이고 양가적인 지점과 그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이 영화에서처럼, 김영경은 또 어떻게 다른 'underground' 세계를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일까? 이번 작업을 통해서 그는 전작과는 또 어떻게 다른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김영경_기계실#03_피그먼트 프린트_125×100cm_2010
김영경_기계실#04_피그먼트 프린트_100×125cm_2010

왜 시장인가? 생업과 창작 공간의 공존 ● 김영경의『underground』연작은 그가 입주한 작업실 공간인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촬영한 신작이다. 그는 '서울은 365일 공사 중' 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변화와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는, 개발과 재개발에 의해 사라져가는 근대 건축물이나 공간들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지금은 파괴되어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 개보수 작업으로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서울시청사의 예전의 모습은 이제 그의 사진 속에서만 기록의 힘을 발하며 정지되어 있다. 한낮의 그 실제 건(축)물들은 너무 익숙하고 평범해서 지나치기 쉬웠지만, 인공조명이 밝혀진 밤에 장시간의 노출로 포착된 사진 속 건(축)물들은 다소 낯선 이미지로 다가온다. 화려하게 재현된 색은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폭력적이라고 할 만한 도시 개발 논리에 의해서 오히려 파괴되어 가는 도시의 생태학에 대하여, 그것은 마치 작가 안에 잠재되어 있던 모종의 불안과 불만의 감정이 한꺼번에 표출된 듯 혼란스러움을 유발하는 색감이다. ●『underground』연작을 보면 이제 그의 관심은 마치 이 도시 구조의 속살과 같은 공간으로 이동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신당창작아케이드'는 서울시가 비어 있는 시장이나 공장 같은 유휴 시설이나 공간을 보수하여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으로 지원하는 사업의 일환이다. 예술가들에게 단순히 '작업 공간'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그 지역의 주민, 일반인들과의 '소통'과 '교류'가 그 주목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그 지역을 활성화시킬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창작 공간의 장소 즉 위치인데, 바로 황학동(지명상 분류는 신당이 아니라 황학동으로 표기됨) 중앙 시장 안에 있는, 지하상가의 회 센터와 겸해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입주한 공간은 형광등이 켜진 좁은 통로(이 통로의 구조 때문에 '아케이드'라는 거창한 명칭을 붙인 것 같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게 되어 있으며, 전면에 설치된 대형 유리창이 상품의 진열과 출입구를 겸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텅 비어 있던 점포들이였다. 장소만 지하일 뿐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게 생긴 이 공간에, 어떤 작가들이 들어와서 어떤 작업들을 할 것인지, 소위 예술가들이 상인들의 생업의 터전인 시장 한 켠에서, 몰입보다는 분산을 유발하는 이 환경을 과연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 자못 궁금했었다.

김영경_3호 Heytrain(일러스트)_피그먼트 프린트_75×60cm_2009

아틀리에atelier에서 쇼룸과 오픈 갤러리로 ● ● 그런데『underground』연작은 이러한 시장의 분위기나 장소성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진 방과 벽면의 조형성과 예쁜 색상이 두드러지는 작업이다. 작업을 위해 고민하는 작가들의 메모와 흔적들이, 제작 소품이, 그 결과물들이 자료처럼 또는 전시품처럼 진열되어 있는 것이 사진 속 내용들이다. '신당창작아케이드'에는 특히 공예작가들이 많이 입주해 있어서 그 작가들이 사용하는 작업 재료의 다채로운 물성(metal, clay, recycling, glass, illustration, book art 등)들이 사진에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어떻게 진열하고 배치하는지에 따라 작가들의 개성과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그 조형적인 구성을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김영경의 전작들에 이어 계속되고 있는, 어떤 장소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장소성을 제거'하거나 '낯설게 하기'의 특징으로 보여진다. 그러한 전략의 의도는 '지하 시장'하면 떠오르는 복잡하고 소란스러움을 대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기에 비밀에 쌓인 듯한 작가의 아틀리에와 같은, 의외의 장소에서 마주치는 '공간'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과거 한 사람의 스승을 중심으로 많은 제자에 의하여 조직되어 운영되던 공방, 또는 다른 작가나 예술 애호가에게 자유로이 개방되던 화실을 아틀리에라고 하였다. 아틀리에의 역사는 그들의 후원자들로부터 독립한 예술가들이 작업의 자유를 얻는 대신 생계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화가는 스스로 작품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 아틀리에의 경영 방식에 따라 예술가들의 경제 사정이 좌우될 뿐만 아니라, 작업의 방향과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음을 알게 한다. 17세기 프랑스의 화가들은 작품을 팔기 위해 작품을 전시한 방을 따로 꾸미기도 하였으며, 18세기 영국에서도 이름난 예술가들은 자신의 아틀리에 옆에 쇼룸(개인 용도의 화랑이나 거실과 같은 방)을 마련하여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였다. 지금 여기, 신당 작가들의 '유리창'은 과거 예술가들의 '쇼룸'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장치처럼 보인다. 시장 상인들의 삶의 터전과 창작 공간이 공존하고 있는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이 두 공간의 유사성을 발견해내는 김영경의 사진적 시각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김영경_26호 yarn(섬유공예)_피그먼트 프린트_75×60cm_2010

작업실과 기계실, 의외의 조화 ● 오늘날 작가에게 작업 공간은 창작에 필요한 노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결과물을 생산하는 산실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끓임 없이 생산의 에너지를 보급해야 하는 마치 '공장'과도 같은 성격을 띠기도 한다. 김영경은 이러한 공간을 예술행위의 본질과 관련하는 구조로 파악하면서 또 다른 지하 공간까지 탐색하기에 이른다. '신당창작아케이드' 전체를 움직이고 가동시키는, 에너지를 생산하고 보급하는 기계실이 그 또 다른 공간이다. 전기와 물 등을 보급하는 발전실의 외관과 냉각수와 스프링 쿨러와 같은 장치들의 구조는 마치 인간의 신체 구조와 흡사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용도 구분을 위해서 누군가가 빨간, 파란 비닐 테잎으로 배선들을 감싸놓은 것이나, 안전을 위해서 테니스공을 반으로 갈라 손잡이 부분에 덧씌운 것들이 마치 예술가가 직접 설치한 오브제처럼 조형적으로 보이는 것을 작가가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 김영경은 이『underground』신작을 통해 외부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지하 공간의 이중 구조를 바라보는 독창적인 시각을 선보이고 있다. 각기 독립적인 성격과 기능을 하고 있는 두 세계를, 마치 우리 신체의 각 기관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혈관을 통해 피를 흐르게 하는 것처럼, 섬세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로 파악하는 것이다. 사진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젠 과거의 영광이 된 옛 시장의 부활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반영하는, 또 다른 시장의 형태를 탄생시키고자 하는 에너지가 이 공간에는 흐르고 있을 것이다. 온 감각의 신경을 다시 곤두서게 할 '맥'을 포착하고 있을 한 사진가의 셔터는, 오늘도 그 지하 어디에선가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 김소희

Vol.20100623d | 김영경展 / KIMYEONGKYEONG / 金暎卿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