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태화展 / GOHTAIHWA / 高兌和 / printing.installation   2010_0623 ▶︎ 2010_0706

고태화_lull_mixed media print on hand-waxed paper_가변설치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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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62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_01:00pm~07:00pm

사이아트 갤러리_CY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B1 Tel. +82.2.3141.8842 cyartgallery.com

몸과 풍경, 감각 영역의 언어적 변조에 대하여 ● 작가 고태화는 몸을 전쟁터로 비유하면서 감각적 경험과 기억에 대한 추상적인 이미지와 공간을 만들어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는 자연이 우연과 교차되며 만들어진 것 같은 자신의 작업이 추상적이기 보다는 몸에 대한 세밀한 고찰에서 오는 사실적 표현이며 기록이라고 말한다. ● 작가는 작업을 통해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세밀한 현상들을 이미지화 하고 물질화해 나가는데 있어서 시각적 인식보다는 특별히 감각이라는 수용도구를 통해 느껴지거나 기억된 것을 직접적으로 기록해 보여줌으로써 좀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몸이라는 경계 안팎에서의 상호작용과 물리적, 심리적 상황들을 풀어낼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 어느 부분은 식물의 성장을 묘사하는 듯하고, 어느 부분은 인체의 피부와 같은 물질을 만들어 보여주는 듯하며, 지층처럼 누적된 이미지들은 마치 자연 풍경의 일부를 보는 듯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은 작가가 인체내부에서 경험하게 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들에 대한 이미지를 통한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세계로의 번안작업이 되고 있는 것이다. ● 그의 작업은 이렇게 자신이 경험한 영역을 이미지적이고 공간적인 구조로 변성시키는 작업을 통해 상징적 조형 언어체계에 대한 질료적 점검과 이미지의 유사함이 가져오는 인간의 경험적 영역에 대한 인지적 확장 혹은 공유에 대한 조형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태화_momentary lull_mixed media print on hand-waxed paper_가변설치_2010

과거 예술가들이 시각적 경험 차원에서 인지되어지는 세계에 대해 다시 시각적 체계로 재현하여 공유하고자 하였다면 작가는 그 대상을 몸 전체에서 느껴지고 감지되는 부분, 즉 인간의 원초적인 경험의 영역까지 그 지각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으며 재현하고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다층적 경험의 영역에 대해 기록한다는 점에서 물질적 속성과 그 변성과정의 상징성을 차용하거나 이미지의 지지체를 2차원에서 3차원의 영역까지 교차시키면서 감각과 인지의 영역과 그 표현을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 불투명한 한지가 밀납과 반응하여 물질적 특성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이미지의 흐릿함과 물질의 정교함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그 경계에서 망각과 기억 사이의 반투명하고 모호한 세계를 부각시키게 함으로써 설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감각적 세계에 대한 조형적 해석을 시도하고 이를 시각적 시스템 속으로 끌어내는 독특한 방법은 매우 흥미롭게 보여진다. ● 그리고 작가가 이렇게 물질이나 공간의 고유 속성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질료적 상징성을 포착하여 이를 활용하고 변형시키는 과정 자체를 작업의 주제로 끌어올림으로써 작가의 세계를 반영해내는데 있어서 조형적 영역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며 담론적 시각을 물질적 매체의 변용과 조형언어에 대해 공간적 지지체의 구조적 변조과정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은 작업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다. ● 고태화 작가의 작업하는 내용은 그래서 추상적이거나 사실적이며, 구조적이며 동시에 유기적이고, 판화적 매체일 뿐만 아니라 조각적이거나 혹은 건축적 매체의 환경을 넘나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2차원적 대상으로 읽혀지다가도 3차원적 컨텍스트에 대해 자각하게 되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 작가에게 있어서 예술행위를 통해 '어떻게 정신을 매개하는 물질과 그 물질이 존재하는 공간에 배치해 낼 것인가'라고 하는 것이 작가의 본질적 고민이라고 한다면 작가 고태화는 수동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 안에서 적절한 물질을 찾아내고자 하는 차원을 넘어 그 매체가 될 수 있는 물질을 서로 조합하거나 변질시켜 자신의 언어방식이나 조형적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고 2차원과 3차원의 공간적 해석항의 한계를 넘나들면서 컨텍스트를 지속적으로 치환시키거나 확장해냄으로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만들어낸다. ● 그리고 그 해석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감각이라는 물질적 영역에서 표현하거나 기록해내기 힘든 영역에 대해 가시적인 차원에서의 물질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조형적 기록 방법과 장치를 만들어내며, 동시에 이를 자신만의 언어 방식을 통해 이 물질적 공간 안으로 이식해내는 조형적 언어의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 이승훈

고태화_nerves_mixed media print on hand-waxed paper_가변설치_2007~8

고태화-경계를 타고 넘는 판화 ● 고태화는 얇고 투명한 종이를 공간에 가설 한다. 종이는 가공처리되어 색다란 사물로서의 질감과 촉각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 위로 몇 겹으로 차오르는 이미지가 얹혀있다. 자연풍경이나 식물의 형상, 씨앗과 줄기, 세포 등을 연상시키는 그 이미지들은 다양한 색채의 늪 속에서 다소 환상적으로 피어난다. 종이의 오브제화와 더불어 프린트된 종이는 공간을 타고 서식하는데 이는 종이/이미지가 생명체가 되어 증식과 분열을 거듭하는 형국을 보여준다. ● 그는 가공 처리된 종이와 그 종이위에 얹혀진 자연, 생명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더불어 이를 3차원적 공간 안에 다양하게 연출하면서 그를 통해 자신의 몸, 생명, 삶을 은유화 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런 맥락에서 재료들이 다루어지고 이미지가 선택되며 가설된다.

고태화_under the suface_wood intaglio on hand-waxed paper, layering prints on wall_가변설치_2007

작가는 말하기를 자신의 몸은 항상 (생을 위해) 싸운다고 한다. 사실 우리 몸은 순간순간 살기 위해, 목숨을 영위하게 위해 부단히 움직인다. 여기서 움직인다는 동사형은 여러 내용을 함축한다. 기본적인 생물학적 욕구의 충족과 해결, 사회적 관계망에서의 자신의 위상 잡기, 무수한 사람들과의 접촉과 대응이란 과제(?)는 사실 익숙해지거나 마냥 편한 일이 아니다. 삶은 늘 불안하고 고단하며 피곤하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거나 적응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결국 자신을 외부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외부에 집어넣기 위해 힘쓰는 자신의 몸이 싸움판이라고 말한다. 흡사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 제목이었던"당신의 몸은 전쟁터다."가 연상된다. ● 생각해보면 누구나 살기 위해 자기 몸을 갖고 싸운다. 인간의 몸, 의식은 한없이 나약한 것 같으면서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몸으로 살아가는, 전쟁을 겪어나가는 상황을 은유화 하고 있다. 그 싸움터를 탐험하고 그 풍경을 재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 재현은 시각적 인식에 기반하여 제작되는 것이기 보다는 "미세한 리듬들, 움직임, 에너지의 흐름 등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 그리고 감각들"을 바탕으로 제작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대부분 몸의 세포, 신경 등 미시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한편 바위나 풀, 숲, 바다 등을 표현한 상상적 풍경화로 드러난다.

고태화_horizon_mixed media print on hand-waxed paper_가변설치_2007~8

여기서 세포나 신경,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원형의 이미지들은 결국 작가 자신의 몸 내부의 풍경이다. 일종의 자화상인 셈이다. 이 자화상은 인격과 정체성을 지닌, 자아의 표상이 아니라 그야말로 생물학적으로 환원된 개인의 몸이다. 그것은 분명 내 것인 동시에 나하고는 무관한 자연법칙 아래 순환하고 진동하는 물적 구성체계라는 도저한 인식과 만난다. 도이세 그것이 확정된 결과가 자연풍경이다. 이는 자신의 몸, 의식과 자연계를 분리하거나 구분하지 않는 사고를 반영한다. 그래서인지 그 이미지들은 벽과 바닥에 기생해서 담쟁이처럼 증식한다. 정처없이 떠돌며 특정한, 하나의 완결된 몸을 지니지 못한다. 나무줄기나 세포, 혹은 포자나 혈관처럼 생긴 형태들이 부산하게 떠돌 뿐이다. ● 얇은 종이로 이루어진 화면은 왁스처리를 해서 견고한 독립된 사물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미지를 한지에 찍은 후 그 한 장, 한 장 마다 왁스를 녹여 반투명한 질감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처리된 종이 역시 육체를, 자아를 은유화 한다. 종이는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다치기 쉬운 인간의 나약한 일상과 연약한 피부를 의미한다. 동시에 그 위에 막으로 둘러쳐진, 왁스처리는 "다시 회복하기 위해 강인함을 보이는 인간의 습성과 몸의 방어"를 뜻한다고 한다. 또한 종이를 한 장, 한 장 층을 쌓아서 만들어나가는 작업공정은 이른바 삶, 기억,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들이 쌓여가는 과정을 반영하는데, 매 순간 저 아래 지층의 인식이 마치 왁스처럼 반투명하게 새로운 인식에 투영되고, 변형되고 다시 쌓여가는 그 일련의 과정이 흡사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고 그는 말한다.

고태화_That morning_mixed media print on hand-waxed paper_가변설치_2005~6

작가의 판화는 대부분 드라이 포인트, 에칭, 목판과 같은 전통적인 판화기법으로 제작된다. 한 장의 종이위에 잉크라는 층을 "핀을 맞추어" 겹쳐내는 일반적 판화 작업의 평면적이고 기계적인 공정을 끌어안으면서 그안에서 이를 넘어서는, 이른바 내파를 감행한다. 그것은 판화의 또 다른 가능성의 모색으로 다가온다. 우선 작가는 이미지 하나하나를 각각 다른 종이에 찍어 그 종이 자체를 겹친다. 어떤 작품은 보통 5, 6겹 혹은 7, 8겹의 층을 갖는 것도 있는데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종이는 더 이상 이미지의 단순한 지지체에서 벗어나 종이의 두툼한 두께 자체로 인해 그대로 작품의 미디어가 된다. 판 하나하나가 모여 물적인 존재로 환생하는 것이다. 또한 종이를 접고 자르고 뒤집어서 겹쳐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판화가 반복적으로 만들어 낸 동일한 이미지들은 조금씩 변형되어 새로운 이미지들로 재생산된다. 동일한 틀 속에서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판화의 복제성과 반복을 의도적으로 흔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판/이미지들은 원형과 기둥, 주름진 천이나 거울의 표면 위로 가변적인 형상을 자유로이 거느린 체 곳곳에 출몰하고 기묘한 상황을 연출한다. 정처없이 이곳저곳에서 부유한다. 마치 우리 몸이 그때그때의 특정 상황에 처해서 이에 적응하고 갈등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것들은 고정된 형상이나 완결된 구조를 지니지 못하고 다만 순간순간 우연에 의해 어떤 몸이 되었다. 어떤 상황이 되었다. ● 그의 판화작품은 이처럼 단순히 평면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공간 전체 속에서, 공간건축적 요소와 결합되어 나간다. 반정형적이고 비고정적이다. 유기적이며 가변적이고 지속적이다. 납작한 평면인 동시에 일정한 두께를 지닌 질감, 부조적, 조각적 요소를 지닌 설치작품으로 떠돈다. 어떤 경우에는 박스의 형태로 접어지기도 하고 또는 구부러져서 말아지기도 하는 가 하면 이미 존재하는 입체물의 표면에 직접 부착되기도 하고 더러는 칼로 도려내어 진다. 자기 존재성의 명증한 증거로 제시되는 게 아니라 부단히 다른 존재, 상황과 우연적인 만남으로 인해 형성된 관계 속에서 재배열되고 재탄생된다는 메시지다.

고태화_That morning_mixed media print on hand-waxed paper_가변설치_2005~6

또한 작가의 작업은 특히 조명, 빛에 민감하다. 그 빛은 작업의 중요한 요소다. 왁스가 먹여진 종이를 비추는 빛은 종이 자체의 투명함을 보여주고 그 투명함으로 인해 종이의 이미지들은 물질적 거리 및 보여지는 각도에 따라 관객의 시각 안에서 또 다른 층으로 "핀을 맞추어"겹쳐내는 것이다. 그 빛은 동시에 개별적인 존재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보여주고 관심의 배려 속에서 조망하게 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다. ● 결과적으로 작가의 작업은 밖도 안도 아닌, 생물도 풍경도 아닌, 입체도 평면도 아닌 그애매함을 동반하면서 모종의 경계에 걸쳐있다는 느낌을 준다. 작가는 그 같은 경계야말로 " 약하지만 강해질 수 밖에 없는 시간"이자 "한계이자 출발"이라고 말한다. 경계에서 존재해야 하는 인간의 삶, 그리고 미술 역시 그러한 '엣지'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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