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박성찬展 / PARKSEONGCHAN / 朴晟璨 / sculpture   2010_0623 ▶︎ 2010_0628

박성찬_상호관계_LED조명, 스테인리스, 플라스틱기어, 전기모터, 센스구동_280×80×80cm_2010

초대일시_2010_062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_11:00am~05:00pm

장은선갤러리 JANGEUNSUN GALLERY 서울 종로구 경운동 66-11번지 Tel. +82.2.730.3533 www.galleryjang.com

박성찬의 퍼포먼스, 말씀을 성찰하고, 시대정신을 생각하게 만든다. ● 천지는 창조되었고, 창조된 천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재한다. 그 말씀이 무엇인가? 말씀이 어떤 퍼포먼스로 존재하기에 말씀이 끊없이 현현하면서 파루시아로서 임재 하는가? 어떤 이는 이를 바램이라고 한다. 바램은 욕구, 욕망, 욕정이며 필요에 종속된다. 어떤 이는 존재의 합일이라는 욕망이라고 말했고, 어떤 이는 끊임없는 과정으로 풀이하면서 창조의 퍼포먼스가 어떻게 매 순간 이어지는지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작가가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떤 바램이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조각 속에 숨을 쉬도록 하고 있는가? 작가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한다. 그건 하늘 아래 존재자들의 창조가 아니다. 창조의 근본으로서 말씀이 창조에 나타나고, 이를 작가는 창조된 것 속에서 찾아서 풀어내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해체하는 기하학을 통해서 다시 그 말씀을 찾아내려고 시도한다. ● 그래서 이러한 천지창조의 말씀, 그 말씀의 파루시아를 조각으로 표현하려는 박성찬의 작업에서 작품을 통해서 나타난 작가의 진지하고도 성실한 노력을 그냥 해석하고, 즐기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서 이차적 해석, 메타적 해석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을 통해서 구현되었다고 흔히 이야기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천지창조를 말씀으로'서' 보고자 한다. ●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박성찬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며, 이를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박성찬의 작품에서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씀은 'Logos'이다. 로고스는 몇 가지 함축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말씀이며, 이 말씀은 이야기 하도록 '허용해주기' 때문에 말씀으로 사용되며, '이해하도록 해주는' 말씀이며, '관계되는 말씀'이며, '이성'이다. 예수가 살았던 당시대에 희랍인들이 성서를 기록한 그리스어로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고 할 때, 그들은 이런 뜻을 로고스라는 말에 사용하였다. 아마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도록 '허용하였다'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래서 이들에게 하나님을 함부로 언급하지 말라는 모세적인 엄격성이 상당히 완화되어 있음을 알게 해준다. 말씀을 사용하도록 허용하였기에, 이해가 가능하다. 말씀은 혼자서 알고, 혼자서 삭이는 행위가 아니라 어떤 행위가 사용되도록 허용하는 것, 허락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허락하여 주었기에, 인간은 감히 이 말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 이해를 통해서 이 말씀의 원래 뜻과 '관계'하게 된다. 그리고 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이성'이라는 말이다.

박성찬_상호관계_LED조명, 스테인리스, 플라스틱기어, 전기모터, 센스구동_280×80×80cm_2010_부분

박성찬의 작품은 이 말씀의 작용을 퍼포먼스화한 것이다. 작가의 이성은 말씀과의 관계를 퍼포먼스 하려고 하였다. 말씀과의 관계를 통해서 작가의 이성은 감히 신의 말씀을 사용하려고 하고, 그 사용의 퍼포먼스가 그의 작품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 플라톤은 말년에 아카데미아라는 배움터를 만들면서, 그 정문에 '기하학을 모르는 학생들은 출입금지'라는 말을 새겨 넣었다. 그리스인들에게 기하학이란 천지를 이해하는 하나의 기본이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역사적 증거이다. 이성은 기하학을 통해서 사물과의 관계를 정립한다. 그리고 그 정립된 관계를 통해서 기하학이 구현하는 천지를 이해하고, 천지를 이해하게끔 만든 퍼포먼스를 퍼포먼스하는 것이다. ● 그래서 작가는 한번 자신의 작품을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라는 것은 말씀은 하나하나의 부호들이 결합된 것이며 나에게는 마치 알파벳처럼 이해되었다. 그것은 사각뿔은 하나의 기호이지만 다른 기호 예를 들면 정육면체를 만나면서 새로운 무엇이 된다." 작가의 알파벳은 바로 기하학이라는 알파벳이며 퍼포먼스인 것이다. 작가는 기호가 무엇을 만난다는 표현을 통해서 부지불식간에 로고스의 관계, 말씀의 관계를 언급한다. 말씀이 관계를 넘어서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여기에 박성찬의 로고스가 로고스로서 그 관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 관계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관계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암중모색 식으로 찾고자 한다. "하나의 사각뿔은 바로 있으면 안정된 구조가 다른 사각뿔 위에 거꾸로 있으면 안정과 불안정이 같이 존재한다." 그들은 관계를 통해서 있으면서, 관계를 관계로서 사용하게 함과 이해하게 함을 갈구하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이성은 각각의 이성으로서 다른 이성과의 만남을 원한다. 이성은 이성으로 존재하는 욕망이다. 그 욕망은 불안전성에서 안전성에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다. 기하학의 이상이 조화라면, 조화는 부조화를 사실로서 인정한다. 기하학적인 부조화가 박성찬의 작품에서는 삼각형으로 나타난다. 안정된 삼각형이 아니라 불안정한 삼각형의 조화를 향한 노력, 이를 박성찬은 말씀이라고 이해하고, 그 말씀의 구현을 말씀을 보지 못하는 자의 소통가능성인 점자로서 풀이하고자 하는 착상의 상상력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점자문자는 말씀의 로고스이다. 부조화한 팩트(fact)가 삼각형으로 존재한다. 삼각형들은 신의 말씀으로서 말씀을 사용하고 있다. 어떤 말씀을 사용하고 있는가? 부조화로서 조화를 향한 욕구로서, 양상으로서 말씀을 사용하고자 한다. 그래서 작가 작품은 제목을 통해서 말해주고 있다. "기하학 형태는 각각의 힘의 상호관계를 통하여 조합되고 재형성되면서 상대적 관계(comparative relationships)혹, 상호관계(relationships)로 만들어 진다."● 부조화 속에서 존재들은 내적인 충만함과 동시에 불안정한 위치성으로 존재한다. 천지는 생각하면 얼마나 어지러운가? 하나님의 창조로 삼각형으로서 가장 안정적인 존재이면서 욕망을 통해서 삼각형이 거꾸로 세워진다. 본래 이성으로서 비율과 하모니였던 삼각형이 에덴에서 욕망을 통해서 거꾸로 된 것이다. 그래서 거꾸로 세워진 삼각형은 부조화이며, 불균형이며, 안정을 추구한다. 그래서 이들은 고립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안정의 말씀, 관계의 말씀을 원한다.

박성찬_상호관계2_알루미늄 ,커넥터, 플라스틱기어, 전기모터, 타이머구동_300×300×200cm_2010
박성찬_상호관계2_알루미늄 ,커넥터, 플라스틱기어, 전기모터, 타이머구동_300×300×200cm_2010_부분

● 그래서 그 간절함은 부조화의 숙명인 불안, 안타까움, 불순함을 가지고 완전과 순수함과 평안함을 동경한다. 그러나 그 부조화로 인하여 그 동경의 메시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직접 확인하고 느껴야 하는 촉각적인 점자로서만 나타난다. 이 불완전한 존재인 피조물들은 불완전하다고, 관계가 필요하다고 직접 나타내지 못하고, 몸에 스스로 각인을 새기는 고통을 가진다. 음성을 통해서 진동을 전달하지 못하고, 관계가 필요함을 몸으로만 보여주고, 그 느낌을 직접 만지도록 온 몸을 거꾸로 뒤집어진 삼각형 속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뒤집어져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몸으로 쓴 말씀을 통해서 이해받기를 원하는 뒤집어진 삼각형들의 간절함을 안타깝게 만져보고자 하는 것이다. ● 작가는 엄청난 정신적인 긴장을 그의 조각에서 보여준다. 존재하기 위해서 이렇게 힘이 든다는 것을, 창조된 천지가 존재하는 것이 이렇게 바들바들 떨면서 극히 미세한 만남의 가능성을 위해서 자기 존재 전체를 하나의 점에 치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의 점은 존재자들이 만나는 접점을 이야기하며, 이는 곳 시대정신(Zeitgeist)이다. 존재자들은 바들바들 떨면서 존재 전체를 하나의 점을 통해서 안정을 추구하는 바, 이러한 존재자의 총체를 우리는 차이트가이스트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 차이트가이스트가 경제라는 현상의 총체화 되었다는 것까지 고발하는 치열을 작가의 다음 작업에서 요구하고, 그 너머 예술가적 정신이 바라는 시대정신을 찾으려는 작업을 박성찬에게 기대해보는 것은 이 정도의 성찰을 가진 작가이기에 무리가 아닐 것이다.

박성찬_상대적 관계_스테인리스스틸, 전기모터, 자석, 센서구동_170×110×110cm_2010
박성찬_상대적 관계_스테인리스스틸, 전기모터, 자석, 센서구동_170×110×110cm_2010_부분

다행히 박성찬은 그 다음 작업을 예고하는 듯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상호관계 2라는 작품이다. 박성찬의 퍼포먼스는 기하학에서 출발한다. 기하학에서 원이란, 적어도 그리스적인 기하학에서 원이란 가장 안정된 형태이다. 그런데 상호관계를 보면 엄청나게 많은 원형들이 점자를 달고 그것도 모자라서 네온의 치장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을 이렇게 해석한다. 시대정신을 구현한 수많은 작은 원형들은 이 시대의 소위 안정된 시대정신, 경제와 상업으로 안정된 세대이다. 그렇지만 이 안전성이라는 조그마한 테두리의 소시민적 소심함 속에서 이들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원형의 보라색은 고고함, 우아함, 범접하기 어려움 이라는 색채학적인 의미 속에서 단절된 군상들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들은 연결을 갈구하는 것이리라. 단절되었기에 안정되었고, 안정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이들은 폐쇄성의 덫에 갇혀서 그 폐쇄성을 진저리 치면서 연결을 갈구한다. 그래서 그 연결을 원하는 방식은 좀 더 노골적이다. 발광을 한다. 허나 그 발광은 안타깝게도 백주대낮에는 볼 수 없는 발광이다. 어두워야만 발광을 한다. 가장 어두운 시절에 폐쇄되어 있음이 두드러져 보이는 발광이다. ● 로고스는 비율, 조화를 추구하는 관계성이다. 그래서 로고스는 관계를 바로 보여주지 못하는 점자의 느낌을 넘어서서 모든 것이 이성적으로 밝아지고, 말씀으로서 서로가 이해하는 세계를 꿈꾼다. 완전하다고 생각하기에 고립된 작은 원형들은 그래서 로고스를 필요로 하고, 밝음을 필요로 한다. 이 작은 무리들에게 조그마한 빛들이 상징화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성경의 말씀 주석가들이 얼마나 빛과 어둠의 대비 속에서 로고스를 소중히 여겼는지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우리는 작가의 퍼포먼스를 통해서 기하학적으로 표현된 말씀을 성찰하고, 그 말씀이 시대정신과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보여주는 작가의 퍼포먼스에서 한 시대에 접해있음을 보게 된다. 이것이 작가의 능력이다. ■ 송재우

Vol.20100623i | 박성찬展 / PARKSEONGCHAN / 朴晟璨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