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풍경-대면

김철규展 / KIMCHOULKYU / 金澈圭 / painting   2010_0714 ▶︎ 2010_0720

김철규_인체풍경 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_112×145.5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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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71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시 종로구관훈동 188번지 지하1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인체풍경: 욕망의 신체 혹은 서사적 신체 ● 김철규의 인체풍경은 두 가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선 합(合)의 형식이 그것이다. 여기서 합은 유사한 의미를 가진 이미지의 결합뿐만 아니라 전혀 연결고리를 갖지 않을 것 같은 이중 이미지들의 융합을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인체의 특정 부위를 확대한 이미지에다 정교한 선적 이미지를 중첩시키고, 거기에다 인체에 비해 사뭇 작기는 하지만 매우 세밀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기물이나 동물의 형상을 동일한 화면에 배치시키는 방식이다. 필자가 결합이라고는 했지만 화면 상의 이미지들은 병치된 다른 이미지들에 섞이지도 않고 어떤 물리력도 행사함 없이, 어떤 손상도 없이 자신의 형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보면 이 기물이나 동물의 형상들은 인체에서 추출한 의미태일 수도, 아니면 인체 이미지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잠재태일 수도, 아니면 동시에 영향을 주고 받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순서나 방향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김철규_인체풍경 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_96.5×130cm_2010
김철규_인체풍경 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_100×72.5cm_2010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들은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며 사건에 따라 그들 간에 밀고 당기는 길항관계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독자적으로 혹은 결합으로 존재할 수 있는 형식으로 해서 김철규의 인체 형상은 닫혀있다 열리고, 열렸다 닫히면서 또 다른 이미지로 변형되기도 한다. 이러한 변형을 통해 그 인체의 의미가 다층화되어 가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것이 그의 인체풍경이 취하는 또 다른 형식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인체의 형질변환(metamorphosis)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는 해체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예컨대 무릎이나 가슴의 도상은 분명 인체의 한 부분이지만 어떤 때는 산이오, 계곡이오, 능선이 되기도 하는 형질변환을 경험하게 한다. 따라서 김철규의 인체풍경을 이루는 도상들은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하나가 되는 이합(離合)의 변증법적 오브제를 구현한다. 도상의 이합은 하나와 여럿 그 나름의 관점에 따라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 받게 되며 단지 존재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성의 도상이 되기에 이른다. 이런 방식은 Giuseppe Arcimboldo와 Escher가 즐겨 사용하던 방법론이어서 낯설지 않다. 이를테면 Arcimboldo의 그림에서 과일과 야채는 인간의 얼굴과 겹쳐지고 Escher의 그림에서 새는 물고기로, 다시 물고기는 새로 변형되면서 단지 하나의 존재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성의 존재로 형질변환 한다.

김철규_인체풍경 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_145.5×112cm_2010
김철규_인체풍경 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_80×116.5cm_2010

하지만 김철규의 인체풍경에서 우리는 단지 사실적인 인체의 도상에서 새로운 도상으로의 변태만을 목도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견인해내는 작가의 흡인력을 발견하게 된다. 실상 작가가 '인체풍경'이라는 명제를 사용하고 있지만 당연히 이 풍경은 서정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작가 특유의 상상과 사유에 의해 내면적인 풍경내지는 서사적인 것이 된다. 오롯이 선 유두가 그려진 가슴을 향해 달려가는 관광버스, 두발을 활짝 벌린 음부를 향해 몰려드는 새끼 돼지들, 웅크린 남자의 나체와 의자의 결합, 거대한 손 위에 올려진 선으로 묘사된 그릇 그리고 포식 뒤에 잠이 든 강아지가 묘사된 작품 등에서 인간의 성애적 욕망과 경쟁사회의 냉엄함을 발견하지만 작가는 이를 통해 무한경쟁의 시대에서는 어차피 성적인 것이든 취업이든 치부든 적자생존의 법칙에 대한 강박적인 몰입을 피할 수 없음을 현시하고자 한다. 이렇듯 시계가 시간의 가시적 장치이듯이 김철규의 인체는 욕망과 소외의 가시적 장치이다. 김철규가 추구하고 있는 서사로서의 신체는 이런 점에서 신체를 어두운 바탕으로부터 포착, 발굴해내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신체는 바탕 위에 얹혀진 것이 아니라 사포와의 문지름을 통해 바탕의 후면에서 전면으로 부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체는 모든 욕망의 근원이기에 바탕으로부터 끄집어 올라 오는 것이며 선적으로 가시화한 이야기의 구조는 간결하고 밝은 선일망정 그 무게를 측정할 수 없는 멍에로 화면을 장악하고 있다.

김철규_인체풍경 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_130×162cm_2010
김철규_인체풍경 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_130×162cm_2010

반면에 섬세하게 그려진 작은 도상들은 의외로 편안하거나 무감각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이런 현실에 대한 현대사회의 무감각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층의 의미와 역설로 구현된 김철규의 작품은 초현실을 빌려 현실을 공격하는 방법에서 해학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이 절제된 색채와 어두운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무겁지만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주제의 무게를 위트로 걸러내는 방식은 그의 인체가 풍경이 되게 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론일 것이다. 그만큼 인체는 인체 자체가 갖는 의미보다는 사건, 사물과의 새로운 상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생산적인 장치로서 다소간 은폐적이거나 눈속임적인 요소로써 활용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욕망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 또한 가벼운 위트를 통해 이야기로 치환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포착하고 있는 신체는 의미의 담지체일 뿐만 아니라 사유의 주체로도 중요하다. 그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의 신체를 통해 우리의 현실과 욕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 유근오

■ 김규철작가의 『인체풍경-대면』展 이 전북예술회관에서 진행됩니다. 2010_0625 ▶︎ 2010_0701 전북예술회관 전주 완산구 경원동 1가 104-5번지 Tel. +82.63.284.4445 관람시간 / 09:00am~06: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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