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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展 / LEEJAIKYUNG / 李在敬 / painting   2010_0623 ▶︎ 2010_0706

이재경_seed_한지에 아교_162×486cm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물파공간_MULPA SPACE 서울 종로구 견지동 87-1번지 가야빌딩 1층 Tel. +82.2.739.1997~8

한국화가 이재경론 ● 한국 미술비평가들은 종종 이재경의 작품을 칼라휠드(color field 색면회화)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평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작품들은 서양의 칼라휠드의 거장인 Rothko나 Barnett Newman 또는 한국의 모노크롬 화가인 박서보나 몇몇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비교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편으로는 이 재경의 작품을 그렇게 보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을 대하는 관람자들한테 비록 피상적이지만 우선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의 최근 작품들은 캔버스 전체를 가로 질어 계속적으로 펼치지는 두터우면서도 평평한 색조의 색면이 펼치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다른 칼라휠드 작가들의 작품에서 받는 시각적인 인상과 별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들을 Rothko나 Newman 또는 그들과 비슷한 서양 현대주의적 회화역사의 문제점을 의식하며 작품을 전개하는 다른 누구와 비교하는 순간,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럼 이재경의 작품들을 서양현대미술사의 범주에 넣어버리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은 미술가인 이재경에게 완전히 부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작품은 서양의 대가들이 해 온 것들과는 완연히 다른 역사적인 진로를 통해, 독립적으로 완전히 서양 현대미술 역사 전개의 담론의 외부에서 그들과는 무관하게 작품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은 소위 말하는 파리, 뉴욕 Chelsea나 SoHo, 런던이나 베를린과 같은 현대미술의 국제적인 센터(International Centers of Modern Art)에서 만들어지고 일어나는 작품활동과는 전혀 다른 미술세계에 속한다.

이재경_seed_한지에 아교_180×600cm_2010

이 작가에 대하여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그녀가 독특하게 동아시아에서 수백만 년 전부터 계속해서 내려온 붓, 물감, 종이와 같은, 전통적 회화 도구들을 가지고, 본래의 서양의 미술행위와는 분명히 크게 차별화되는 지극히 동양 전통적 미학, 철학적 관점하에서 작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중략) ● 동양의 내재론적 미학에서는 화가가 화선지위에 배열하는 전반적인 특별한 종류의 힘의 장이 매우 중요하다. 종이 위에 쌓아진 힘의 장의 효과는 전적으로 화가의 붓놀림에 달려 있는데 각각의 붓놀림(필획)은 말 그대로 그 화가의 독특한 개성적인 기-에너지 - 힘의 라인을 전해준다. 붓을 한 번 내린다는 것은 선을 하나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효과를 위한 진정한(내재된) 잠재력을 가지고 기-에너지 - 힘의 장의 실질적인 움직임을 새기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미 이재경의 회화에서의 작품 방식과 서양 칼라휠드 화가들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이재경_seed_한지에 아교_70×114cm_2010

서양의 칼라휠드 화가들의 동향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 중 하나는, 그들이 과정과 형태의 전반적인 통일감을 위하여 몸짓이나 붓놀림이나 동작을 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재경의 경우에는 붓놀림의 질(quality)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녀가 이 끝부터 저 끝까지 맨 위에서 바닥까지 색면이라는 전반적인 느낌을 창조해 내는 것은 곧 붓 작업을 통해서이다. 초보자의 눈에는 그녀의 작품이 서양 칼라휠드 화가들의 작품과 매우 흡사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 미술가의 작품이 서양의 칼라휠드 화가들을 얼마나 훨씬 더 앞서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하여 더욱 상세하게 기술할 필요가 있다. (중략) ● 나는 칼라휠드의 경우, 캔버스 위에 있는 특정한 한 가지 색깔만을 바라보는 것으로 관람자가 이런 느낌을 얻지는 못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본다는 것'은 한 묶음의 파동의 형태로 들어오는 시각적인 정보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야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느낌은 어떤 특정한 시각적인 경험을 먼저 한 다음의 결과가 아닌 것이다. 대신 느낌은 어떠한 특정한 방법으로 느낌의 근원(여기에서는 예를 들면, 칼라휠드(color field)작품이다)이 관람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함으로써 관람자가 직관으로 알게 되는 어떤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보이는 어떤 것이, 그리고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것이 어떻게 시각적인 것 외의 다른 방법으로 시각적 느낌 안에 갇혀 있는 관람자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가? 그것은 대개 다음과 같은 방법이다.

이재경_seed_한지에 아교_180×300cm_2010

색깔은 단순히 어떤 특정한 파동의 길이와 주파수로 된 파동의 한 묶음으로서, 전자기적 에너지로 된 가시광선의 한 형태이다. 이런 파동들의 묶음들이 우리 망막의 신경세포와 충돌하게 될 때, 그것들이 관람자에게 실질적이고 확실한 신체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자기적 파동의 묶음들이 충돌하는 것 외에 일어나는 또 다른 어떤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이재경이 여러 가지 한국의 고유의 식물들이나 꽃들에서 축출된 물감을, 다른 두께와 흡수력을 가진 특별하게 제작된 전통 한국 닥종이 (장지) 위에 바르고 그리는 작업을 할 때, 그녀의 미술 작품의 최종 결과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물감을 표면에 바를 때 사용하는 물감이 묻은 붓의 놀림(획)이다. ● 여기의 핵심 용어는 붓놀림(획)이다. 그녀의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각각의 붓놀림(획)의 힘과 기민함이다. 그것은 동양의 무술가가 그의 목도를 가지고 정확한 힘과 방향성, 그리고 기민함을 가지고 허공을 가르면서, 그것으로 정확하게 올바른 종류의 기(氣) - 에너지 진동을 일으키는 상호작용을 창조해 내면서, 그것이 경우에 따라 무술가의 것과 반대되는 것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주변 환경의 파동들 가운데 있는 다른 기-에너지 묶음들과 상호작용을 하기 위하여 무술가의 신체 내부로부터 기파장을 끌어내면서 갖는 동작과 다를 바 없다. 극도로 몰입하는 영적 훈련을 하는데 있어서 그 무술가는 이를테면, 어느 산속 계곡의 황량한 공간에서 그의 목도를 가지고 거듭거듭 질서정연한 춤을 추면서 동일한 움직임을 반복한다. ● 그의 마음은 비워지고 그의 움직임은 결코 망설이지 않고 완전히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재경은 그와 같은 방법으로 마치 명상 중에 있는 선승(수도승)처럼 작업을 한다. 그녀는 캔버스 전체에 그녀의 붓놀림으로 작업하고 또 작업한다. 그리고 그 위에 또 다시 그리고 다시 모든 영적인 훈련은 수련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비운 후에 의식적 자아를 이탈할 정도로 자기 환영 속에 빠져 들어갈 때까지, 거듭 거듭 반복적으로 주문을 외우거나 움직이는 것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것 같다. '반복'이라는 단어가 이재경 회화 작품 세계의 한 측면에 중요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좀 더 생각을 해 보자. 같은 동작이 계속해서 정확하게 일람표로 만들어져서 거듭 반복되는 기계적인 반복 동작들이 있다. 그 다음에는 되풀이되는 분기점이 있다. 같은 종류의 동작이 수행되어지고 그 다음엔 동일 동작의 전체 세트가 속도 또는 힘이 조금 변형된 상태로 반복이 된다.

이재경_seed_한지에 아교_148×84cm_2010

예를 들면 일련의 동작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요구되어지는 다른 매개변수들의 작은 변동이나 차이들이, 그것들이 아무리 미세하더라도, 그 되풀이되는 것이 수백 번 또는 수천 번 수행되고 난 후에는 어마어마한 커다란 차이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재경은 인간이기에, 그녀가 선택한 특정한 색채적 밀도와 점성을 가진 색을 펼쳐 내기 위해 칠을 할 때마다, 그녀의 붓놀림이 매번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 그런 이유 때문에 그녀의 색면들이, 동일한 일반적 색채 스펙트럼 안에, 원색의 빨강 또는 노랑 또는 파랑이든 간에, 화폭 전체에 걸쳐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놀랍게도 다양화 되어진 색 농도의 응결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음악은 음파의 한 꾸러미이다. 마찬가지로 이재경의 칼라휠드도 마찬가지이다. 그녀의 경우에는 그것이 다른 색채적 분산을 띈 빛 파동의 꾸러미이다. 음악의 음파들은 우리의 청각 신경 세포에 충격을 주는 반면에, 이재경의 칼라휠드에서 나오는 빛 파동 꾸러미들은, 시각적 관찰 또는 해석을 위한 시각적 자극으로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빛 입자들의 전자기적 에너지 꾸러미들로서의 직접적인 물질적 충돌을 위한, 그리고 인간의 신경 세포 위에 풍성한 물질적 충돌로, 관람자들의 망막 신경세포에 충돌한다. 이재경의 작품표면에 있는 색채들이 태양광의 파동 길이의, 그것들 고유의 특징적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한, 우리는 이런 다른 색채들이 그것들 각각의 고유한 특징을 가진 에너지 파장을 갖고 있다고 그럴듯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경_seed_한지에 아교_212×140cm_2010

여기에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추가적인 면이 있다. 이재경이 물감이 묻어있는 붓으로 거듭 거듭 칠해 나갈 때, 그녀는 동시에 그녀의 각각의 붓놀림에 하나의 기 에너지 벡터선(궤도)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 에너지 벡터선들의 조금씩 다양해진 모양들의 이런 모든 반복들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서 그녀의 작품 표면 전체에 걸쳐 독특한 종류의 기 에너지 지형도를 창조해낸다. 그 기 에너지 백터선의 전반적인 배열이 이 특정한 기 에너지의 독특한 세(勢)를 정해 준다. 그것이 전자기적인 에너지이든지 또는 기 에너지로 변형된 것이던지 간에 (그녀의 붓놀림 움직임으로 형성되는 계속되는 기 에너지의 반복적인 노력들로) 화가들이 창조해낸 특별한 에너지-힘의 세(勢)가 치료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 그것은 아마도 한 첩의 한약을 디자인하여 만들어 내는 데 있어서의 전통적인 한의학적 방법에 대한 유사함에 의해 가장 잘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한의사가 하는 것은 마른 약초와 인삼과 같은 뿌리들을 모아서 사려 깊게 그 많은 약초들을 조합하고, 그 다음에 환자가 마실 수 있도록 달이는 것이다. 그 원리는 무엇일까? 각 약초들은 저마다의 기 에너지 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제, 전통 한의학은 또한 각 개인을 신체적 존재로서 '불' 또는 '물'을 갖는 것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각 사람의 불의 세(勢)의 갑작스런 쇠약 때문에, 이 다섯 특성(五行)의 세(勢)들의 조화로운 균형이 깨질 때, 대체 되어져야 하는 것이 나무의 힘이다. 그래서 전통한의사는 많은 약초들을 조합하고, 이 조합으로부터 만들어진 혼합음료를 환자가 마심으로써 환자의 약해진 불의 힘을 다소 도울 최상의 나무의 세(勢)를 그것들이 만들어 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각각의 색들이 다양하게 다른 색조와 농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각각의 기 에너지 세(勢)들도 그러하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전통한의사가 올바른 보약 또는 해독제를 만들어내는 올바른 조합을 발견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재경의 칼라휠드들이 분명히 명시된 마음을 울리는 치료 방식을 가짐으로써 치료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방법들인 것이다. 이와 같이 그것들은 색채 요법에 매우 유용할 수 있다.(중략) ● 전통 장르의 동양화 화가들 중 대단히 많은 이들이 미술가로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재경은 그들과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길을 찾았고 혼자 힘으로'my way'를 고집하면서 자신만의 미술을 추구했다. 그녀는 바로 그런 방법으로 젊은 세대의 한국 화가들에게 하나의 모본이 되고 있다. "그저 뉴욕이나 파리와 같은 서양의 국제 아트 센터들만 바라보고 있지 말라. 자신만의 문화적 정체성으로부터 길을 잃고 헤매지 말라. 자신만의 문화와 미술적인 토양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않는다면, 다른 누구에게도 어떤 종류의 치유도 제공할 수 없으며 완전히 꽃을 피울 수도 없다."결국 미술이란 영적으로 치유하는 행동이다. 만년의 칸트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바로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미술이란 완벽한 사회를 향한, 대단히 근본적인 인간의 갈망의 한 표현이다. 그래서 바로 이런 갈망이 인간의 영혼의 가능성을 향한 기초가 된다." (번역자 / 권순호)홍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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