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Encounter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展   2010_0626 ▶︎ 2010_0926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_2010_0626_토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애란_곽정명_권남희_김연숙_김영미_김혜련_나점수_로와정_박선기_박진아_박혜수_석철주 신현정_유비호_윤정미_이민호_이수경_이중근_정강_홍다슬_홍순명_홍지윤_황선태 Lucile Bertrand_Ouyang Chun_Fei Cui_Del Geist_Kirsten Justesen_Patricia Leighton Richard Mayhew_Hung-Chih Peng_Araya Rasdjarmrearnsook_Shamshahrin Shamsudin Valentin Stefanoff & Nina Kovacheva_Wang Jianwei

관람시간 / 6월_09:00am~06:00pm / 7~9월_09: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제주도립미술관_Jeju Museum of Art 제주도 제주시 신비로 401(연동 680-7번지) Tel. +82.64.710.4300 jmoa.jeju.go.kr

이 전시는 올레길이 보여준 변화에 대한 단상에서 출발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특이할 것도 없는 올레길은 제주 사람이 오래전부터 걷던 동네길이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올레길이 일종의 걷기용 길 (trail)로 소개되면서 현재 16개의 코스가 개발되었고, 그길을 걷기 위해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제주를 찾아오고 있으며, 다른 도시에도 저마다의 '올레길'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종로의 고샅길, 송파구의 소리길, 강원도에는 대관령을 따라 걷는 바우길이 생겨났고, 지리산에는 둘레길이 생겼으며, 인천 송도의 센트럴 파크에 생긴 수로는 '올레 물길'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이런 모든 변화 속에서 올레길이 어느 사이엔가 느린 휴식과 여유와 동일시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전시는 그러한 느린 삶을 위한 걷기와 보기에서 출발한다.

김혜련_한라산 가는 길_종이에 먹 드로잉_145×274cm_2009

길을 걸으며 자신의 존재와 인간을 둘러싼 세상을 관찰하고 사색을 하던 철학자와 예술가의 모델은 이러한 느리게 걷기와 느리게 보기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니체, 루소, 키에르케고르에서부터 윌리엄 워즈워스, 폴 세잔느, 에두아르 마네와 같은 근대예술가들, 그리고 기 드보르와 같은 현대사상가까지 느린 걷기를 통해 일상의 수용, 의식의 변화와 각성을 추구해왔다. 특히 환경오염과 처절한 자기파괴를 강요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평온한 생존이 보장받지 못하는 오늘날, 과거의 철학자와 예술가가 보여준 느린 걷기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위한 삶의 토대를 세우고 세상을 바라보며, 정신적인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태도를 가르쳐준다. 효율적이며 논리적인 것보다 창의적이며 사소한 것, 개인적인 것, 주변적인 것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에 눈을 돌리게 한다.

델 가이스트_제주파수_제주 현무암, 철_315cm_2010
이중근_슈퍼네이처: 폭포_설치_2010

『조우』는 어느 날 차로만 달리던 길을 발로 걷다가 문뜩 저 멀리 꿩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갈 때 얻는 경험과 같은 우연한 만남을 일컫는다. 『Close Encounter』는 그러한 마주침이 보다 개인적이고 섬세한 상태를 함의한다. 이 전시는 그러한 개인적이며 근접한 만남에 주목한다.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관찰자이자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바다, 숲과 같은 자연은 책, 건물과 같은 일상 속의 사물과 마찬가지로 형태탐구의 대상이자 서로 호흡하고 발견하는 거울속의 존재이기도 하다 (황선태, 박선기, 이민호, 박진아, 윤정미, 정강 등). 그 호흡은 느린 걷기뿐만 아니라 느리게 보기, 그리고 느리게 살기를 통해 실천되며 그 느린 삶은 모든 것이 서로 융합되고 어우러짐을 허용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창조의 가치를 직접 경험한다. 예술가는 올레길이 만들어지기 오래 전부터 이미 그러한 걷기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루실 베르트랑_연결_제주 나무가지, 실크_설치_2010
페이 추이_Tracing the Origin VI II_안료 프린트_193×88.9cm_2008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국경이나 문화권에 상관없이 자연과 세상을 보는 그들의 태도는 느리며 관조적이고 서두르지 않는다. 1부 '낯익은 것들-느리게 보기'에서는 현대화, 서구화, 세계화라는 시대적 변화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슬로우 라이프 (slow life)'를 실천하면서 자연의 사물과 현상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면서 살아가는 제주 섬 사람의 '느린' 시각과 관대한 자세에서 사회, 문화의 빠른 변화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삶을 되돌아본다.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 자연에 대한 존경과 예찬 (오양춘), 삶과 자연의 근접관계 (커스틴 저스테센), 그동안 축적한 문화를 재고찰하고 주관화하는 태도 (이수경), 피할 수 없는 외부의 문화와의 만남을 새로운 문화에 대한 동경과 낙천적 기대로 바꾸려는 자세에서 전시의 영감을 찾았다. 2부 '낯익어 가는 것'들은 2개의 섹션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마음의 소리"로 자연적 재료와 모티프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과 꿈과 이상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망각을 다룬 작업(박혜수)을 선보인다. 두 번 째 "숨쉬는 관계"는 자연/문명, 자연/인간, 이성/감성, 남성/여성, 인간/동물 등의 이분법적 구도는 사실 서양적 사고의 산물이며 그 구분에도 불구하고 모든 관계는 상호작용적이라는 점을 말한다. 권남희, 로와정, 유비호, 왕 찌엔웨이, 강애란, 아라야 레잠레안숙, 발렌틴 스테파노프 & 니나 코바체바, 펑홍즈 등의 작업에는 자연과 문명, 문화와 문화 간의 교류, 과거의 악몽과 새로운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 인간관계의 비정형성 등, 서로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관계를 해석한 작가들의 최근 작품을 전시한다.

권남희_역에서 만나자; 거기 몇시니?; 열시_설치_2010
패트리샤 레이튼_중정심(中庭心)_제주 잔디_430×700×500cm_2010

특히 제주도의 풍광과 자연에서 시작한 작가들에 주목했다. 김혜련은 자신이 좋아하는 제주도의 산길과 밤하늘에서 작품의 영감을 찾았으며, 곽정명은 바다와 섬을 모티프로 삼아 정갈한 시간과 공간을 그려냈다. 홍다슬은 제주의 풍경을 여러 층의 이미지로 쌓았으며, 김연숙은 거문오름 인근에서 살면서 자연의 경험을 겸손하게 그려낸다. 이중근은 제주도의 올레길과 무명의 길을 직접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토대로 웅장한 설치를 만들어냈으며, 루실 베르트랑은 손수 제주도의 야생에서 찾은 재료로 설치작업을 했으며, 패트리샤 레이튼과 델 가이스트 역시 제주의 흙과 풀, 돌을 가지고 미술관 현장에서 작업했다.

박혜수_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 동화_설치_2010

글로벌 시대의 작가들답게 현대 예술가의 느린 시선은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김영미는 일본에서 경험한 바람의 흔들림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홍순명은 인공적인 사진 속 이미지 속에 숨은 자연의 장엄한 존재를 끌어낸다. 리처드 메이휴는 인종차별과 산업주의로 일그러진 미국에서 순수한 원초적인 자연을 끌어내어 그린다. 샴사린 샴수딘은 이슬람교와 불교 등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말레이시아의 느린 삶을 담고 카메라에 담는다. ● 석철주의 몽유도원도 연작은 중국과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상상력이 시대를 초월하여 다시 만난 그림이다. 도연명이 은둔생활을 하며 경험했던 무릉도원은 안견의 그림을 거쳐 다시 작가의 시선으로 그려진 것이다. 페이 추이는 포도덩굴 조각과 같이 자연이 남긴 사소한 흔적에서 자연의 섭리를 끌어내어 초서체와 같은 정련된 질서를 만들어낸다. 나점수는 아프리카 등 세계의 자연을 탐험하며 식물에 대한 단상과 형태를 형상화했으며, 홍지윤은 전통적 동양화의 기법인 몰골법을 통해 꽃과 시를 토대로 한 현대적 문인화를 그려낸다. 신현정의 드로잉과 벽화에서는 식물, 동물, 인간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며 모두 혼합된다.

나점수_식물적 사유_설치_2010

이 전시가 글로벌 사회, 자본의 힘을 거부할 수 없는 사회, 그리고 그 힘이 스펙터클로 우리의 삶에 매 순간 영향을 미치는 사회에서 예술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돌아볼 기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개인의 상상력을 발현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길 때, 네잎 클로버를 찾던 시절의 여유와 즐거움을 회복할 때, 소비와 남용의 순간이 아닌 나를 위한 창의적인 경험을 얻게 된다는 점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레길의 유채꽃 냄새를 음미하는 시간은 바로 예술가의 창조적 경험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그 순간은 현대 인간의 수동적 위치를 능동적 주체로 회복시켜주는 순간이다. ■ 양은희

Vol.20100627d | Close Encounter 조우-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