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mmy

차동훈展 / CHADONGHOON / 車東訓 / mixed media   2010_0630 ▶︎ 2010_0710

차동훈_Sweet room_사진에 증강현실_20×30cm_2010

초대일시_2010_0630_수요일_06:00pm

서울시립미술관 SeMA신진작가지원프로그램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신관1층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희생의 변천사에 따른 그 대리물의 양상과 희망의 목소리1. 내가 살아가는 나의 인생은 의문으로 가득하다. 그 실체의 성향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찾아오게끔 되어있는 불안과 공포를 이기는 방법을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찾아왔다. 불안과 공포의 자리에 즐거움과 기쁨으로 대체하려던 노력과 시도들이 바로 인간의 역사 그 자체이다. 한가지 방법은 이 세계에 대한 해석을 상정시켜놓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유대감을 형성시킨 뒤 그 멤버들의 불안을 서로 의지하면서 상쇄시켜주는 방법이다. ● 이는 아주 전통적이며 오래된 세계에 대한 해석학이자 수사학이었다. 그 발단은 플라톤이 제시했다. 그는 세계를 현상계(appearance)와 실체계(reality)로 구분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감각으로써만 파악할 수 있는 불안전한 세계요, 이데아의 질서가 운행하는 실체계만이 진실의 세계라는 강력한 존재론을 펼쳤고 현재까지도 받들어지는 서구의 유산이 되고 있다. 이 실체계, 즉 이데아로 향한 열정, 이데아를 파악하려 했던, 그 불가능한 기획을 가리켜 그는 최상의 에로스(eros)라 불렀다. 역사적으로 이 그리스 시대의 에로스의 자리를 로마 시대부터는 기독의 신이 자리했고 계몽의 시대부터는 이 신의 자리를 다시 과학이 강탈했다. 에로스, 신, 과학과 같은 외부에 상정해놓은 끝없는 가치추구는 서구적 인식 패러다임의 근간이자 본질이다. 대신 인간의 마음에 대한 문제는 공동체적 유대감으로 다스리려 했다. 공동체적 유대로서 생활세계를 꾸려나가고 유대감으로 끈끈하게 맺어진 이 생활세계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한 정신적 질서는, 위에서 말한 외부적 초월자의 명령으로부터 왔다. 자연법(law of nature)이라는 개념이 그랬고, 신의 도시(City of God)라는 개념이 그랬다. 따라서 서구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생활세계, 즉 비천한 세속계(living world, everyday life)와 신성한 초월계(divine world)로 구분된 이원적 세계다. 초월계는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완전하지만 비천한 생활계는 언제나 깨어지고 부수어질 위협으로 가득하다. 유대감을 유지시켜주는 에토스(ethos), 즉 윤리적 기품이 인간의 정념(情念, pathos)을 누르기에 정념의 살이 갖는 유혹이 너무나 크고 달콤하기 때문이다.

차동훈_KUROS_설치에 증강현실_가변크기_2010

그런데 이 잘 짜인 공동체의 유대감이라는 가치체계가 위협받을 때마다 언제나 희생(sacrifice)이라는 의식으로부터 구원을 찾았다. 크게는 전쟁이라는 의식, 작게는 제단 위의 희생, 제사가 그랬다. 전쟁은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해주는 정치적 연장선이다. 화형식 같은 마녀 사냥은 교회의 권위에 모든 사람이 복속하고 따르게 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예술이었다. 다만 시간이 흘러 교권중심의 세력이 약화되고 과학이 불러온 생활세계의 현대화 속에서 모던 사회는 탄생했으며 생활세계의 현대화를 가속화시킨 민주주의의 가치체계에서는 연출로서의 희생의식이 불가능했다. 각각 흩어진 채 산발되는 공동체의 유대감을 국가대항전과 같은 스포츠가 일시적으로 모아주거나, 한 공동체의 경제적 성장률과 복지, 선진화가 구축된 정도나 여부라는 추상적 개념 등으로 공동체의 존립 명분을 제시한다. 이렇게 좋아 보이는 현대적 삶에도 불구하고 이 현대적 가치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것이 차동훈이 구사하는 일차적 스토리 전개였다. 차동훈은 더미라는 개념을 심층적으로 붙들면서 현대 사회의 징후와 의미를 찾는다. ● 더미(dummy)라는 영어 단어는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뜻은 실재 생활세계의 사람을 대신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마네킹이나 모형 인형이다. 자동차 충돌실험의 더미들이나 운동 역학의 실험 대리인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현대 문명의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되는 모든 것이라는 의미로도 확대가능하다. 인간의 식감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개량된 닭의 품종이나 인간의 우울을 달래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량된 애완 강아지는 대표적인 더미이다. 도시 사회를 건설하는 인부나 성적 상품화로 전락하며 남성의 욕구를 강화시켜주는 미인 선발대회의 참가자들, 도시의 매춘부, 스트립 무희, 잡무와 과로에 시달리는 회사원들이 모두 더미에 해당한다.

차동훈_POlYGON_종이에 수채_각55×55cm_2010

즉 현대 문명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모든 네거티브는 더미라는 어휘에 포섭된다. 그런데 서구 패러다임의 연장선인 현대 문명은 또 다른 외재를 생산했다. 현실의 실체와는 다른 의미로서의 가상세계가 그것이다. 현실계에서 과잉으로 넘쳐나는 파토스를 가두고 조절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파토스를 가상의 공간에 가두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주디스 버틀러는 '불확실한 삶'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유대감이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를 진전시키는 것인지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we)'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라는 문제에 대해 이름을 지을 뿐이지 '우리'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 밖에 있는 '우리'의 위치는 육신을 살아가는 삶(the life of the body)의 결과일 것이다. 깨질 수밖에 없고(vulnerable), 공격받을 수밖에 없는 삶(exposed nature)의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정치의 규칙을 재조정해 줄 수 있겠는가? 아니면 현재의 전지구적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해주겠는가? (Judith Butler: Precarious Life: The Powers of Mourning and Violence New York: Verso 2004.) 버틀러의 말처럼 우리라는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나 자신의 문제점은 배제한 채 외부의 타인만을 다룰 수밖에 없다. 육신의 존재이자 언젠가 사라질 존재이며 누군가로부터 혹은 무언가로부터 공격받을 운명이기에 내 자신은 감춘 채 우리, 즉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공동체, 곧 생활계에 대해 생각할 때 나의 문제는 배제한 채, 타자만을 문제 삼는 그런 운명이다. 에토스가 파토스를 감당하기에 파토스는 너무나 큰 벽이다. 나의 파토스를 보장해줄 수단을 위해 또 다른 더미는 필요하며 또 하나의 가능한 외재의 초월계가 필요하다. 그것은 현재까지 가상세계가 그 역할을 감행한다. ● 28세의 차동훈은 위에서 말한 인간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그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는 인간의 정념에서 비롯되는 이기적 삶을, 현재의 또 다른 개인전은 정념에서 비롯되는 네거티브의 속성을 배수하는 하수구로서의 가상세계, 혹은 희망의 가능성으로의 가상세계를 다룬다. ● 가상세계는 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의 픽셀의 세계다. 이 2차원적 평면의 정보 바다는 폴리곤(polygon)이라는 3차원적 세계로 거듭 성장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가상세계의 픽셀, 폴리곤은 나름의 발전적 네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 식으로 말한다면, 바로 현실의 만상(萬象)과 가상의 재현이 서로 등가관계를 정확히 이룰 때 비로소 가상세계의 발전 네러티브는 종국에 이르고 그 끝을 맺게 된다. 그러나 더 나은 현실의 재현이 펼쳐질 때 과거의 상(像) 즉 이미지는 새 시대의 물결에 의해 폐기된다. 즉 과거의 이미지는 현재의 이미지에 대한 더미가 된다. 가상세계에서 조차 정념에 의한 더미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차동훈_POlYGON_종이에 수채_각 55×55cm_2010

2. 차동훈은 인간의 사회 내지 공동체가 갖는 삶은 살아남을 자와 그 반대급부로서의 희생자간의 이분법만이 존재하는가 의문을 제기한다. 화해 가능한 대안은 없겠는가 하고 묻는다. 차동훈은 증강현실(AR reality) 기법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여기서 증강현실이란 현실 세계의 기반 위에서 가상현실의 사물을 합성하여 현실 세계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정보들을 보강해주는 기법을 말한다. 즉 가상계의 가상현실이 현실세계와 교차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술이다. 기존의 가상현실은 컴퓨터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한계였다면 증강현실은 현실을 빈틈을 보강해주며 메워주는 기술이다. ● 일례로 손을 잃은 환자는 현실에서 가상의 증강현실의 손을 얻는다. 이 증강현실의 손은 물론 현실에서 도구로서의 기능을 완수하지 못한다. 그러나 환자는 증강현실에서 구현되는 가상의 손에 의해 커다란 위무를 얻는다. 따라서 환자는 현실에서는 좌초된 존재지만 증강현실에서는 여전히 항해를 하는 건전한 선체가 된다. 이러한 희망적 내용은 차동훈의 이번 전시회의 작품 '쿠로스(Kouros)'에서 나타난다. 쿠로스는 물론 그리스의 청년 입상 조각을 뜻하는 단어다. 초기 입상으로서 그 형태가 완벽하지 않지만 나중에 나올 위대한 그리스 유산들의 원형이 된다. 마찬가지로 증강현실의 원형이지만 나중에 현실을 보강하고 현실과 등가관계를 유지하며 등장할 위대한 유산에 대한 기원이기도 하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현실계의 보족(補足)으로서의 희망가능성이다. 이 증강현실의 쿠로스 역시나 일종의 더미다. 그러나 더미처럼 희생되어 좌초된 사람들의 영혼에 힘을 주려는 조그만 시도다.

차동훈_POlYGON_종이에 수채_각 75×112cm_2010
차동훈_POlYGON_종이에 수채_각 75×112cm_2010

또 하나 '올림푸스(Olympus)'는 구글 어스의 모형을 프린트한 뒤 원판에 오려 붙인 작품이다. 이 작품 위에서 증강현실로 구성된 대지의 여신 가이아(Gaea)와 일꾼이 병치된다. 또한 이 지구 모형은 지각의 대륙 이동설을 설명해주는 모델 판게아(Pangaea)로 구성된다. 원래 그리스어 헨 카이 판(hen kai pan, one and all)은 "하나는 곧 모든 것, 일자즉전체(一者則全體)"라는 뜻이다. 애초에 대륙이 하나였듯이 지금의 글로벌리즘은 세계를 하나로 묶어놓았다. 그러나 이는 원래 지녔던 사해동포주의의 보편적 인류애로서의 전체의 의미가 아니라, 경제적 팽창주의의 결과로서의 괴물적 지구 전체다. 다산과 풍요, 대지의 여신은 자기의 생산성을 잃고 자위를 하는 뚱보가 되어있다. 헨 카이 판으로서의 인류를 상징하는 일꾼은 노동(생산, 돈벌이, 잉여의 축적) 외에 그 무엇도 하지 않는다. 모두가 더미가 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모두가 서로의 더미가 되어 경쟁을 펼칠 때 더 이상 가이아의 축복은 없고 지구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파멸을 맞는다는 이야기다. 즉 현대문명적 삶에서는 신화 속의 초월적 존재인 신마저 더미가 되는 세상이다. ● 차동훈은 증강현실을 다루면서 중병이 든 후기자본주의의 현대문명을 비틀면서 동시에 인간의 본질적 문제점에 대해 다룬다. 신화적 세계는 무지몽매였지만 공동체의 전체성(totality)이 보장된 가치체계였다. 극도로 개화된 현대문명은 편의의 공동체지만 개인주의적 파편일 뿐이며, 전체성과 절연한 명목상의 공동체다. 이기심, 끝없는 이익추구(acquisitive spirit), 긴장하고 충돌하는 심리상태, 분열에 분열로 일관하는 물질주의 속으로 전체성이 침몰되었다. 차동훈은 이 전체성을 다시 회복시켜주는 방법이야말로 각자 개인의 에로스의 회복뿐이라고 말한다. 작은 의미부터의 에로스에서 큰 의미로서의 에로스까지, 즉 이기심이 아닌 진정한 자기애, 이타심, 끝없는 이익추구가 아니라 애초에 신, 혹은 우주적 에너지가 우리에게 부여했던 편만(遍滿)했던 사랑의 목마름에 귀를 기울이는 그 원초적이지만 동시에 심원한 행위 말이다. ■ 이진명

차동훈_OLIMPUS_증강현실, 나무판위에 구글어스 출력본 콜라주_70×70cm_2010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2010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전시장 임대료, 인쇄료, 홍보료, 작품재료비 및 전시장 구성비, 전시컨설팅 및 도록 서문, 외부평론가 초청 워크숍 개최 등 신진작가의 전시전반을 지원하는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Vol.20100629d | 차동훈展 / CHADONGHOON / 車東訓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