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 No Flower

안영나展 / AHNYOUNGNA / 安泳娜 / painting   2010_0630 ▶︎ 2010_0705

안영나_Flower No Flower_한지에 먹, 채색_270×33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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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63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본전시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꽃과 우주-안영나의 꽃 작업 ● 유난히 늦게 찾아온 올 봄 안영나의 작업실에 다녀왔다. 안영나의 작업실을 나서는 오후, 봄기운 가득한 대기의 온기 속에서 벚꽃과 목련의 꽃잎이 흩날리는 광경을 바라보며 내 머리는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안영나 작업이 빚어놓은 화면 속의 꽃과 눈앞에서 지는 봄꽃이 끊임없이 오버랩이 되어 그의 작업이 던지는 메시지가 계속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안영나_Flower No Flower_한지에 먹, 채색_165×270cm_2010

안영나는 꽃의 상징과 기호를 통해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의 꽃은 우리가 삶 속에서 늘 마주하는 벚꽃이나 목련 혹은 장미와 같은 특정한 꽃이 아니다. 그의 작업에서 보이는 꽃은 꽃이라고 여겨지는 이미지 혹은 관념에 불과하다. 그의 작업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한 어떤 특정 꽃의 재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꽃이라 여길만한 꽃의 보편적 특성을 담고 있다. 보편적이기에 관념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념적 보편에 의해 보이는 꽃의 이미지 너머에 있는 의미를 어떠한 단서를 통해 읽어 나가야 할 것인가. 나에게 있어 그의 작업의 요체를 간략하게 집어내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요즘 흔히 하는 말처럼 예술품 창작을 1차 창작이라 하고, 비평을 2차 창작이라 하며, 컬렉션을 3차 창작이라고 한다면 작가가 말하는 "꽃이 아름다워 꽃을 그린다"는 작가의 순박한 창작동기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너무 영악했기 때문이다. 내 머리 속은 끊임없이 작가가 꽃에 천착하는 또 다른 이유, 즉 작가 자신조차 의식화 하지 못한 암시적 의미를 비평의 눈으로 찾고자하는 오만한 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영나_Flower No Flower_한지에 먹, 채색_270×165cm_2010

그러나 나의 이런 오만한 의식이 벗겨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아 조경으로 심어놓은 벚나무들조차 아직 어려서 그럴듯한 자태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들고 날 때마다 아스팔트 위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그 고달픈 삶과 초라한 모습을 보면서 삶이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것임을 새삼 느끼곤 했다. 어느 날 나무의 크기에 비해 몇 송이 피지 않은 빈약한 이 벚나무의 꽃조차 꽃비로 쏟아져 내리는 그 모습을 본 그 한 순간, 아 꽃이 아름답다는 안영나의 한마디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름답다는 말은 수많은 가치를 지닌 말이다. 단지 형상이 아름답다는 형식적 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는 말에는 형식과 내용, 즉 존재와 언어가 하나로 통하는 삶의 진정이 배어나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진리가 서려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안영나의 작업이 진정 꽃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느껴지는 한 순간이 있었다. 보편적 관념으로서의 그의 작업이 보여주는 꽃과 현실의 꽃이 하나의 의미로 관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꽃은 우주의 한 진리를 함축한 메시지를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고 느꼈다.

안영나_Flower No Flower_한지에 먹, 채색_130×130cm_2010

봄에 나는 나이를 먹는다. 봄에 나는 세월을 느낀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변화를 느끼는 나의 촉각은 거칠고 무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는 자연의 순차적 흐름 속에 있다. 그래서 그 시간의 흐름은 차츰 일상으로 여겨지고 나의 감각은 계절이 주는 자극에 무감각해진다. 그러나 겨울에서 봄으로의 전환은 예상을 뒤엎는 반전 속에서 온다. 그만큼 명확한 의식의 자각을 동반한다. 삶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었을 때 희망의 단서를 발견하는 기적과 같이 모든 것이 동토에 갇혔다고 생각되는 순간 새 생명의 순환이 준비되는 봄의 이치는 언제나 경이롭다.

안영나_Flower No Flower_한지에 먹, 채색_130×130cm_2010

누가 뭐래도 봄의 절정은 꽃이다. 나의 인식에 있어서 봄꽃이란 삶의 가장 극적인 경이의 표상이다. 화사하게 피어난 봄꽃은 마른 대지 거친 세상을 밝히는 등불처럼 온 몸으로 생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한 곳에 붙박이로 살아가는 식물만큼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것이 있으랴. 식물은 꽃으로 반전의 계절, 모든 존재가 깨어나는 그 생명의 시간을 알린다. 식물의 투쟁은 꽃으로부터 시작한다. 꽃은 씨를 만들어 번식 기능을 수행하는 생식 기관이다. 삶을 위해 모든 유혹의 기술을 발산했던 꽃이 시드는 것은 화사한 유혹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양육의 시기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전주곡과 같다. 봄이 끝나는 것이다. 그 이후의 여름은 열매를 맺기 위한 양육의 시간 즉 견디기 어려운 인고와 인내의 시간이다. ● 언어는 존재를 담지 못한다. 가까이는 들뢰즈나 가타리 같은 현대의 철학자에서부터 멀리 그리스의 철학자까지 기호학이나 해석학에서 형이상학까지, 근대 오감도와 종생기를 남겼던 이상(李箱)의 고민에서 노자나 석가모니의 사유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각자들의 고민은 언어가 존재를 담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가 신의 말을 인간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 모습 속에 철학과 예술의 고민이 있다. 무한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색을 어떻게 하나의 표현으로 압축할 것인가. 철학과 예술의 근원적 문제는 결국 이 문제로 돌아서지 않겠는가. 안영나의 고민 역시 이와 같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의 작업이 어떻게 하여도 표현되지 않는 존재를 '아릅답다' 라는 말 속에 존재의 형식과 내용,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고 그것을 꽃이라는 관념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로 여겨지는 것이다. 잡히지 않는 의미를 잡고자 하는 시도, 결국 그것을 하나의 예술행위로 본다면 관념적 꽃을 통해 안영나가 표현하려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그 반전, 모든 존재가 자신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투쟁하는 삶의 경이, 일체 유혹의 기술로 생존을 모색하는 생명의 욕망, 즉 삶의 현상과 본질 같은 것이지 않나 싶다.

안영나_Flower No Flower_한지에 먹, 채색_130×162cm_2010

그의 꽃은 구체적 대상을 가지지 않는다. 재현(representation)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다는 이는 추상적 사유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의 꽃은 꽃의 보편적 관념에 기인하므로 구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그의 작품에서 꽃의 형상을 읽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꽃으로부터 떠나는 여행이다. 꽃을 그렸지만 꽃은 아니다. 공간중심의 시각으로 그의 작업을 축소하여 미시적으로 보거나 이를 확대하여 거시적으로 본다면, 그의 작업은 꽃의 속성이 사라진 미세한 세포들이 만들어내는 무질서를 만들어 내거나 혹은 저 광대한 밤하늘 우주의 한 모습으로도 보인다. 시간중심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순간과 영원이 공존한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순간이다. 영원한 시간의 흐름 속에 단지 스쳐가는 찰나이다. 꽃은 투쟁의 가장 치열한 순간 존재의 절정을 암시한다. 그러나 시간을 좀 더 미시적으로 혹은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절정이지 않은 순간이 어디에 있는가. 삶은 순간순간이 절정이다. 삶 속에서 어디 한 순간 의미 없는 순간이 있었던가. 그 의미의 체계는 인위적 체계로 만들어 놓은 것일 뿐, 삶은 매 순간이 절정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우주와 절정에 가 닿는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 속에 꽃은 어디에나 있다. 순간이지만 영원이 되고, 한 순간의 모습이지만 우주가 되는, 모든 존재와 합일이 되는 지점. 안영나의 꽃은 바로 그 지점을 향하고 있다.

안영나_Flower No Flower_한지에 먹, 채색_130×162cm_2010

안영나는 꽃에 대한 관념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문자를 도입한다. 문자는 그 자체로 이미 강한 상징적 기호체계를 지닌다. 의미를 지닌 문자를 의미 없는 배열로 보여줌으로서 그 상징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관객을 위한 안영나의 배려이다. 동시에 문자는 그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는 단서이기도 하다. 논리화된 의식을 따라 그의 작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순간 서로 다른 상징들 속에서 어떠한 의미의 긴장을 읽도록 하는 장치인 셈이다. 그것은 관념과 실체를 명확히 구분하고자 하는 것으로, 안영나는 자신의 작품세계가 관념적 세계이며 관념화 되어 있음을 명확히 보여줌으로써 실체에 집착하고자 하는 의식을 차단하는 것이다. 안영나는 그동안 많은 작가들이 매달려 왔던 실체와 실재에 대한 환상을 허물고 관념을 관념으로 바라보자고 제시한다. ● 그의 작업 주제가 꽃에 관한 것이지는 하지만, 그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 관한 것이다. 꽃이나 우주 역시 인간의 의식 속에서 피어나는 의미들이다. 그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우주의 법칙이 아니라, 꽃이라는 이미지에 투영된 인간 삶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그의 작업은 미시와 거시, 파괴와 창조, 구체와 추상, 순간과 영원, 불완전과 완전 같은 개념적 대비를 통하여 매 순간 우리의 삶이 삶의 절정임을 보여준다. 꽃의 절정은 우주의 절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꽃은 어디에나 있다. ■ 김백균

Vol.20100630e | 안영나展 / AHNYOUNGNA / 安泳娜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