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힐

Kill Heal展   2010_0709 ▶ 2010_0721 / 월,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민형_김정아_김현준_김형관 박영숙_오흥배_한슬_황혜선

주최 / KSPO 경주사업본부 협찬 / 에리블라썸

관람시간 / 10:00am~06:00pm 금~일요일_10:00am~07:00pm / 월,화요일 휴관

스피돔 갤러리 SPEEDOM GALLERY 경기도 광명시 광명로 721 4층

수천 켤레의 구두를 갖고 있었던 8세기 엘리자베스 여왕, 11cm힐의 4분의 1을 잘라내어 가장 섹시한 걸음으로 성공을 이룬 마릴린 먼로, 섹스보다 구두가 훨씬 오래가서 낫다는 마돈나. 최근 매체에서는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 '슈어홀릭'Shoeaholic이 등장하면서 구두를 위해 방 한켠을 내주고 한 번쯤 다 신어보았을지 의문스러울 정도의 양을 소개하며 자랑스러움과 당당함을 내비치는 여성의 모습이 봇물 터지듯 등장했다. ● 거리에서는 '공중부양' 못지않은 걸음걸이와 '기예'를 능가하는 달음질을 목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뾰족한 구두를 서슴없이 벗어 보이며 아픈 다리를 주무르거나 반창고로 뒤덮는 안타까운 모습에 시선을 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김민형_1000개의 수세미로 만들어진 크나큰 하이힐_ 철수세미, LED조명, 음향장치_300×200×80cm_2008
김정아_feminine tow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08

귀찮은 것, 불편한 것, 위험한 것에 가장 취약한 존재인 인간이 가느다란 기둥에 서는 고통에 집착하는 것은 이미 본능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동물이 자손의 번창과 안위를 위해 이성에게 구애 행동을 취하듯 인간 또한 직립보행 이후 가슴과 성기가 정면으로 노출되며 하체의 근육은 팽팽하게 긴장되고 보다 맵시 있는 걸음걸이로 이성을 자극한 것이다. 비록 역사 속에서 작은 키를 보완하거나 신분의 차이를 두기 위해 구두를 착용하기도 했지만 이는 구두의 가장 일차적 '서비스' 에 불구하다. 마네(Edouard Manet)의「올랭피아」(Olympia, 1863) 속 여인이 흑인 하녀를 두고 매일 싱그러운 꽃다발을 받으며 당당하게 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던 몸에 부드러운 뒤꿈치가 내비치는 에로틱한 구두로 많은 남성들을 유혹했기 때문이며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오전 11시」(1926),「햇빛 속의 여인」(1961),「호텔방」(1931)속 어질러진 침대와 나신임에도 그녀가 초라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 신겨진 구두와 침대 곁에 흐트러진 구두 때문이다. ● 단 한 켤레의 구두는 모든 여성의 욕망이 담겨져 있다. 신데렐라나 콩쥐처럼 재투성이에서 단번에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왕자에게 각인되어 인생을 역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며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 같이 언제나 나에게 환상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구두를 신은 것만으로도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실현시킬 수 있는 하나의 마법이고 '치유'다.

오흥배_Bodyscape_캔버스에 유채_162.2×116.8cm_2009
황혜선_모든 기억의 그것처럼_영상_가변설치_2007

김민형, 김정아, 박영숙, 오흥배는 구두를 성적 욕망의 장신구이자 여성 그 자체로 바라보고 있다. 뾰족하고 매끈하고 군더더기 없이 잘 빠진 곡선의 맵시는 여성의 몸과 같다.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고 나르시시즘을 불러일으키면서 발, 다리, 허리 등에 고통과 상처를 주고는 오랜 시간을 함께해야 비로소 한 몸인 듯 친숙해진다. 유독 구두에 잘 끌리는 대상이 여성인 것도 구두와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김민형은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 그 아름다움을 사로잡을 수 있는 구두에 대한 욕망을 거대하게 가시적으로 나타냈다. 여성으로서 지니고 싶은 구두의 숫자는 여성으로서 지니게 될 천 개의 '수세미'로 표현한 것이다. ● 김정아 또한 하이힐에서 풍기는 아우라와 같이 독립적면서도 사회적으로 높았던 남성의 권력에 대등할 수 있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표출하였다. 우뚝 캔버스 한가운데에 서 있는 구두는 지표(地表)로부터 묘한 마법을 뿜어내는 듯하다. ● 오흥배는 남성적 시선에서 바라본 구두를 신은 여성의 뒷모습으로 구두를 신어 팽팽하게 긴장된 익명의 다리로부터 성적 충동을 느끼게 한다. 발이 조이고 변하고 다리에 무리가 가하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빨간 구두' 동화를 연상시킨다. ● 황혜선은 개개인의 기억 속 또는 작가의 기억 속에 있는 구두에 대한 느낌,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며 공유하고자 한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감촉 속으로 발을 집어넣을 때의 기분, 평소보다 살짝 높아진 시선, 타인이 바라보는 나와 기분 좋은 시선, 그리고 부러움의 표현, 짜릿한 구두 굽 소리. 우리가 구두를 신을 수밖에 없는 쾌락적 기억을 작품과 나 사이에서 긴밀하게 떠올리게 한다. ● 모든 여성이 빨간 구두 동화 속 여주인공의 비참한 결말에 끔찍해 하거나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저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동조하고 있다. 자신에게로 동시에 쏟아지는 부러움과 질투심으로 인한 충만감은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보고 싶은 경험이기에.

김현준_RMCB446_카드보드_32×19×9cm_2009
김형관_shoe#2_종이에 컬러테이프_100×100cm_2007

구두는 오래전 신분의 상징이었다. 귀족들만이 신을 수 있었으며 그들만이 앞 코가 길게 디자인되고 화려한 보석이 박힌 구두를 신을 수 있었다. 이렇게 타인과는 다르게 발을 치장하고 꾸미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알리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 만능과 소비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든 살 수 있으며 누구나 물건값을 지급할 자본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들일 수 있다. 구두는 여성에게 있어 성적 정체성과 자신감을 부각하게 시키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사물이다. 노소(老少)를 떠나 몸에 걸치는 옷 이외에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가방과 구두다. 누구나 동등하게 소비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타인보다 자신이 더 부각 되고 부러움의 시선을 즐기기 위해서는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 보다는 훨씬 가치 있고 한정적인 '명품'이어야 한다. 그것은 드러내놓고 위시하지 않아도 명품 자체가 '사회적 기호'로서 타인의 시각에서 빚어낸 부러움으로 표출되어 우월함과 자신감으로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 하지만 이 명품을 얻기 위한 욕망으로 우리는 구두에 구속된다. 한껏 예쁜 몸매와 빛깔로 눈과 마음을 현혹 시켜 커다란 비용을 지불하게 하고는 다달이 우리를 유혹하고 충족되지 않는 더 큰 욕망을 갈구하게 만든다. 하지만 많은 여성은 이러한 점에 당당하게 대가를 지불한다. 당연하다. 내가 더 아름답게 보인다면, 이렇게 소비할 수 있는 나의 능력을 알아봐 준다면, 그리고 내 자신이 무엇보다 떳떳하고 만족해하면 되니까.

박영숙_DREAM GIRLS-DREAM & FEA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24cm_2008
한슬_shoes collect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260cm_2009

김현준, 김형관, 박영숙, 한슬은 습관적 또는 본능적으로 구두에 끌리게 되는 직접적 동기인 시각적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화려하고 원색적이고 선명한 색감, 조명, 진열장, 고급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 등 소비하게 만드는 디스플레이를 다양한 재료를 통해 보여준다. ● 김현준은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버려진 종이 박스를 이용해 매일 소비가 이루어지는 공간의 사물을 만든다. 자연스럽게 백화점이나 명품관의 진열 스타일로 이루어져 있지만 한낱 제품의 포장지이던 박스의 표면은 그대로 살아있다. 신을 수조차 없는 종이 구두는 유독 브랜드를 쫓는 우리의 부질없는 욕망을 드러낸다. ● 김형관은 원색의 컬러 테이프를 이용해 우리를 '지름신' 으로 만드는 수많은 구두를 마치 장애물처럼 또는 판매점의 진열대로 표현한다. 하지만 이렇게 방대하게 널린 구두는 단순히 구매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각자의 신발장에서 주인의 눈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구두를 떠올리게 한다. ● 박영숙은 패션잡지의 한 부분을 연출한다. 반질반질한 잡지의 광택을 입은 구두는 판매되기 위해 꾸민 조명과 배경 속에서 자신의 피부를 과도하게 발광한다. 굳이 어느 브랜드라고 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와 유사한 혹은 같은 브랜드를 관자(觀者)의 화폭에 그리게 된다. ● 한슬은 잡지가 아닌 매장에 우리가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반듯하게 일렬로 진열된 구구는 만지지 못해 안타깝고 신지 못해 안달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인 것이다. 작가의 시선은 바로 수많은 여성의 시선이며, 작가가 소원하는 캔버스 위의 명품구두는 우리의 지갑을 여는데 장고(長考)의 시간을 거치게 하는 위시리스트의 디자인인 것이다. ● 이미지와 조형화된 작품은 각자의 발에 꿰어볼 수는 없다. 물론 차갑고 매끈한 재질의 감촉 또한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쇼 윈도우 앞에 서서 비싼 액수에 괴로워하면서도 이미 소유한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황홀하게 상상하게 하며 우리를 또다시 구두 앞에 데려다 놓는다. ■ 위아름

Vol.20100709i | 킬힐-Kill Heal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