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Collector

한국에서 컬렉터 되기展   2010_0805 ▶ 2010_0811

designed_Studio Viel spass

초대일시_2010_0807_토요일_03:00pm

* invitation only

참여작가_김연수_김영재_양유연 참여디자이너_Studio Viel Spass(김자현, 이지연) www.vielspass.co.kr

주최_곰가죽_소노팩토리 기획_임성연

관람시간 / 11:00am~09:00pm

소노팩토리_SONOFACTORY 서울 마포구 동교동 204-54번지 태성빌딩 1층 Tel. +82.2.337.3738 www.sonofactory.com

『Becoming a Collector』전은 한국 미술시장에서 다양한 컬렉터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품과 작가에 대해 이해하고 작품을 수집하게 되는지 그 이야기를 모아 펼쳐보는 전시이다. 몇몇 지인들과 유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곰가죽' 모임은 1900년대 초 프랑스 파리에서 결성된 14명의 컬렉터 모임인 '곰가죽'에서 유래한다. 예술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 그 장벽이 너무 높아 쉽사리 컬렉터의 길을 선택하지 못했던 예술감상자들이 모임을 통해 미술에 대해 공동으로 고민하고 생각한 그 성과로 이번 전시를 열게 되었다. 『Becoming a Collector』전은 구성원들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마련한 장이 아니다. '한국에서 컬렉터의 위치는 어디인가?'라는 공동의 문제의식을 내부 스스로도 반성해 보고 전시와 텍스트를 통해 외부로 확산하기 위한 노력의 가시적 성과물이다. ● 전시 구성은 크게 이지현, 김도균, 장승효, 송명진 등 40대의 작가층으로 안정된 기법을 통해 상업화랑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과, 고등어, 구교수, 서지형, 박승훈 등 2-30대 초반에 막 미술시장에 입성한 작가군, 그리고 전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진작가 섹션으로 이루어졌다. 신진작가 세 명, 김연수, 김영재, 양유연은 '곰가죽' 모임이 공동으로 논의하여 선정한 작가들이다. 대학원을 다니거나 이제 막 졸업한 20대 중반의 젊은 작가들이 전문가의 눈을 통해 평가되지 않고, 미술애호가, 혹은 미술수용자들의 눈에 의해 평가되고 그 가능성들이 발견된 것에 이번 전시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김연수_어른이 되자_종이에 수묵담채_130×130cm_2008
김연수_고추밭 그녀_종이에 수묵담채, 금박_96×127cm_2010

동양화를 통하여 일상의 관계성을 담고자 한 김연수 작가, 현대 사회의 개인이라면 한 번쯤은 느껴봄 직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소소한 감정들, 하지만 쉽게 표출하지 못하는 상황들을 김연수 작가의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이 살아가면서 형성해 놓은 관계를 위해 현대인들은 상대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숨기려 한다. ● 김연수 작가의 작업을 감상할 때 작품 속에서 인물과 인물, 인물과 배경, 혹은 인물과 사물 간에 존재하는 여러 장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면을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자신을 돌보지 않아서 여자의 치맛자락을 살짝 쥐고 있는 아기를 보면서 우리는 쉽게 가족을 떠올리면서도 가족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엇인가가 결핍된 느낌이 들게 된다. 유일하게 아기만이 여자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자를 바라보는 (여자) 아이,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족의 모습에서 아이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아이가 왜 작품 속 여자를 봐야 했으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조심스럽게 상상해 보게 된다. (「가족의 이유」) 그렇게 여자로 살다 보면 누군가 한 사람은 지쳐버렸고, 다른 한 명은 입술을 굳게 다물게 되는 상황을 접할 수도 있게 된다. 이 둘의 관계보다는 이 둘이 바라보는 시선 끝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상상해 보자. 약간은 화가 난 여자, 그리고 자포자기한 모습의 여자, 사회적 시선에서 팜므파탈을 정의하는 누군가가 있는 한 자유로울 수 없고, 때문에 의식화된 자기 검열 때문에 더 이상의 격한 감정을 애써 숨겨야 하는 상황이라면......정말 지칠 만하다. (「질투」) ● 아이의 모습에서는 양귀비꽃처럼 매혹적이고 예쁘고 싶은 아이의 욕망은 일그러져 보인다. 미디어 혹은 사회가 만들어낸 '여성성'의 강요 때문에 아이의 본능적 거부감은 아닐까? 아이와 인형이 입은 복장과 혹은 장신구를 통해 우리는 인형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생물에서조차도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그런 유년기의 상황들, 그렇기에 아이의 눈 주변에는 우리가 보는 것은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아는 화장법이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 낸 욕망을 자신의 육체 안에 넣으려는 멍이 들어 버린 듯한 모습이다. (「양귀비」, 「어른이 되자」) 중국 역사 속 최고의 미인으로 일컫는 양귀비, 아름다움을 위해 전족을 해야 했고, 그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뒤따라오는 죽음에서 종종걸음을 걸어 최후를 맞이했던 양귀비의 운명처럼 「고추밭 그녀들」에서 보이는 남성성 혹은 견고한 사회적 인식 앞에서 쓰러져 가는 여성, 그리고 여성성의 모습을 읽어 볼 수 있다. ● 작가는 이런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첨가함으로써 인물들 간 혹은 인물과 사회인식의 관계 속에서 복잡한 감정의 실마리를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수묵화만의 특징을 통해 개개인의 사소한 감정이 결국에는 경계의 어느 지점에서 조용히 사그라들어버리듯 표현한다. ■ 이기언

김영재_머리 No. 1, No. 스폰지에 실리콘_각 40×38×35cm_2009
김영재_게 꿈_손톱, 드로잉북_19×26×1.8cm_2004

김영재에게 미술은 '살아 있음에 대한 증명'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과에서 공부하고 취업이 잘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던 작가는 수능 원서를 쓰는 순간 갑자기 전공을 미술로 변경하였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평생 책상에 앉아 있는 자신의 뒷모습을 상상하는 순간부터 하나의 부속품이 아닌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는 긴 여정은 시작되었다. 생에 대한 증명은 크게 두 가지의 모습으로 보인다. 한번은 역동적인 모습의 모더니즘적 조각으로, 다른 한번은 집착적일 만큼 집요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 '머리'와 '뿔' 시리즈는 사람인지 동물인지 모호한 형태와 '손맛 나는' 거친 표현기법을 이용하여 제작되었다. 이 작품들은 얼핏 보기에는 단단하고 영속적인 조각적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말랑말랑한 스펀지 위에 염료로 조색한 실리콘으로 마무리하여 가변적이며 촉각적인 조형물이다. 처음 조각이란 것을 배우기 시작할 때 뼈대에 흙을 붙여 두상을 만든다. 김영재가 제작한 머리들도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조각의 기본형태에 강렬한 원색적 색채와 거친 표현기법을 덧대어 가장 반 조각적인 방식의 결과물로 완성되었다. 머리와 뿔은 살아 있는 생명체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다. 작가는 "내 안의 격한 감정들이 뭉쳐 그것을 점점 더 자라나게 하고 있었다. 그것을 내 안에서 꺼내고 싶었다. 그것은 결국 돋아나는 나를 뚫고 나왔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머리와 뿔 작품들은 작가가 아직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살아 있음의 에너지, 잉여물들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때로는 그 에너지가 작은 형태 안에 응축되어 나타난다. 머리와 뿔 시리즈가 작가 내부의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외부로 끄집어내어 그것을 바라보고 실체를 인지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손톱으로 만들어진 "영웅"은 자신의 일부를 분리해 타자화하고 그 타자를 통해 자신의 내부를 관조하게 한다. "영웅"에서 사용된 손톱은 모두 작가 몸의 일부분이었다가 자라나면서 그 효용성이 없어져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 손톱들이 모여 아주 작은, 해골의 형상을 만들지만,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영웅'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에, 신체에서 분리된 손톱은 반대로 작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이 항상 의문을 품었던 내부의 에너지들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자신의 영웅이다. ● 빠른 손놀림으로 제작된 머리, 뿔 시리즈, 강한 필체의 드로잉 작품들, 돋보기를 봐야 할 정도로 작지만 정확한 해부학의 손톱해골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김영재의 작업은 전반적으로 조형적 완성도가 높고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다. 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이제 막 자신의 작품활동을 독자적으로 시작한 작가는 왜 자신이 작업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강렬한 생명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다양한 범주의 상징물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여전히 그는 답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지만, 그의 작품이 지닌 완성도와 조형성을 통해 가능성은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 임성연

양유연_지나친 장난_장지에 채색_53×45.5cm_2009
양유연_내가 안 그랬어_장지에 채색_54×45.5cm_2009

수십 번의 회색 칠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화면 속의 검은 색은 작가 자신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흔적)이자 잘 보이지 않는,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흉터이다. ● 뛰어가는 아이가 넘어진다. 피가 나는 아이의 무릎에 엄마가 마법 연고를 바른다. 좀 더 과장하면 흉터는 남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상처는 치유될 수 있지만, 흉터는 남는다고 생각하고 그런 기억은 흉터로 말미암아 개인 과거사에서 재미있는 일화로 남겨진다. 여기에서 작가가 반대 의사를 표한다. 우선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하지만, 흉터는 가릴 수 있다. 좋은 의미에서 하는 말은 아닌 듯하다. 한 가지 생경한 예를 들어보자. 실종자를 찾는 전단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한 단락은 '신체적 특징'이다. 왼쪽 발에 화상 자국이 있습니다. 설령 당사자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몸은 그 순간을 기억하며 낯선 이들은 그것으로 사람을 구별해낸다. 확장된 의미에서 흉터는 흉이 되기보다 하나의 인격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흉터를 가린다는 것은 눈에 띄지 않게 무리에 속해 자신을 숨기고 크나큰 집단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흉터를 미처 혹은 차마 지우지 못한 사람들은 차별당하고 소외된다. 흉터는 어찌하여 남에게 비웃음을 살 만한 거리라는 의미와 함께 쓰여야만 하는 것일까. 흉터를 내보인 채,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약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조롱의 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들은 극복할 수 없음에 도전하고 실패를 통해 삶에 대한 열정을 확인한다. 개개인이 지닌 근원적인 차이는 수평적이기에 평가의 대상이 아님에도 이 시대가 사회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능력과 헌신을 측정하기 위해서 개(별)성은 하위 층위로 밀려나 버렸다. 목소리도 잃은 채 낯선 풍경 속에 던져진 인물들이 외로워 보이는가. 사회적 역할에 충실한 타자화 된 주체의 표현이라는 작가의 말이 사회의 중심에 발 담그지 못하는 소수 집단으로 해석된다면 당신은 자신의 흉터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외로운 사람이 맞다. 지각하지 못한다는 인식의 부재는 눈을 가리고, 입을 막으며 방향을 잃은 채 휩쓸려 가는 오늘날의 인간 군상에 불과하다. ■ 정현우

Vol.20100805g | Becoming a Collector–한국에서 컬렉터 되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