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화 山水遊畵

조풍류(조용식)展 / CHOPOONGRYU / 趙風流 / painting   2010_0811 ▶︎ 2010_0817

조풍류_운주사_한지에 호분, 분채, 석채_220×26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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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풍류(조용식) 채색화 사랑 카페_http://cafe.naver.com/art24

초대일시_2010_081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_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실경으로 확인 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이상화된 자연 ● 동일한 자연을 대상으로 하지만 산수와 풍경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원칙적인 의미에서 풍경이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와 재현에 중점을 두는 것이라면, 산수는 자연을 통한 이상적인 경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풍경은 대상을 취하는 방식을 구도(構圖)라 하고, 산수는 포치(布置)라 한다. 구도가 화면의 물리적인 구성을 강조함에 반하여 포치는 작가의 의지에 의한 자연물의 변화와 경영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풍경이 육안(肉眼)에 의한 객관적 표현을 기본으로 한다면, 산수는 심안(心眼)을 통해 자연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재구성 할 것을 요구한다. 풍경화의 근간이 되는 원근이나 투시법은 바로 객관적인 자연의 상태를 재현하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이에 상응하는 것으로 종종 회자되는 산수화의 공간표현 방식은 삼원법(三遠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원, 고원, 심원으로 이루어진 삼원법의 요체는 원근과 투시의 물리적인 공간표현이 아니라 그러한 느낌이 나는 심리적인 공간을 화면 속에서 표출해 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듯 풍경과 산수는 자연의 객관적 표현과 그 이상화라는 서로 다른 가치체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조형행위라 할 것이다. ● 작가 조용식의 작업은 산수와 풍경의 절충적인 양식을 채색으로 표현해 냄을 특징으로 한다. 실경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화면은 다분히 풍경적 시각을 띠고 있으나, 이를 조형화하여 표출한 결과는 주관적인 해석이 가미된 것임이 여실하다. 특히 부감의 시점을 차용하여 공간을 확보하고, 산이나 논, 혹은 밭과 같은 이미지들을 개괄하여 표현해 내는 방식은 산수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는 풍경의 합리성과 산수의 이상성이 결합된 것으로 전통양식의 현대적 수용, 혹은 산수와 풍경의 절충적 화면이라 해설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러한 조형 방식은 산수라는 전통적 화목과 현대라는 시간성의 접점에서 그 좌표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닌 산수는 동양회화의 가장 대표적인 화목으로 성장, 발전하였으나 지나친 관념성으로 경직된 형식주의로 흐르고 말았다. 이에 대한 대안과 방편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실경이라는 개념일 것이며,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산수 본연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실경의 기본 정신일 것이다. 그러나 실경은 대상의 객관적 사실의 표현에 지나치게 주목함으로써 풍경에 근사한 양태를 띠게 되었으며, 결국 자연의 이상화라는 산수 본연의 덕목을 일정 부분 양보하여야만 했다. 작가는 풍경과 산수의 절충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에 접근하고, 실경과 채색이라는 방법을 통해 이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것이라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통과 현대라는 민감한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대단히 흥미로운 모색인 셈이다.

조풍류_정선가는 길_한지에 호분, 분채, 석채_194×130cm_2008
조풍류_꽃봉산에서 바라본 산청마을_한지에 호분, 분채, 석채_130×194cm_2007
조풍류_제주-오름_한지에 호분, 분채, 석채_130×325cm_2007

작가의 화면은 일견 합리적인 원근과 투시의 방식을 차용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평면화된 것이다. 비록 원근을 구분하고 크고 작음을 나누어 화면에 합리성을 확보하지만, 그 본질은 이미 객관적인 자연의 기계적인 묘사와 재현에서 벗어나 작가의 주관과 조형의지에 의해 자연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실경, 혹은 객관적 상태의 자연은 비록 작업의 근간을 이루지만, 이러한 가공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화면은 이미 조형적으로 가공되어진 또 다른 자연이다. 즉 자연의 이미지를 취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포착되어진 의상(意像)은 작가의 주관이 가미된 의경(意境)으로 변환됨으로써 이상화된 자연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 화면에 나타나는 정형화된 소나무의 양태는 고전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고, 원경에 위치하는 산의 표현은 단순한 선과 면으로 재구성되어 독특한 양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대상을 특징에 따라 개괄하여 전형화 하는 고전적인 산수화의 조형방법과 유사한 것이다. 더불어 화면에 나타나는 시점은 한 곳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두루 사방을 조망하고 고루 시선을 나누는 파노라마식의 시점과 일정한 높이에서 풍광을 조망하는 것이다. 이는 대상을 응시하는 풍경의 시점이 아니라 자연을 관조하는 산수적 시각의 반영이다. 그것은 자연의 풍광을 채집하여 이를 작업의 소재로 삼는 목적성에 앞서 그 속에 들어가 술 마시며 놀고 한가로이 거닐며 동화하는 과정 속에서 절로 얻어지는 감동과 흥취이다. 목적에서 벗어난 유희 같은 행위를 통해 자연의 본질에 육박하고, 무심한 듯한 교유와 교감의 과정을 통해 그 요체를 파악하는 것은 분명 동양적 자연관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산수적 시각의 발현이다. 모름지기 산수의 요체는 산수라는 자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간의 관계에 대한 균형적 이해를 통해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작가의 화면에는 객관이라는 현실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대상의 취사선택과 위치의 경영으로 이루어진 자유롭고 풍부한 상상의 공간이 확보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약 작가의 작업을 단지 실경이라는 제한적 의미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작업이 내재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간과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작가는 실경을 전제로 자신의 주관을 투영하며, 이를 산수라는 전통적인 이상의 공간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조풍류_고란사_한지에 호분, 분채, 석채_54×108cm_2007
조풍류_선학동의 지는해_한지에 호분, 분채, 석채_60×120cm_2008

전통적으로 채색은 장식적이며 기능적인 것으로 분류되고 인식되어 왔다. 이는 전적으로 전문적인 화공의 몫으로 치부되며 문인으로 대변되는 지식계층의 수묵과 병칭되었다. 동양회화의 전통이 수묵을 중심으로 한 남종문인화로 일관됨으로써 채색의 조형적 발휘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제한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굳이 채색을 통해 동양회화 전통의 실체를 구성하고 있는 산수를 재해석하고 구현하고자 함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분명 채색화의 전통성을 되살린다는 상투적인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풍류_폭포_캔바스에 호분, 분채, 석채_41×33cm_2010

작가의 화면은 채색을 조형의 근간으로 삼고 있지만, 그것의 내용은 정치하거나 장식적인 기능적 화면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거칠고 투박하고 둔중하고 질박한 것이 특징이다. 작가가 한동안 천착했던 정교한 해바라기의 채색화의 경우를 통해 본다면, 그의 채색에 대한 기능적 운용과 해석 능력은 이미 일정수준에 올라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화면에 나타나는 이러한 독특한 특질은 사뭇 의외로 여겨질 정도로 이질적인 것이다. 이는 분명 채색이라는 재료의 기능적 운용의 우열의 결과는 아닐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이러한 독특한 표현을 통해 우리산천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특질을 표출해 내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것은 수묵과 채색으로 구분되는 전통적인 재료관을 넘어서는 것일 뿐 아니라, 산수와 풍경이라는 조형관에서도 벗어나 우리민족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심미관과 감성에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라 여겨진다. 작가의 화면에는 정녕 정치한 채색의 아름다운 장식성 보다는 투박하지만 질박한 우리 산천의 모습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들의 소소한 삶이 따뜻한 시각으로 포착되어 있다. 작가의 화면에 나타나는 채색의 양태는 완성되어진 정치함 아름다움이 아니라 투박하고 질박한 표현으로 또 다른 맛을 표출해 내고 있다. 견고한 바탕을 지지체로 삼아 마치 회벽을 바르거나 벽화를 그리는 듯한 작가의 작업은 작은 재치에 탐닉하거나 채색의 말단적인 기능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님이 여실하다. 그것은 분명 색채를 지닌 채색의 형식이지만 순간적이고 우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무수한 변화를 내재하고 있는 수묵의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전적으로 현대의 풍광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오히려 고졸하고 둔탁한 전통의 맛을 느끼게 한다. 작가의 작업이 전통과 현대의 민감한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해석은 바로 이러한 복잡다단한 조형언어에서 발산되고 있는 복합적인 이미지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 작가는 분명 실경을 전제로 하지만, 이를 산수의 형식으로 수용하여 채색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그만의 독특한 자연관을 구축해 내고 있다. 실경의 생명력에 산수의 이상화를 가미함으로써 획득되어진 독특한 화면은 지나치게 크고 감당할 수 없는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펼쳐지는 자연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통해 우리미술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내용들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작가의 이상화된 세계는 실경이라는 육을 통해 확인된 이 땅의 자연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들에 대한 애정이었던 셈이다. 작가의 작업지향과 추구는 어쩌면 극히 추상적인 것인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이미 이를 구체화하여 표출해 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오늘의 성과가 그가 추구하는 모든 것을 확인시켜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전통적인 내용들에 대한 현대적인 수용과 해석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그의 시도와 그 성과는 분명 가시적인 것이다. 이는 비단 작가 개인의 성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질곡에 빠져 있는 모든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건강한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전개 과정과 성과가 자못 기대되는 것이기도 하다. ■ 김상철

Vol.20100811b | 조풍류(조용식)展 / CHOPOONGRYU / 趙風流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