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h Report

진기종展 / ZINKIJONG / 陳起鍾 / mixed media   2010_0819 ▶︎ 2010_0919 / 월요일 휴관

진기종_걸프만의 노예_디오라마, 혼합재료, 유리관_110×236×105cm_2010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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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819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_16번지 GALLERY HYUNDAI 16 BUNGEE 서울 종로구 사간동 16번지 Tel. +82.2.722.3503 www.16bungee.com

지구에 대한 아날로그적 명상과 고찰 ● 어느 소설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써 놓았다. "첫 작품은 어리버리 자기가 무슨 글을 썼는지도 모르고 세상에 불쑥 나와 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가가 된 후 작정하고 쓴 두 번째에서 진정한 솜씨가 나온다. 등단작보다는 두 번째 작품이 진짜다." 진기종. 그가 두 번째 개인전 『지구 보고서 Earth Report』를 열었다. 모든 작품은 디오라마와 조각이다. 2년 전 첫 개인전 『방송 중 On Air』 은 모두 잊으라는 듯 그는 철저히 아날로그를 들고 나왔다. 그의 격자형 영상작업을 기억으로 붙잡고 전시장에 들어선다면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다.

진기종_걸프만의 낭만_디오라마, 혼합재료, 유리관_106×106×91cm_2010_부분
진기종_헐리웃 섬 N34 W118_디오라마, 혼합재료_110×90cm_2010_부분

지금을 박제하고 싶다 ● 대표작으로 꼽는 디오라마 설치작업은 일리야 레핀(Ilya Repin, 1844~1930)의 『볼가강의 배끄는 인부들, Barge Haulers on the Volga』이 모티브다. 「걸프만의 노예」로 재탄생한 진기종의 작업은 19세기 러시아 볼가강에서 밧줄로 힘겹게 배를 끄는 노동자들이 다국적 기업의 유조차를 끄는 처지로 바뀌어 있다. 무리를 이끄는 세 사람의 얼굴이 낯익다. 원작이 있는 시각 예술 작업은 많다. 새로운 매체를 실험하기 위해서, 어떤 예술사조 탄생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는, 혹은 원작의 재료와 다른 매체를 선택하면서, 참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오마쥬와 차용을 선택했다. 진기종 그도 그런 작업을 하고 싶었나보다. 원작의 차용은 작가에게 두 가지 이점이 있다. 하나는 원작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메시지를 자신의 작업에 얹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진기종은 사실주의의 대가로 알려진 레핀의 대표작을 차용함으로써 당시 사회의 무게를 현재로 고스란히 연결시킨다. 부차적인 설명이 필요 없다. 원작의 이미지만으로도 자신의 작업을 이야기할 수 있는 편리함과 약간의 변형을 통한 위트는 보너스다. 힘겹게 배를 끌면서도 노트북의 유가 그래프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이의 표정은 블랙 코미디다. 다른 이점은 위대한 작가를 이해하고 있다는 작가의 지적 탐구력을 살짝 폼낼 수 있고, 자신을 위대한 작가와 동일선상에 둘 수 있다. 오히려 원작을 넘어선 무언가를 제시할 수 있다는 자기 규정적 포장도 가능하다. 이런 해석이 작가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괜한 걱정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이점만 있을 리 없다. 어설픈 차용은 안하니만 못하다. 쉽게 가려다 돌아가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원작보다 진부하면 안 된다. 유치해도 안 된다. 진기종은 평면의 이미지를 디오라마로 공간에 일으켜 세웠다. 디오라마는 실제의 장면을 재현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아주 정교한 오브제로 만들어 연출하는 전시 기법이다. 박물관과 과학관에서 많이 사용한다. 서구의 제국주의와 힘겹게 싸우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쟁 장면, 태양열 주택, 전기자동자, 풍력발전기 등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친환경 미래도시 전경 같은 것 말이다. 이런 디오라마는 전시 기법 중 구식에 속한다. 요즘은 인터렉티브니 증강현실이니 해서 컴퓨터, 카메라 등을 사용해 관람객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는 전시 기법이 첨단으로 통한다. 네모난 틀 속에 늘어선 작은 미니어처들을 그저 보기만 하는 디오라마는 아무래도 '올드(Old)'하다. 그런데 그는 첨예한 대립의 사건을 담는 그릇으로 구식의 디오라마를 선택했다. 표현형식으로 보자면 자신의 주 종목인 비디오설치작업 보다는 집약적인 손작업이 돋보이는 디오라마와 조각이 개념 전달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의 현재를 박제하고 싶었을까. 그는 우리가 겪고있는 현재도 언젠가는 먼지를 뒤집어 쓴 체 박물관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을 전시물처럼 기억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는가. 진기종이 표현방식에서는 첫 번째 개인전과의 결별을 바랬을지 모르겠으나, 「걸프만의 노예」는 그의 관심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디오 설치작업 「CNN」과 「Aljazeera」에서 제기한 의문은 「걸프만의 노예」로 마무리된다. 유조선을 선두에서 끌고 있는 세 사람의 관계를 파악하고, 그들로 대표되는 이라크 전쟁의 원인이 결국 석유쟁탈에 있었음을 분명히 한다. 이어 그의 관심사는 화석연료의 사용과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그에 따른 환경파괴의 결과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한다. 「걸프만의 낭만」은 분명 반전이다. 자유를 외치는 남녀의 발아래에는 파도와 섞인 석유 드럼통들이 둥둥 떠다닌다. 검은 바다에 서서 두 남녀가 지르는 소리가 환호인지 비명인지는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두 남녀는 바람 때문인지 포즈 때문인지 위태롭다. 드럼통은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으나 절대로 두 사람의 소유가 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치열한 쟁탈을 통해 얻은 석유는 바다에서 떠돌고 있다. 소유한 듯 하지만 절대로 소유할 수 없다.

진기종_아마존 N46 W112_디오라마, 혼합재료_112×76cm_2010_부분
진기종_지중해 N34 W18_디오라마, 혼합재료_120×80cm_2010_부분

객관적 거리두기 ● 2층은 조각과 반부조 평면작업의 공간이다. 방사능에 노출된 것으로 의심되는 안면 기형의 아기는 론 뮤엑(Ron Mueck, 1958~ )의 「가면, Mask」을 연상시킨다. 눈을 감고 있는 「가면」과 달리 찬란히 빛나는 눈동자는 똑바로 마주하기가 불편하다. 머리가 두 개이고 몸뚱이는 하나인 샴 금붕어. '제발 이런 물고기를 먹지 않게 하소서' 라는 기도문이 저절로 외어진다. 트랙터가 더벅머리를 깎아 내는 바리캉 마냥 야금야금 먹어가는 아마존의 밀림, 지구온난화로 인해 잘려나간 빙산 조각 위에 몸을 의지한 어미곰과 아기 곰. 해수면이 차올라 크루즈 관광 코스가 되어 버린 할리우드 언덕. ● 진기종이 이번에는 현실에 발을 디딘 것이 확실하다. 미디어가 우리를 속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의문을 얼기설기 불안정 구조물의 설치작업과 비디오 영상으로 비틀었던 첫 번째 개인전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인식에 대한 그만의 풀이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항공사진을 틀에 넣어 찍어낸 듯 아크릴과 디오라마, 조각에 고정된 이번 작업들은 그가 우리에게 닥친 환경 문제를 실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과욕의 결과가 슬슬 우리의 존재마저 위협하는 이러 저러한 작금의 현실을 표현하기에 손에 잡히지 않고 날아가 버리고 마는 디지털 영상은 적절치 않다. 아날로그 오브제만이 가능하다. 가상이란 없다. 모든 비쥬얼은 실제에서 불러왔다. 현실로 돌아온 주제는 부피감이 있는 물질 안에 담겨야 한다. 그러나 그는 몰입하지 않는다. 작업은 첫 번째에서 그랬던 것처럼 휴먼스케일이다. 난파된 유조선, 빙산 조각을 돛단배로 삼은 곰 가족, 아마존의 밀림을 파먹는 트랙터를 작가는 손가락 두 마디의 크기로 압축시켰고 모든 상황은 한눈에 들어온다. 상황에 매몰되지 않는 관조자의 시야다. 진기종은 우리의 현실이 어떤지 확인하라고 좌표까지 꼼꼼히 기록했다. 그런데 이 슬픈 광경들은 추하거나 남루하지 않다. 아기자기하고 보기에 아름답다. 이게 웬일인가. 슬픔을 슬프다 하지 않기에 더 서글퍼지는 이 착잡함이란. 현실은 아름답다고, 미래는 우리의 노력에 의해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고 안일한 오해는 하지 않는다. 진기종은 그저 보이는 데로 보여줄 뿐이다. 토를 달지 않고 해석을 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가 이 모양새라고 묵묵히 보여줄 뿐이다. 그러므로 그를 섣불리 환경예술가로 일컫지 말기를 부탁한다. 전시장 지하에는 두 개의 작품이 있다. 「지중해 N34 W18」 옆의 「검은새」 는 조금 더 무게가 나간다. 난파된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은 바다만 오염시킨 것이 아니라 생명까지도 오염시켰다. 뒤집어 쓴 검은 기름을 털어내려는지 양 날개를 펼친 새는 움직일 여력도 없이 기름으로 범벅이 된 채 웅크리고 있는 어린 새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다. 온몸을 감싼 검은 빛으로 더욱 도드라지는 빨간 눈은 불안하고 두려워 보인다. 이런 장면은 눈에 익다. 기름 유출 사고가 날 때마다 아이콘처럼 등장하는 고발 사진의 한 장면이다. 죽음의 기운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숨을 쉴 수 없다. 우리는 이 지구에 무슨 짓을 하고 살고 있는 것인가.

진기종_기찻길 시리즈 1_디오라마, 혼합재료_30×72cm_2010
진기종_아이-001_혼합재료, light box_50×50×160cm_2010

독백과 질문들 ●『지구보고서 Earth Report』 의 작업들이 갖고 있는 조형적 무게감이나 또는 작가가 스스로 제기한 이슈들(에너지 전쟁에 대한 다른 시각,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그 결과들)의 심각성에 비한다면 이번 진기종의 작업이 표현의 방식과 표현의 시각, 그리고 스케일에서 가볍게 비쳐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사안의 중함에 대해 거리를 두는 재주는 오히려 사실을 더욱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그려낼 수 있는 힘이 된다. 사물에 대한 사실적 묘사, 소재에 대한 현실적인 선택을 사실주의라고 한다면 진기종이 실천하는 사실주의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라는 '정보적' 사실주의를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에너지, 기후, 환경은 '문제'로 다가왔다. 유기농 먹을거리가 일상화 되었고,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남태평양의 어느 섬나라는 몇 년 만 있으면 아예 나라가 없어진단다.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못한다. 현재의 안락함을 반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싸우고 착취한다. 첫 번째에서도 그랬지만 두 번째에서도 진기종은 '과학적'인 아이템이 담긴 주제를 모티브 삼는다. 그렇다고 그를 과학홍보대사로라도 위촉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진기종은 아마 화들짝 놀랄 것이다. 그는 천성이 그런 것 같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가되, 우리의 현실을 간과하지 않고 무감하지 않게 반응하는 것이 그가 사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는 과학자들이 감탄해 마지 않는 작업들을 연이어 내놓고 있는 것 같다. 잊었다. 「기찻길」을. 증기기관 열차가 한 대 지나가고 있다. 기차 화물칸에는 나무, 석탄, 석유 순으로 이산화탄소 발생의 주범인 화석연료가 실려 있다. 한사람이 유조통 위에서 아래의 문장 쓰기를 끝마쳤다. "환경은 약한 자들의 통치자이며, 지혜로운 자들의 도구이다." 진기종이 우리에게 원하는 지혜는 무엇일까. 우리는 지혜로운 자인가 약한 자인가.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 곽수진

Vol.20100820e | 진기종展 / ZINKIJONG / 陳起鍾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