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영도 Elegant Void

책임기획_조새미   2010_0908 ▶︎ 2010_0930 / 추석연휴 휴관

초대일시_2010_0908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연경_이연주_김현주_최영선_김민선_김영미_천우선_조새미

연계세미나 - 미적기능과 공예 2010_0916_목요일_02:00pm~05:00pm / 갤러리 이우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추석연휴 휴관

갤러리 이우_GALLERY EWOO 서울 종로구 팔판동 44-2번지 Tel. +82.2.3445.2550

Elegant Void_ '완벽하게 있는 것'에 대한 열망 ● 부재(absence), 그리고 영도(零度)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부재, 공백의 의미 추구는 중국 남송의 화가 목계(牧谿)의 송림도나 추사 김정희 의 세한도에서 사물의 사실성이나 구조를 재현하지 않고 넓은 여백으로 제시되었듯, 현대 예술가들에 의해 현재성과 부재성(presence and absence)이 탐구되었듯, 많은 철학자, 예술가들의 관념의 원천이었고, 2010년 현재에도 여전히 종교적 그리고 철학적 열망의 대상이다. '영도(零度)'는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순간에 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계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투명성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1953년 저작 『글쓰기의 영도(Le Degre zero de l' ecriture)』에서 백색의 글쓰기, 영도에 대해 처음 언급했는데, 이 영도와 부재는 어떤 '징조'와 '가능성'의 힘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계성이 있어 보인다. ● 이 전시에 참여하는 여덟 명의 젊은 현대 공예가의 작업에서 비워진 공간을 발견한다. 이 비워진 공간에서 사유하는 힘과, 일상 속의 비일상과 연계되는 통과의례적 공백도 발견된다. 작업을 물화시키는 주체로서의 작가와 그 결과물로서의 작업, 그리고 그것의 관람자로서의 관객 사이에서도 비워진 공간이 발견된다. 그리고 이 비워진 공간은 '없음'의 상태, 어떤 '징조'이기에 우리를 사유하게 한다.

김연경_The Jar of Tears II_Rock crystal, platinum plated, sterling silver_76.5×34×10.5mm_2009

김연경은 "보석연마란 투명한 원석 속에 빛을 담아내는 작업이라 정의할 수 있다"고 밝히며 작가에게 보석연마 과정은 반복 노동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작가의 비우고 싶은 열망을 원석을 파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재현하기도 하였는데 「눈물단지 (The Jar of Tears)」(2009) 시리즈에서는 펜던트로 착용될 때 다소 혼란스러운 시간성도 개입된다. 다시 말하면 음각으로 수정(rock crystal)에 새겨진, 따라서 실체는 없으되 음각의 공간(negative space)를 통해 시각화되는 누군가의 눈물의 재현은 사진이 그러하듯 눈물이 흘러내리는 순간이 포착되어 있고, 착용자의 움직임과 빛의 조합에 따라 마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연주는 무념(無念)에 이르는 길,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는 방법으로서의 도구와 반복적인 행동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불교의 염주, 천주교의 묵주 등 반복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기도 도구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빛'이라는 요소가 외적인 요건에서 작가의 내적 요소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작업의 주제로 삼고 있다. 반복적인 행동을 유발시키는 도구의 제작에 있어 주물 등 복제를 목적으로 하는 기법의 적용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된다.

이연주_The Light is Needed_Korean lacquer, gold leaf_20×15.5×4.5cm_2009
이연주_The Light Beams_Brass, gold plated_ 길이 60cm, 두께 1.6cm_2010
김현주_A Lamp for a Meditative Space #6_Silver, brass_24.5×24.5×6.5cm_2007

김현주는 「묵상공간을 위한 램프」에서 보여주듯 '묵상'이라는 시공간으로 매개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가 만들어 낸 램프는 그 사용자에게 통과의례적 시공간을 제공하며 묵상의 공간으로의 인도한다. 그의 램프는 가변적인 구조로 빛이 퍼져나가는 형상 또는 절대자에게 기도하는 두 손의 형태와 유의성(analogy)을 갖고 있는데 이는 그 사용자로 하여금 경건한 마음을 갖게 유도할 수 있다. 최영선은 센터피스, 촛대 등의 일종의 의식용구(ceremonial object)를 주제로 작업한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일정한 형태를 반복해서 표현하고 있는데, 이 때 각각의 형태가 조합되어 있는 상태는 비어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열린 구조로 일종의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작가의 작업에서 보이는 이러한 공백은 비물질적인 무엇인가로 채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상태를 보여준다. 동시에 작가는 이러한 기념비적 성격의 오브제가 일상의 공간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역할을 발견하고 이를 동시대적 관점에서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최영선_Circular Fantasy II_Copper, K2S_43×41×12.5cm_2008
천우선_Bowl with Cracks II_Iron, copper_55×55×19mm_2007

천우선은 선을 용접하고 땜하는 작업과정을 통해 선을 면으로, 그 면을 다시 기(器)로 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기(器)는 이성적인 연결에서 어딘가 어긋나 있다. 예를 들어 입구가 좁은 편병(扁甁)의 형태인 「Bowl with Cracks Ⅱ」는 형태는 액체를 담는 용기이되 선재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그 기대되는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합리성이 단절되고, 그의 그릇이 비합리적이기에 상상력을 발동시키며 사유의 공백으로 관람자를 이끌어 낸다. 김민선은 섬세하고 우아하면서도 강인한 면모를 드러내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귀금속인 은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작가는 은의 사회적 의미를 제거하기라도 하듯 은의 물성의 재현에 집중한다. 작가는 은(silver)이 하얗게 처리되었을 때는 부서질 듯 가냘프면서도, 광택을 냈을 때는 강인한 면모를 보여주므로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표현하기에 적합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종종 보여지는 부유하는 듯한 이미지는 백색의 은이 뿜어내는 유연한 기운과 함께 몽환적인 순간으로 감상자를 유혹한다.

김민선_Alcohol Lamp_Silver 925, brass_42×42×23cm_2009
김영미_The First Experience_Silver_15×15×7.5cm_2009

김영미는 소설적 요소(narrative)를 일상과 환상을 넘나들 수 있게 하는 매개로 작업한다. 이를 구현해 내는 방법으로 재료와 기법에 있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투명 아크릴을 음각으로 파 들어가거나, 금속판에 돋을새김(chasing), 조이질, 투각 등의 전통적인 금속공예 기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나레이티브는 밀도 높은 작업으로 구현되는데, 이 경계로서의 얇은 금속판은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 안쪽과 바깥쪽 공간 모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조새미는 공예노동과 도구, 신체와의 조응을 주제로 작업해왔는데, 비디오 작업 「Silversmithing Project」에서는 판금 작업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비디오에서는 전통적인 판금 작업이 행해지고 있는데, 그 작업을 하는 사람의 성별이나 정체는 확인되지 않고 단지 일하는 손만이 등장한다. 망치 소리는 계속되지만 일을 하는 손, 그가 들고 있는 일감은 투명하여 마치 유령의 노동을 보는 듯하다. 여기서 작가는 질문한다. 과연 우리의 일(work)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조새미_Silversmithing Project_Rosewater Dish 스틸컷_단채널 비디오_2004

이 전시는 첫째, 사물의 조형미 추구는 과연 어떤 합목적성을 수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둘째, 작업의 재현 방법인 전통사회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던 공예 기법에 대한 현대 공예 작가들의 재해석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포함한다. 또한 작업을 '과정 중심적 공예'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하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2010년 현재 많은 부분 조형적 완성도 추구와 노동집약적인 작업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 한국의 현대 금속공예 작업의 어떤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 '있는(on) 것',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있지 않는(m� on) 것'들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 '완벽하게 있는 것' (to pantelo's on)인가 하는 질문에서 보다 명확해진다. 과연 작가들이 물화시키는 재료와 기법이 완벽하게 있는 것일까? 예술적 사물로서의 결과가 완벽하게 있는 것인가? 그것들이 '완벽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추구하는 그 '완벽하게 있는 것'의 의미는 그를 향한 과정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지, 작가들이 제시하는 비워진 공간을 통해 그 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 조새미

Vol.20100908b | 일상의 영도_Elegant Void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