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에서 임진강을 바라보다

도라산평화공원 개장2주년기념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초청작가展   2010_0901 ▶︎ 2010_1031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_2010_0901_수요일_11:30am

참여작가 고승현_전원길_로저 티본_루멘 디미트로브

공동주관_경기관광공사_사)한국자연미술가협회

도라산평화공원_Peace Park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장단면 노상리 520번지 Tel. +82.31.953.0409

새로운 시각장에서의 실험과 오늘날의 예술사회학미술의 시각성_자연, 환경을 통한 예술사회학 ● 이번 전시는 '금강에서 임진강을 바라보다'라는 제명으로 기획되었다. 이와 같은 전시명은 금강이라는 '시각의 발원지'와 임진강이라는 '시각의 대상'을 적시함으로써 전시의 주제를 압축해서 전달한다. 즉 이번 전시는 그동안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참여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일군의 자연주의 지향의 미술작가들의 시각으로 임진강 변 '도라산평화공원'이 함유하고 있는 분단의 문제의식과 평화에 대한 한민족의 의지와 소망을 풀어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가 남다른 점은 분단, 통일, 평화에 관한 당면 주제에 접근함에 있어서 이데올로기 실천이란 직접적 방법론으로 시도했던 그간의 예술사회학을 자연, 생태, 환경에 관한 폭넓은 담론들로 전환하여 풀어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술이 발 디디고 있는 환경과 사회의 장을 국지적인 제도적 현실계로부터 탈피 시켜 예술을 인간활동으로 바라보면서 그것을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자연계 속에 정초시키려는 것이다. 그것은 전환이자 확장이다. 달리 말해 사건들이라는 국소적인 텍스트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메스로 해부하던 예술 실천의 관점을 이제 장(場)이라고 하는 넓은 컨텍스트에 펼쳐 조망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의 사회적 책무에 관한 당장의 대안이나 문제 제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예술사회학적 인식을 드러낸다. ● 전시제명 중 '바라보다'라는 동사는 이러한 예술의 사회학적 실천에 대한 견해(view)와 더불어 시각성(visuality)에 대한 오늘날의 변화되는 인식을 잘 드러낸다. 보는 것(vision)은 대상(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시각(sight) 행위이자 그 대상에 대한 특별한 관점과 견해(view)를 함축한다. 오늘날의 시각성은 그런 면에서 감각과 관련한 단순한 눈의 범주로부터 확장하여 현실계에 실존하는 몸으로서의 시각 주체를 야기한다. 또한 오늘날의 시각성은 시각 주체들이 사회와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들을 여실히 포함한다. ● 그런 면에서 '바라보다'라는 동사를 내건 이번 전시는 이제 무엇을 볼 것인가라는 질문들로부터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들로 선회한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가능성 있는 답변(들)은 '금강에서 임진강을 바라보다'라는 전시명 안에 함축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임진강(시각 대상, 텍스트, 창작 주제)과 금강(시각 주체, 장소성, 컨텍스트, 창작 방법론)의 대비 개념 속에서 이것을 다음처럼 쉽게 추출해 볼 수 있다. 즉 임진강을 '금강이 금강의 입장에서 금강의 방식'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실험의 시각장_자리 이동하는 텍스트와 컨텍스트 ● 임진강이 상징하는 분단, 통일, 자유, 평화에 대한 주제의식을 금강의 방식으로 보고자 하는 시각주체는 한국인만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는 고승현, 전원길(한국) 외에 로저 티본(필리핀), 루멘 디미트로프(불가리아) 4인의 미술가들이 참여한다. ● 이들 모두는 '금강자연비엔날레'에 참여해왔던 작가들이다. 이들은 늘 자연의 깊이에 대해서 성찰하고 자연의 넓이에 대해서 남다르게 고민해왔던 작가들이다. 이들의 작품은 임진강이라는 외연적인 물리 환경과 역사 공간으로 자리 이동했지만, 설치작품들에는 금강에서 보여 왔던 자연의 내포적인 속성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금강의 입장과 보기의 방식은 출품작들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렇지만 미시적 차원에서 이러한 보기의 방식과 그것으로부터 감지되는 색깔은 참여 작가들마다 다르다. 복수의 참여자들에게서는 언제나 그들만의 차별화된 보기의 방식들이 드러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 사회, 문화, 전통이 확연히 다른 필리핀과 불가리아의 두 작가들이 전시에 다른 목소리들로 참여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다른 두 목소리들이 의미 있게 들리는 까닭은 그들 역시 치열한 민주화의 과정을 한국과 비슷하게 겪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참여작가들이 그것을 몸으로 맞닥뜨려 체험하며 그들만의 작가정신으로 키워왔던 까닭이다. ● 필리핀은 주지하듯이, 스페인, 미국, 일본으로부터 순차적으로 오랫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던 뼈아픈 과거사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공산주의와의 투쟁을 거쳤고 십여 년간 지속된 마르코스 독재정권과의 투쟁을 통해서 1986년 비로소 '피플 파워'의 민주화를 성취하였다. 불가리아 역시 로마제국, 비잔틴제국, 터키의 오랜 식민지 시대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었고 이후 동유럽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1989년 비로소 민주화를 성취하면서 1991년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였다. ● 한국, 필리핀, 불가리아 동일하게 제국들에 의한 식민 통치라는 굴욕의 역사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80년대 말에 공산주의 혹은 독재정권으로부터 비로소 민주화를 성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제국(특히 미국)의 후기 식민지적 위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동질적 현실의 바탕에서 민족이 분단 상황에 있는 한국적 현실에 대한 미술적 성찰은 이번 참여작가들 모두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 이번 전시는 역사와 시각이 각기 다른 네 작가의 자유와 평화와 대한 공동의 기원이 각기 다른 목소리들의 울림으로 반향되어 결국 의미 있는 하모니를 이루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 차원에서 금강의 입장에서, 금강의 보기 방식을 통해 임진강(더 정확히는 도라산평화공원)을 살펴보려는 시도는 이내 임진강을 텍스트의 위상으로부터 컨텍스트의 위상으로 바꾸어놓기에 이른다.(또는 텍스트의 위상에 컨텍스트의 위상을 더한다.) 즉 시각의 대상으로 살펴지던 임진강을 창작의 바탕이 되는 시각장(視覺場)으로 변모시켜놓은 것이다. ● 임진강은 그래서 금강에서 활동하던 참여작가 4인에게는 그간의 컨텍스트로부터 자리 이동한 새로운 컨텍스트이자 새로운 예술적 모험과 소통의 실험이 기대되는 시각장이 된다. 소통의 시각체제_몸의 눈과 마음의 귀

고승현_평화의 소리-도라산 가야금 Sound of Peace-Gayageum of Dora Mountain_소나무, 줄_2010

작가 고승현(한국)은 이번 전시에 작품,「평화의 소리-도라산 가야금」을 출품했다. 그는 죽은 나무의 상처 난 몸체로부터 껍질들을 벗겨내어 치유하면서 고목의 몸체 안에 가야금과 같은 형태의 울림통을 만들어 자연 본질에 이미 내재했던 '아프리오리(a priori), 즉 선험적 존재로서의 소리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한민족의 삶과 한국사의 상징인 소나무로부터 울려나오는 장중한 소리(실제적, 상징적)를 시각화함으로써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기원하고자 시도한다. 관객들의 참여와 더불어 자연의 바람결이 함께 만들어 내는 '울림의 소리'는 보기의 시각성에 듣기의 청각성을 오버랩시키는 작가의 새로운 시각체제이다. 그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몸의 눈과 마음의 귀를 통합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그의 이번 출품작은 금강에서 오랫동안 모색해오던 자연과의 대화라는 화두를 임진강변 도라산평화공원이란 새로운 시각장에 적용되기를 시도하는 하나의 실험이다. 그가 금강에서의 시각체제를 컨텍스트가 다른 임진강변에 이식하는 모험을 두려움 없이 감행하는 까닭은 예술을 통한 인간의 모든 정화의식이 자연의 본질성으로부터 근원한다는 강한 신념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원길_눈물 Tear_철판, 물, 센서_2010

작가 전원길(한국)의 작품「눈물로 자라는 식물」은 고승현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형식이지만, 몸의 눈과 마음의 귀를 통합하는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양자 모두 유사한 시각체제와 공동의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전원길은 등신대를 넘어서는 직육면체의 물탱크를 만들고 남과 북을 향한 양쪽 면에 사람의 눈을 은유하는 두 개의 구멍을 각각 뚫어 그 구멍으로부터 인근 호수의 물이 지속적으로 흘러내리게 하는 작품을 설치했다. 물줄기의 흐름이 센서에 의해 작동하는 작품은 관객의 참여에 따라 마치 눈물처럼 흐르고 멈추기를 지속한다. 작품 아래 실제의 담쟁이를 심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넝쿨이 자라나도록 한 장치는 즉발적인 시각성의 특성 안에 시간의 속성을 깊이 잠입시킨 시각체제를 드러낸다. 그것은 DMZ라는 경계의 물리적 공간성을 역사의 시간성 안에 유동적이게 하는 그 무엇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즉 그의 작품은 과거의 역사(혹은 관객의 기억) 속에 잠재하고 있던 전쟁과 분단, 슬픔, 상처, 아픔의 심리적 과정들을 현실계로 불쑥불쑥 튀어나오게 하는 '현실화의 장치'이자 '심리적 장치'가 된다. 작가는 남북 간 인간 단절의 공간이자 아픔과 상처의 공간인 DMZ가 현재는 자연과 생태의 풍요로운 자유 공간이 되어있는 아이러니에 주목하면서 관객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그런 까닭에 그의 '눈물로 자라나는 담쟁이'는 한국사에 대한 풍부한 은유이자 작금의 현실에 대한 통철한 상징인 셈이다.

로저 티본_평화의 가교 Bridging Peace_철사, 나무_2010

작가 로저 티본(필리핀)의 작품「Bridging Peace」역시 몸의 눈과 마음의 귀가 통합된 시각체제를 보여준다. 호수를 배경으로 다리 양 편 위에 올라선 두 사람이 마지막 다리 잇기를 위해서 힘을 합치고 있는 순간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자연스럽게 남과 북 상호간의 평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낸다. 단절된 남북을 하나로 잇고 소통하게 하려는 모두의 염원을 상징화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전쟁으로 인한 과거, 분단으로 인한 현재적 상황이라는 역사적 시간성과 현재의 공간성이 대등한 힘으로 만들어내는 긴장감으로 인해서 작품의 메시지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그의 작품을 대면하는 관객들로서는 마음의 귀로 듣는 메시지의 울림이 몸의 눈을 통한 시각적 경험보다 더 강렬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명징한 작품의 메시지를 위해서 그가 만유공통의 언어인 시각언어를 유효적절히 사용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루멘 디미트로프_배로 건너는 문 A boat through the gate_나무

작가 루멘 디미트로프(불가리아)의 작품「Crossing Gate with Boat」역시 소통의 시각체제를 통해 임진강변 도라산평화공원이라는 새로운 시각장에서의 실험을 도모한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흥미로운 지점은 분단, 통일, 자유, 평화라는 무겁고도 자못 심각한 주제를 가벼운 놀이와 즐거운 상호작용으로 풀어보고자 하는데 있다. 작품은 4미터가 넘는 높이의 거대한 문 사이에 매달아놓은 보트로 형상화되었다. 남과 북의 방향으로 열려져 있는 거대한 문은 하나의 상징으로 소통의 염원이 현실화되는 지점이자 남과 북 사이의 투명한 접촉지대이다. 그 사이에 매달려 관객들에 의해서 흔들리는 그네처럼 오고가는 반복운동이 가능해진 보트의 존재는 통일의 실현을 위한 우리의 소통의 노력들이다. 작가는 관객들이 그 보트 위에 시소를 타듯이 실제로 올라앉을 수 있도록 했다. 남과 북의 경계의 해체를 상징하는 거대한 문과 그 사이를 오고가는 보트를 통해서 작가는 이데올로기에 대항해온 인간 본연의 자유의지의 승리를 예단한다. 즉 그의 작품은 보트를 타고 남과 북을 오고가듯이 도모하는 일련의 즐겁고도 신명나는 소통에의 노력들에 의해서 통일은 실현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염원을 사뿐히 담아내는 것이다. '예술의 정치화'_오늘날의 예술사회학 ● 이렇듯 4인의 작품들은 도라산평화공원이라는 새로운 시각장에 조용한 변화를 도모한다. 분단의 현실과 통일에 대한 미래적 비전이 교차하는 안보관광지라 할 이 공간에 참여작가들은 기존의 '예술의 사회학'의 방향성과는 다른 지점을 모색한다. 앞서 살펴본 '금강으로부터의 시각성', 즉 자연성에 대한 성찰이 그것이다. ● 발터 벤야민은 '예술의 정치화'와 '정치의 예술화'를 구분한다. 정치의 예술화는 이데올로기를 선정, 선동하기 위해 사용하는 예술을 의미한다. 일테면 나치즘과 파시즘 선전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 예술들이다. 이와는 달리 '예술의 정치화'란 기술적 복제 시대에 이르러 예술의 종교적 가치와 아우라가 소멸한 이후 당연하게 등장한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론이다. ● 오늘날에도 '예술의 정치화'는 여전히 미술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미술가가 호흡하고 살고 있는 컨텍스트 속에서 펼치는 창작의 과정이자 결과물인 텍스트는 미술가 개인의 성과물이면서도 온전히 미술가 개인으로부터 비롯된 것만이 아니다. 미술 텍스트는 미술가를 매개로 한 사회의 순전한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외국작가 2인이 함께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여전히 분단의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미술에게 부여된 '예술의 정치화' 즉 예술의 사회학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몸과 마음으로 자문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소통의 시각체제 속에서 꾸려진 이번 전시가 모든 관객에게 오늘날의 정치, 사회적 현실을 과거로부터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곱씹어보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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