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연상 Reminiscence after Death 死後聯想

윤진영展 / YOONJINYOUNG / 尹眞英 / photography   2010_0903 ▶︎ 2010_0916 / 월요일 휴관

윤진영_Reminiscence after Death 206_C 프린트_125×10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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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903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온_GALLERY ON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지하 1층 Tel. +82.2.733.8295 www.galleryon.co.kr

역겨움과 매혹의 경계에서 ● 윤진영은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먹는 친숙한 음식의 재료를 사진으로 요리한다. 그것들은 대개 영양분이 되어 체내로 흡수되고 나머지는 배설되며, 그것을 먹는 개체의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 우리는 다름 아닌 우리가 먹는 것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러나 윤진영의 작품에서 먹을 것들은 우리와의 동화작용을 거부하고 이물성을 강조한다. 자연이라는 날 것은 요리를 통해 문화로 변모하며, 요리의 경우 문화적 차이에 대해 민감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작품은 단지 기이한 소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너무나 화려하게 장식된 실제의 요리가 때로 식욕을 잊게 할 정도의 경탄을 자아내듯, 윤진영의 괴상한 '요리' 목록은 단지 먹고 싶다는 욕구를 넘어 상상의 세계로 연결된다. 전시부제인 'Reminiscence after death'는 사후연상의 과정을 강조한다. 부제에 일련번호만을 추가한 제목이 붙은 사진작품들이 벽에 걸려 있으며, 빔 프로젝트로도 상영된다. 작품들은 검은 배경에 한 대상을 놓고 찍은 것과 작은 식재료들을 평면적으로 깔고 찍은 것으로 나뉜다. 먹어야 사는 동물인 인간에게 식재료들은 지상의 삶을 지속시키는 유익한,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는 대상이지만 동시에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하는, 형이상학이나 과학기술을 동원한 온갖 초월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연에 묶여 있는 인간의 운명을 떠오르게 하는 불쾌한 대상이기도 하다. 윤진영의 작품에는 누군가의 삶은 누군가의 죽음의 댓가라는, 애써 부정하고 싶은 진실이 드러나 있다. ● 거기에는 생과 사, 아름다움과 추함, 쾌락과 고통 같은 역설적 감정이 교차한다. 먹히기 위하여 자연적 형태가 재구성된 식재료 위에 양념처럼 첨가된 화려한 문양은 역설적 경계 위에서 충격과 의미를 낳는 그로테스크의 미학과 관련된다.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에 설정된 미묘한 경계 위에 인간의 몸이 끼어든다. 제작 방식은 투명한 판에 데칼코마니를 만들어서 사진을 찍고 그것을 배열된 식재료 위에 프로젝터로 투사하여 다시 사진을 찍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데칼코마니는 여러 연상 작용을 낳는 얼룩들이지만, 삶과 죽음이 짝패처럼 얽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적 장치가 된다. 작가는 요리를 하면서 식재료에 양념을 바르다가 그 과정이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는 작업 과정과 유사함을 생각했다. 뱅어포에 고추장을 바르고 배추절임에 고추 양념을 하는 느낌으로 식재료에 문양을 넣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초반 대학원에 다닐 때부터였다. 예원, 예고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지만 미대가 아닌 생물학과에 진학하고, 국내외의 대학원에서 다시 사진을 전공한 이력에 요리를 담당했던 주부로서의 역할까지 가세하면서 특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산물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윤진영의 작품에는 과학적 분석과 심미적 상상력, 그리고 실생활의 체험으로부터 나온 발상들이 종합되어 있다. 작품들은 재료 선택 과정부터 특이해서, 따로 조작을 하지 않은 거의 스트레이트로 찍은 것도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개체가 떼로 뭉쳐진 채 납작하게 압착되어있는 뱅어포나 쥐포 같은 것은 단지 사진으로 확대하여 주목의 대상으로 만든 상태만으로도 특이하다. 우주에 흩어져 있는 별이나 미지의 혹성처럼 보이는 그것들에는 선택된 재료들 자체가 주는 압도적 느낌 또한 보존되어 있다. ●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갖가지 엽기 사진들이 디지털 차원의 조작을 거친 것이 많다면, 윤진영의 작품에서 조작은 아날로그 차원에서 거의 이루어진다. 이미 생명을 잃고 자체의 힘으로 형태를 유지하기 힘든 물컹거리는 식재료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형태와 질감, 색깔을 최대한 살려 배치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물질 자체에서 발생하는 느낌은 코드의 합성만을 통해 이미지를 산출하는 것과 비교될 수 없는 생생함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전의 작업에서, 생선 내장을 꺼내 배치하는 것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즉물성과 우연성을 살린다. 생선이나 김치를 재료로 한 작품에서는 컴퓨터상에서 대칭의 조작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조작은 재료의 물성에 내포되어 있는 본래의 색채와 형태에서 야기되는 기괴함을 부연하는 차원이다. 김치는 예외적으로 식물적 재료이지만, 젓갈에 의해 숙성된 재료이며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감, 그리고 생선 눈과의 결합을 통해 또 다른 생명체(또는 사체)로 변신한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양념색인 붉은 색조는 생명의 재료들에 담긴 죽음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식재료는 그자체가 일종의 시체이며, 소화되고 배설되며, 방치되면 쉽게 상한다. 시각에 의존하는 사진에는 냄새라는 차원이 생략되어 있지만, 작품을 위해 생선 쓰레기통을 뒤지고, 특히 신선도를 유지하는 시간이 짧은 한여름에 죽음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재료들과 씨름하는 과정은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 각종 젖갈, 마른 멸치와 새우, 뱅어포 같이 자잘한 재료들은 인간에게 쉽게 섭취되기 많이 가공을 거친 것이며, 그 위에 새겨진 데칼코마니 무늬는 관객의 심리상태에 따라 다양한 연상을 낳는다. 꽃잎처럼 보이기도 하는 돼지 껍데기, 얼굴 또는 변기 모양으로 배열된 문어들 위에 새겨진 무늬와 색감은 원재료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통닭이나 돼지 다리 같이 대략 형태를 금방 알아 볼 수 있는 재료에 투사된 무늬는 더욱 강력하게 작용하여, 가면이나 사람의 얼굴, 인형 같은 모습이 떠오른다. 윤진영의 작품에서 공통적인 식재료 위에 투사된 물감자국은 또 다른 생명을 위한 죽음이라는 역설과. 명확한 경계를 와해시키는 체액의 비유를 통해 동시대에 첨예하게 제기되고 있는 몸의 담론과 만난다. 이번 전시의 작품은 생선 적출물들이 난무하던 이전 작품보다는 '얌전한' 편이지만 이전부터 유지해온 주제의식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의학 사진이나,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19세기의 사후 사진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관심은 명확히 구별되어야 할 삶과 죽음의 범주를 혼란시키는 그녀의 작업과 이어진다. 인간에게 보는 즐거움은 생의 아름다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근대 이전의 공개처형장이나 근대의 시체 공시소 등에 몰려든 구경꾼들을 특징 지웠던 것은 나의 살아있음을 확인시키는 타자의 죽음, 나의 정상을 확인시키는 타자의 비정상이었다.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쾌와 불쾌를 나누는 경계선은 확실하지 않다.

윤진영_Reminiscence after Death 106_C 프린트_100×125cm_2010

경계를 흐리는 윤진영의 작품 속 이행적 대상(transitional object)은 오염된 음식물이나 배설물을 떠오르게 한다. 문명과 주체를 세우는 규칙에 의해 배제되는 비천하고도 공포스러운 대상들이 작품의 전면에 배치된다. 공포와 비천함(abjection)이라는 주제를 연결시킨 줄리아 크리스테바의『공포의 힘』에 의하면, 앱젝트란 '정체성, 체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 경계, 위치, 규칙을 무시하는 것'이다. 오물, 쓰레기, 고름, 체액, 시신 등은 모두 앱젝트이다. 앱젝트는 인간 생활과 문화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배제하는 것이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압젝션을 초래하는 것은 청결이나 건강의 결핍이 아니라, 정체성, 조직, 질서를 방해하는 일이다' 앱젝션은 내부에 있는 것인지 외부에 있는 것이지 모호하기에 위협적이며, 위협적이면서도 매혹적이다. 주체와 문명을 위해 배제해야 하지만 뗄 수 없는 이면을 이루는 것이다. 윤진영의 작품에서 음식의 본질을 벗어나는 어중간하고 미결정적인 존재는 경계와의 불안한 관계를 드러낸다. 비천한 것은 문화의 상징적 질서와 초자아에 의해서 밀려난 것이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사회와 주체의 동일성이나 정체성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비천함은 삶의 종말인 죽음이나 죽음을 앞당기는 병의 이미지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출생으로부터 시작된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원형적 비천의 체험은 모체로부터의 난폭한 축출이라고 할 수 있는 출생자체의 체험이다. ● 전문 요리사가 아니라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는 적출물들이 등장하는 윤진영의 이전 작품들에서 비천과 출산의 이미지는 보다 직접적이다. 문어 몸에서 꺼낸 내장들이 죽 배열된 2004년의 한 작품은 살아있거나 이미 죽은 태아 같은 느낌을 준다. 어떤 경계와 한계를 터뜨리고 분출되듯이 태어나는 생명의 이미지는 죽음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인간의 상상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여성에게 비천함(그리고 매혹)의 이미지는 멀리 떨어져 있던 적이 없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방식 자체 때문에 순순히 승화될 수 없는 타자화 된 여성이 사회의 지배적 상징체계에 의해 배정받은 자리이다. 식재료 위에 투사된 데칼코마니는 시뮬레이트된 체액을 연상시키며, 몸의 안과 밖을 뒤집는 배설적 체험을 야기한다. 그것은 역겨우면서도 카타르시스를 야기한다. 비천함에 대한 크리스테바의 논지는 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의 오염의 상징체계에서 끌어온 것이다. 상징으로 이루어진 문화의 체계를 세우는 것은 순수와 오염을 나누는 경계선인데, 그것은 위반되기 마련이다. 윤진영의 작품에서 식재료로 환원된 것들은 종이 모호하며, 여기에 덧입혀진 또 다른 피부(데칼코마니 무늬)는 고유의 육체에 대한 경계를 와해시킨다.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개체의 경계가 오염됨으로서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상징체계가 위협받는다. ● 메리 더글라스는 오염의 중심에 신체를 놓으며, 모든 오염의 상징체계의 초점이 육체인 것처럼, 오염의 관념이 도달하는 궁극적 문제는 육체의 붕괴라고 말한다. 육체의 경계를 확정짓는 것은 건강이나 정체성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종교나 정치 등 사회질서의 근간이 된다. 가령 종교적 신성함은 천지창조를 할 때 범주를 명확하게 구별할 것을 의미한다. 성서는 가축의 종을 섞지 말 것은 물론, 무늬를 넣는 것도 금지한다. 메리 더글라스에 의하면 성스러움은 분리해야 할 것을 분리하는 문제에 속한다. 각기 다른 범주의 사물이 뒤섞이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성스러움은 개인과 종의 통일이며 완전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주어진 체계나 계열에 일치하지 않는 요소들이 늘 있기 마련이다. 경계선이 불확실한 곳에서는 언제든지 오염의 관념이 출현하지만, 경계선 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위험과 접촉하는 것이고 능력의 근원에 존재하는 것이다. 종교와 예술이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성스러움/ 불경, 순수/오염, 유혹/역겨움의 범주 구분이 모호한 영역들이다. 종교에서 부정한 것, 즉 오물과 피는 정화작용으로서의 희생제의와 늘 연결되어 있었다. 모호함에서 시작되어 모호함으로 흘러가곤 하는 예술에서 추함은 아름다움과 분리될 수 없이 얽혀 있다. 종교나 예술의 체험에 의해 범주들 자체가 상대적이며, 반대되어 보이는 것들은 한 실체의 이면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윤진영의 기괴한 작품은 경계지울 수 없는 것을 경계지움으로서 확립된 미의 자율성의 이전과 이후, 즉 전(前)현대적이고 탈(脫)현대적인 감수성에 속해 있다. ■ 이선영

윤진영_Reminiscence after Death 227_C 프린트_100×125cm_2010

사유의 식탁에서의 알레고리적 형상화, 사후연상 ● 윤진영은 식재료를 탈문맥화시켜 조형적으로 배열한 후 이를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덧입혀 그로테스크한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해낸다. ● 20세기 중엽의 독특한 미술기법으로 초현실주의 화가인 막스 에른스트(Marx Earnst)가 사용하기도 했던 데칼코마니 기법은 일반적으로 곰팡이나 해면을 연상시키는 색다른 무늬가 생기며 대칭과 반복이라는 특성을 보이는데 작가가 배열한 대상 위에 데칼코마니를 덧입히면 식재료의 질감, 형태, 색감과 어우러져서 추상적인 이미지가 획득된다. 데칼로마니 기법의 적용으로 사진은 일종의 '낯설게 하기' 방식으로 인지적 감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런 행위는 윤진영 작업의 주요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그로테스크함을 데칼코마니의 대칭적 무늬를 덧입히는 방식을 통해 변형시켜내는 과정을 통해 작품 전체에 표현주의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며 모호한 형상을 표출시킨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은 물감을 직접 화폭 위로 붇거나 떨어뜨리는, 의미로부터 자유로운 물감의 흔적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 관객의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했는데 이는 대상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하며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 존재의 생성, 소멸의 과정이 관객의 내면에서 느껴지게함으로 인해 관객이 수동적으로 작품을 보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형상의 길을 개척하게 한다. 윤진영의 작업에서 데칼코마니 기법의 적용은 물리적 물성의 개념들을 일종의 추상적 양태로 이끌어 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투명한 물감이 흘러내리는 듯한 인상과 느낌은 '의미의 미끄러짐'을 통해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귀결되지 않는 다중의 시니피에를 생산해내는데 기여하는데 관객이 시각적 자극물을 통해 무엇을 연상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을 자연스레 거치게 한다. ● 마가레테 브론스가 지적했듯이, "형상이 신비로운 것은 그것들 속에서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것들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알게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인식하게 된다"는 사실이다(마가레테 브론스,『눈의 지혜』, p. 22 中에서). 형상은 우리 안에서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형상을 만든 사람 또한 처음부터 그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 형상은 우리 존재의 모든 부분과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결합되어 있고 눈이 어떻게 스스로를 볼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없으며 실제로 형상은 감각기관과 같은 것으로 제3의 눈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에 눈을 맡기는 사람은 개입하는 시선과 언어를 벗어난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사고의 요소로 자율적인 본질은 지닌 형상은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바라보는 정신의 눈으로 나타난다. 그 눈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시선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

윤진영_Reminiscence after Death 220_C 프린트_120×80cm_2010

처음 윤진영의 사진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특정한 부분을 절단, 배열하여 재구축하는 방식인데 이런 행위는 대상들을 전체로 통합될 수 있는 총체적인 이미지가 구성하는 연속성의 맥락에 두면서도 대상들의 개별적 가치를 재발견하게 하는 전략적 사고의 한 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사진은 일종의 인용구이기도 하기에 사진을 모아놓은 책은 인용구를 모아놓은 책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진에 관하여』, 114-122에서)라는 수잔 손택(Susan Sontag)의 언급에서 나타나듯이, 다양한 방식으로 읽힐 수 있는 사진책들은 인용구로 이루어진 책과 같은 특성을 보이는데 이는 다양한 사진 이미지를 결합하고 재배열하는 과정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윤진영의 작업에서 볼 수 있듯이,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나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감응하는 사진, 연속성의 해체를 통해 각각의 사진적 요소를 작가 자신의 새로운 카테고리에 배치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사진가는 개별적 대상 본래의 관습적 의미를 해체, 분리, 결합하는 방식을 통해 대상의 개별적 언어를 발견하고 그것이 전체로 통합되는 관점 속에서 사진가는 지워지고 개별적 대상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 자신만의 내재적 표상과 그것에 의한 전체로서의 통합된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적절하게 조작이 가해져 탈문맥화(decontextualized)되는 과정을 거쳐 작품이 완성된다. ● 이런 작업은 작가의 지극히 주관적인 인상에 의해 대상의 가치를 새롭게 창출하여 표면에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가 대상을 하나하나 배열하고 데칼코마니로 덧입히는 과정은 보이는 현상보다는 사물 혹은 공간에 직접 접촉함으로써 형성되는 촉각적 방식을 통해 대상의 본질과 만난다는 전제를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 각각의 개별적 대상을 몽타주의 방식으로 배열하고 그 위에 데칼코마니 방식을 덧입혀, 알레고리적 형상화를 이뤄낸다. ● 보이는 것은 각각의 개별적 분산된 대상이지만 그것들은 매번 다른 방식으로 마주침을 통해 다양한 인식을 만들어낸다. 자율적이면서고 느슨하게 연결되는 부분이 전체의 개별적 가치를 포함하는 전체의 일부로 기능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각각의 부분들이 대상과 그것에 대한 사유라면 그것들 사이의 관계의 의미부여 방식에 관한 자율성과 다양한 방식의 인지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이번 작업 시도의 요약이다. ● 발터 벤야민은『아케이드』프로젝트에서 19세기의 파리의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1820년대에 나온 책부터 당대에 출간된 책들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양의 책을 절단, 채취하여 비체계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배열하였다. 벤야민은 개념적인 언어로 사물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이념적 층위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도록 했다.

윤진영_Reminiscence after Death 221_C 프린트_100×100cm_2010

사실상 표현으로서의 알레고리는 일종의 '다르게 말하기' 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의미를 생성하고 진정으로 대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암호'라는 점에서 상징과 알레고리는 공통점을 가지나 근본적으로 상징은 일원적 의미에 관여한다면 알레고리는 하나의 의미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의미를 향해 미끄러져 간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보인다. ● 윤진영의 작품이 보여주는 알레고리적 형상화는 그녀의 관심사인 생명과 죽음, 그로테스크와 아름다움의 경계에 관한 물음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다. 그녀의 사진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여러 개의 층위로 된 이미지, 다시 말해 재배열된 식재료와 그 위에 덧입혀진 데칼코마니 형상이지만 그것은 눈 앞에 그대로 보이는 대상이 아닌 각자의 주관적인 연상에 맡겨진다. ● 윤진영의 작품이 보여주고 있듯이, 관습적 재료의 체계를 교란, 해체 시키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재료를 창출하는 것은 예술가의 창조적인 사고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예술적 재료는 이런 점에서 예술가의 생각에 외재(外在)하는 예술적 환경 혹은 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하나의 이미지는 과거에는 국지화(局地化)되어 있었으나 재료를 변용하고 감수성, 예술적인 개념적 사고의 변화 및 확장을 통해 우리들의 시각 혹은 청각적 감각의 미지의 수용 능력이 개발되어짐으로 인해 개념으로서의 이미지는 공간화되고 상상할 수 있는 다중의 공간과 문맥 속에 놓여지게 되었다. 예술가는 이미지의 모든 요소들에 대한 총체적이면서 분석적인 통제를 하는 새로운 눈,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개념들, 새로운 범주들을 가동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윤진영의 작업은 조형적이기보다 이론적이며 새로운 종류와 성격의 미학적 관점이 요구된다. 이러한 미학적 관점을 수립하는 한 가지 방법 중에, 이른바 실험에 기반한 지각심리학적(cognitive-psychological) 방법이 있을 수 있다. 1921년 독일의 심리학자 로르샤하(H. Rorschach)에 의해서 창안된 검사인 로르샤하 테스트 (Rorschach test)는 서로 10장의 서로 다른 잉크 얼룩 그림을 보여주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통해 내면의 모습을 알아보는 방법으로 무엇으로 보이는지, 어떤 부분이 그렇게 보이는지, 전체 반응의 수 등을 보고 분석한다. 일련의 막연하고 무의미한 잉크얼룩에 의해 한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지각반응을 분석하여 그 개인의 인격성향을 추론하는, 투사적 검사법(projective test)의 하나이다. 이러한 분석 작업은 대상에 대한 과학적인, 존재론적인 그리고 인식론적인(epistemological), 지각심리적인 이해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또한 예술적 차원들에 대한 사람들의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명백하게 구성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조작과 변용의 행위들을 거기에 가하고 거기서 얻어진 결과가 윤진영의 작품이라면 작가는 하나의 조각적 행위를 한 셈이며 그녀의 예술에 대한 사유 방식과 제작 방식을 통해 전통적인 조각가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 낸 것이 된다.

윤진영_Reminiscence after Death 224_C 프린트_100×100cm_2010

무엇이 혐오스러운 것이고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에 대한 작가의 물음은 이번 작업에서도 계속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가 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능동적 행위가 때로는 잔혹하게 혹은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아름답게 읽혀지기를 기대한다. 식재료와 어우러진 데칼코마니의 연상작용을 통해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시각을 경험하고자 한다. 나는 사진을 통해 무의식, 상상의 세계를 요리하고 칠하고 덧입힌다. 나에게, 있는 그대로 눈에 보이는 세상은 두렵고 요란할 뿐이다." ● 이번 작업의 소재는 이전 작업과 마찬가지로 식재료들인데 식재료는 무엇보다 여성에게 친숙한 재료들이라는 점에 그녀의 여성적인 감수성을 느껴봄과 동시에 다소 그로테스크한 식재료들의 알레고리적 형상화 속에서 인간의 먹는 행위 이면의 폭력성과 생명성을 상기해보게 된다. 2006년「Metamorphosis」에서 작가가 식재료의 혐오스러운 각 부위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한 상태를 사실적 기록상태로 남기는 방식으로 그로테스크함과 아름다움의 경계에 화두를 던졌다면 2008년의 작업「The Edibles」는 여러 가지 식재료들을 인간의 얼굴 형태로 형상화 하며 음식을 먹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삶을 연장해가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생명의 딜레마와 삶의 진실에 대한 단상을 보여주었다. ● 이번 작업에서 여러 가지 식재료의 조형적 배열을 기반으로 데칼코마니로 덧입혀진 전체로서의 총체적 이미지는 개별 이미지가 모여 합쳐진 전체, 혹은 개별의 이미지로 인지되게 하는 과정을 통해 간과하기 쉬운 대상의 다양한 면모와 그 세부를 각인시키며 간과하게 되는, 식재료와 매개되는 일상적 행위가 갖는 삶의 양태를 사유하게 한다. ● 윤진영의 작업은 '이미지의 식탁이 제공하는 사유의 공간'이라 단언될 수 있으며 대상의 의미관계를 통해 획득되는 시각적 사유의 다층적 층위를 통해 예술을 통한 일상의 역설적 논의를 표현주의적 감성으로 풀어내며 삶과 죽음의, 겉으로 표상되지 않는 기저의 논의들을 표층으로 끄집어낸다. ■ 손영실

Vol.20100911f | 윤진영展 / YOONJINYOUNG / 尹眞英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