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셋? 나! SUN-SET-RISE

2010_0810 ▶︎ 2010_1101 / 월요일 휴관

이진영_오늘의 감각, The Sensibility of Toda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10

초대일시_2010_0903_금요일_06:00pm

2010_0810 ▶︎ 2010_0831 / 오늘의 감각 the Sensibility of Today 참여작가_이진영

2010_0903 ▶︎ 2010_0920 / 프리드로라인 Free Draw Line 참여작가_박미례_이경훈_하태임 오프닝 콘서트_2010_0903_금요일_06:30pm / Song Breeze

2010_0924 ▶︎ 2010_1011 / 서랍이야기 Draw the Drawers 참여작가_박향미_전수경_한상진 콘서트_2010_1001_금요일_06:30pm / Tadah Band

2010_1015 ▶︎ 2010_1101 / 포정해우庖丁解牛 Drawings 참여작가_김은주_김창언_류승환 콘서트_2010_1022_금요일_06:30pm / Canzone by Jasmin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CSP111 ArtSpac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8-55번지 현빌딩 3층 Tel. +82.2.3143.0121 blog.naver.com/biz_analyst

『선 셋? 나! SUN-SET-RISE』라는 타이틀로 기획된 CSP111 ArtSpace의 드로잉 프로젝트는 세계와의 감각적인 만남과 세계 안에 예술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현이자 원천으로서 '그림 그리기' 행위의 의미에 주목하였다. 이번 전시는 '흡입하다' '이끌어내다' / '겨루다' '걷어치다' '열다' / '이동하다' '움직이다' '정하다' '대비, 비교하여 끌어내다' / '비기다' 등 'DRAW'의 여러 동사적 의미를 세심하게 따라가며, 인트로에서 오늘의 감각(이진영), 1부 세계를 향한 열린 몸짓과 리듬(박미례, 이경훈, 하태임), 2부 꿈과 무의식, 초월에 대한 믿음(박향미, 전수경, 한상진), 3부 원융적 세계를 향한 몸짓(김은주, 김창언, 류승환)을 다루고 있다.

Intro. 오늘의 감각 the Sensibility of Today이진영은 자신의 감각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 후, 자유로운 붓질의 스트로크를 따라 화면 위에서 뒤얽힌 형색이 제 스스로 오늘의 감각을 표출하도록 내맡기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은 때로 종교적 명상이나 철학적 사유의 과정, 혹은 심원하고 원초적인 생명력 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반길 법한 이러한 찬사에 이진영은 오히려 자신의 그림에는 깊이와 무게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보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누구나 볼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 역시 누구나가 대중적으로 좋아하는 것이며, 자신의 화면에서 누군가 에너지를 이야기한다면 오히려 대중소비문화를 살아가는 한사람으로서 현대인의 욕망일 거라고 한다. 상황이 이러한 데 자신이 말하는 오늘의 감각에 무슨 깊이와 무게냐고 반문한다. 오히려 자신의 화면은 표피적이고 심지어는 야하다고 말하는 직설적인 발언이 당혹스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들마다 山, Y, ▽, ㆀ, Φ 등 좌우대칭의 형상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든가, 색면과 무채색의 미묘한 톤변화로 이루어진 화면들의 대비 등 향후작업에 대한 단상들은 수량적 균일과 획일적인 반복의 체계질서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와 저항들 속에서도 새로운 관계와 대안적 체계질서로서 질적 균형과 조화 등과 같은 작가적 비전을 짐작케 한다.

박미례_Copulation_종이에 먹_47×63cm_2007
이경훈_P2181715_장지에 유채_75×60cm_2010
하태임_Un Passag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10

Section 1. 프리드로라인 Free Draw Line박미례는 익숙한 현실공간 안에서 인간의 욕망이 반복적인 구조와 무의식적인 움직임 속에 획일적인 방식으로 해소되는 구조를 비디오로 드로잉해왔다. 익숙한 팝뮤직 '데이드림(Daydream)'을 배경으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쇼핑몰의 에스컬레이터, 스키장이나 놀이공원에서 속도감을 즐기는 사람들, 야구장에서 흑백(黑白)/청적(靑赤)으로 나뉘어 경쟁적 응원하는 무리 등 인공조형공간 안에서 길들어진 방식으로 해소되는 인간의 욕망은 초현실적 느낌의 낯선 풍경으로 그려진다. 또한 죽은 오징어가 산 오징어들을 끌어가고 끌어가서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인공횟집의 수족관,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를 말하는 앵무새나 키스하는 구관조 등 인간행위의 의미가 입혀진 관상용 동물들의 다큐멘터리 비디오는 인간세계를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자연상태의 존재와 고독, 개체와 무리 속 관계, 타자와의 교감 등을 그린 박미례의 목탄드로잉은 비디오드로잉에 담은 꿈을 향한 비상 능력을 상실한 인간, 인간 자신 뿐 아니라 타자의 자연상태마저 훼손하고 강탈하는 인간의 소유욕과 대비적으로 중첩되며 멜랑꼴리를 유발한다. 이경훈은 서로 다른 층에 놓인 형상들 간의 예상치 못했던 만남에서 연상되는 제3의 우연한 형상과 강렬한 색채의 향연으로 밤의 풍경과 초상들을 그려냈다. 그의 독특한 상상력은 '조명 불빛 아래 형상들'vs.'술병 안에 핀 꽃', '술잔에 (비친) 새와 인간'vs.'새장에 갇힌 새와 인간' '색채의 리듬과 비정형'vs.'색과 패턴에 갇힌 형상' 등과 같이 역전된 형상이 모순적 상황을 만들어내는 시각적 유희와 멜랑꼴리를 동시에 유발한다. 미루어 짐작컨데, 예술가로서 이경훈이 우리에게 자유롭게 꿈꿀 권리를 되찾는 시간, 인간 본연으로의 회귀공간, 자연의 밤을 일깨워우려고 바지런히 상상하고 그리고 색칠할수록 이러한 감정은 배가되고, 배가된 이러한 감정을 제일 먼저 자신이 마주하게 되는 역설을 경험했지 않았나 싶다. 이번 전시에서 이경훈은 멜랑꼴리를 유발하는 강렬한 색면과 형상들이 제기하는 해결책 없는 문제 상황들로부터 급선회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장지 위에 오일이 마르기 전까지 제한된 시간 동안 온몸의 감각을 얇은 흑연 필심에 집중하고 순간의 감흥과 인상들에 따라서 자유롭게 드로잉하며 마치 코바늘뜨기 하듯이 형상과 형상을 서로 엮어 짜 나아가며 화면 전체를 균질적으로 운행한다. 하나의 형상은 형상들과 연관된 관계 속에서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불확정적 형상이다. 동시에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형상이다. 이러한 조형과 구성방식은 인간적인 의미체계 안에 갇혀있던 형상과 배경, 주인공과 주변인이라는 위계적 경계를 허물며, 다원적이고 열린 관계 속에서 형상들이 새로운 감성과 질서의 조화로 한 데 어우러진 세계를 수평적으로 펼쳐 나아간다. 관계와 화해의 몸짓은 하태임에게서는 화면 너머로 이어진다. 하태임은 이질적인 세계와의 만남과 다채로운 감각적 인상을 고유의 색감으로 필터링해낸 원형상들과 캔버스 위에서 다시 대면한다. 2000년을 전후로 한 그의 화면은 자신 앞에 맞닿드려진 언어의 소통 불구성과 한계를 이상한 나라에 들어선 동화 속 주인공 앨리스를 저지하던 카드병사의 형상과 불어로 통로(Passage)와 문(Porte)의 이니셜 'P'와 같은 언어기호 형상을 거친 붓질로 지워나간 흔적을 보여준다. 최대한 팔이 닿는 멀리까지 지워나가려는 몸짓은 점차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일종의 정화와 노동의 정신성을 마주하게 한 듯 하다. 컴퍼스처럼 팔을 뻗어 움직이는 그의 신체 궤적들은 아크릴 물감을 투명하게 중첩시키며 수직, 수평의 스트라이프나 소용돌이와 같은 불투명한 색의 원형상들을 감싸 안는 긍정의 몸짓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부정적인 특정대상과 사건의 인상과 기억들에서 물질성을 배제시키며, 맑고 가벼움으로 투명하게 반사되는 색의 환희를 파동처럼 확산시켜 나아간다. 작가 하태임은 문과 통로의 역설을 감싸안은 큰 문이자 통로로서, 앞선 것이든 혹은 앞으로 다가올 것이든 화면 너머 세계를 향한 관심과 의지 몸짓을 시도하고 있다.

박향미_야! 덤벼라_나무패널에 아크릴채색_45×70cm_2010
전수경_What she really wants to know_한지에 먹, 피그먼트, 콜라쥬_144×111cm_2009
한상진_Gaze-meditat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3.9cm_2010

Section 2. 서랍이야기 Draw the Drawers ● 너머 세계에 대한 관심은 때로는 유쾌하고 발칙한 상상을 거쳐 구체적인 형상들로 구현된 이야기들을 끌어내기도 한다. 박향미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자신의 거실과 침실에 침입한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엉뚱하고 유쾌한 상상의 이야기공간으로 우리의 눈을 열어준다. 엄마이자 아내, 며느리, 사업가이자 미술학도로 일인다역을 해 온 그녀에게 집은 또 하나의 일터이다. 그녀가 집안일을 마치고 퇴근하여 학교나 직장으로 돌아가면, 여러 생명체들이 귀가하여 맘껏 제 세상을 펼치며 놀 것이라는 게 이야기의 기본 설정이다. 익숙한 현실공간과 일상은 재현된 공간의 그림이 걸린 벽면, 집모양 벽걸이 장식품이 걸린 벽면, 암각화가 새겨진 벽면과 같이 실제 대상공간을 이미지로 중첩시키거나, 혹은 밀림에서 갓 나온 자연상태의 동물부터 애완동물,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익숙한 캐릭터 동물 등과 같이 실제와 이미지를 대비시키며 이질적인 세계와 시선이 교차하며 공존하는 낯선 비현실적 공간과 비일상으로 변신한다. 다른 생명체들과 공유하는 세계라는 안주인 박향미의 열린 인식은 마치 손님은 왕이라는 말처럼 그들에게 절대 주인의 자리를 양보할 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도 그 공간에 초대받은 손님이자, 주인으로 그들의 놀이에 함께 참여하게 한다. 전수경은 차이들의 관계와 관계의 몸짓들을 드로잉한다. 그의 드로잉은 관계에서 오는 크고 작은 유혹과 오해, 시련, 그리고 결국엔 원래 하나였음을 느끼는 사랑과 화해와 같은 정신적인 화합과 조화의 과정 국면들을 그려내고 있다. 그는 종이에 점으로 안료가루를 통과시키고, 손으로 문질러가며 형체와 질감을 만든 후, 콩즙으로 마감하는 과정을 거쳐서 애초에 조물주가 인간의 형상을 창조했던 것처럼 남성과 여성의 원본 신체를 창조해낸다. 그리고 원본을 포토샵하여 한지에 출력하여 원래 하나였던 것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며, 부분과 전체가 닮음관계의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사물과 시공간을 만들어간다. 이로부터 분리되어 명료하게 경계지어진 신체형상은 남녀와 남북, 음양 등 원본, 원형으로부터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리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인간세계의 이분법적 구분체계와 차이의 형상들이 출현하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때로는 에로틱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장식성 강하게, 때로는 장엄하고 숭고하게 다양한 표정의 선들이 그려내는 형상들은 뫼비우스띠처럼 기묘하게 순환하는 고리를 형성하며 전수경의 예술적 비전을 담은 이야기를 이어 나아간다. 한상진은 이질적인 것들을 결합시키는 중간자의 영역으로서 나에 대한 다양한 탐색을 이어왔다. 최근 조립식 건물 안에 설치된 자신의 비닐하우스 작업실은 새로운 탐색장소가 되어 왔으며, 외부에서 내부를 응시하며 그림을 그리는 자신에 대한 명상을 그린 일종의 자화상을 선보인다. '응시와 명상Gaze & Meditation' 뿐만 아니라 종이 위에 유화물감의 기름이 스며드는 흔적이나 철가루를 섞은 물감으로 그린 형상이 녹슬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화면, 빛/그림자/빛/그림자를 켜켜이 번갈아 배치한 음양이 공존하는 화면, 한장소에서 시시각각 다채롭게 스며들어오는 빛과 그림자의 형색을 담은 그리드 등 작업 대부분에서 그는 펄이 섞인 물감이나 비즈 등 화려한 물성을 선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실제 화면들에서는 반사되는 광채 효과보다는 빛을 머금고 드러나는 미묘한 형상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그는 철저한 자기고립과 순간의 몰입으로 비닐주름이 만드는 미세한 그림자 변화와 부유하는 형태를 고요하고 영원한 순간의 붓질로 포착하며 다양한 뉘앙스와 표정을 담은 자연의 빛을 그려내고 있다.

김은주_가만히 꽃을 그려보다_종이에 연필_143×115cm_2009
김창언_8인의 진술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162cm_2010

Section 3. 포정해우(庖丁解牛) Drawings ● 검은색의 만가지 빛깔에 매료되어 연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김은주에게 연필 드로잉은 자신 안에 깃든 좋은 파장을 여는 도구이자 방법이다. "그림은 종교와 같다. 믿어야 한다. 나는 수행자이다. 인체는 내게 수단일 뿐이다. 나 자신을 나타내는 나는 형, 대상을 뚫고 간다. 애쓴다. 살기 위해..." 라는 작가노트에서 엿볼 수 있듯이, 드로잉하는 신체행위는 기운이 흐르는 통로이자 에너지를 구체적인 형상으로 화하여 열어보이는 중심이다. 자신의 몸 틀 안에 에너지가 깃들었다가, 새로운 다른 에너지로 교체되기도 하고, 깃들었던 에너지가 다른 형상으로 다시 옮겨가 깃들기도 하는 기운의 흐름과 변화는 작가 김은주의 감각적인 인식체계를 통해 필터링된 형상으로 옮겨진다. 때로는 외부의 흐름에 맞서 자기 내부의 인간적인 의지가 드러나기도 하고, 때로는 외부의 흐름에 담백하게 순응하는 파도의 맥동을 닮은 형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외부의 에너지와 내 안의 에너지가 하나의 흐름으로 조화를 이루어 꽃을 피워내는 등 인간과 파도와 꽃이 선의 파동으로 하나되는 인간적 인식과 의지를 초월하는 더 높고 큰 세계를 여는 파장을 일으킨다. 김창언은 이러한 파동과 파장을 감각하고 인식하는 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꽤나 실력있는 드러머이기도 한 김창언은 자신이 악보를 보지 못한다는 의외의 말을 한다. 어떻게 연주가 가능하냐는 말에 자신만의 악보에 따라서 기억하고 저장하여 다시 재생시키면 아무 문제없다고 말한다. 우리말, 사진과 그림, 그리고 각종 부호와 음악적 운동감의 궤적들을 보여주는 기호체계로서 된 악보는 자신의 부산 사투리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방언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창언은 감각과 사고, 형상과 언어의 동시성, 논리/언어체계에 개별성에 해당하는 시각적 방언체계(Visual Dialect)를 드로잉과 회화, 영상작업으로 풀어내고 있다. 특히 「시장의 언어」와 「8인의 진술서」는 관점과 위치에 따라서 동일한 대상을 다르게 지각하고, 다르게 인식하고 사고할 수 있으며, 역으로 다른 개별 논리/언어체계를 사용하지만 동일한 대상에 관하여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음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함을 상기시킨다. 류승환은 제 각각의 언어와 논리, 나름의 관점과 관심이 뒤얽힌 현실과의 마찰하며, 자기 성찰의 시간들을 매일 매 순간 기록해 나아간다. 그의 드로잉은 이러한 사유의 궤적들로서 "얼 생명이 살아있는 매트릭스 계에서 변화와 현상은 하나다."라는 성찰에 이르는 긴 여정을 보여준다. 긴 여정 속에 기록된 순간들은 마치 고대의 서기인이 석판에 기록한 역사화된 특정 시공간의 사건들처럼 유한과 무한, 순간과 영원, 공허와 충만을 동시에 담고 있다.

류승환_북극의 소리 The Hymn of the Arctic_종이에 펜_35×245cm_2009_부분

각자의 예술적 감각과 개성이 묻어나는 드로잉의 궤적들은 세계를 더욱 예민하고 세심하게 살피며 다채롭게 구분짓는 동시에 다시 더 큰 하나로 감싸안는 예술적 통찰과 비전을 담은 이야기 세계를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그 안으로 부드럽게 끌어당기고,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더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내도록 한다. 『선 셋? 나! SUN-SET-RISE』는 우리 모두가 균형과 조화(의 상징인 '셋(3)')로운 하나의 완성체인 '나'로서, 나와 너, 그리고 세계와의 새로운 관계맺음의 출발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전하고자 한다. ■ CSP111 ArtSpace

Vol.20100915b | 선 셋? 나! SUN-SET-RIS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