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의 진화 Evolution of Instinct

2010_0915 ▶︎ 2010_1028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_2010_0915_수요일_05:30pm

주최_아트팩토리 인 다대포 후원_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참여작가 [평면] 감민경_노정희_박명수_오현주_이진이_전미경 [입체] 강이수_김종구_나인주_문병탁_박경석_박은생_박인진_ 박자현_박주현_백성근_백성준_변대용_안승학_안재국_이자연 [도예] 김상호 [사진] 김찬수_김홍희_송성진_헬렌 정 리 [미디어] 변재규 [설치] 손몽주_윤필남

관람시간 / 월~토_09:00am~06:00pm / 일요일, 9월21일~23일 휴관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_ART FACTORY IN DADAEPO 부산 사하구 다대1동 1522-1번지 Tel. +82.51.266.0646 cafe.naver.com/artfactoryindadaepo

전시컨셉 ● 전시주제인 진화와 본능은 2010 부산비엔날레의 대주제 '진화속의 삶(Living in Evolution)과의 관련 안에서 인간 존재의 생물학적 정체성에 대한 성찰과 예술적 직관을 염두에 두면서 재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참여 작가들은 오랜 진화의 시간 안에서 풍부한 문화의 역사를 축적해온 인류에게 여전히 존재론적 토대를 구성하고 있는 본능의 문제를 다루면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표현된 주제의식을 작품에 담아내게 될 것이다. ■ 백영제

김홍희_아무것도 보지 못했다_디지털 프린트_100×300cm_2009 송성진_거주와 이동-헤이차오 07_디지털 프린트_55×170cm_2010 김찬수_낚시_디지털 프린트_85×85cm_2010 헬렌 정 리_illusion of light_lenticular_18×25cm_2010

김홍희(사진) ● 진화는 존재 방식의 또 다른 모습이다. 내적 관계와 외적 충돌 속에 생하거나 멸한다. 본능은 생존 양식의 기록적 외연이다. 나는 기록물이다. 기록물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다만 진화 할 뿐. 송성진(사진) ● 진화속의 삶을 위한 사람들의 욕구와 욕망으로 나타나는 개인의 삶에 변화에 대한 문제에 이의를 제기한다. 김찬수(사진) ● 도시는 공사 중이다. 더 높은 곳의 크레인은 마치 더 나은 삶을 미끼로 우리의 욕망을 낚으려는 낚시질 같다, 멈추지 않는 크레인의 낚시질은 욕망의 진화를 부추긴다. 그런데 그것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낚시질이 계속되고 낚시질에 걸려드는 한 우리의 행복한 삶의 모습은 계속 지연될 뿐이다. 헬렌 정 리(사진) ● 본능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이번 전시에서 내가 초점을 두고 싶은 것은 주변에 있는 생물들의 삶의 본능이다. 움직이는 빛을 카메라로 순간 포착했을 때 우연하게 만들어진 식물과 동물등의 자연적인 이미지는 렌티큘러 기법에 의해 보는 각도에 따라서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박자현_비정규직노동자_종이에 펜_162×118cm_2008 박명수_무시(無始)적 대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2010 노정희_people no.68 reality mirror 현실반사경-세상의 끝_캔버스에 유채_80.3×130.3cm_2010 이진이_이별_캔버스에 유채_162×118cm_2009

박자현(입체) ● 저는 최근에 와서야 제가 그림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는 주제가,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서 사람들이 노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과 밀접히 연관 돼 있다는 것을 짐작 했습니다. 긴 시간 이루어지는 점찍는 행위는 저를 한 명의 노동자로 만들고, 저의 하루를 노동의 시간으로 채우게 합니다. 박명수(평면) ● 기본적인 본능인 의식주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릇이라는 모델을 제시하여 표현한 작품으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의미한 생활속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노정희(평면) ● 당연히 누리는 행복에는 누군가의 고통과 애환이 동반한다. 존엄한 인간도 무리의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주어져버린다. 구조 안에서는 정당한 계급이다. 그 구조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모습이 어떻게 비추어지던지 각개의 소망과 꿈을 위해 주어진 계급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행복을 꿈꾸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이진이(평면) ● 인간에게 내제된 여러 감정 가운데 하나인 '슬픔'을 고개를 숙인 거대한 인물의 의도된 연출을 통해 가시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전미경_멈추지말고 계속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70×170cm_2003~10 감민경_흐르다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10 오현주_자기변명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8×162cm_2010

전미경(평면) ● 진화를 C.R.다윈은 '변화를 따르는 유래'라고 했고, '풀하우스(Full House)'에서 굴드는 '단순한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온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진화속의 삶'이란 다양성이 증가하는 삶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또한 'evolution'(창조주에 의해 미리 예정해 놓은 것을 펼쳐 보인다라는 의미를 지녔음)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끝(죽음)이 정해져 있는 다양한 삶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라는 화두와 대면한다. 나는 다시 질문하고 싶다. 사회가 복잡 다양해 진 만큼 과연 '우리 삶도 다양해 졌는가', '당신이 원하는 삶이 진정 다양한 삶(진화하는 삶)인가', '본능에 가까운 삶을 원하지는 않는가' 라고... 프로이트는 본능을 생물학적 에너지라고 생각하여, 생물이 무기상태(無機狀態)로 돌아가려는 죽음의 본능과 유기상태(有機狀態)를 회복하려는 삶의 본능으로 구별하였다. 이 두 본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나는 이 두 본능의 접점의 행동방식을 성교로 본다. 사회상황과 가장 맞물려있는 본능이 성교본능이며 사회속에서 억제당하며 또한 타인의 필요에 의해 자극받는다. 본능은 항상 진화의 삶 속에서 줄타기한다. 감민경(평면) ● 실제와 비실제,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의 모호한 경계선상에서 의식의 흐름은 서서히 연속변이를 한다. 오현주(평면) ● ........난.....아니어요..........저는.......모릅니다....몰라..요.....제가....그런것이 아니라......그 것에대한.....제...책임이란.....아니요.....난......아니어요......저는.......모릅니다.....몰라..요............저는.....이러이러 했을 뿐...이라구요........그 것 또한 저에게 물으신...다..면......난......아니어요......저는.....모릅니다...몰라..요.............

박경석_도자기의 진화_스테인레스 스틸_70×50×50cm_2010 김상호_도시(The City)_혼합재료_13×32×10cm_2010 백성준_샴(Siamese twins)_가죽(leather)_84×322×73cm_2010 박주현_해우소_다듬이방망이, 다듬이_40×30×20cm_2010

박경석(입체) ● 도자기는 인간의 식문화와 함께 발달해왔다. 원시로 갈수록 도자기는 음식을 담기 위해 사용되지만 현대의 도자기는 음식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써 집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한 물건의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용도를 보며 문화에서 예술로 세분화되어 나온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김상호(도예) ● 건물이 가지는 무한한 육면체 조합의 다양한 변수를 시각화하고 흙이라는 재료의 특성과 본질과의 관계를 의도 되어 진 것과 비 의도적인 것의 대비로 자연과 인공 구조물의 관계 설정을 표현하려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백성준(입체) ● 자연을 작은 진실로 조각내어 인식하거나 이분법적으로 인식하는 인류의식의 진화가 자연의 본질과 근접해있는가라는 의문과 질문을 소통하고자 한다. 박주현(입체) ● 조각가 박주현은 자신이 바라본 인간 군상들의 모순적 욕망과 한계를 질타하거나 비판하기 보다는 도구와 인간의 심리적 대결구도 속에서 독특한 골계를 이끌어낸다. 그의「도구 이야기」는 해학과 유머, 반어적 모순을 오가며 자신이 이룩해낸 기술문명으로부터 소외되어 하나의 도구로 전락한 우리 스스로로 하여금 창조적 인간 존재에 관한 물음을 던지도록 한다. 그리고 예술가의 도구적 행위가 지닌 사회적 역할과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끊임없이 묻게 한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도구를 쥐고 선 지점이자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는 지점, 그리고 이야기의 토대와 구현체를 연결하는 또 다른 구현체인 바로 그 지점에서 해답을 찾은 듯하다. 도구 개체들을 결합하여 만든 의자와 새의 형상은 도구 사회와 도구적 인간의 이질적 관계를 회복시키는 매개지점, 즉 '사이' 장소의 역할에 대한 은유적 상징으로서 작가적 성찰이 돋보인다.

강이수_원시-기호10_스테인레스 스틸_70×100×25cm_2010 김종구_인간_FRP 아크릴 채색_65×75×31cm_2010

강이수(입체) ● "원시-기호-현재"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의 미술을 미적 전달기호인 상형의 형상을 통해 연결하고 융합하여 재현하는 것이다. 즉, 시공을 초월한 과거와 현재의 미적 공통형상을 기호로 표현함으로써 현대적으로 표현된 새로운 의미의 다양한 미학적 도형을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때문에 원시미술의 형상을 그대로 옮기는 차원이 아니라 선사시대의 암각화, 갑골문, 상형문에서 보이는 초기의 글자형태나 원시그림에서 표현되는 다양한 느낌의 형상을 현대적으로 패러디하여 입체화, 추상화해 보고자 하였다. 특히 개인적으로 자연과 원시암각화의 동물 형상을 기호적 형상으로 해석하여 입체화하는 작업에 중점을 두었다. 김종구(입체) ● 김종구의 조각은 거칠고 투박하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미숙하다. 거칠고 투박하고 미숙하다는 것은 오히려 그가 다루는 표현에서 필연적인 요소로 배치되어 있다. 과거 조각의 조형적 덩어리가 풍부한 양감과 동의어였을 때를 상기해 본다면, 김종구의 조각은 문법에서조차 벗어나 있다. 그의 덩어리는 전형적인 조각적 양감을 지시하지 않으면서 강렬한 내러티브와 도포성 강한 안료의 색감을 지니고 있다. 이런 것이 회화의 효과를 가지고자하는 어법인데도 회화적 상징이나 알레고리마저 형성하지 않는다. 그의 기호는 그래서 지극히 분열적이다. 점토를 성형하고, 여전히 점토 칼자국을 남기면서 합성수지 몰드 캐스팅이라는 전형적인 소조기법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조각적 장식이나 미화 따위는 없을뿐더러 사회적인 약호들에 조차도 근접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저 깊은 심연의 리비도를 자극하는 에너지로 드러난다. 형식주의 미술이 형식의 전면을 내용으로 환원했었다면, 김종구의 형태 읽기의 불편함이나 불가해성은 일루전과 현실계 사이에서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불안정한 긴장감을 북돋운다. 투구를 쓴 머리와 얼굴의 턱수염에 나무의 뿌리가 자라는 부조리한 서사는 너무나 주관적인 기호들이다. 특정 인물을 나타내거나 특정 사건을 지시하지 않는 이 이야기체는 오늘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초상이기도하다.

박인진_잣대_나무_가변크기_2010 백성근_태고_스테인레스 스틸, 인견사_60×200×50cm 2008 변대용_경쾌한 두발_합성수지에 자동차도색_160×230×7cm_2010 안승학_탐욕_나무_240×10×8cm_2010

박인진(입체) ● 본능으로 인해 감당하기 너무 벅찬 것을 가진 우리를 표현! 백성근(입체) ● 원시의 자연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깊은 바닷속을 무리를 지어 떠다니는 갑각류와 울창한 원시림속을 헤치고 다니는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의 거대한 곤충들에 관한 즐거운 상상을 해보자. 지구라는 행성의 당당한 지배종으로써 높은 관을 쓰고 화려한 장식을 늘어 뜨린체 대기를 가르며 우아하게 날아다니고 푸른 심연, 암흑 속을 부유하는 신비로운 생명체를 바라본다 변대용(입체) ● 두 발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그 람의 삶에 대한 의지를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 상황을 극복하려고 할 것이다. 뛰고 싶다는 본능은 살아 있음을 좀 더 느끼기 위함이 아닐까싶다. 안승학(입체) ● 이 주제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재 해석 하고자 한다.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욕심이 가져오는 한계점과 역작용을 표현하고자 한다. 나는 이것을 탐욕이라 정의 하고 싶다.

변재규_925장의 부산타워 DVD_단채널 영상_00:03:00_2009 윤필남_bobble_혼합재료_300×150cm_2010 손몽주_무제_디지털 프린트_70×100cm_2010 나인주_생명의 탄생_아크릴, LED 조명_150×200×80cm_2010

변재규(미디어) ● 반복되는 촬영행위, 단순히 프레임을 생성시키는 노동은 자기성찰적 경향, 또는 명상에 가깝다. 부산타워로 상징되는 고향에의 노스텔지어는 셔터를 누르는 행위와 함께 왠지 희미해져 간다. 역으로  925에 달한 감정의 정점은 촬영과 함께 0의 방향으로 가까워져 가는 것 일지도 모른다. 나는 마지막 925번째 촬영을 마친 순간 그 감정의 덩어리들은 사라져 가는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925번째의 스틸 컷이라는 기억재생의 궤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Taking pictures frame by frame with labor is similar to 'mediation'. The piece of memories and nostalgia about Busan Tower that is the symbol of my hometown is getting dim while I click the shutter of camera. The emotion that come to climax when I started to take pictures have reached '925' and is close to '0' when I finished shooting 925th photograph. At that time I experienced that the mass of emotions faded out. Now it remains just 925 pieces of still-cut which is the trace of memory playback. 윤필남(섬유미술) ● 나는 항상 현실과 이상을 연결시킬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찿고 싶었다. 그러나 이상은 언제나 현실의 제약에 갇혀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다른영혼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그 육신은 흙으로부터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가고 그 다음 세상에서는 돌, 나무등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로 환생할 수 있다는 철학적 의미에서 현실의 세계와 유토피아를 연결할 수 있는 연결고리룰 윤회론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수 있었다. 현실세계에서 만나는 인연이 그 세대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연결되듯, 어쩌면 전생의 나와 다음생의 내가 다른공간에서 함께 할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의순환적 연속성에주목한다. 나의 작업에서 시각적 의미로 해석되는 반복적인 선의 사용과중첩은 끊길 듯이 끊기지 아니하고 급을 거듭하여 계속적으로 연결된다. 단절과 좌절을 털고 깊은 선의 세계를 연결하는 조형적 의미로서 선과 면은 그 시작임과 동시에 계속적인 순환의 되물림이다. 손몽주(설치) ● 공간의 입체 드로잉 설치작업을 주로 해온 저의 작업을 평면으로 함에 있어서 사진으로 또는 회화로써 거대한 드로잉을 프래임 속으로 함축시켜 보기위해 제작중인 라인시리즈의 평면작업입니다. 나인주(입체) ● '생명의 탄생'-계속 인류는 진화를 하고 있지만 온전한 생명체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동물계는 동일한 세포 분열의 진화 과정을 거쳐 각기 다른 모습을 형성하는데 모든 생명체가 같은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점은 신비한 형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생명체 하나가 발전하여 형태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조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움직임을 빛으로 표현해 보았다.

안재국_10가지의 꿈_경심300호, 동선_70×660×70cm_2010 이자연_사이의 간극_polyester resin_140×110×60cm_2010 박은생_돌멩이_steel_60×100×50cm_2010 문병탁_떠나는 것들-숲의정령_나무_가변크기_2010

안재국(입체) ● 사람들은 꿈을 꾸며 실천하고 좌절도 하며나아간다 그꿈이 꿈일지라도 그려본다 제목처럼10가지꿈을 담을수도 더많이 담을수도 있지만 크게보면 하나이다 뚜렷하지않은 모습이지만 그 꿈을 그려낼려는 실천의 욕구들이 본질적일수도 진화됨을 만들어 내지않나 싶다. 이자연(입체) ● 사람의 신체와 동물의 형상의 반인반수. 보여 지는 이미지 안에 내재되 있는 인간의 불온전한 자아와 욕망과 욕구에 대한 충돌과 그 사이에 있는 간극의 틈의 한가운데 나는 불안하게 서있다. 나와 내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잔혹한 감정들이 유혹적인 삶과 매혹적인 죽음의 사이에서 침묵하며 응시한다. 무엇을 보고자 하는 것인가. 무엇을 보지 않고 자 하는 것인가. 마치, 실존하는 것 같으면서 실존하지 않은 이상(異常)적 생명체로 본능의 이상(理想)과 동경에 이르게 하여 의식과 무의식의 욕망에 닿으려는 본인의 감정적 충돌. 동물 같은 식물의 형체. 식물 같은 동물의 형체, 사람에 가까운 동물. 그 안에서 공존하는 불온전한 자아의식에서 기형적이고 불편한 감정적 진실로 나를 바라본다. 박은생(입체) ● 돌멩이..... 육중하고 큰 몸체, 자연에서 볼 수있는 돌을 우리는 바위라 부른다. 크기와 무게에 보는 이는 항상 압박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만져보지도 들어보지도 않아도 그 느낌은 늘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공중에 둥둥.... 돌아다니는 바위를 꿈꾸면서 중력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를 없애려 노력한다. 돌멩이는 바위보다는 작은 이미지다. 더 작을수도 있다. 이런 돌멩이를 만든다. 선으로 말이다. 육중할수는 없다. 그러나 거대하고 무겁게 하려할 뿐이다. 문병탁(입체) ● 사라진 숲의 흔적과 함께 사람들에게서 희미해져 가는 숲의 기억들을 얘기 하려는 것이다. 집과 공장을 짓기 위해 버려야하는 수많은 가치들 ....숲과 자연이 사라진 지구상에 인간의 존재는 어떠한 가치로서 존재할 것인가. ■

Vol.20100921i | 본능의 진화 Evolution of Instinc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