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곽이브展 / KWAKEVE / 郭이브 / installation   2010_0914 ▶︎ 2010_0923 / 월요일 휴관

곽이브_배산임수-부서지더라도_시멘트, 우드락, 순간접착제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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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914_화요일_05:00pm

2010-2011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아티스트 릴레이 프로젝트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로 55 Tel. +82.43.200.6135~7 www.cjartstudio.com

세상이 사진 속의 그것처럼 보이는 단면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보니, 모든 것은 양가성을 가진 입체였다. 그렇게 믿음이라는 것은 고정되지 않는 것임에 놀랐다. 이 믿음이 얼마나 우습게 생성되어 고착되는지, 그리고 무엇이라도 믿고 싶은 마음이 사람이 사는데 어느 정도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이 믿음을 뒤흔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면서 위험한 일인지를 말이다. 잘 보면 우리는 갈망함으로 활기를 찾는다. 어디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에 희망을 품는 것은 버릇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풍부해서 과잉이 되는 도시에는 그러한 희망 또한 많이 필요하다. 갈망하는 사람도 갈망의 대상이 되길 바라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서 혹은 필요이상으로 무엇이든 구축하는 것에 집중하는데, 그래서 어느 순간엔 이 모든 것이 결국 갈망을 위한 갈망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곽이브_쌓이다_종이. 벽지. 스톤스프레이_42×59.4cm_2010
곽이브_배산임수-지탱#2_시멘트, 철사_2010
곽이브_배산임수-곧게_시멘트_2010

새집이 얼마나 많아야 나무가 쓰러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리라고도 생각 할 수 없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자 무서워졌다. 유독 한 나무에만 모여있는 새집은 왠지 이상하다. 우연히, 한 나무에 이상하게도 많이 모여 있는 새집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 형상의 기이함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고, 그 이유가 궁금했다. 문득 든 생각으로 저 나무가 살기 좋은 명당이기 때문에 새집들이 모여있겠구나 싶었다. 명당이 어디일까? 대개는 엇비슷하게 금전적 가치를 지닌 곳을 떠올리지만, 조금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혼란스러워 하곤 한다. 정말 그 곳이 명당일까? 명당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았으며, 살기 좋은 곳과 살기 위한 곳에 대한 구분도 모호했다. 그렇지만 공통적으로 지금 보다는 나은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곳으로의 바램이 있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선호하는 곳이 명당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버렸다. 그래서 아파트였다. 외부인의 시선에 한국 특유의 기이한 풍경으로 다가서는 오늘날 우리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이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건축의 형태이고, 그만큼 많은 욕망을 내포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이해관계에 직접적 관련 없이도 그 형태를 유지시키고 있다는 것을 작업을 진행하면서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는 좋던 나쁘던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현실과 위안이 될 바램의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명당은 사막에 있을 오아시스처럼 건조한 곳에 생명을 부여하는, (동시에 생명에 건조함을 부여하는 양면의!) 오아시스 같다. 갈망과 실현, 갈증과 해소, 현실과 이상을 모두 아우르는 특별할 것 없는 현재의 이곳이명당일 것만 같다.

곽이브_반으로_시멘트_1제곱미터_2010
곽이브_오아시스 #1_플라워폼, 석고, 시멘트_11×23×8cm_2010

이 전시는 '명당'이라는 장소와 그 형상, 그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산임수-부서지더라도」를 시작으로 진행되어온 입체들과 몇몇의 드로잉으로 구성된다. 「배산임수-부서지더라도」는 아파트 형상의 높이 있는 시멘트 조각이다. 부러지더라도 자신의 높이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그래야 하는 사람들을 연상하며 만들었다. 구조물이 들어있지 않아 외부 충격에 쉽게 부러지게 되고, 부러지면 다시 붙여 제 높이를 유지하는 것이 조형원리였다. 이를 기점으로 튼튼하고 가볍기 위한 조건을 조절한 조각들 「배산임수-지탱」「배산임수-곧게」가 나왔다. 만들어진 조각의 생존이 중요해지면서 자연스레 입체를 지지하고 호응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그래서 땅에 대한 「반으로」 「흙덩이(눈덩이)」 「오아시스」 「구른」 「쌓이다」이 만들어진다.

곽이브_흙바다_캔버스에 유채_2010

입체와 땅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조각들은 모두 땅(바닥)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에, 전시장에서는 발 밑을 조심해야 한다. 조각들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군으로 이루진 것들이 또 하나의 사회를 만들듯이 모여 전체를 구성한다. 이 조각들은 고집스럽고 불친절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편안한 감상을 위한 작품대, 선반 등의 설치물은 없다. 납득되지 않는 설치구조는 자칫 작품 외의 것이 작품에 뒤섞여버리는 것 같은 불편한 심정을 갖게 한다. 수평의 바닥면을 기준으로 땅에 대한 것은 땅에 있고, 거리(높이)가 있는 것들은 그만큼 바닥에서 멀어진다. 그나마도 그리 멀리 가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이번에 제작된 삼차원의 입체는 벽이 아니라 공간으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나는 평면이 입체적이 되도록 신경을 쓰고 있고,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여백의 중요성이 크며, 바라보는 것만 아니라 몸에서 가까이 경험되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뒤로 물러서 전체를 보면 작품들은 다시 통일된 큰 그림이 된다. ● 재료의 변화 상태와 법칙을 중요히 생각하며 따르다 보면 그 외면을 꾸밀 마음은 들지 않고, 물질과 시간과 나의 손길 속에서 자연히 만들어지는 '결'과 성질 자체가 매력적인 외면이 된다.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거운 것이 재료가 되기 때문에 두 손을 크게 벗어나는 거대한 스케일은 염두내지 못한다. 꼭 그래야 할 이유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나의 조각들은 보이는 대로 구조가 되고 형태가 된다. 쓸모 있음을 만드는 빈 공간이나, 내구성을 위한 구조체, 편의나 시선을 잡기 위한 마감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점이 가끔은 너무 재미있기도 하다. 들여다보면 형을 유지하기 위한 구조는 생각처럼 그리 복잡하지 않고, 쓸모 있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 되기도 하며, 실은 간당간당한 흔들림이 단단한 전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 곽이브

Vol.20100922e | 곽이브展 / KWAKEVE / 郭이브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