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 Uncooked

김성민展 / KIMSUNGMIN / 金成珉 / painting   2010_0929 ▶︎ 2010_1005

김성민_날것_캔버스에 유채_245×142cm_2010

초대일시_2010_0929_수요일_05:3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전라북도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_TOPOHAU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82.2.734.7555 www.topohaus.com

날 것 ● 김성민은 벌거벗은 남자의 몸, 얻어맞은 얼굴, 우리에 갇힌 짐승, 도살장에 걸린 소나 돼지의 살과 뼈를 그렸다. 적나라하고 직설적인 그림이다. 공통적으로는 처절하고 극한 상황 내지는 절박한 처지에 내몰린 풍경이 연상된다. 혹은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해 밀려난 장면이기도 하다. 동물성의 육체를 지닌 이들은 제한된 공간에서 단독으로 그 운명을 격고 있다. 거실에 위치한 가죽 소파에서, 밀폐된 우리와 한정된 링, 그리고 도살장이란 공간은 다분히 실존적이면서 위태롭고 불안한 공간을 암시한다. 사실 우리는 그러한 공간에서 산다. 현실 속에서 산다는 것은 제한되고 규정된 몇몇 공간에서 삶을 이어가는 일이다. 그것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되기도 하고 틀이 요구하는 일정한 삶의 패턴에 길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 모두는 그 안에서 조용한 죽음을 맞이한다. 국가나 사회, 모든 제도적 공간이란 결국 그런 곳이다.

김성민_Down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0

근작을 통해 김성민은 바로 그러한 공간 속에서 소멸해가는 동물성의 존재들에 대한 단상을 그리고 있어 보인다. 인간만이 아니라 가축도 포함된다. 사실 이 둘은 모두 동물성의 욕체적 조건을 갖고 살고 있다. 식물성에 반해 동물성의 존재는 불우하다. 식물성은 자기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하는 놀라운 존재들이다. 저 먼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과 대지의 수분을 섭취해 스스로 자립한다. 반면 동물은 자기 몸 밖의 것을 자기 안으로 밀어 넣어야 산다. 죽음이 덮칠 때까지 그는 내부가 욕망하는 것을 밖에서 찾는다. 몸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몸 밖에서 찾아야한다는 사실이 더없이 불우한 것이다.

김성민_날것_캔버스에 유채_245×440cm_2010

작가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결국 고기 덩어리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근작은 동물성의 몸들이 공유하는 살과 뼈를 보여준다. 몸을 가리는 옷을 지우고 혹은 피부가 덮고 있는 내부를 적출하고 있다. 그렇게 드러나 버린 몸과 내부는 동물성의 존재감을 가장 원초적으로, 본능적인 선에서 증거 한다. 배가 나온 사내가 벌거벗는 체 소파에 늘어져있다. 그는 시신처럼, 젖은 빨래처럼 고독하고 무력하다. 졸고 있는지 지쳐서 쓰러졌는지 혹은 과음을 했거나 잠이 들었는지 애매하다. 다만 몸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중력의 법칙에 순응해 팔과 다리는 바닥을 향해있다. 그는 피곤하고 무방비로 던져져있는 듯하다. 그런가하면 링 바닥으로 떨어지는 권투선수의 두상은 참혹하게 일그러져있다. 그는 얼마나 많은 매를 맞았을까?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눕기 직전, 정신을 잃는 얼굴이다. 사각의 링은 회피하거나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는 그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버텨야 한다. 자신과 상대방 선수, 둘 중 하나가 패해야 끝나는 경기다. 이처럼 나신으로 소파에 무력하고 권태롭게 드러누워 있다거나 경기 중 다운되는 권투선수의 혼절한 얼굴은 한결같이 상처를 입었거나 어떤 외부의 충격과 압력에 의해 굴절된 몸과 마음의 상태를 증거 한다. 그러니까 그가 표현한 인간의 몸, 얼굴은 정신적 외상과 폭력에 시달린 살들이다. 무한경쟁 구도 속으로 내몰리는 현대인의 가혹한 운명과 그 속에서 낙오되거나 뒤쳐진 이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도 감지된다. 그리고 이는 동시대인들의 초상이자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 같은 시선은 자연스레 우리에 갇힌 짐승들과 도살장에 내걸린 가축의 고기 덩어리로 옮겨간다.

김성민_마지막 슬픔_캔버스에 유채_112×112cm_2010

철망에 갇힌 개와 동물원 우리 안의 원숭이, 도살장에 걸린 고기덩어리다. 갇혀있는 존재들이자 다들 관리되고 감시되고 있다.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욕망을 반영하는 매개들이자 동시에 현대인과 유사한 상황을 암시하는 대상들이다.

김성민_묵시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0

김성민의 근작은 이전 작업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일관되게 인간의 몸, 누드를 다루어왔는데 특히 남자의 벌거벗은 몸이 자아내는 다양한 상황, 심리적 뉘앙스를 통해 현실 문제를 은유적으로 제기해왔다. 누드를 유미적이거나 관습적인 미의 소재로 재현하기 보다는 그를 빌어 인간이 처한 고통과 욕망 그리고 그 내면의 세계까지 심층적으로 구현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근작은 좀더 구체적인 상황설정과 함께 인간의 몸으로만 제한시키지 않고 동물로 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김성민_빨간 피터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0

다소 무거운 주제 못지않게 그의 회화 역시 끈끈한 편이다. 두터운 질감처리, 단호하고 과감한 붓놀림, 대상으로 육박해 들어가는 구성 등이 돋보인다. 마치 잔펀치를 날리듯 짧고 신속하게 반복되는 붓질이 축적되면서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은 단속적인 붓질 토막으로 번진다. 분할된 작은 색 면들, 붓질이 구축되고 촉각적으로 얹혀 지면서 화면에 밀도를 주고 있다. 마치 물감의 질료들을 캔버스 피부에 쌓아나가고 화면평무척이나 스피드하면서도 감각적인 붓질이다. 나로서는 그 붓질의 묘미가 잘 드러난 작품이 「마지막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철망에 갇힌 개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화면 앞에서 안쪽으로 쭉 밀고 들어가는 탄력적이며 속도감이 붙은 터치의 맛이 좋다. 이른바 동양화에서 흔히 말하는 일필휘지의 호방함과 직관적인 파악에 의해 한 번에 떠내는 힘들이 기세 있다. 완성도가 높고 탄탄해 보이는 것은 「날것」이다. 다만 비교적 소박하게 읽힐 수 있는 연출, 소재의 상투성, 밀착감이 약해보이는 색과 붓질(물감으로 인한)을 극복하는 한편 자신만의 형태인식과 이의 매력적인 재현 등이 필요해 보인다. 작가란 존재는 여전히, 누구보다도 잘 그릴 필요가 있다. 그 작가만의 개인성으로 물든 색채와 붓질, 도상적 힘이 요구된다. 질적인 측면이 해결되지 않으면 주제는 공허해질 수 있다. 그것이 미술이다.

김성민_텅빈생각_캔버스에 유채_182×182cm_2010

사실 최근 한국화단에서 회화가 강세이고 또 그만큼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엿보이긴 하지만 근원적인 회화의 맛과 함께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작품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재주의로 몰려가거나 극단적인 묘사력에 겨냥되어 있다. 그것은 회화/미술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손을 거의 기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이룬 희한한, 놀라운 세계에 대한 열망과 닮아있거나 너무 단조로운 인테리어에 기울어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 그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김성민의 그림은 소중한 흔적들을 거느리고 있어 보인다. 그 흔적들이 더욱 깊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 박영택

Vol.20100929a | 김성민展 / KIMSUNGMIN / 金成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