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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범展 / HATAEBUM / 河泰汎 / photography   2010_0929 ▶︎ 2010_1012

하태범_이태리 아르부초 지진_D 프린트, 디아섹_120×180cm_2010

초대일시_2010_0929_수요일_06:00pm

2010 서울시립미술관 SeMA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

관람시간 / 10:00am~06:00pm

덕원갤러리_DU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4층 Tel. +82.2.723.7771~2 www.dukwongallery.co.kr

사진에 담긴 윤리적 책임감 ● 언론매체를 통해 어떤 끔찍한 사건을 접할 때, 우리는 동질감에서 비롯되는 연민과 비판의 태도를 취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체 저편과의 거리에서 발생한 이질감으로 인해 안도감을 갖는다. 물론, 이런 안도감으로 인해 불편함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 사건의 가해와 피해가 자신과는 다른 세계 또는 다른 공동체라는 점에서 불편함보다는 안도감에서 애써 곤두선 감각을 접는다. 가령, 뉴스를 통해 파키스탄의 폭탄 테러 잔해를 목격할 때 생기는 우리의 일그러지는 표정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우선, 연상되는 징그러운 것들, 그것들에 대한 연민인데, 이것은 가능성을 지닌 동질감에서 비롯된다. 한편, 폭력에 대한 비난과 거리를 두는 인식인데, 이는 비연관성을 지닌 이질감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의 사건에 대해 이질감을 갖는다는 것은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이러한 태도가 땅에 거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랑시에르의 말을 빌어, 감정 해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본능적인 태도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사건이 끔찍하면 할수록, 죽음을 드러내는 데 적나라하면 할수록 다른 공동체의 구성원은 이질감을 스스로 더욱 강화시킨다. 매체는 이러한 속성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참혹함의 공포에서 비롯된 묘한 쾌감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은 이러한 불편한 이면을 다시한번 애써 외면하며 무의식적으로 즐긴다. 이렇듯, 그들의 동질감과 거리두기에서 비롯되는 폭력에 대한 비난이 소위 하나의 공동체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내세우는 도덕의 발로라면, 누군가 그들이 내적으로 획득한 카타르시스에 윤리적인 책임감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 하태범은 언론매체가 생산한 이미지를 자신의 양식에 맞춰 입체로 재현하고 다시 사진으로 찍는다. 그는 신문이나 웹상에 실린 그러한 고발성 사진을 보면서 무덤덤한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광대가 줄에서 떨어져서 모든 이가 우르르 몰려가도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지나가는 행인처럼 남들과 달리 광분하지도 않았고, 즐기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그 무덤덤함을 자신의 방식대로 재현하는 것에만 오로지 관심이 있다. 하얗게 구성된 상황, 어느 화가의 말처럼 그에게도 색은 끔찍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감정대로 하나의 사건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색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기록으로 남겼다. 그것이 하태범 자신이 본 바이다. 이러한 태도를 혹여 방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가 방관자일까, 끔찍한 상황을 마구잡이로 재현하는 자가 방관자일까. 매체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많은 사건들을 자신의 일인 양 재현한다. 카페에서 떠는 수다에도 그렇듯 재현에는 항상 목적이 있다. 예전에는 재현할 수 있는지, 또는 재현해도 되는지와 같은 도덕적인 기준에서 재현을 문제 삼았다면, 이제는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 목적을 선택해야 하는 재현 양식이 무엇이냐 하는 윤리적인 기준이 필요한 것 같다. 대체로 자신의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윤리적인 방관자의 태도를 취한다면, 하태범은 자신의 공동체의 도덕에 문제를 던지는 방관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폭력의 이데아를 추구하는 매체의 목적과 이를 비난하면서 자유를 획득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식적인 태도를 자신의 무덤덤한 태도에 빗대어 재현한다. 그것이 바로 그가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문에 떠들썩하게 담긴 사진을 순백색으로 변환시켜 사진으로 다시 찍는 그의 재현양식의 목적은 공동체가 요구하는 도덕심에 대한 역설적인 고발이고, 이는 그가 사회의 폭력에 광분하는 자들의 목적에 동참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태범_용산참사_D 프린트, 디아섹_150×112cm_2010

현대의 사진은 현실의 세계를 촬영하는데 한정되지 않고, 촬영의 주제를 스스로 창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구성사진은 주제를 위해 대중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인용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기억을 더듬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상황을 구성하기도 한다. 하태범은 현대 사회가 이미지에 의해 소통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이미지 실제화를 구현하는 이미지 생산자이다. 하지만 일종의 구성사진으로서 언론이나 대중매체가 이미지 자체를 통해 어떤 목적을 실현코자 한다면, 그는 구성사진들이 매스이미지를 문제화시키는 방식을 넘어 그 목적에 동조하는 대중의 태도와 그것을 강요하는 사회의 상징적인 구조까지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편함과 불편함, 단순함과 복잡한 심경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 박순영

하태범_용산참사_D 프린트, 디아섹_120×180_2010

하얗게 정화된 참혹한 일상미니어처로 재현된 사건현장 TV와 신문을 통해 보도되는 전쟁과 재해 지역의 참상은 과연 실재일까? 부서진 창과 내동댕이쳐진 신발, 휘어진 철근과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벽, 깨어진 유리병과 잡기들은 보기만 해도 울분을, 아니 숭고함마저 느끼게 한다. 사람들은 참사가 일어난 현장의 묘사가 잔인하고 폭력적일수록 더욱 감동한다. 폭력과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범람하면서 현대인들의 시각은 무감각하게 변해가고 있다. 사진은 영상과는 달리 한 순간을 포착해 영원히 그 순간을 남긴다는 점이 매력이다. 또한 현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지만 작가의 시선과 의도에 따라 왜곡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진은 거짓 또는 진실을 전달하는 양날의 칼과 같다. 또한 정지된 한 컷의 사진은 이미지 자체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사건 그 자체를 모두 이해시키기는 부족한 면이 많다. 용산참사는 독일에 있으면서 기사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 특히 내가 인용한 보도사진은 당시의 참담했던 순간을 매우 강렬하게 포착해 한 보도사진대전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참사의 순간을 너무나 극적으로 찍은 사진은 흡사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실제 사건에 대한 이해보다 사진 이미지 자체에 시선을 더 두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사진에서도 인물과 거대한 화염은 삭제하고, 알아보기 힘든 사물과 색을 지우니 원래 사진이 보여주었던 긴장감과 슬픔은 모두 사라졌다. 덩그러니 남은 진압용 컨테이너와 남일당 건물의 옥상 그리고 허물어지는 가건물의 초라한 일부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사진은 마치 영화를 보듯 대리만족의 희열을 느끼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김보령, 기자, 월간사진 6월호 인터뷰 기사, 2010)

하태범_아이티 지진_D 프린트, 디아섹_120×180cm_2010
하태범_파키스탄 폭탄테러_D 프린트, 디아섹_120×180cm_2010

이번 작업은 사건 사고를 다룬 뉴스의 사진자료를 수집 하는데 부터 시작한다. 이 이미지들은 대부분 분쟁지역이나, 재해를 다룬 사진들로 파괴된 건물과 잔해등, 폐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몇몇 사진을 골라 실제와 최대한 가깝게 모형으로 제작한 후 다시 평면의 사진으로 보여주게 되는데, 모형으로 만들 때, 작은 사진의 이미지로 인하여 묘사하는데 한계가 있고, 사진에 나오는 인물을 삭제 하면서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표현의 문제와, 축소된 형태로 제작하면서 생기는 표현의 한계 때문에 생략과 단순화된 묘사가 이뤄진다. 여기에 실제 당시 상황의 긴박함을 느낄 수 있던 화제의 흔적이나 혈흔은 색채와 함께 제거되고, 무채색의 하얀 단색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형을 사진으로 확대되고 보일 때, 전체적인 이미지는 실제 보도사진과 닮은 형태와 구도를 가지고 있으나, 생략된 표현과 무채색의 이미지는 감정이 배재된 물성만이 남아있는 모호한 허구의 형태만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 대한 고발이나 입장의 전달 보다 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물음이다. 실제사건 현장을 담은 사진은 비록 진실을 전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마치 허구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과 같지 않을까? 내 작업에서 표현의 부재와 단순화는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의 여과, 혹은 냉정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묘사된 무채색의 폐허의 모습을 대형사진으로 보여줌으로써 마치 하나의 조형물과 같은 이미지로 전달되고 거기서 일종의 미적인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인간이 고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잠재적 욕구이지 않을까? ■ 하태범

■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전시지원프로그램_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2010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전시장 임대료, 인쇄료, 홍보료, 작품재료비 및 전시장 구성비, 전시컨설팅 및 도록 서문, 외부평론가 초청 워크숍 개최 등 신진작가의 전시전반을 지원하는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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