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巫 Haemu '한국의 풍어제'

안세홍展 / AHNSEHONG / 安世鴻 / photography   2010_0930 ▶︎ 2010_1006

안세홍_제주도 신양영등굿_한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75×5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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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001_금요일_06:00pm

후원_한국민속연구소_Korea net AICHI

관람시간 / 10:00am~08:00pm

아센스갤러리_ATHENS GALLERY 5F Athens Bookstore 1-6-10 Sinsaibashi Chuo-ku Osaka City, Japan Tel. +81.6.6253.0185 www.athens.co.jp/gallery

종교처럼 다가오는 海巫 사진 ● 내가 사진가 안세홍을 만난 때는 2003년 봄이었다. 한국의 옛날 시장에서 오랫동안 일 해온 상인들을 면접하는 나의 연구에 사진가로 그가 선뜻 따라 나섰다. 문화인류학과 민속학을 연구하는 내가 주로 현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며 民族誌를 작성하는 일을 한다면, 안세홍 역시 나와 비슷한 작업을 한다. 다만 나의 손에는 필드노트가 들려 있지만, 그의 손에는 사진기가 들려있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세홍을 다큐멘터리 사진가라고 부른다. ● 안세홍은 십 수 년 전부터 한반도 남쪽의 당집과 불당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한국적인 것에서 자신의 사진 찍기의 토대를 만들고 싶었단다. 그가 이번에 여는 사진전의 제목은 '海巫'다. 서해안에서 남해안으로 그리고 동해안으로, 심지어 제주도까지 다니며 바닷가에서 무당들이 펼치는 굿을 사진기에 담아냈다. ● 한국에는 오키나와와 아마미오오시마의유타와 비슷한 여자 무당들이 지금도 종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원래 남자 무당도 있었지만, 지금은 여자 무당이 다수를 이룬다. 이 무당들이 펼치는 종교 활동의 핵심은 '굿'이라고 불리는 종교의례이다. '굿'이란 말은 한국어 '궂은 일'에서 나왔다. 곧 사람들이 인생에서 봉착하는 좋지 않은 일을 풀어주는 일이 바로 굿이다. 굿은 보통 정기적으로 행해지기도 하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행해지기도 한다.

안세홍_강원도 주문진 소돌별신굿_한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50×75cm_2010
안세홍_인천 옹진 배연신굿_한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75×50cm_2010
안세홍_경상남도 통영시 죽도별신굿_한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50×75cm_2010

'海巫' 사진전에서 만나는 굿은 모두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무당을 불러서 행해졌다. 서해안에서 행해지는 이런 굿을 보통 '배연신굿'이라고 부른다. 주로 선주들이 무당에게 요청하여 배 위에서 굿이 열린다. 여러 대의 배들이 서로 부딪치면서도 바다의 용왕을 놀린다. 그래서 이런 이름이 붙였다. 이에 비해 남해안과 동해안에서는 별신굿이라고 부른다. 신령을 모셔둔 바닷가의 당집에서 굿이 열린다. 특별히 신령을 놀리는 굿이라는 뜻에서 그 이름이 생겼다. 마을의 어부들이 돈을 내서 무당을 부르면 며칠 동안 밤과 낮을 이어가면서 굿이 행해진다. 일견 종교 행사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자 무당들이 여럿 와서 어민들과 함께 큰 잔치를 벌이는 듯하다. 굿의 마무리는 띠로 작은 배를 만들어 바다로 보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에 비해 제주도에서는 무당을 '심방'이라고 부른다. 지역마다 심방의 권역이 있고, 이들이 해녀들의 요청에 따라 굿을 연행한다. 매년 영등달인 음력2월 상달에 굿을 하게 되는데, 2월 초하루에 비와 바람을 관장하는 영등할망이 제주도에 들어와 바닷가 마을을 돌며 미역 소라 전복 등 채취물의 씨를 뿌려 번식시켜 주고, 마을과 해녀의 안녕과 풍어를 빌며 2월 보름에 강남천자국으로 돌아간다. ● 사실 한국의 사진가 중에는 굿이 열리는 현장만을 찾아다니며 작품을 남긴 분들이 많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한참 진행되었던 1970년대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사라진다는 안타까움이 그들로 하여금 기록처럼 굿을 찍도록 만들었다. 이에 비해 안세홍의 海巫 사진은 이미 산업화가 완성된 이후에 찍은 것들이다. 그것도 미신이 아닌 무형문화재로 등극한 무당들이 주관하는 굿을 찍었다. 그의 사진 한장 한장에는 신명 들린 무당의 표정과 '단골'이라고 불리는 신자들의 진지함, 그리고 간절한 기원이 海巫 사진마다 기록과 사진예술이라는 경계를 넘나들며 담겨 있다. 그래서 안세홍의 '해무'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종교처럼 다가온다. ■ 周永河

안세홍_제주도 성산영등굿_한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50×75cm_2010
안세홍_경상남도 거제도 죽림별신굿_한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50×75cm_2010

海巫-한국의 풍어제 ● 풍어제가 열리는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겨울에서 출어를 준비하는 봄 사이, 바다를 생활터전으로 하는 어민들에게 풍어제는 그 어느 준비보다도 중요한 과정이다. 바다의 대자연속의 두려움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는 어민들이 주체가 되어 무당을 초청해 짧게는 하루 이틀에서 1주일 밤낮으로 굿을 청하고 한 해 동안의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한다. 매년 열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3년 5년 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굿을 청하는 마을도 있다. 바다라는 자연의 힘은 그 어느 누구도 순수히 받아 들여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힘을 극복하고자 인간은 신이라는 초자연적인 힘을 빌어 스스로를 위안하고 자연의 힘과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 자연과 신과 인간이 조화를 통해 하나의 대자연이 되는 것이다.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전통문화는 참여하는 사람들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의 절차에 이르기 까지 금기시하는 모든 것을 지키며, 마을 전체의 안녕을 기원함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다. 특히 풍어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개인에서 마을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풍어제에 직접 참가함으로써 해방감을 가지며, 이러한 시공간은 일상을 벗어난 카오스와 엑스터시한 축제 장이 된다. 풍어제를 무사히 마쳐야 잦아든 바람사이로 비로소 출어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한반도의 반만년 역사와 같이 해온 무는 나에게 있어 사물을 바라보는 정신적 바탕이다. 나와 풍어제의 사이에는 카메라렌즈와 필름이라는 도구가 존재하고, 렌즈를 통해 바라본 사물은 실제 사물을 왜곡해 보여준다. 특히 어민들이 한해의 길흉을 비는 풍어제는 보는 관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에, 대상을 왜곡 없이 그대로 담아내고자 하는 의식속의 사진 작업은 극도의 긴장을 요구하였다. 십 수년간 풍어제의 사진을 찍어오면서 눈으로만 보이는 전통문화의 시점과 그 내면의 종교의식 속의 풍어제 사이에서 고민해왔다. 촬영 순간 순간 그 경계선을 넘나 들 때면 사진 속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분리 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진실 속에서 어우러짐을 찾아내기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낯선 이방인으로서 다가가기 시작해 오랜 시간 동안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하나가 됐을 때 비로소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대상과 나와 카메라가 경계를 허물고 조화를 이룰 때 카메라 파인더 밖으로 사진이 나올 수 있었다. ■ 안세홍

宗教の様にせまり来る海巫の写真 ● 私が写真家安世鴻に出会ったのは2003年の春だった。韓国の昔の市場で長い間働いてきた商人たちに聞き取り調査する私の研究に、写真家の彼が、さっとついてきた。文化人類学と民俗学を研究する私が主に現地で人々と出会い、彼らと過ごしながら民俗誌を作成する仕事をするなら、安世鴻もやはり私と同じ作業をする。但し、私の手にはフィールドノートが、彼の手にはカメラがある。そのため人は、安世鴻をドキュメンタリー写真家と呼ぶ。 安世鴻は十数年前から韓半島南側の神堂、仏堂を探索し回ったという。何故そんなことをしたのかと問うと、韓国的なものからこそ、自身の写真を撮ることの土台を形成したいとのことだった。彼が今回開催する写真展のテーマは「海巫」だ。西海岸から南海岸へ。そして東海岸へ。更には済州島にまで通い、海岸で韓国のシャーマン的存在である巫堂(ムーダン)たちが執り行う祭礼「굿・クッ」をカメラにおさめた。 韓国には、日本の沖縄と奄美大島のユタに類似する女性の巫堂たちが今も宗教活動を行っている。もともとは男性の巫堂もかなりいたが、今では女性が多数を占める。この巫堂によって執り行われる宗教活動の核心はクッと呼ばれる儀礼だ。クッという言葉は韓国語の「궂은 일・クジュンイル=不吉なこと」に由来する。人々の人生に起こる良くない出来事を解くことが、クッである。普段からも定期的に行われるが、特に良くないことが起こったときに解決するためにも行われる。 「海巫」写真展で出会うことのできるクッはすべて、海辺に住む人々が巫堂を呼び、執り行われた。西海岸で行われるこのようなクッを「ペヨンシンクッ」と呼ぶ。船主たちが巫堂に依頼し、船の上で儀式を執り行う。何艘もの船が互いにぶつかり合いながら海の龍王を遊ばせ、もてなす。これに比べて、南海岸と東海岸では別神クッと呼び、神霊を招いた海辺の神堂で儀式が執り行われる。特別に神霊をもてなす儀式という意味でこのような名前で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ムラの漁師たちがお金を出し合って巫堂を呼び、何日もの間夜と昼を繋ぎ、儀式を執り行う。一見宗教行事のようであるが、一方で女性の巫堂が何人か集まり、漁師たちとともに大きな宴を開いているようである。クッの最後は、小さな船を別仕立てで作り、海へと送り出すことで締め括る。また、済州島では巫堂は「シムバン」と呼ばれている。地域ごとにシムバンの圏域があり、海女たちの依頼によってクッが演じられる。毎年済州島で豊漁祭が執り行われる霊登月と呼ばれる旧暦二月。二月一日、雨と風を司る霊(ヨン)登(ドゥン)ハルモニが空から済州島に降りたつ。島の海岸とムラを見回り調べ、ワカメ、サザエ、鮑など海女の収穫物のための種を蒔き繁殖させ、ムラと海女の安寧と豊漁を祈って二月十五日、江南天子国へと去って行く。 実は、韓国の写真家でクッが執り行われる現場ばかりを訪ね作品にする写真家は意外に多い。産業化と都市化が盛んであった1970年代に最も韓国的らしいものが消え去ることへの名残惜しさから、彼らは記録するかのようにクッを撮影したものだった。しかし、これに比べ安世鴻の海巫写真は、既に産業化が完成した後に撮られてきたものである。それも迷信ではなく無形文化財の地位についた巫堂たちが主管する儀式を撮影したのだ。記録と芸術の境界を行き交いながら、神明が降臨した巫堂の表情と「タンゴル(常連・なじみという意)」と呼ばれる信者たちの真剣さ、そして懇切丁寧な祈りを、海巫の写真一枚一枚に込めていった。だから安世鴻の「海巫」の写真は、単純な記録ではなく宗教のように私たちに迫ってくるのだ。 ■ 周永河

海巫-韓国の豊漁祭風が起こる。 豊漁祭が執り行われる今時分になると、必ず風が起こる。冬から出漁の準備をする春まで、海を生活の基盤とする漁民たちにとって豊漁祭はどんな準備よりも重要な課程だ。 海という大自然の中で恐れに身を任すしかない漁民たち。彼らが主体となって巫堂(ムーダン)を招待し、その儀式「クッ」を依頼する。短い場合には一日二日、もっと長いと一週間もの間夜も昼もクッは執り行われ、一年間のムラの安寧と豊漁を祈願する。豊漁祭は、毎年行われてしかるべきものであるが、三年、五年ごとと、長い間待ち続けてようやく儀式を依頼することができるムラもある。 海という自然の御しがたい力を誰もがただ受け入れるしかない。しかし、このような力を克服しようと人間は神という超自然の力に祈り、自らを慰労し、自然の力との調和を築こうとする。自然と神と人が調和を通して一つの大自然となるのだ。 ムラの安寧と豊漁を祈る伝統文化において、人々は用意する品々から儀式の細かな手順に至るまで、タブーとするもの全てを守り、ムラ全体の安寧を祈りながら自身の正体性を確認していく。特に豊漁祭が開かれる期間、個人はもちろん、ムラ共同体全体が普段から従事している仕事を中断させ、豊漁祭に全力を注ぐ。人々が開放感をもって豊漁祭に参加した祭は、日常とかけ離れたカオスとエクスタシーの時空間と化す。 豊漁祭を無事に終えることができると、静まる風の間を、やっと出漁の準備が整うのだ。 韓半島五千年の歴史とともに受け継がれてきた巫俗(ムソク)は、私にとって様々な事物を見つめる精神的ベースとなっている。私と豊漁祭の間にはカメラレンズとフィルムという道具が存在し、レンズを通して見たものはどうしても実際のそれを歪曲して見せてしまう。特に、漁民たちが一年の安寧を占う豊漁祭は、見る観点によっては迷信や宗教的な意味に捉われて異なった見え方をする。そのため、撮影する対象を歪曲することなく、出来るだけありのままをおさめようとする意識の中で行われる撮影作業は、極度の緊張を要する。 十数年間豊漁祭の写真を撮り続け、目に見える伝統文化としての視点と、宗教意識という内面的な観点との間で思い悩んだ。分離することのできない二つの真実の中で、重なり合うものを探し出すことはそう簡単ではなかった。見知らぬ異邦人として近づき始め、長い時間をかけて豊漁祭という対象への深い理解を通してひとつになったとき、やっとその境界を自由に行きかう写真を撮ることができた。 対象と私、そしてカメラが境界を崩し、調和を築き上げるとき、ファインダーの向こうに写真を作り出すことができた。 ● 安世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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