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식 濕蝕 Wet Corrosion

이진영展 / LEEJINYOUNG / 李珍暎 / photography   2010_1005 ▶︎ 2010_1016 / 월요일 휴관

이진영_Wet Corrosion_암브로타입, C 프린트_102.5×82cm_2010

초대일시_2010_1005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CHEOUNGJU ART STUDIO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로 55 Tel. +82.43.200.6135~7 www.cjartstudio.com

Wet Corrosion-포토그램 (PHOTOGRAM)혹은 포토그래피(PHOTOGRAPHY) ● 신비주의자들의 사전엔 엔그램(Engram)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기억흔적' 혹은 '기억심상'이라 설명 되는 이 엔그램은 세포에 형성되는 물리적인 기억의 흔적을 의미한다. 과학적으로 이것의 존재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렇게 '무엇이었던 것'으로의 흔적이라는 것과 동시에 부재하는 어떤 기억으로 환기되어지는 '드러나기'는 사진과 많이 닮아 있다. 체온을 전달하며 깊게 나누는 악수의 손위로 혹은 깊은 상처에 남겨진 이름 없는 것들의 명징한 기억들은 이렇게 징후적이다.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회화의 기원」 (Origin of Painting)으로 '코린트의 여인'이라는 일화를 언급한다. 그 이야기는 한 여인이 다음날 먼 곳으로 떠나야 하는 사랑하는 남자의 잠든 모습을 간직하고자 벽에 램프를 비추어 그의 그림자의 윤곽선을 그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도우그래피(Shadowgraphy)는 회화의 기원으로 이야기되지만 생각해보면 초기 사진술과 아주 흡사하다. "빛으로(photos) + 그린다(graphein)"라는 어원의 포토그래프(Photograph)와 그것의 전신인 헬리오그래피 (Heliography) 즉 "태양으로(Hélios) +그린다(gráphō)"라는 이름을 단지 테크닉을 명명한 것으로 상식화하기엔 실로 많은 영감들이 담겨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기억흔적」은 엔그래피(Engraphy)가 아닌 엔그램(Engram)이라 불리고 사진은 포토그램(Photogram)이 아닌 포토그래프(photograph) 인가 하는 것이다. 또한 코린트의 여인이 벽에 그린 그림자의 윤곽선은 왜 새도우그램(shadowgram)이 아닌 새도우그래피(Shadowgraphy)라 명명되는 것일까? 이러한 「–gram」 과 「–graph」의 접미사는 문자와 그림의 관계로 이해될 수 있다. 글씨처럼 조합에 의해 혹은 레이어처럼 떼어내어 다르게 구성이 가능한 '-gram'과 코린트의 여인이 그린 그림자의 윤곽선처럼 벽이라는 그림자가 현존했던 부재의 바탕을 무시할 수 없는, 떼어 낼 수 없는, 그것이 '-graph'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무엇을 그렸는가?"의 의미로의 질문뿐이 아닌 "무엇으로 무엇 위에 그려졌는가?"라는 질문을 간과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저 이름들에 담긴 영감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점들이 오늘날 아직도 지루하게 질문되어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사진의 대질의 어떠한 측면을 명확히 설명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어원적인 고찰로 보았을 때 디지털 사진은 세포의 」기억흔적「인 엔그램의 최소단위인 개별 세포처럼 픽셀(pixel)이란 구별 되어지는 최소단위가 존재하기에 포토그래피(Photography)라기 보다는 포토그램(Photogram)이 적절한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날 데이터그램(Datagram)에 갇혀 물질(출력)을 꿈꾸는 이미지들의 무게 없는 중력의 지평 속에서 [촬영 – 현상 – 인화]라는 제의는 이제는 거추장스러워진 성(聖)의 영역 속에서의 형이상학 일까? 아니면 과학의 시녀 대접을 받았던 출생이 속(俗)되었던 어느 매체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이진영_Wet Corrosion_암브로타입, Glass negative_12.5×10cm 이진영_Wet Corrosion_C 프린트_48.5×4 1.5cm_2010
이진영_Wet Corrosion_암브로타입, C 프린트_60×70cm_2010
이진영_Retrace_C 프린트_83×60.5 cm_2006

건조한 불멸(Dry Immortality)과 젖은 생명(Wet Life) ● 여름 어느 날 오래된 지인인 이진영 작가로부터 그녀의 새로운 작업의 이미지들을 메일로 받아 보았다. 예상외로 암브로타입(Ambrotype)으로 작업된 사진들이었고 몇 장의 포트레이트와 정물은 난생 처음 디카를 구입하여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찍어 되던 나의 눈에 너무나도 낯설게 다가 왔다. 주저 없이 왜 아날로그냐는 재미없는 질문을 던졌고 그리고 여류 사진가 샐리 맨(Sally Mann)의 사진을 몇 장 링크하여 메일을 보냈다. 며칠 후 답장이 왔고 남들이 말하는 좋은 사진기를 살 여유가 없어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힘들지만 재미있다는 짧은 답이었다. 그 후 더 진행된 작업의 이미지들을 받아 보았다. 그녀의 이전의 작품인 스캐너로 촬영된 "Retrace"를 돌아보지 않을 수 가 없었다. 한 작가의 작품들에서 어떠한 지속되는 작가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처럼 다른 매체로 같은 세계를 드러내는 인덱스를 중요한 작품의 요소로 꺼내놓는 시도를 하는데 그것이 전작 「Retrace」와 신작 「Wet corrosion」이다. 특히 건조한 이미지의 「Retrace」와는 대조적으로 「Wet corrosion」의 경우 물의 질료적 속성을 강조하면서 작가는 해석되어지는 '기호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물질로서의 이미지'로의 과감한 시도를 한다. 그것은 유리판이 젖어있을 때 노출하고 현상까지 모두 젖어 있는 상태에서만이 가능한 암브로타입(Ambrotype)이라는 이미 오래 전 사라진 하지만 불멸(Ambrotos)을 - 실제로 암브로타입의 암브로는 불멸(immortality)을 의미한다 - 꿈꾸었던 사진술을 통해 극대화 된다. 젖은 점액질이 마르면서 비로소 투명해지는 콜로디온(collodion)이라는 화학물의 성격이 이 작업의 사진술로서만이 아닌 작업의 모티브가 되어지는데 지구의 모든 생명이 실제로 젖은 생명(Wet Life)이 듯 촬영과 현상 내내 젖은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암브로타입은 마치 생명이 체온을 지키듯 습기를 내내 보존해야만 한다. 그것은 그녀의 작업에 있어 귀찮은 곤욕이 아니라 바로 생생히 현현되어질 저편의 상(像)들을 만들어내는 필연적 체험의 기록들일 것이다.

이진영_Wet Corrosion_암브로타입, C 프린트_70×60cm_2010
이진영_Wet Corrosion_암브로타입, C 프린트_48.5×41.5cm_2010
이진영_Retrace(Amalia)_C 프린트_129×95cm_2009

그리고 젖은 증인(Wetness) ● 이렇게 암브로타입은 젖음을 증언한 체 완전 건조되어 불멸을 꿈꾸는 듯 그렇게 유리판 위에 정착된다. 어느 소녀의 젖은 눈과 뺨 위로 흐르는 눈물, 비 오는 어느 건물의 옥상에 하얀 물감처럼 번지는 듯한 소녀의 뒷모습, 어느 실내의 얼어 붙은듯한 얼굴과 증기처럼 알아 볼 수 없는 정물들은 촬영과 현상시의 콜로디온의 흐름에 의하여 불안정하게 상으로 맺혀 다시 한번 액체의 질료적 속성이 물질로 드러나는데 여기서 작가는 집요하게 물의 3가지의 상태 [액체, 기체, 고체]의 상태를 촬영전과 후에 의도적으로 작업에 개입시킨다. 이러한 시도들은 직접적인 효과로서의 현상이 아닌 하나의 수반현상(Epiphenomenon)이라 말해 질 수 있다. 즉, 차가운 컵 위에 맺혀진 수증기처럼 열에 의해 수반되며 자신의 원인인 열에는 작용하지는 않지만 어떤 세계의 원인이 되어질 수 있는 잠재의 상태로의 현상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경험을 환기시키는 그러한 상태로서의 그녀의 이미지는 말없이 묵묵히 젖은 눈망울을 한 채로 유재가 그림처럼 그려져 있는 젖은 유리판 앞에 증인처럼 서있었던 어느 소녀와 어느 공간과 어느 빛과 어느 계절 그리고 그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말라버린 유리판은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수반되어지는 하나의 기록된 평면이 아닌 하나의 잠재된 상태(State)인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물질이 되어 이렇게 다시 부식(corrosion)의 운명에 노출되었다. 첨예의 기술이 집약된 사진기와 기술들이 암브로타입의 출현 때처럼 자신 만큼은 불멸할 듯 우쭐한 오늘, 몇 세대 이전의 이미 죽어버린 '불멸'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사진술을 자신의 것으로 실현코자 온갖 화공약품 골목을 뒤졌을 작가의 걸음은 단지 아날로그로의 향수 즉, 멀어져야지만, 떠나야지만 실로 고향을 얻게 되는 역설로의 감성이 아닌 떠나야 하는 사랑하는 남자의 그림자를 그리는 '코린트의 여인'처럼 어떤 절실한 상태(State)인 그녀의 '기억흔적' 그리고 '기억심상'으로의 발현된 필연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 김윤철

Vol.20101005c | 이진영展 / LEEJINYOUNG / 李珍暎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