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팜 Beauty Farm

정기현展 / JEOUNGKIHEOUN / 鄭基炫 / installation   2010_1009 ▶︎ 2010_1016 / 월요일 휴관

정기현_beauty farm_단채널 영상_00:06:45_2010

초대일시_2010_1009_토요일_05: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_경기문화재단 협력_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관람시간 / 0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LITMUS COMMUNITY SPACE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786번지 B1 Tel. +82.31.494.4595 www.litmus.cc

뷰티 팜으로부터의 위험한 초대 ● 정기현의 작품은 위험하다. 어쩌면 그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전시라는 영역에 그의 작품이 들어오게 되면, 그의 작품은 이제 그의 작품만은 아니다. 보는 자들의 영역에 들어왔기 때문에, 보는 자의 편에서 볼 수밖에 없다. 보는 자의 편에서 그의 작품은 위험하다. 왜? 무엇이든 일차적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분류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들에게 그의 작품은 딱히 이것과 저것으로 분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것과 저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술과 삶이다. ● 예술과 삶, 이는 매우 오래된 문제다. 예술이 지나치게 삶, 더 나아가 현실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에 관여하면, 우리는 이것을 예술의 자율성의 훼손으로 보기도 한다. 반대로 예술이 삶과 현실을 외면하고 자율적인 예술만을 추구한다면, 벤야민 식의 비판이 가능하다. 즉 예술은 자율성이라는 아름다운 가상을 추구해 온 것이라고 말이다. 예술과 삶은 운명적으로 서로 어떤 부분이 붙어있는 샴 쌍둥이와 같은 존재다. 그것도 매우 비극적으로 서로 다른 곳을 볼 수 있게 되어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결국 문제는 이렇게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함께 가려하지 않는데 있다. 때로는 극단적으로 자기가 보는 방향 쪽으로만 계속 나가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은 바로 예술과 삶이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 몇 년 전부터 정기현의 작품에는 예술과 삶이라는 문제가 화두로 등장했다. 게다가 또 다른 어려운 문제는 자연까지 그의 작품 세계에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그의 작품들을 보면, 예술, 삶 그리고 자연이 혼종되어 있다. 그는 예술가이기도 하고, 농부로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 그의 현실적 상황이 그의 작품에 온전히 드러나고 있다. 예술가이자 농부인 그는 때로는 예술가의 시선으로 또 때로는 농부의 시선으로 주변의 자연을 관찰한다. 그는 이를 결합시켜 자신의 작업 공간이자 삶의 공간을『뷰티 팜』이라고 부르며, 이 뷰티 팜에서 풀과 곤충들을 관찰하고, 채소와 동물들을 키운다. 그냥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과 성장하는 방식을 예술가적 시선으로 관찰한다. 그의 예술 세계는 바로 예술가적 관찰이라는 것에서 시작한다.

정기현_beauty farm_단채널 영상_00:06:45_2010
정기현_허수아비_나무, 석고, 환풍기, 비닐봉지_180×200cm_2010

그는 자신의 작품 행위를 물질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에 제한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예술 행위, 즉 예술가적 관찰에서 자신의 작품을 시작함과 동시에 완성한다. 또 때로는 요셉 보이스가 나무들을 심는 행위를 예술적 행위로 그리고 그 나무들이 자라는 과정을 예술이 수행되는 과정으로 표현했듯이, 정기현 또한 풀과 곡식들을 심고 그들이 자라는 과정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뷰티 팜에서 결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보는 자는 다시 혼란에 빠진다. 심고 가꾸는 행위는 그의 삶일까, 아니면 의도된 예술적 행위일까? 정기현은 스스로 말한다. 아무렇게나 방치하여 농사를 짓고 아무렇게나 방치한 채로 가축을 기르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법과 그 방법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예술과의 만남을 시도하고 싶었다고 말이다. ●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만남을 시도한다는 것에 있다. 그것도 아무렇게나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예술적인 행위가 전제된 만남을 시도한다는데 있다. 만남이란, 서로 다른 것들이 존재해야 가능한 것이다. 다르지 않다면, 바로 그것이 그것이기 때문에, 만날 필요가 없다.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또 다른 영역들이 만난다는 것은 서로 결코 일치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술, 자연 그리고 삶이란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다르지만, 이 세 개는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런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세 영역에 예술가가 관여할 때, 예술가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매우 다양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태도를 바람직한 태도라고 볼 수 있을까? 할 포스터는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한다. 그는 예술과 삶 사이의 태도의 모범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예리한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이 추구한 것은 예술의 추상적 부정도 아니며, 그렇다고 삶과의 낭만적인 화해를 추구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 둘의 관계여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그 긴장감에서 작업했다고 평가한다. ● 그렇다. 바로 핵심은 예술의 추상적인 부정도 아니고, 또 삶과의 낭만적인 화해도 아닌, 그 관계들 속에서 발생하는 긴장들을 유지하면서 이 관계들을 끊임없이 시험해야 하는 것이다. 정기현은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바로 이러한 긴장들을 보여준다. 그가 의도했던 또는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그의 작품들 속에서는 자연을 매개로 해서 예술과 삶이 서로 매개된다. 매개되는 방법은 결코 보는 자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또 예술과 삶에 대해 무심한 듯 하면서도 매우 예리한 물음들을 보는 자들에게 던진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풀과 닭과 그리고 인간들이 평화롭게 있는 영상들은 보는 자들에게는 본질적인 물음을 건네기 때문에 위험하고 불편하다.

정기현_풀_각종 채소나 풀들_2010
정기현_이종_각종씨앗_흙, 포트, 비닐하우스_2010

이렇게 내재된 위험 때문에 정기현의 뷰티 팜은 뷰티하지 않다. 뷰티하지 않다는 것은 뷰티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뷰티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이 위험한 경계들을 매우 이례적으로『뷰티 팜』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자신에게는 뷰티했을지 모르지만, 보는 자들은 당혹스럽다. 그것도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왜 뷰티하지 않는냐라고 묻기 때문에, 더욱 당혹스럽다. 그 당혹감의 정체는 바로 예술과 삶의 문제다. 본질적인 문제를 에두르지 않고, 바로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정기현의 뷰티 팜은 뷰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는 자에게 위험하고 불편한 물음들을 던져 준다. 그는 우리를 자신의 위험한 뷰티 팜에 초대했다. 뷰티 팜 속에 수많은 가시들을 감추어둔 채 말이다. 초대에 응한 보는 자들은 이제 그 뷰티함 속에 감추어진 가시를 찾고, 가시에 찔려야 될 것이다. 그 다음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깊은 잠에 빠지거나 또는 아픔에 의해서 각성을 해야 할 것이다. 예술과 삶의 긴장 관계에서. ■ 심혜련

정기현_체험학습_2010
정기현_옥상_버려진 깡통, 스티로폼_2010

어느 것 하나도 필요 없는 풀들이 없고, 하나도 소용없는 곤충이 없는 자연 그대로를 이해하고 그 속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질서를 읽는 방법을 예술로 표현하는 과정-뷰티 팜 프로젝트는 2010년 4월에 시작하여 10월 9일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에 전시까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28-9번지에서 진행되었다.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로, 분수리 마을 주민들과 관내 어린이들이 정기적으로 참여하여 여러 가지 체험을 하였다. 비디오 영상 만들기, 동물들과 친하게 지내기, 자연과 동물을 주제로 그림 그리기, 이름 모를 주변의 풀 찾기 등을 진행하였다. 마을 주변 버려진 땅을 찾아서 비디오영상으로 아름답게 만들어보기, 옥상에 채소를 이용한 정원 만들기,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방치하여 농사 짖기, 방사하여 가축 기르기 등등...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하고 체험하는 과정에서 예술과의 만남을 시도하였다. ■ 정기현

Vol.20101010c | 정기현展 / JEOUNGKIHEOUN / 鄭基炫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