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사고

2010_1001 ▶︎ 2010_1014 / 일요일 휴관

임동승_사과 여인2 Apple Woman2_캔버스에 유채_150×190cm_2010

초대일시_2010_1001_금요일_05:30pm

참여작가_임동승_이자영_최영빈_유현경

주최_아트지오 갤러리 기획_구세주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일요일 휴관

아트지오갤러리_ARTZIO GALLE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53-53번지 1층, B1 Tel. +82.2.566.2330 www.artzio.co.kr

산하, 어제 이들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표현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우리가 헤어지고 나서 그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동승, 현경, 영빈, 자영의 그림에는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거대하고 동그란 머리를 가진 여인이 머리만큼이나 동그란 눈을 치켜뜨고 우아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어요. 다리가 네 개 인지 팔이 세 개인지 알 수 없는 신체가 공중에서 부유하고 있고요, 스물다섯 칸 화면에서 스물다섯 번 섹스를 하네요. 새파란 불꽃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모르게 분출중이구요. 이것들은 때론 너무나 생생해서 두렵기도 하고 때론 피식 웃음 나오는 유머를 선물하기도 하죠. 온통 혼란이 가득한 이 속에서 질서를 찾기란 쉽지 않아요. 그런데 질서가, 현실에서는 존재하는 건가요? 마음속에 있는 욕망과 관념들은 저절로 자라나서 여운을 남기곤 해요. 내 안에 있는 것과 내 밖에 있는 것들이 충돌해 생기는 혼란과 애매함. 이들을 분명하게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표현은 가능하죠. 그리고 그 표현은 이들의 그림에서 억제하고 조율하는 게 아니라 드러내고 균형을 맞춤으로써 존재해요. 형상과 물질이 뒤섞이면서 생겨나는 흔적. 색과 질감을 가진 형체들은 울퉁불퉁한 두께만큼이나 어지럽게 느껴지지만 매혹적이에요. 지난번 술자리에서 현경이 그런 말을 했었죠? 지나간 작업에 대한 애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림의 두터운 물성은 강렬한 그녀의 욕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물감의 흔적은 그것이 남겨지던 상황을 증언하듯 그녀의, 나의 욕망을 자꾸만 만지고 훔쳐보게 하는 것 같아요.

임동승_무제A Untitled A_캔버스에 유채_180×158cm_2010
최영빈_머리의 몸 - 육신은 꿈꾸지 않는다. Flesh of the Head - The Body Never Dreams_ 캔버스에 유채_130.3×194cm_2010
최영빈_어떤 한계 Certain Limitation_캔버스에 유채_162.2×130.2cm_2010

세주,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날씨가 꽤 쌀쌀해졌네요. 쓰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시간을 이제 서야 천천히 밀어 보내고, 몇 자 적어 보냅니다. 늦은 답장 미안해요. 그들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뭐랄까요 제 머리와 마음엔 많은 덩어리들과 흘러가는 것들, 느끼지만 말할 수 없는 것들이 피어오릅니다. 어린아이, 날 것, 그늘, 혼란, 욕망, 균형과 균열, 야생 따위의 단어와 그 이미지들이 제 머릿속을 날뛰어 다녀요. 어떤 것은 그렇게 날뛰다가 제풀에 지쳐 널브러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 같은 숨을 쉽니다. 색채와 붓질의 구분을 찾아보기 어려운 자영의 그림은 그 때문에 어떤 상태나 인상을 강렬히 드러내지요. 그렇게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 그늘진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요. 동승의 그림은 '덧대는-덧입히는 그리는-지켜보는' 그 과정의 무한한 반복으로 생겼을 두께와 흔적들이 그 과거의 시간과 과정을 더듬어보게 합니다. 현경의 욕망과 망상 그것을 구체화시켜 드러내려는 시도는 영빈의 그림에서 보여 지는 머리 없이 부유하는 몸과 포개어지는 순간이 있지요. 질서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명확하고 단호하고 확신에 찬 그 무엇보다. 애매하고 모호한 순간들, 허약한 의지와 갈팡질팡하는 시간, 쉽게 무너지고 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늘 더 마음이 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자영_깊은 지붕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4cm_2010

산하, 편지를 읽고 마음이 덜컥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늘 머리와 마음속엔 머물지만 글로 정리하기 어려운, 큰 물음을 주었어요.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은 이들 네 사람을 왜 모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되겠죠.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우린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을 통해 변화를 경험하고 인생이 흘러간다는 걸 실감하지요. 그 속에서 생성과 소멸, 실재와 상상, 기억과 망각, 동경과 공포 같은 대립된 개념들이 사실 언제나 함께 존재하며, 실제의 삶에서 그 경계가 모호한 순환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되요. 삶을 선물 받은 대가로 삶을 돌려줘야 하는 시간의 역설 속에서 우리는 대립된 것들을 규정하려고 애씁니다. 질서를 부여하고 안정을 찾으려는 거죠. 그런데 미처 질서를 부여하지 못한 순간을 틈타 규정짓고 싶지 않은 마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욕망들이 드러날 때 문득 두려움을 느낍니다. 마치 그림자처럼 늘 존재하지만 눈여겨보지 않는, 그러나 보게 되면 눈을 뗄 수 없는 이것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 어느 순간 질서를 허물어 버릴 듯해요. 하지만 그림자를 어둠에 머물게 하기보다, 불러내 마주하고 주무르며 즐길 수도 있겠지요. 질서를 탈출해 뒤죽박죽인, 그래서 재미있는 대상화된 두려움과의 놀이. 멋진 답변보다 현명한 물음을 던지는 사람이 더 훌륭하다고 하죠. 산하의 물음에 미약한 답변인 것 같아 부끄럽지만 몇 자 적어봅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머리에서 어지러이 피어오르지만 저의 말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네요.

유현경_그림 일기_캔버스에 유채_181.8×259.1cm_2010

세주, 날씨가 꽤 쌀쌀해 졌어요. 감기는 좀 나아 졌나요? 저는 세주에게 편지를 보낸 후 정말이지,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림에서 그리고 그림을 통해서 제가 본 것 뿐 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보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지요. 저에게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공간과 사람입니다. 공간과 그 공간 안에 위치한 인물이 가장 잘 드러나는 그림은 동승과 영빈의 것입니다. 그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주변, 환경, 공간이 인물보다 앞서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눈앞에 확연히 보이는 것은 살덩어리와 거대하고 동그란 머리를 가진 여인이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공간과 주변을 포함한' 것으로 존재하지요. 어떤 '세계' 안에 놓이는 것이에요. 영빈의 그림에서는 사람과 살덩어리가 그 세계 안에 놓여지는 '위치'가 보입니다. 뒤편에 서있는 사람은 저와 함께 그 것을 응시하고 있어요. 보는 자와 보여지는 것의 구분이 아주 뚜렷하지요. 현경의 그림은 어쩐지 공간의 무게보단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잘 느껴집니다. 이런 지점이 인물과 공간을 모두 날려 버린 자영의 그림과 닮았지요. 누군가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라고 물으면, '그 목적은 아주 광대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확고하지 않은 세계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일들은 어쩐지 모두 아슬아슬하고, 뒤죽박죽이며, 길들여지지 않는 성질이 있지만, 그것이 어떤 일이든지 간에 가능하며 지속되는 힘은 끊임없이 좀 더 가뿐해 지려는 노력과 유머로부터 도래 되는 것 아닐까요. ■ 이산하_구세주

Vol.20101010f | 야생사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