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Dalbbit - Moonshine)

이재삼展 / LEEJAESAM / 李在三 / painting   2010_1011 ▶︎ 2010_1108 / 월요일 휴관

이재삼_달빛(Dalbbit-MoonShine)_캔버스에 목탄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70529f | 이재삼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_갤러리 아트사이드 www.artside.org

관람료 / 어른 7,000원 / 어린이 5,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공휴일_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장흥아트파크 JANGHEUNG ARTPARK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8번지 Tel. +82.31.877.0500 www.artpark.co.kr

긴 밤길에서 조우한 대상과 달빛 ● 이재삼은 우리에게 목탄 회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아니면 소나무를 목탄으로 그리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목탄이라는 이미지와 관념은 여기서 곧바로 해지되어야 한다. 하이 테크니션으로서의 이재삼보다 더 긴박한 내용이 다수 내포되었기 때문이다. 이재삼의 회화 원칙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정처 없는 방랑 이후 우연히 만나는 자연 대상과의 조우이며, 이 조우에서 작가가 느끼는 첫 대면식이다. 어떤 자연 대상과 마주칠 때 느껴지는 에너지나 동질감, 교감 등 신비한 경험이 없을 때 대면식이라는 용어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작가가 말하는 내적 경험(inner experience)이 생생할 때야 비로소 대화를 시도하면서 대면식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재삼은 어떤 경우에만 특별히 이루어진 특정 자연 대상과의 교감을 아주 오래 지속시키며 감상한다. 그리고 밤까지 그 여운을 지속시킨다. 즉 그 대상을 밤이라는 암흑에 가두는 것이다. 특정 대상 이외의 다른 장면은 폐쇄시키고(closing) 오로지 대상만의 전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밤의 시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탄이라는 재료와 기법은 이재삼에게 선택 요소 중 하나일 뿐이지 결코 목적 자체가 아니다.

이재삼_달빛(Dalbbit-MoonShine)_캔버스에 목탄_181×454cm_2010
이재삼_달빛(Dalbbit-MoonShine)_캔버스에 목탄_130×388cm_2010

또 하나 달빛이 테마가 되는 이유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이재삼에게 달빛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다. 이재삼에게 그것은 신성(神性)이다. 동서고금으로 태양을 숭배하는 일은 허다하다. 그런데 달빛은 태양신의 대립 개념으로서의 신성이 아니다. 이재삼이 달빛에서 신성을 발견하는 것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시간의 속성 때문이다. 정오의 태양은 눈부셔서 보이지 않는다. 태양은 제왕적 권력이자 유일시되는 맹목이다. 태양은 때론 이성(理性, reason)이다. 그리고 남성성의 상징(muscularity)이다. 그 누구도 한낮의 정오에 소원을 빌고 바람을 기원하지 않는다. 기원은 밤 시간에 진행된다. 달빛은 모성을 무척이나 닮았다. 아니, 달빛은 모성 자체일 수도 있다. 이성이 아닌 어머니의 마음을 닮은 달빛은 직관의 세계이자 직감의 현현이다. 세계와 오히려 적나라하게 감응되는 동화(同化)의 시간이다. 이재삼에게 밤과 달빛과 목탄이라는 필연이 생성된 이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재미있는 것은 간혹 세상이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며, 작가가 만나서 눈앞에 육화시키는 대상이야말로 애초에 이재삼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설계된 필연이 이미 내재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재삼_달빛(Dalbbit-MoonShine)_캔버스에 목탄_60×160cm_2008
이재삼_달빛(Dalbbit-MoonShine)_캔버스에 목탄_2008

또 하나 이재삼의 예술세계는 "태양을 꺼라(turn off the sun)"라는 화두를 상기시킨다. "태양을 꺼라"라는 말은 당연 한국 철학자 다석 류영모 선생의 일대 화두였다. 유불선의 전통 사상의 기반 위에 서구 합리론의 철학과 과학까지 탐구하며 전국을 주유했던, 존엄 있는 인물인데, 그는 서구 합리론의 폐해가 빚어낸 기계론적 자연관, 세계를 천국과 현세로 구분 분열시킨 이원론적 세계관, 분열적 물질주의를 경고했다. 이러한 서구의 피폐된 분석주의는 이성의 도취된 자기기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양을 마음으로부터 멸했을 때 오히려 직감과 자연과 신성이 하나된다. 이 태양이 없어진 시간부터 경건한 영험의 체험이 극화된다. 따라서 이재삼의 회화는 물질적 분열 일로에 선 21세기 문명에 대한 반성이다. 그런데 이재삼의 예술세계가 지향하는 바는 결코 과거로 회귀하라는 자연주의가 아니다. 후기 자본주의, 물질 분열기의 물질시대, 글로벌리즘으로 대변되는 현세에 성숙한 자연관을 견지하자는 제스처다. 곧 맹목적 범신론,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대변되는 인식발전사에서 더 바람직한 미래상, 그 둘이 조화를 이룬 선경의 깊이를 알자는 제스처이다.

이재삼_달빛(Dalbbit-MoonShine)_캔버스에 목탄_2008

또 하나 목탄을 이용한 이재삼의 회화가 단순히 목탄화의 범주를 초월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신문지나 일반 페이퍼를 무수한 반복에 의해 흑연으로 칠하면 일상적 용품으로서의 종이는 종이라는 물질적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서 금속도 아니고 광물도 아니며 종이도 아닌 상태로 변한다. 전혀 이질적 속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재삼 회화의 특징 역시 무한한 자기 반복과 노동력에 의해 목탄이 캔버스 면천과 만나면서 전혀 새로운 속성의 카테고리를 얻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용하지 않은 태초의 종이, 그 흰 바탕과도 같은 면천의 텅 빔(emptiness)이 완전히 사라지고 무한 반복의 스트로크에 의해 굳건한 물성을 체현하게 된다는 점이다. ● 이재삼이 이 무한반복의 노동에 의해 정지시키고 싶었던 것은 세월의 풍파에도 좌초되지 않는 굳건한 이미지의 재건이다. 주지와 같이 이미지는 시대에 갇혀있다. 80년대의 사진과 80년대의 회화는 그 시간에 갇혀 있다. 그런데 이재삼의 회화는 노동의 숭고에 의해 시간에 갇히는 이미지의 속성을 초월하고 있다. 그의 회화는 개인적 발전 양식은 다르지만 작품 전반적으로 어느 시대에 속해졌다는 지시력을 거부하는 힘을 지녔다. 바로 그러한 점이 이재삼 회화가 갖는 승리가 아닐까 싶다. ■ 이진명

이재삼_달빛(Dalbbit-MoonShine)_캔버스에 목탄_2008

An object and the Moonlight Encountered on the Street during a Long Night ● Jaesam Lee is well known for his charcoal paintings, or rather as a painter who describes bamboo trees using charcoal. However, the image and concept of charcoal as a medium should be eradicated in descriptions of his work because he is not an artist who focuses on technique, but an artist who has created more acute content. ● As one of the important principles in his painting is the mysterious experience of encountering natural objects during his aimless wandering, he emphasizes the mysterious experience of bumping into them. He calls this kind of special experience a ritual of encounter. If he does not experience a mysterious feeling ― such as energy and empathy ― from a natural object, then the experience is not related with the rite of encounter. On the contrary, if he vividly feels some internal sympathy with a natural object, he names the first meeting with it a ritual of encounter. Once he feels sympathy with a natural object, he tries to stare at it, maintaining his sympathy in his heart for a long period of time. Sometimes he watches the object throughout the night as he wants to witness how darkness confines it. He purposely chooses the night to make other surrounding objects disappear from the scenery and to make only the object of his attention stand out in the darkness. Thus, charcoal is not a material of purpose but an optional element in his painting. ● We need to pay attention to why he chooses moonlight as his theme. To him, moonlight is not a simple esthetic element. He thinks of it as a divine being. It is common for people to worship the sun in the East and the West. However, as the opposite concept of the sun god, his moonlight does not have divinity. Jaesam Lee finds divinity in moonlight through the nature of time. The sun at noon is so bright that we cannot look at it. The sun is regarded as an exclusive imperial power. The sun is sometimes considered a rational being. And it often symbolizes muscularity. No one makes a wish from the sun at noon. Making a wish is done at night. Moonlight is very similar to maternity. I think moonlight is an object that best reveals maternity. Moonlight that resembles the feeling of motherhood is an intuitive world and the realization of intuition. It is also a time of assimilation when one can candidly sympathize with the world. Up to now, I have looked into why night, moonlight, and charcoal have become inevitable elements in his work. Interestingly, I think the world is full of inevitability disguised in the form of accidents. Therefore, I think that the objects this artist runs into, and that are embodied by his work, might be inevitable beings pre-designed to kindle his heart. ● This artist's esthetic world may remind viewers of the theme 'Turn off the Sun.' This phrase, 'Turn off the Sun', was the subject the Korean philosopher Youngmo Ryu thought about during his entire life. Youngmo Ryu investigated Western rationalism and science based on the traditional ideologies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and warned of the mechanical view of nature that was made from Western rationalism, a dualism that divides the world into the heavens and earth, and a materialism that promotes conflict. He thought these exhausted analyses of the West originated from an intoxicated self-deception of rationalism. When one annihilates the sun from one's heart, one's intuition, nature, and divinity become one. From the moment the sun sets, the experience of a pious miracle is maximized. Thus, the paintings of Jaesam Lee are a reflection on a 21st century civilization that keeps on being divided spiritually. However, the artist' work is not a naturalism that goes back to the past. Rather, it pursues a mature naturalism in the present that is represented by late capitalism, materialism promoting spiritual division, and globalism. In other words, it is a gesture to encourage people to think about a more desirable future in the history of epistemology, which is represented by a blind pantheism and mechanical naturalism, and to know the depth of profound knowledge made through a harmony between them. Here, I think I need to explain how this artist's work using only charcoal simply transcends the category of charcoal painting. When you repeatedly smear newspaper or pieces of paper with charcoal, you can see that the paper does not belong to the category of paper anymore but becomes a state that is not paper, metal, nor mineral. They are reborn with a totally different trait. The paintings of Jaesam Lee come to be categorized into a totally different area as charcoal meets with the fabric of the canvas through infinite smearing and his own labor. The material made through these processes becomes paper no one has ever used, and the artist paints on the screen until there is no more empty space. His work is then embodied as a piece that has a firm property of material through his infinite strokes. ● What Jaesam Lee wants to stop through his infinite labor is a firm image that does not sink even by the hardship of time. As I mentioned above, images are confined within time. The photos and paintings of the 1980s are confined to their era. However, through his noble labor, this artist's paintings transcend the nature of images that are confined within their time. Each of his paintings has a power that can reject the referential categories that force artistic works to belong to a certain period. I think this point is the triumph his paintings obtain. ■ Jinmyoung Lee

Vol.20101010j | 이재삼展 / LEEJAESAM / 李在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