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나를 베다 LIGHT, CUT MYSELF

조현익展 / CHOHYUNIK / 趙鉉翼 / painting   2010_1013 ▶︎ 2010_1018

조현익_Light, cut myself(Flash-S-091066)_철판에 혼합재료, 판넬_122×122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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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01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1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침대와 관, 요람에서 무덤까지 ● 조현익의 작업은 침대 위의 나체 상태의 여성을 사진 찍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대개는 위에서 아래로 피사체를 내려다보며, 작가는 연신 플래시를 터트린다. 그리고 졸지에 피사체가 된 여성은 플래시 불빛을 피하기 위해 손으로 눈을 가리거나 고개를 옆으로 돌려 빛을 외면하거나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졸지에 피사체가 된 여성? 플래시의 불빛은 작가의 관음증적 욕망을 대리하며, 여성은 그 욕망의 폭력에 노출된 한갓 사물, 대상, 객체로 전락하고 만다. ● 여기서 시선은 욕망과 폭력을 내포하고 있다. 실상 시선의 역사는 그대로 인식론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 이를테면 본다는 것은 그저 보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는 동시에 분석하고 판단하고 탐색하고 탐식하는 종합적 인식행위이다. 봄으로써 일종의 정신작용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세계(너)를 보고, 세계(너)는 나에 의해 보여진다. 이렇듯 본다는 것은 언제나 상방통행이 아니라 일방통행이며, 시선과 응시의 투쟁이다. 내가 너를 더 잘 보기 위해 너는 기꺼이 사물, 대상, 객체가 돼야 한다. 더불어 네가 눈을 감는 것 역시 너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서이기보다는, 너로부터 인격체를 빼앗아 객체화하려는 나의 욕망과 요구가 투사된 것이다. 이렇듯 네가 눈을 감는 순간에조차 정작 너의 몸은 눈을 감지 않는데, 바로 몸의 눈이며, 응시(사물화된 대상이 나를 쳐다보는 눈)다. 그리고 나는 그 응시 앞에 주춤거리고, 당혹스러워하며, 뒤로 물러선다. 이렇게 너를 사물화하려던 나의 기획은 응시에 맞닥트려 좌절을 겪게 되며, 이로써 오히려 여하한 경우에도 채워질 수 없는 존재론적 결핍을 강화시켜줄 따름이다. ● 그리고 이 사건(시선과 응시의 투쟁)에 방점을 찍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는데, 바로 네가 눈을 떠 나를 직시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 순간을 위해 메두사의 신화를 차용하고 있는데, 주지하다시피 메두사의 눈을 직시한 인간은 모두 돌로 변한다. 메두사의 눈은 진리와 진실을 상징하며, 진실에 직면한 인간은 죽는다(거세불안). 그러므로 살아 있는 인간은 결코 진실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네가 눈을 뜰 수도 있으리라는 사실을 예상치 못한 만큼 그 순간은 부지불식간에 오고, 응시가 눈(정신)이 아닌 몸에 속한 것이듯 진실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경계 너머에 있다.

조현익_Light, cut myself(Flash-S-100170)_철판에 혼합재료, 판넬_122×122cm_2010
조현익_Ego(Flash-S-090662)_철판에 혼합재료, 판넬_183.5×183.5cm_2009
조현익_Fire innocence&free Pathos(Flash-S-0850)_철판에 혼합재료, 판넬_183×183cm_2008

이렇게 작가는 침대 위에 마구 흩트려져 있는 여성의 머리카락에서 메두사의 뱀으로 된 머리카락을 떠올린다. 작가에게서 여성은 메두사와 같고, 팜므파탈과 같다. 잠든 메두사의 머리가 진실(여성)을 향한 인간의 욕망에 경종을 울린다. 지금은 비록 눈을 감고 있지만, 언제 불현듯 진실(여성)이 눈을 뜰지도 모른다. 유혹적이고 잔혹한, 유혹이 큰 만큼 파멸도 큰 진실(여성)이 부지불식간에 잠에서 깨어나 심장을 얼어붙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작가의 작업에서처럼 여성이 눈을 감고 있는 한 안전하다. 작가는 여성의 눈을 감긴 채 사진으로 찍어 박제화하고, 철판 속에 가두고, 마지막으로 투명 우레탄을 도포해 막을 덮씌우는 등 이중삼중으로 봉인하는데, 그 이면에는 이처럼 치명적인 거세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 이처럼 작가의 작업에서 나체의 여성을 사진 찍는 행위는 거의 결정적이다 싶은 의미를 내장하고 있다. 그 행위로부터 최초의 소스가 유래할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업을 특징짓는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형식적이고 심리적인 의미와 아우라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여하한 경우에도 욕망 없이 피사체를 본다거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거짓이다. 사진은 욕망과 관련이 깊으며, 특히 소유욕과 관련이 깊다. 그리고 그 욕망은 실제와 이미지를 동일시하는 현상에 의해 추동된다(나는 너를 사진 속에 가둠으로써 너를 소유한다). 사진을 찍고,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련의 행위는 자기만의 세계(너)를 소유하고 축성하고 구조화하고 싶다는 욕망과 강하게 연동돼 있다. 조현익의 사진 찍기는 이런 욕망의 메커니즘과 실체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 작가는 이렇게 얻은 사진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해 일정정도 조작과정을 거친 연후에, 이를 확대 복사한 이미지를 출력한다. 그리고 이렇게 출력된 부분 이미지들을 하나로 조합해 만든 전체 이미지 그대로 녹슨 철판 위에 전사한다. 이미지를 덧그리기 위한 바탕재로서, 캔버스나 종이 대신에 철판이 차용되고 있는 것이다. 타블로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전에 캔버스에 충분한 육질(회화의 몸)을 조성하기 위해 공을 들이 듯, 조현익 역시 철판의 물질적 성질(물성)을 작업의 결정적인 한 요소로서 끌어들인다. 주로 산화과정에 의한 녹을 조성하고 조절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철판 위에 비정형의 사포 자국과 스크래치를 조성한 연후에, 이를 대기 중에 노출시켜 산화시킨다. 대개는 자연산화과정을 거치지만, 이따금씩 특별히 강한 이미지를 얻고 싶을 때는 산(화학약품)이나 물을 뿌려 그 과정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조절하기도 한다. ● 이렇듯 원하는 질감과 색감이 조성된 철판 위에다 이미지를 전사하고 나면, 사포질을 통해 밝은 부분을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이때 최초 전사된 이미지는 대략적인 실루엣만 드러나 보일 뿐, 정작 그 세부적인 형태는 윤곽 속에 묻혀 있기 마련인데, 여기에 사포질을 통해 음영과 세부를 찾아 나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를테면 화면에서의 어두운 부분과 중간 톤 그리고 하이라이트에 이르기까지 음영의 전 스펙트럼을 사포질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 그 과정이 소묘에서의, 어두운 그림에서 점차 밝은 부분을 찾아나가는 지우개질과 흡사하다. 일반적인 연필소묘가 그리면 그릴수록 화면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에 반해, 지우개소묘나 사포소묘는 이와는 반대로 화면이 점차 밝아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통의 소묘 방식을 거꾸로 적용한 지우개소묘와 유사하고, 그리고 전통적인 화법에서의 백묘법과 상통한 점이 있다.

조현익_Eyes of sensibility(Flash-S-090460)_철판에 혼합재료, 판넬_91.5×91.5cm_2009
조현익_Ego(Flash-S-090561)_철판에 혼합재료, 판넬_122×122cm_2009
조현익_Love-Ecstasy (The coffin of Medusa)_철판에 혼합재료, 판넬_185.3×48×43cm_2008 조현익_Love-Ecstasy (The coffin of Medusa)_철판에 혼합재료, 판넬_180.5×44×38cm_2009 조현익_Love-Ecstasy (The coffin of Medusa)_철판에 혼합재료, 판넬_185.3×48×43cm_2008

더불어 사포질이 단순히 음영과 형태를 묘사하는 것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여성의 나체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만큼 풍부한 하프톤과 함께 피부의 부드러운 질감이 모두 사포질을 통해서 표현된다. 이로써 단순한 시각적 재현에서 더 나아가 촉각적인 성질마저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녹슨 철판의 갈색과 나체의 은회색이,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부분과 외부의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거친 질감과 부드러운 질감이 서로 삼투되는 섬세한 분위기의 화면이 연출된다. 여기에 흑연가루를 더해 실제보다 더 거칠고 부드럽고 짙은 머리카락의 색감과 질감을 강조하는가 하면, 이따금씩 펄 성분을 함유한 (반)투명안료로써 성적 판타지를 강화하기도 한다. 이로써 빛과 어둠이 직조된, 거칠고 섬세한 분위기가 그대로 욕망의 이중성(유혹과 폭력이 서로를 강화하는)과 이율배반성(죽음에 이르는 유혹)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 이처럼 유혹은 폭력을 부르고, 욕망 속엔 죽음이 내장돼 있다. 이 등식이 대개는 유희와 제스처와 상상의 수준에 머물지만, 적어도 그 극단적인 형식을 가정해볼 수는 있는데, 사디즘이 그것이다. 그리고 사디즘에서 유혹의 질과 폭력과 쾌락강도는 상호 연동돼 있다. 그런가하면, 흔히 유혹의 계기가 대상에 속한 자질(즉 대상의 자발적인 의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주체에 속한 자질(즉 대상에게 투사된 주체의 욕망)로 봐야 한다. 그 욕망이 투사되는 대상의 지점들이 실로 다양할 뿐만 아니라, 욕망은 곧잘 상식 밖의, 의외의 지점들을 향하기도 한다는 점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 이로써 조현익의 작업은 삶과 죽음, 삶의 충동과 죽음충동,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보는 인문학의 한 지점을 재확인시켜주는 한편, 이러한 입장에 의해 뒷받침되는 삶의 이중성과 이율배반성을 주지시킨다. 나아가 작가는 아예 관(죽음)을 도입해 이런 사실을 강조하기도 한다. 실제의 관에 비닐을 깔아 방수 처리한 다음, 그 안에 물을 채우고는 모델이 드러누워 포즈를 취하게 한 것이다. 흡사「햄릿」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여주인공 오필리아의 죽음(낭만주의 그림에서 오필리아의 주검은 마치 물속에 잠겨 영원히 잠든 것처럼 묘사된다)을 연상시키는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작가는 낭만주의의 상징적 유산을 계승하는데, 낭만주의에서 물은 혼돈과 여성성(아니마), 죽음과 재생을 상징한다. 그리고 작가는 여성의 주검 위에 피(희생제의와 죽음을 상징하는)와 정액(재생을 상징하는)을 뿌려 그 신화적 의미(여성은 신성한 혼돈을 상징한다는)에 방점을 찍는다. ■ 고충환

Vol.20101013a | 조현익展 / CHOHYUNIK / 趙鉉翼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