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하루

장형근展 / JANGHYOUNGKEUN / 張亨根 / sculprure   2010_1013 ▶︎ 2010_1019

장형근-둥지둥둥_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색_가변설치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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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01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덕원갤러리_DU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82.2.723.7771~2 www.dukwongallery.co.kr

무의식의 그림자로 형상화 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 유희의 인간상을 통해 숨겨진 자아를 찾아가는 장형근의 작품세계짧은 하루 ● 작가 장형근은 제2회 개인전 『짧은 하루』에서 유쾌한 만화 속 주인공의 일상을 담아 낸듯한 재미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전시 제목 『짧은 하루』는 놀이에 몰두해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어린 시절에 대한 작가의 추억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장형근은 그림자의 평면적인 실루엣에 두께를 주고 움직임의 인상을 더하여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림자의 중첩 이미지를 가시화하였다. 그의 그림자는 인간의 심층적인 내면세계가 투영된 또 하나의 실존적 존재로서 표현되고 있다. 빨강, 노랑, 파랑 등 강렬한 색으로 채색된 그의 그림자들은 과거의 추억에 잠기거나 이상향을 꿈꾸는 인간의 마음을 담고 있다. 즉 작가는 동심의 세계 속 이미지들을 통해 사회적 요구에 따른 자아가 아닌, 무의식 속의 자아가 진솔하게 표출된 유희의 인간상을 구현하고 있다.

장형근-나불나불_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색_65×60×35cm_2010

무의식의 그림자-내 안의 또 다른 나 ● 미술사 전반을 살펴보았을 때 그림자를 입체작품의 주제로 삼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그림자를 그림자로서가 아니라 3차원의 부피감을 가진 실체로서 표현하고 거기에 또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은 장형근의 작업에서 처음 선보인 방식이다. 존재의 구체적인 형상은 사라지고 실루엣만 남아 우뚝 서 있는 그의 그림자 조각은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한 무의식의 세계를 반영한 그림자와 동일시 될 수 있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이와 같은 그림자를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의 이미지인 페르소나(persona)에 반대되는 인간 본성의 표출로 보았다. 실제로 우리가 실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존재의 한 표면에 불과하고, 내면의 그림자 역시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3차원의 두께를 지닌 장형근의 그림자는 이처럼 다층적인 인간 본성의 복잡하고 난해한 측면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그림자에 부피를 주는 과정을 조각에 흙 반죽을 한 점씩 붙여 살을 표현해 가는 과정에 비유한 바 있다. 즉 2차원의 허상에 불과했던 그림자는, 존재감을 부여하는 작가의 다소 고된 손작업을 거치면서 작가의 상념과 시간성이 도입된 새로운 차원의 실체로 거듭나고 있다. ● 작가는 그림자 상에 부피감을 주는 과정에서 움직임의 인상을 표현하고 있다. 미래주의 조각의 운동감을 연상시키며 왜곡된 형태를 드러내는 그림자는, 보는 시점에 따라 매우 추상적으로, 또 아주 사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2차원의 평면으로 인식되는 동시에 묵직한 입체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빛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는 시간에 따른 태양광의 변화에 따라 실제 상의 모습을 매우 다양하게 왜곡시킨다. 그의 그림자 상은 정오에 그림자처럼 단축된 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늦은 오후에 길게 드리워진 형태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의 그림자 조각의 특징적 요소인 두께감 있는 측면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양한 형태와 길이의 그림자 층들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형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형근-조마조마_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색_63×56×33cm_2010

장형근의 그림자에 실재 존재감을 부여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색이다. 그의 그림자는 검정이나 회색으로 표현되는 일반적인 그림자와는 달리 빨강, 노랑, 파랑, 초록, 흰색 등 다양한 색이 입혀져 있다. 그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고유색에 구애받지 않고 각 대상에서 전해지는 느낌에 대응하는 색을 찾고자 했다. 예를 들어 밝은 느낌을 받은 대상에는 흰색, 노란색, 아이보리색과 같은 밝은 계열의 색을 사용하고, 소외되고 가라앉은 느낌을 주는 경우에는 어둡고 차분한 색을 사용하였다. 즉 그는 색의 지니고 있는 상징성이나 기존의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작업 당시 작가의 사유과정 중에 발생한 순간적인 감흥에 따라 직관적으로 작품의 색을 선택한다. ● 장형근의 작품에는 그림자의 또 따른 그림자가 등장한다. 바닥에 자리 잡은 납작한 그림자는 언뜻 보면 입체감을 살린 그림자와 동일한 형태의 그림자를 평면적으로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그림자는 같은 등장인물을 투영하고 있음에도 각기 다른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그림자는 빛 변화에 따라 촌음의 순간에도 미세하게 움직이며 시간 흐름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바닥에 놓인 그림자는 3차원의 그림자 이전 혹은 그 이후의 움직임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3차원의 그림자 상이 서서히 바닥을 향해 기울어지면서 평평했던 그림자가 그 자리를 대신해 3차원의 상으로 일어서게 될 것 같은 상상을 자아낸다. 이렇게 우리는 그의 작품 속에 여러 겹으로 숨어있는 장면들을 하나씩 넘겨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 3차원의 그림자 형상과 그 그림자 그리고 실제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그림자까지 장형근의 작품에는 모두 세 개의 그림자가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세 그림자를 통해 작가는 끊임없이 시간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의 조각은 경쾌한 색채와 놀이라는 개념으로 우리의 삶을 마냥 즐겁게 해석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내면에는 시간에 따라 동일한 움직임을 반복하며 소멸해가는 인간의 유한성, 즉 메멘토모리(memento mori)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린 시절 마냥 즐거웠던 놀이들에 대한 향수,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려놓고 싶은 바람 역시 유한한 인간존재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들어 그는 표면에 채색을 가하지 않고 스테인리스스틸의 반사면을 그대로 사용하여 순수한 동심이 표현된 작품에 관객의 모습이 비춰지도록 하였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마음 한 구석에 추억으로 남아있는 천진무구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하며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는 우리 앞에 서 있다. ● 심리학적 관점에서 그림자는, 인간 본성의 일부이면서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거나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당황스럽고 숨기고픈 내 안의 또 다른 나로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장형근의 작품에 등장하는 그림자는 일상에 묻혀 지내며 잊고 있었던 가장 순수한 인간의 본성을 '놀이'라는 주제를 통해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설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장형근-포롱포롱_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색_73×65×31cm_2010

놀이-재미-호모 루덴스 ●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장형근의 작품들은 '놀이'를 주제로 하고 있다. 작가는 친구들과 해지는 줄 모르고 딱지치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말뚝 박기 등의 놀이에 푹 빠져 있던 어릴적 추억들을 되살려 자신의 그림자 인간상에 투영시키고 있다. ● 장형근은 1회 개인전 『오후 일기』에서 지나간 과거의 아름다웠던 일상의 한 자락을 구체적인 이미지가 생략된 그림자로 형상화하고, 관객 개개인이 옛 추억을 동경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오후 일기』의 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짧은 하루』 전에서는 서정적인 일상을 스케치해 나간 전작에, 재미와 즐거움(喜, Fun)의 요소를 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서 놀이를 즐기는 유희의 인간상을 도입하고 있다. 장형근의 작품에 등장하는 놀이 장면들은 재미를 추구하는 유희의 존재로서의 인간상을 제시하며 이 시대의 징후인 우울함을 벗어던질 것을 제안한다. 더불어 작가는 가상세계 속 놀이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에게, 직접 사람들과 만나는 예전의 놀이문화를 상기시키며 진정한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장형근-허둥지둥_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색_54×86×53cm_2010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유희의 존재'로 정의하고, 모든 인간 문화를 놀이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의 저자인 스티븐 나흐마노비치(Steven Nachmanovitch)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남긴 글쓰기, 작곡, 그림 등의 모든 창조적 행동은 놀이의 다른 형태였으며, 예술가들에게 놀이는 독창적인 예술이 꽃피도록 하는 창조성의 뿌리"라고 주장한 바 있다. 즉 놀이는 인간의 가장 창의적인 행위이자 고도의 두뇌활동을 이끄는 원동력인 것이다. ● 장형근에게 재미를 목적으로 한 놀이 행위는 그의 작업과정과 동일시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인터뷰 중에 작가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다름 아닌 '재미'였다. 그는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먹고 자는 것도 잊고 놀이에 몰두하는 아이들처럼, 작품에 꼭 맞는 단 하나의 이미지를 찾아내기 위해 수만 개의 이미지를 검색하고 원하는 그림자의 부피감을 살리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조각의 측면을 다듬어간다. 그에게 작업은 고된 노동이 아닌 '재미난 놀이'이다.

장형근-키드득키드득_철, 우레탄 도색_125×220×100cm_2010

재미에 대한 작가의 열의는 작품 제목에도 표출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에는 의성어와 의태어로 이루어진 제목들이 붙여졌다. 「허둥지둥」, 「둥지둥둥」, 「조마조마」, 「포롱포롱」, 「키드득 키드득」, 「나불나불」과 같은 작품 제목들은 놀이에 빠진 아이들의 허둥대는 몸동작, 웃음소리, 가슴 졸임 등을 익살스럽게 표현해내고 있다. 다른 나라 말에 비해 의성어, 의태어가 발달한 우리말의 재미난 표현들에 방언까지 더해져 맛깔스러움을 더한 장형근의 작품제목은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동화의 한 구절을 대하듯 행복한 동심의 세계를 떠올리게 해준다. 그림자, 색, 차원을 넘나드는 표현, 청각에 호소하는 언어적 효과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공감각적인 조형언어로써 자신의 즐거운 창작과정을 한 권의 재미난 만화책처럼 한 장씩 펼쳐 보이고 있다. 장형근은 다음 전시에서 동화 속의 세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의 창작 놀이가 후속 작에 어떠한 재미를 더해줄지 기대해본다. ■ 정수경

장형근-토요일_철, 우레탄 도색_190×240×115cm_2010

나의 작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잠시나마 각박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웠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을 천진난만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작품에는 내 추억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보는 이들 누구나 각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추억을 되새기며 저마다의 책장에 동심의 세계를 담아낼 것이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어릴적 꿈과 희망을 조금이나마 되찾고, 이상향을 향한 마음을 회복하여 보다 즐겁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한다. 나의 그림자 조각이 그 출발점이고 싶다. ■ 장형근

Vol.20101018g | 장형근展 / JANGHYOUNGKEUN / 張亨根 / sculpr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