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

김종준展 / KIMJONGJUN / 金宗俊 / painting   2010_1020 ▶︎ 2010_1026

김종준_Peace Peace_캔버스에 프린트_130×157cm_2010

초대일시_2010_102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3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고색창연한 1960년대 명화(이미지 파일)를 손본 평평한 화면들은 김종준의 연작 가운데 대표 얼굴들이다. 독창성을 고의로 훼손하려든 60년대 서구 미술운동의 결과물 가운데 일부를 고스란히 옮겨와 색 변환과 텍스트 삽입을 시도했다. 작가의 손맛이 완성품 안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2008년 이후 서구 팝의 명화를 건조하게 차용한 작가의 주 전공은 의외로 드로잉이다. 드로잉은 시각예술의 근간을 세운 표현술이어서, 손맛의 독보성을 부각시킬 수 있었을 게다. 그렇지만 2007년까지 작가의 작업은 일견 추상 드로잉처럼 보인다. 드로잉의 양태는 디지털 매체에 의존한 2008년 이후 작업마냥, 개성이 자제되고, 무감정한 기하학 패턴의 반복으로 채워졌다. 원형(圓形) 내부를 직선과 곡선 문양으로 세필한 도상이기 일쑤다. 예측 불가한 직선과 곡선들로 뒤엉킨 도상이 화면을 지배한다.

김종준_Manifest Destiny_캔버스에 프린트_91×59cm_2009_부분

2008년부터 본격화된 김종준의 유사(類似) 팝은 90년대 후반 국내에서 부흥한 '코리안 팝'의 거듭남과는 출발선이 다르다. 1960년대 아메리칸 팝의 양대 거물,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원작을 손 본 작품이 다수다. 웹상에서 쉽사리 내려 받았을 두 거물의 이미지 파일이 작업의 밑그림이었을 터. 그렇다면 60년대 올드 팝에 관한 패러디인가하면 그도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60년대 서구 팝에 대한 비평적 거리를 유지할 목적은 없어보이므로. 2008년~2009년 사이 김종준은 팝의 두 거물의 이미지(파일)를 '손질'해서 재활용했고, 이듬해인 2010년에는 리히텐슈타인식 평면 망점 위로 작가의 동시대 거물, 버락 오바마를 새로 삽입했다. ● 드로잉 작업 이후 작가의 디지털 신작이 1960년대 서구 팝을 밑그림으로 삼은 이유는 뭘까?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의 초상이 대중 소비문화로 팽창한 20세기 중반 서구를 반복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한국 화단의 지형도를 살피면 일리 있는 해석이다. 한국에서 '코리안 팝'이 개화해서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는 서구처럼 60~70년대가 아니라, 90년대 후반부터다. 이전까지 한국 화단은 여전히 모노크롬으로 대표되는 독보적 모더니즘과 반체제적 참여미학으로 첨예하게 양립된 형편이라, 사사로운 현재적 삶을 성찰하고 조형화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 시도는 정권이 교체된 90년대 중후반에나 가능했다.

김종준_Heroic Symphony_캔버스에 프린트_73×73cm_2010
김종준_The Power of One_캔버스에 프린트_112×89cm_2009

미술사로 편입된 팝을 연구 대상으로 택한 또 다른 이유는, 경전으로 화석화되기 직전, 팝아트의 시련의 역사를 작가가 기특하게 본 것 같다. 진정한 현대성이 도래하기 전에 공동체는 고급예술과 대중문화를 대립시켜 수용하곤 했다. 이런 완고한 전통은 19세기 문화비평가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의 에세이 '문화와 무정부 Culture and Anarchy'에서부터 완강한 이분법의 뿌리를 둔다. 이처럼 순수예술의 안전한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정반대 진영(대중문화)에서 주제를 모색한 나머지 스스로 '타자'로 낙인찍힌 팝아트에게서 김종준은 자신의 미학을 주시한 듯 하다. ● 항간에서 드로잉은 일개 밑그림으로 간주되는 정서가 두텁다. 일테면 창작 분야의 '타자'인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드로잉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보충하지 않고, 간결한 파장과 직선이 반복되는 기하도형 무늬에 당도했다. 최소한의 제스처로 획득되는 미학적 성과라는 점에서 드로잉이 어울렸다. ● 환영적 명상(illusionary meditation)은 작가가 진술한 작업관이다. 때문에 "무너진 세계와 박제화 된 파편들을 조합"하려는 작가의 미학은, 조형적 유희를 즐기되 현재적 삶을 고립시키지 않고 동시대 현안에 논의하겠다는 입장으로 발전한다. 그의 작품 속에 60년대 서구 팝아트가 반복 재현되거나, 인생의 부조리를 은유하기 위해 16세기 회화의 라틴어 경구를 빌려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종준_Manifest Destiny_캔버스에 프린트_91×59cm_2009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1964년 작 「행복한 눈물」은 「우리에게도 행복한 눈물이 있는가?」로 개명되었고, 삼인종(백, 황, 흑)을 의미하는 삼색으로 번안되었다. 이 작품은 미국 팝아트의 르네상스기에 리히텐슈타인이 제작한 것이다(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어느 만화 원본을 차용했지만). 21세기에 1964년 완성된 「행복한 눈물」로부터 '일상에 관여한 대중문화 투영'을 읽어내긴 어렵다. 세상은 변했다. 더구나 김종준의 모국 한국에서 「행복한 눈물」은 2007년 최고 자본 권력으로 군림하는 어느 글로벌 재벌이 비리에 연루될 당시, 비자금으로 구입한 것으로 폭로된 작품이다. 때문에 한국민은 이 작품을 비자금과 연관지어 연상한다.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을 우연히도 담은 아이콘이 되었다. 작가가 「우리에게도 행복한 눈물이 있는가?」를 완성한 2008년은 문제의 「행복한 눈물」이 우여곡절 끝에 한국 언론에 공개된 해다. 원화 이미지(파일)를 차용해서 작가 자신이 직면한 시공간(2007년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현안을 패러디했다. 기쁨에 겨워 눈물을 머금는 여성이라는 만화적 설정을 보편적 견지(삼인종)에서 비꼬았달까.

김종준_Are there such things as happy tears for us?_캔버스에 프린트_80×80cm_2008

「영웅 교향곡」은 2010년 최근작으로, 앞선 「행복한 눈물」의 3색 번안처럼, 버락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의 연설장면을 5색 버전으로 옮긴 것이다. 3색 번안이 삼인종이라는 인류 전체를 대변하듯, 「영웅 교향곡」의 5색 버전은 5대륙이라는 세계를 표방한다. 김종준의 거의 모든 작업은 차용하는 원화가 존재하며, 원화 본연의 메시지를 반어적으로 뒤틀기도 한다. 2008년 미 대선 기간 중, 세계(5대륙) 각국은 자유주의적 신념의 흑인 대통령이 조지 부시의 공화당 시대를 마감해주길 고대했다. 그렇지만 큰 기대는 더 큰 실망을 낳곤 하는 법. 사상 첫 흑인 미 대통령은 재임 초 왕왕 실언을 해서 정치적 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 「영웅 교향곡」 연작은 그 같은 현실을 직설적으로 다룬다. 회화를 '의미 만들기'로 간주하는 김종준에게 오바마의 초상 이미지보다, 그 속에 잠재된 잠언(箴言)적 요인을 부각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그 결과 직설적인 텍스트들이 개입된다. 작품 제목 「영웅 교향곡」에 '영웅'은 오바마를 지목하는 것이지만, 그 원형은 베토벤의 교향곡 표제이다. '영웅 교향곡'은 나폴레옹에게 헌정할 목적으로 작곡되었지만, 나폴레옹의 오만에 실망한 베토벤은 헌정을 취소한다. 그 곡이 바로 교향곡 3번, 「영웅」이다. 「영웅 교향곡」에 개입되는 또 다른 텍스트는 화면 상단의 라틴어 격언 EX PRAETERITO/PRAESENS PRUDENTER AGIT/NE FUTURA ACTIONẼ DETURPET 이다. "과거에서 배워, 현재에 신중하게 행동하여, 미래를 망치지 말도록 하라."로 풀이된다. 신중(愼重)의 알레고리를 5색으로 번안된 버락 오바마 영정에 '헌정'한 이유는 자명하다. 나폴레옹보다 김종준의 동시대 거물, 그것도 신중함을 최고 덕목으로 삼아 마땅한 지도자로 미국 대통령을 본 것이다. ● 김종준의 작업에는 이렇듯 알레고리가 농밀하게 녹아든 고전회화들이 반복 인용되고 또한 선호된다. 그 까닭은 작가가 회화를 명상(혹은 메시지 전달)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탓이다. 동일한 이유로 1960년대 팝아트(특히 리히텐슈타인)의 잦은 차용도 60년대 팝이 기성 만화를 참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화는 회화보다 메시지 전달에서 유능한 매체가 아닌가. ■ 반이정

Vol.20101021g | 김종준展 / KIMJONGJUN / 金宗俊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