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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展 / PARKJUNGHOON / 朴正勳 / photography   2010_1026 ▶︎ 2010_1107 / 월요일 휴관

박정훈_between_디지털 C 프린트_72×50c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pm~06:30pm / 월요일 휴관

류가헌_ryugaheon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번지 Tel. +82.2.720.2010 www.ryugaheon.com

완벽하게 없음과 간신히 있음 '사이' ● 순간 스치는 얼굴과 사소한 몸짓에서 존재가 막 돋아나는 순간, 삶의 진액이 하나의 표정에 다 담기는 순간, 하나의 표정, 하나의 눈빛이 바로 그 사람인 순간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은 피사체와 렌즈 사이 그 무수한 시간과 광활한 허공 속에 깊이 묻혀 있다. 그 순간은 아무 것도 아닌 것,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위장하여 시치미 뚝 떼고 능청스럽게 지나간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이때, 갑자기 더듬이는 감전되고 심장은 뛰고 렌즈는 날렵해진다. 급습 작가가 그 번쩍거리는 섬광의 틈을 붙잡아 영원으로 늘이지 않는다면, 바람이라도 물고 늘어질 것 같은 이빨과 발톱으로 그 순간을 낚아채지 않는다면, 영원성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 순간으로 압축하여 인화지 위에 잡아두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속으로, 결코 반복될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누구의 기억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을 시간 속으로 완벽하게 사라져버릴 것이다. 사이 박정훈의 작품은 그 완벽하게 없음과 간신히 있음 '사이'에 있다. 막 없어지려는 순간과 그 순간에 겨우 존재하는 영원 '사이'에 있다. 피사체와 렌즈가 작품을 만들기는 하지만, 작품은 그 둘이 모두 없어질 때 태어난다. 작가가 없어지고 순간과 틈의 급습만이 남을 때 시간과 허공이 균열하면서 '사이'가 생긴다. 당신이 보는 이 얼굴, 이 표정, 이 존재, 이 눈빛, 이 몸짓, 이 흔적들은 이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있다’. ■ 김기택

박정훈_between_디지털 C 프린트_72×50cm
박정훈_between_디지털 C 프린트_72×50cm

카메라를 꺼낼 때 ● 사진을 찍다 보면 유독 사람 자체에 몰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눈빛이나 표정, 손버릇 등 무엇이나 가능하다. 그 사람만이 가진 무언가가 그 사람 자체를 표현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자연스럽게 거기에 집중하게 된다. 소설가 윤흥길 선생이 그런 경우다. 그렇게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을 난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그의 소설을 단 한 편도 읽지 않고 그를 만났지만 읽었다 하더라도 같은 사진이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배경을 넉넉히 두고 사진을 찍었지만,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점점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그의 얼굴만 카메라에 담고 싶어졌다.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었다. 질문과 대답 사이, 그는 무슨 생각을 그리 했던 것일까. 그 역시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은 저마다 다르지만 크게 둘로 나눠보자면, 카메라를 의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화가 최진욱은 후자에 속한다. 말을 하거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데, 그게 그 사람을 가장 잘 포착해내는 것이란 확신이 들지 않으면 난 가끔씩 인터뷰 내용 중에서 어떤 모티브나 콘셉트를 잡아 표현하곤 한다. 그는 창작자로서 예술가 개인의 욕구와,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같은 직업으로서 화가가 가져야 할 의식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작업실 한쪽에 있는 깨진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난 그 깨진 거울에 비친 두 개의 상이 지금 그가 하는 말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내가 엉뚱한 곳만 찍고 있자 무얼 하나 궁금한지 거울 쪽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사람은 또 다시 둘로 나뉘는데 카메라에 익숙한 사람과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연극배우 김지숙은 사람들 앞에 서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대표작「로젤」은 심지어 일인극이다. 문제는, 「로젤」 한 작품만 하더라도 1991년 초연 이래 2002년까지 3,000회 이상을 공연하며 백만 관객 앞에 홀로 섰던 그녀를 나는 어떻게 카메라에 잡아낼 것인가 였다. 인터뷰 내내 기회를 노렸지만 그녀는 한순간도 카메라 앞에서 틈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인터뷰는 끝났고 나는 실패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예기치 않은 말로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 순간을 잡았다.

박정훈_between_디지털 C 프린트_72×50cm
박정훈_between_디지털 C 프린트_72×50cm

무대미술가 이병복 선생은 카메라 자체를 싫어하는 분이었다. 한평생을 무대미술이란 척박한 분야를 일구고 지켜온 그분은 2006년, 한평생 모아온 자신의 작품을 모아 전시를 한 후 모두 불태울 계획을 세웠다. 여전히 척박한 무대미술이란 분야에서,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식처럼 사랑하는 그 작품들이 천대 받을까 손수 없앨 결심을 한 것이다. 실제로 전시가 끝난 후 절반가량을 불태웠다. 무대 뒤에서, 그렇게 뜨겁게 살아온 분이 처음부터 '난 사진 찍기 싫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니 난감하다. 이럴 때는 카메라를 숨기고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잠자코 기다리면서 인터뷰가 잘 풀리기만을 기대해야 한다. 이야기가 무르익고 사진가라는 존재가 사라질 무렵, 언뜻언뜻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다. 바로 카메라를 꺼낼 때다. 나는 사진가로서 어떻게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하는가. 인터뷰의 경우, 물론 사전에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듣거나 자료를 통해 막연하게나마 어떤 상을 그리고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막상 만나본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하던 모습과 일치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짧으면 30분, 길어야 두어 시간 남짓한 짧은 인터뷰 동안 나는 그 사람을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지나친 자만일 것이다. 나는 사실 그들을 잘 모른다.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어떤 고민을 하며 창작활동을 하고, 또 정말로 어떤 생각이 그 속에 스며 있는지, 내 사진 속에 그들의 진실된 모습이 얼마나 녹아 있는지 역시 잘 알지 못한다. 물론 그러길 바라지만 실은 그건 내가 본 모습일 뿐이다. 사진 기술이 발명된 이래, 사진은 항상 사진가의 눈이었다. ■ 박정훈

Vol.20101025i | 박정훈展 / PARKJUNGHOON / 朴正勳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