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BLOOMING

이병찬展 / LEEBYUNGCHAN / 李秉燦 / installation   2010_1006 ▶︎ 2010_1112 / 주말 휴관

이병찬_life blooming_비닐_가변설치_2010

초대일시_2010_1008_금요일_06:00pm

2010 신진작가공모展

주최_안국약품(주)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 휴관

갤러리 AG_GALLERY AG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 993-75번지 안국약품 1층 Tel. +82.2.3289.4399 www.galleryag.co.kr

Life is Blooming ● 미술은 일상과 현실에서 흔히 경험하기 어려운 판타지를 보는 이에게 선사한다. 미술이 오랜 시간 인류의 역사와 함께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기능과 역할을 꾸준히 이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위대한 자연 앞에 한 없이 나약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은 다양한 미술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받거나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보는 사람에 대해서도 물론 그러했을 것이다. 이렇듯 미술은 주술(呪術)적인, 혹은 현세구복적인 성격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다. 자연과 우주를 곧 정복할 듯한, 고도로 발달한 과학문명시대에 살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미술은 대체로 그러하다. 다른 예술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미술은 현실을 벗어난 피안(彼岸)의 세상을 담아내거나 선사하는, 또는 개인적, 집단적 바람을 강하게 드러내는 수단중 하나다. 특히 미술은 주로 시각적인 형식과 수단을 통해 이런저런 바람을 반영하고 드러내고 전달하는 장르의 특징과 속성상, 다른 그 어떤 예술장르보다도 더욱 강력한 시각적 기제로 작용한다.

이병찬_life blooming_비닐_가변설치_2010

이러한 미술이 담아내는 세상은 현실적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초현실적이기도 하다. 물론 시대마다, 작가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인 공통점 중의 하나는, 이들의 택한 형식이 무엇이든, 그것이 현실로부터 비롯했다는 점일 것이다. 고대의 동굴벽화가 그러했고 대상을 해체, 재구성한 피카소의 비현실적회화가 그러했다. 달리의 초현실적회화와 조각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잃어버린 꿈과 상상력을 회복시키는 촉매로 작용했다. 이하 생략. 미술의 위대한 역할 중의 하나는, 과학의 시대에 들어,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린 상상력을 회복,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상상력을 강화시킴에 있어 미술만큼 확실한 특효약은 없을 것이다. 한때 사진술이라는 복병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미술은 20세기를 보란 듯이 관통하며 판타지를 독점적으로 일반에 제공해 왔다. 미술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이병찬_life blooming_비닐_가변설치_2010
이병찬_life blooming_비닐_가변설치_2010

그러나 지금은 바야흐로 이미지의 시대, 영상의 시대다. 그 누구도 쉽게 부인하기 어렵다. 주변 환경 모든 것들이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움직이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 등과 같은 퍼스널 미디어의 대량 공급 및 대중화로 인해 좋던 싫던 본격적인 이미지, 영상의 소비시대로 들어섰다. 이렇듯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이미지나 영상의 위력은 전 시대에 비해 가히 가공할 만한 파급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루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본격적인 영상의 시대에 들어 미술, 특히 회화, 조각이 선사하는 판타지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보인다. 물론 이것은 공급자로서의 작가 입장보다는 감상자, 수용자 측면에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살짝 영상에게 판타지 제왕 자리를 내주었지만, 미술이 선사하는 판타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정도와 세기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다. 여전히 그것은 보는 이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위로를 주기도 한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공격적으로, 혹은 보수적으로 대응하면서 다양한 기법과 재료의 도입, 표현방식 개발에 골몰하고 있다. 미술부문 각 장르별 반성적, 내적 고민과 미래적 비전을 논의하기도 하고 미술이 가지고 있는, 다른 장르가 구사할 수 없는 미술 고유의 힘을 돌아보기도 한다. 주지하다시피, 미술의 발전은 재료의 발전과 궤를 함께 해왔다. 각 장르별 발전과 성과를 돌아보면 새로운 재료의 도입과 발명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미술적 성과를 제공해 왔다. 회화에 있어 유화물감의 발명이 그러했고, 조각의 경우 용접술(welding)의 도입이 그러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몸짓이 얹어지는 다양한 지지체(support)의 용인도 크게 한 몫을 했다. 유화물감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열병처럼 유행하고 있는 극사실적인 그림들을 보거나 간단하게 소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늘을 도화지 삼아 그려나가는 추상조각은 용접술이 아니었더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용접봉으로 철판의 표면을 거친 호흡으로 지져나가는, 이른바 회화로 말하자면 마티에르, 즉 자유로운 표면질감을 부여하고 획득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장르별 열린 태도가 오늘날의 표현자유를, 판타지를 가능하게 한 일등공신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재료의 도입을 용인하지 않거나 발명을 금기시했던 장르의 지금, 현재를 보라. 굳이 여기서 열거하지 않겠다. 이와 함께 중요한 장르발전 요인 중 하나는 장르 고유의 성격과 어법을 발전적으로, 공격적으로, 능동적으로 이끌어온 작가들의 노력이다. 새로운 재료의 과감한 도입과 함께, 전과는 다른 기법과 형식으로 장르의 어법과 화법, 작법을 풀어나가는 이들의 노력은 미술진화, 발전의 기본 동력이었던 것이다.

이병찬_life blooming_비닐_가변설치_2010

신예 이병찬이 개인전을 갖는다. 첫 개인전이자 신진작가 수상전이다. 생애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미술계에 자신을 상장하는 가슴 설레는 발표장인 것이다. 이 의미 있는 시공간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기존 조각 장르에서 흔히 다루지 않았던, 비교적 낯선 새로운 재료를 과감히 도입한 점이다. 젊은 작가 이병찬은, 이른바 일반인들이 싸구려라고 생각하는 하찮은 일회용 비닐 봉지를 재료로 작업했다. 미물(微物), 그러나 어쩌면 미물(美物)일 수 있는 비닐 봉지에 미술작품이라는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제공했다. 작가 선택한 재료와 그것을 삶의 풍경으로 풀어 놓은 3차원의 판타지 속에 몸으로 들어가 볼 것을 권한다.

이병찬_life blooming_비닐_가변설치_2010

비닐봉지는 시장이나 대형할인매장 등지에서 쉽게 만나고 싼 가격에 부담 없이 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생활 오브제(object)다. 출품작을 구성하고 있는 비닐 봉지를 구석구석 하나하나 들여다보자. 그것은, 의외로, 형형색색의 다양한 색깔과 개성 있는 문구, 친근한 패턴과 문양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세상에 나온, 그야말로 대중적인 친밀감과 인지도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병찬은 이들 비닐 봉지에 생명과도 같은 공기를 불어 넣어 이런저런 표정과 형태를 가진, 하나의 커다란 판타지를 연출했다. 평범한 우리네 삶이 꽃피운, 삶이 꽃피는, 삶을 꽃피우는 전시다. 기존 조각전에서 쉽게 경험하지 못한 유쾌한 판타지다. 물론, 한편으론, 이번 전시가 일부 현대미술이 그러하듯 콜롬부스의 달걀로 읽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얼마나 통쾌한가? 이병찬은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 넣는 조각가의 고전적 역할을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 조각의 전통적 작법인 매스(mass)를 전시장 가득 유감없이 하나의 장, 미장센(연출, mise-en-scene)을 통해 매력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하고 빵빵한 판타지와 볼륨감을 선사한 작업을 최근 본적이 없다. 조각을 전공한, 물론 전공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작가 이병찬의 조각재료에 대한 신선한 도입과 조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압권이다. 갤러리AG가 신진작가로 이병찬을 선정하기에 손색이 없다. 다만 이병찬은 이번 신진작가 수상전에서 유감없이 펼쳐 보인 특유의 판타지를 젊은 시각으로 구성해나가는, 풀어나가는 기술(記述)과 기술(技術)에 대한 간단(間斷)없는 자기 노력과 실천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미술이, 판타지가 기술(奇術)에만 의지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박천남

Vol.20101026c | 이병찬展 / LEEBYUNGCHAN / 李秉燦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