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Life

김창겸展 / KIMCHANGKYUM / 金昌謙 / photography.video   2010_1101 ▶︎ 2010_1127 / 일요일 휴관

김창겸_still life 1001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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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101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분도_Gallery Bundo 대구 중구 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2층 Tel. +82.53.426.5615 www.bundoart.com

Still-Life This still life is all I ever do There by the window quietly killed for you In the glass house my insect life Crawling the walls under electric lights 미디어 아티스트 김창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는 영국 록밴드 스웨이드(Suede)의 「Still Life」(Dog Man Starr, 1994) 노랫말을 흥얼거리게 된다. 김창겸의 스틸 라이프 연작과 스웨이드의 스틸 라이프는 내가 받아들이기에 공감각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꽤 있다. 브랫 앤더슨의 퇴폐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목소리는 김창겸의 조형적 상상력으로 절묘하게 대치된다.

김창겸_still life 1003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10
김창겸_still life 1002_디지털 프린트_101×180cm_2010

김창겸의 작품들은 정지된 사진과 움직이는 영상을 융합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사실, 현재 많은 미술가들은 사진과 영상을 동시에 작업하면서 자신들이 미디어 아티스트라는 이름으로 무난히 수렴되는 것을 원하거나 혹은 내키지 않더라도 그냥 묵인한다. 그런데 김창겸에게는 미디어 아트를 다루는 많은 현대예술가들의 퍼스낼러티가 드러내는 까탈스러움이 없으면서도 그들보다 더 첨예한 면이 있다. 인상비평이라는 낮은 차원에서 보자면, 작가의 작업은 '정지된 사진/움직이는 영상'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진/정지된 영상'처럼 보인다. 이러한 역설(paradox)이 예컨대 사진의 착시 현상이나, 동영상의 멈춤-pause 실행을 뜻하는 바는 아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그보다 좀 더 철학적이길 원한다. 그 존재론적 철학은 현대 미디어 아트의 본질을 논의하는데 적절한 주제를 제공한다. 그 주제란 미디어 아트가 재현하려는 대상으로부터 생명력을 앗아가는가, 아니면 생명력을 불어넣는가? 즉, '삶이냐 죽음이냐'의 물음이다.

김창겸_still life 1015_디지털 프린트_112×200cm_2010
김창겸_still life 1008_디지털 프린트_150×112cm_2010

작가의 작업은 실제로 촬영한 사진과 가상으로 꾸민 이미지를 조합하는 것에 터를 둔다. 즉 실사 사진을 밑그림으로 삼아서, 거기에 인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붙이고, 모양과 구도를 바꾸고, 비율을 조정한다. 실존하는 대상 오브제를 실재하지 않는 사건의 내러티브 속에 재료로 사용하는 셈이다. 그가 펼치는 창의적인 작업은 뜻밖에도 정물(Still Life)이라는 전통적인 주제로 표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다루는 정물은 예컨대 정물화가 표상하는 과거 지향적이고 관습적인 제도 미술과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드러난다. 그가 직접 달아놓은 주제 해석에 따르면, 정물은 영어로 still life, 이태리어로 natura morta로 쓰면서 서로 조금씩 다른 의미로 갈라진다. 각각 풀어서 보면, 그가 창조하는 정물은 멈추어진 삶, 그리고 죽어버린 자연(생명)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작가는 이 두 개의 같거나 다른 언어적 의미 복합체를 시각 예술로 초점을 맞추어 생명체와 비생명체,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은 것, 중요한 대상과 사소한 배경 따위를 의미 구분한다. 그는 활기찬 생명의 아이콘으로 해석되는 여인의 나신상을 나무나 와인병과 같은 삶의 또 다른 아이콘과 더불어 병치시키며 거울과 같은 집에 비춘다. 여기서 안과 밖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그것은 다만 생명이 가진 활력의 정점과 그 끝을 동시에 보여준다. 플레임 속에 들어온 모든 대상은 그것이 서로 강하게 관계를 맺기보다 따로 흩어지게 하는 효과가 더 크다.

김창겸_stilled life 1002_디지털 프린트_56×100cm_2010
김창겸_stilled life_단채널 비디오_00:04:50_2010

그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피사체인 대상이 가진 생명을 일시적으로 박탈하면서(문명화 과정을 겪지 못한 원시부족 커뮤니티에서 터부시 되는 사진 촬영에 대한 공포감의 은유), 생명 활동 안에서 발현되는 아름다움을 플레임 속에 영원히 가두어두는 미학적 특성에 주목한다. 또한 그는 사진과 달리 생명력을 불어넣는(animate) 동영상 작업을 병행하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연속적인 이미지와 순간적인 이미지의 구분을 다양하게 포착할 기회를 넓혀간다. 이처럼 작가는 정/동, 생/사, 안/밖 등으로 구성되는 인식 체계에서 그 가장자리를 주목한다. 그는 양쪽의 의미를 함께 품은 모호한 경계를 자신의 작품의 중심에 뚜렷하게 배치시키면서 그것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우리도 주목해 보라고 호소한다. 그 아름다움은 비록 찰나적으로 사진 찍힌 주체가 현실에 존재하지만, 그 현존성을 거의 박탈당한 채 결코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 낱낱의 기호로 승격된 매혹을 가리킨다. 적어도 내가 볼 땐, 그런 것 같다. ■ 윤규홍

Vol.20101029k | 김창겸展 / KIMCHANGKYUM / 金昌謙 / photography.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