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y Silence

이정민展 / LEEJEONGMIN / 李貞旼 / painting   2010_1203 ▶︎ 2010_1227 / 일요일 휴관

이정민_Forest-Loft_캔버스에 유채_각 162.2×130.3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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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203_금요일_05:00pm

런치토크_2010_1217_금요일_12:00pm 참가신청 www.shinhanmuseum.co.kr 에서 행사 프로그램 신청하기 버튼 클릭 참가비 무료(작가의 전시설명, 점심식사 제공)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신한갤러리_SHINHAN MUSEUM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82.2.722.8493 www.shinhanmuseum.co.kr

회색(Gray)의 미학, 상처입은 리얼리즘(traumatic realism) ● "나에게 그림은 텅 비어있는 의미 공간이다. 더 이상의 확실한 의미의 진술이 아닌 불확실한 감성을 재현하는 것으로…" (이정민) 위의 진술처럼, 이정민의 회화세계에서는 많은 것들이 불분명하다. 실제와 비실제의 간극은 완화되어 있고, 공간의 원근(遠近)은 축소되거나 거의 무시되는 수준이다. 상황, 또는 배경은 실제가 바탕이 되긴 했더라도, 여러 상이한 공간들을 조립하고, 여기에 작가의 해석까지 가미된 3중으로 재구성된 가상의 공간이다. 상황과 사물들은 각각의 고유성과 구체성에서 이탈해 있으며, 그것들 간의 차이는 상당부분 좁혀져 있다. 한 대상의 세부, 사물들의 고유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혹이라도 그것들이 화폭에 하나의 대기를 제공하는 모호하지만 분명한 연관성을 교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예컨대 이정민이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것-천사-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작가는 각각의 사물들, 공간과 사람들을 커다란 하나로 엮어내는 보이지 않는 맥락,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세계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일테면 이정민은 대기를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에 의해 우리 모두가 하나의 공간을 점유하고, 동일하게 흐르는 시간 안에 거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그러한 대기. 이로 인해 이야기는 마치 바늘이 한 곳에 고정되어 계속 한 소리만 내는 LP레코드처럼, 시원스럽게 앞으로 진행되지 못한다. 이 안락한 정체, 또는 권태롭거나 우울한 느슨함에서 이 세계의 내면을 이루는 한 중요한 정서적 아우라와 마주하게 된다.

이정민_Forest-page.A_캔버스에 유채_72.7×233.6×2_2010 이정민_Running_캔버스에 유채_각 72.7×60.6cm_2009
이정민_Sound_캔버스에 유채_각 60.6×72.7cm_2010
이정민_Sound_캔버스에 유채 _각 60.6×72.7cm_2010

이 정민의 세계는 다소 푸른 기가 도는 회색지대(gray area)에 속해 있다. 하지만 그에게 회색은 단지 가시광선의 한 분광이라는 광학적 현상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가에게 회색은 그의 세계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작용과 관련된 미적 방법론이자 그 철학이기도 하다. 먼저 회색은 현존이 아니라 부재와 상실의 색이다. 그것은 젊음이 아니라 늙음, 희망 보다는 회한의 시간의 뉘앙스, 기억의 지평과 결부된다. 회색은 또한 풍요가 아니라 가난을, 소유가 아니라 상실을 상징한다. 이는 동일하게 시각적 맥락이기도 해서 회색은 그 자체로 표현의 후퇴로 작용한다. 그것은 인상주의자들에게는 위험한 수렁이었고, 표현주의자들에겐 재앙이었으며 미래주의자나 초현실주의자들에겐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이정민_Knocking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09
이정민_Gray Silence_캔버스에 유채_97×162.2cm_2010

회색은 또한 모호함의 세계다. 통상 그것은 두 개 이상의 범주와 관련되면서 명확하게 정의되기를 거부한다. 회색은 경계를 상징한다. 그것은 명확히 이것이거나 저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의, 또는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있는 경계며, 양자 모두를 포함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렇듯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몽환의 경계에 애매하게 걸쳐있다. 회색적(灰色的)이라 함은 주로 '정치적인 면에서 태도가 불분명한 경우를 의미하며, 회색적 인간이라 함은 상대에게 자신을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어떤 입장과도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의 회화들은 일상의 순간들로부터 포획(capture)된 상황들을 다루지만, 결과는 언제나 어떤 일상에도 소속될 수 없는 비일상이다. 인물들은 그 사실적인 출처에도 불구하고, 핏기없이 창백한 피부에 의해 현실의 차원에서 일탈한다. 현실과 일상성은 모호함에 의해 전복되고, 대기는 온통 흐릿한 것이 된다. 이 흐릿함은 이미지의 심층을 허용하기 위해 표층을 완화시키는 전략이다. 자크 라깡적 의미의 뚜셰(touché), 곧 의미의 지점이 표면에 착상되는 것을 교란하는, 그렇게 함으로써 회화적 심도를 확보하는 조형적 방법론인 것이다. 뚜셰를 후퇴시키고, 표면의 미적 긴장감을 해소, 또는 완화시키는 이 문법에 의해 이정민의 세계는 오히려 2차원 회화의 환원주의로부터 상당한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은 할 포스터(Hal Poster)적 맥락의 '트라우마적 리얼리즘(traumatic realism)'과 일정부분 맥락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는데, 이는 작가의 다음과 같은 고백에 비추어볼 때 설득력이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정민_Blah Blah Blah..._캔버스에 유채_72.7×90.9cm×4cm_2010

"나의 회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침묵과 고독감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소리는 침묵이며, 이런 침묵이 가져다주는 고요한 공기의 흐름은 인간의 실존적인 고독감을 보여준다." 이정민의 회화노트에서는 존재에 대한 진솔한 회의의 흔적들이 목격된다. '오직 존재할 뿐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는 존재'가 언급되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에 선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순간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다음과 같은 구절도 눈에 띤다 : "날마다 웃고 떠들며 사는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 트라우마적 리얼리즘, 곧 '상처입은 리얼리즘'은 예컨대 카라바죠나 쿠르베의 리얼리즘, 즉 사실의 극적이고 장엄한 재현이나 보이는 것으로만 표현의 범주를 한정지으려는 것들과는 상반된 태도다. 작가의 트라우마적 리얼리즘은 거의 모든 면에서 대상의 시각적 실재를 파헤치거나 과장하기보다는 감추고 뭉뚱그리며 삭감한다. 실재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실제로 다가서는 것이랄까. 또는 벗어나기 위해 벗어나야 할 자리로 되돌아가는! 마치 안개에 휩싸여있는 것 같은 대기에 의해 대상들의 구체성은 후퇴하지만, 그것들의 맥락은 더 입체적인 것으로 전진한다. 공간의 원근은 소멸되거나 현저하게 완화되지만, 공간을 지배하는 뉘앙스의 심도는 오히려 깊어진다. 사물들의 차이를 상당히 무마함으로써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며, 흐릿한 가운데서 회화적 호소력은 더 해진다. 이 회색의 드라마, 색의 결핍, 묘사의 적절한 누락, 콘트라스트의 극적인 퇴화로 조율되는 그것이야말로 상처입은 리얼리즘을 구성하는 조형적 요인들인 셈이다. 이 때 작가의 삶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주관적 해석이 그 후퇴와 전진, 소멸과 현존, 색의 삭감과 뉘앙스의 배증을 조절하는 조리개 역할을 한다. ■ 심상용

Vol.20101203b | 이정민展 / LEEJEONGMIN / 李貞旼 / painting